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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Chou)

드라마 / 2001

개요
드라마, 일본, 145분, 15세 이상 관람가, 2005.06.23 개봉
감독
이와이 슌지
배우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아오이 유우
이토 아유미
오오사와 타카오
이치카와 미와코
이나모리 이즈미
마츠다 카즈사
카쿠 토모히로
바다 타카코
타나카 요지
시놉시스
'릴리 슈슈'의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 그러나 그의 일상은 힘들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 호시노가 어느날 반 아이들의 리더가 되어 자신을 이지메 시키고 첫사랑 쿠노 역시 이지메를 당하지만 그녀를 도와주기에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소년의 유일한 안식처는 오로지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릴리 슈슈’의 노래 뿐... 그러나 현실은 노래로 감출 만큼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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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왓챠플레이에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를) 볼 수 있으며 네이버 시리즈on, 인디플러그, 씨네폭스, YES24에서 유료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85.71%
3.6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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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개
별점 분포
리뷰
8

김경수 님의 리뷰
2018.05.13 14:51:15
동물의 생태계, 식물의 에테르
나는 블랙슌지를 잘 알지 못한다. <러브레터>나 <하나와 앨리스>의 화이트 슌지만 봐왔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자마자 블랙의 세계가 화이트의 세계와는 달리 체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왓챠나 네이버만 가도 이 영화가 어지럽다라거나, 자폐증에 가까운 이미지의 흐름이라 평하지만 이 영화의 서사구도가 애초에 이미지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데에서 나온 독법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서사는 관객들이 예상치 못하는 흐름대로 가지만 그걸 이어주는 건 분절적인 이미지와 릴리 슈슈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서사 흐름이 세 겹을 지니기에 누구나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 혼란을 감출 수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릴리 슈슈를 찬양하는 이의 아이디를 찾아나서야 하며, 주인공들의 동기들을 찾아나서야 하고, 릴리 슈슈가 누구인지까지 찾아야한다. 이 복잡한 플롯에서 이와이 슌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이미지의 불연속적 전개가 왜 서사의 연속적인 전개를 만들까.

이 영화의 이미지는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연속의 연속이다. 그런데 서사의 연속성을 지니게 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난데없이 꽁치가 튀어나와 사람 눈을 먹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라든가, 친구를 이지메 시키며 자위를 시키는 장면 등의 충격적 이미지들이 영화에서 설득력을 지닐까. 나는 서사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이 지니는 악순환의 구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약육강식이라는 틀 아래 무한히 반복되어온 동물의 생태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그 반대편인 에테르의 식물적 이미지로 세계가 흘러가는 방식을 정지시킨다. 다시 말해, 슌지는 이 영화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두 장소인 학교와 풀밭을 중심으로 파편으로 흩어진 세계를 하나로 봉합시키려한다. 폭력과 죽음, 우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인과를 지니지 않는다. 그런 일들에 최소한의 인과를 부여하지만 그 행동은 인과가 없다. 동물의 생태계가 약육강식이라는 틀 아래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면 에테르를 발견한 식물의 생태계는 질서와 평온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둘의 간극을 릴리 슈슈라는 인물로 묶으려하는 연출의 기획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 영화는 네 주인공의 불운한 성장담이다. 이지메를 중심으로 폭력이 전염되고 순환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이 폭력을 해소하려하지도 않는다. 모두 각자의 고통을 앓는데, 그 고통은 나에게 비롯된 고통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난 고통이다. 누구도 그 고통을 마주보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다. 고통을 마주본다는 일은 결국 다시 한 번 '나'가 부서지는 일이며, 그걸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걸 감당할 수 없는 주인공들은 '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고통을 해소한다. 이 고통은 이 영화에서 원죄의 수준까지 도달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분명 이지메의 경험을 앓던 호시노가 이지메의 경험으로부터 도망치려 시작한 도둑질에서부터다. 호시노는 오키나와에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여러 번 한 뒤, '부정한 것'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이는 일본신화를 인용했지만 실은 기독교의 윤리의식이기도 하다. 부정을 탄 자는 신전에 들어오지 말라든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예수는 없다. 원죄는 해소되지 않으며 그 원죄는 계속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얽맨다. 이는 기독교가 만들어낸 세계 이전의 어떤 동물의 생태계를 지닌 인간의 삶과 같다. 강자와 약자 간의 윤리가 존재하기보다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비슷하다. 릴리 슈슈가 소문으로만 무성한 이유는 이런 메시아니즘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의 말미에 호시노는 악한으로 자라났으며 릴리 슈슈를 좋아하는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 릴리 슈슈의 콘서트로 향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는 예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슌지는 애초에 이 세계에 예수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릴리 슈슈를 택했다. 세계는 약육강식이 무한히 반복되며 다른 모습으로 영원회귀하는 세계이며, 원죄와 악을 벗어나지 못한다. 악이 악으로 얽혀서 무한히 커지는 세계는 파국에 다다를 것이다. 슌지는 이 악몽같은 세계에 에테르와 풀밭이라는 대안을 제공한다. 이 영화가 성장담인 이유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사라지고 성년이 시작되듯이, 원죄를 속죄해줬다 믿는 예수를 죽인 뒤 시작되는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릴리 슈슈를 좋아하는 모두가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원죄를 지닌 채 산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모두가 체계대로 움직이며, 그 체계에서 문제적 인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사회에 들어가기 전 요구하는 정상인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기에 학교라는 공간은 언제나 문제적이다. 계급이 존재하지만 그건 수치적 계급이 아니라 동물적 계급이다. 호시노가 이지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탈바꿈한 건 그 계급의 존재를 알아차린 뒤다. 누구나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으며, 그 세계에서는 힘만이 논리를 지닌다. 인과와 윤리가 아니라 우연과 부조리가 세계를 구성한다. 오키나와는 그 전초인 공간이다. 유이치와 호시노가 오키나와에서 겪는 일들은 야생의 법칙을 배워오는 일이며 유이치는 그 야생의 세계를 싫어하게 되고 호시노는 그 야생의 세계를 배워와 적극적으로 인간 세계에 써먹는다. (오키나와의 음악이 계속 학교에서도 나오는 건 그 때문이라본다.) 이 영화가 문제적인 건 그 세계를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지메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야생적 본능의 문제로 재해석해 도발적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이 동물의 세계는 해결하려 하면할수록 더 꼬여버린다. 기어이 강간과 자살까지 만들어내는 세계는 오히려 영화에서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이지메가 문제적인 이유는 동물적인 세계의 법칙을 더 잔인하게, 서투르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에테르란 무엇인가, 영화 내내 드뷔시의 아라베스크가 흐르며 에테르를 발견했다는 말들이 계속 나온다. 드뷔시로부터 발견한 에테르는 릴리 슈슈를 듣는 사람들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다. 에테르가 썩는다라는 말은, 그 에테르가 앞서 말한 오키나와처럼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야생의 세계와 반대로 에테르의 영역은 원죄의식을 다 사라진 구원의 공간이라는 의미다. 에테르가 구성되는 방식은 세계를 일면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단편적으로 인식하고, 그 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영화의 연출이 방법론적으로 그 에테르를 보여주고 있으며 에테르의 시초라 밝힌 드뷔시의 음악 등이 그 지점을 보여준다. 에테르는 릴리 슈슈를 듣는 이들이,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인상대로 '지금'을 살아가도록 느끼는 일이다. 이 에테르의 공간으로는 영화 내내 반복되어 등장하는 풀밭과 하늘이다. 동물의 생태계는 끝없이 악을 재생산하지만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풀밭의 세계는 모든 존재가 각자의 방식대로 그 자리에 서서 평온히 서있는 세계다. 이 둘의 대립으로 슌지는 구원이 릴리 슈슈가 아니라 풀밭에 선 하나의 풀처럼 자신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결국 성장한다. 동물의 생태계에서 망가지지만 결국 그 자리에 서있는 풀로.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새봄 님의 리뷰
2018.08.10 20:08:59
나선형의 폭력. 이제 가도 되는데, 갈 수 없는 쿠노의 선율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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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18.07.05 16:05:24
슌지의 다른 영화가 안궁금해질 재간이 없네.
<러브레터>란 영화가 한참 불법비디오로 돌았던때가 있었다. 소위 "삐자 비디오"라는 말이 성행하게 된것도 아마도 이 <러브레터>란 영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디오 보는것을 원체 싫어하는 나도 그 "유명"한 <러브레터>를 "삐자비디로"로 받아서 집에서 봤다. 머 비디오를 보는걸 싫어하니 다들 재밌다고 호들갑떠는 그 영화도 나에게는 한번에 보지 못하고 몇번에 몇일을 두고 봐야 하는 다른 비디오와 별다를것이 없었다. 그런 <러브레터>가 개봉하게 되고, 별 기대없이 사람들이 보러 간다고 해서 묻어가게 되서 보게된 <러브레터>는 참 잘만들어진 로맨스 영화였다. 나는 비디오로 보면 기억조차 할수 없는 버릇이 있어서 다행히 거의 기억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본 영화 <러브레터>는 썩 잘만들어진 로맨틱 상업영화라고 하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나서 본 이와이 슌지 영화는 <4월이야기>와 얼마전에 개봉한 <하나와 엘리스> 정도였다. 중간에 "삐자 비디오"로 본 <스왈로우 테일 버터 플라이>와 <피크닉>도 있지만 역시나 비디오로 봐서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극장에서 본 이와이 슌지의 세 영화는 아름다워서 견딜수가 없는 미소녀들이 나와서 눈물 샘과 추억을 톡톡 건드리는 또다른 팝콘 무비정도였다.



그래서 오늘 본 <릴리슈슈의 모든것>이 4번째 이와이 슌지 영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릴리슈슈의 모든것>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이와이 슌지를 단지 "곽재용보다 감성이 풍부한, 상업적인 소녀적인 감정을 제대로 건드릴줄 아는 감독"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릴리슈슈의 모든것>은 대단히 영화적이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참 놀랍다. "B자 비디오"로 본 <스왈로우 테일 버터 플라이>역시 만만치 않은 영화라는건 알고 있지만 사실 몸으로 머리로 느끼기에는 비디오라는 매체는 아무래도 좀 감정적이지 못한듯 하다. 복잡 다단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힘있게 밀고 나가는것도 그렇고, 순간 순간 보여지는 이미지와 적절한 음악은 이미 전작에서 처럼 충분히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 퍽 안타까운 점이라면 나는 일본 사람들 이름은 도통 외워지지가 않는다. 영화 보는 내내 나오는 이름들을 들으면서 가뜩이나 복잡한 이야기를 "저 이름이 주인공 이름 맞나? 저사람이 저사람을 얘기하는걸까?"를 내심 고민했던것만 빼고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14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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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수 님의 리뷰
2018.04.30 11:54:05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가는 우리들, 그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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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11:43:36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보고 나면 뭔가에 홀린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그 영화를 또 보고 싶은 그런 기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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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00:26:21
투박한 질감의 화면으로 비치는 너무나 아픈 이야기
마구 뒤엉키고 엇나가는 그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완전히 다른 노선에 있어서,
이를테면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자동차와 비행기처럼
위에서 보는 좌표만 동일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축에서 그들이 겪는 방황은
릴리슈슈의 노래를 통해 위태위태하지만
넘어질듯 넘어지지 않게 된다.
신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인간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은 틀렸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은 자들은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들은 살아있을 수 있는 한계 직전까지의
나름대로의 고통을 안고 산다.
끝내 넘어져버린 그 피다못한 꽃이 너무나
아름답고 생생해서 가슴으로 아팠다.
내내 아프고 내내 무거웠다.
에테르가 끝내 없는 것으로 밝혀졌듯
릴리슈슈의 노래는 치유의 가능성만
나에게 한줄기 기대로 작용하다가 말았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알아갈수록
벌어진 상처를 억지로 벌리고 돋보기로 보는 듯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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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욱 님의 리뷰
2018.01.05 21:19:36
릴리 슈슈라는 종교.
기울어지고 단절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가 불러오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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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xpisto 님의 리뷰
2018.08.25 09:40:20
눈에 보이는 상처는 아프지 않아요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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