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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배달부 키키 (Kiki's Delivery Service)
애니메이션 / 1989

개요
애니메이션, 어드벤처(모험), 판타지, 가족, 일본, 102분, 전체 관람가, 2019.06.26 개봉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배우
타카야마 미나미
사쿠마 레이
야마구치 캇페이
토다 케이코
노부사와 미에코
미우라 코이치
카토 하루코
세키 히로코
후치자키 유리코
야마데라 코이치
이노우에 키쿠코
코바야시 유코
도이 미카
하시 타카야
사카모토 치카
시놉시스
사랑스러운 초보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련을 떠난다.
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키키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지만, ‘배달’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본격적인 마법 수련을 시작하는데…
97.87%
3.61점
키노라이트 분포
2개
92개
별점 분포
리뷰
21

Selfish 님의 리뷰
2018.08.10 16:50:49
누군가 이러더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자신이 강한 때가 아닌 약해져 있을 순간에 찾아온다'라고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꿋꿋이 비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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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 님의 리뷰
2019.10.15 23:55:32
낯선 그곳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때론 위험과 외로움에 혼자 울기도 하지만

낙담하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새로운 삶의 장소에 적응한다.

키키를 보면 고향을 떠나 직장 혹은 학교 때문에 타지로 와있는 수많은 동년배의 친구들, 그리고 한때의 내가 떠오른다. 고향을 꼭 떠나지 않더라하더라도 혼자의 시간에 익숙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과정일것이다.

그래서 찡하기도 했고 키키가 기특해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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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xixi 님의 리뷰
2019.07.30 17:24:45
누구나 홀로서기
얼마 전 재개봉했던 <이웃집 토토로>가 평범한 아이들이 겪는 신기한 모험을 그렸다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어린 마녀 키키가 겪는 평범한 홀로서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13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이던 정서적이던 아직 독립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자아를 찾아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이지요. 세상이 마냥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초보 마녀 키키의 모습은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100% 경제적 독립은 아니지만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대학생들도, 혹은 취업을 하면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20대 중후반의 사회 초년생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어요. ^^


(중략)

마녀 키키가 홀로서기를 해가는 동안 키키가 어디에 있는 어떤 마을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고 키키가 전해줄 소식만을 기다리는 키키의 부모님을 보고,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렇게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히고 상처받기도 하면서 결국 혼자 일어서는 법을,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 키키이니까요. ^^

아, 그래도 옆에는 유머를 아는 지지 같은 냥이 한 마리쯤 함께이면 좋겠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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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님의 리뷰
2019.07.11 21:24:48
마녀 배달부 키키 - 세월이 지나도 키키는 여전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 마녀 배달부 키키 >가 2007년 재개봉 이후 12년 만에 또다시 재개봉을 하게 되었다. 재개봉 영화는 역대급 명작이 아닌 이상 내용과 결말 그리고 영화 속 담겨져 있는 메시지나 감정들을 이미 소모했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변질할 수 있어 관람을 피했는데 관람평 중에 “어른이 본 키키는 다르다”라는 평이 눈에 들어왔다.이 관람평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와닿아서 관람하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성은 여전하다.

누군가의 유년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향수를 일으키게 하는 매력을 갖은 미야자키 감독!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타켓은 유년층이 대부분인데 어린이들에게는 동심의 마음을 그대로 어른들에게는 보일 듯 말 듯한 메시지와 향수에 취하게끔 매번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참으로 존경스럽다. 근래 개봉한 영화들은 전쟁 미화 등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조금은 있었지만 2000년 초 다작 활동 할 때의 각 작품마다 특성과 캐릭터들만의 개성 그리고 스토리의 완급조절을 통해 지루할 틈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성이 이번 재관람을 통해서 다시 한번 미야자키 감독의 위력을 느껴볼 수 있었다.

그대로인 키키와 변한 우리

마녀가 되기 위해 수련을 떠나는 13살의 키키를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어린아이의 동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인연을 맺는 법과 그 나이대에서 느껴볼 수 있는 감정 등을 어른의 나이가 된 내가 바라보게 되니 어릴 때 느꼈던 감정과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싶었다. 어렸을 때는 그저 풍경과 캐릭터에게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대사와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되며 같은 영화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같은 내용이 이렇게 달리 보일까 참 신선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키키가 선사해줘서 관람에 있어 후회가 전혀 남지 않았다. 앞으로 추가적으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몇 편 더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 하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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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14:48:46
스튜디오 지브리와 페미니즘
1.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면 추구하는 방향성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가이낙스-트리거라면 열혈과 청춘 그리고 오타쿠스러움(Geek)일 테고, 디즈니-픽사라면 어린이와 동심 그리고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작사의 대표작이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토이 스토리>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때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나란히 나열해둔 두 제작사가 사실은 다른 회사라는 점이다. (당연한 사실이나, 은연중에 같은 회사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망해가는 가이낙스에서 인력이 빠져나와 만든 회사가 트리거이고,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여 자회사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큰틀에서는 유사할 수 있어도 세세하게는 ‘다를 수’ 있다.



그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세세하게 다르다 하여도 거시적으로는 같은 곳을 향해간다. 회사의 방향성을 따르던 이들이라면 어디를 가도 그걸 토대로 행동할 테다. 예를 들어 가이낙스와 트리거는 각자 갈 길을 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그림체와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디즈니는 픽사의 작품에 간섭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우리가 픽사의 작품을 보면서 디즈니의 주제의식을 떠올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동질이상(polymorphism)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들 제데사의 화학성분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작품의 탄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제 지브리를 언급하려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대체로 이렇다. 자연과 여성, 기계문명과 인간의 탐욕, 어른의 세계를 살아가는 아이들. 이 주제들은 지브리 작품 전반에 걸쳐 여러 번 언급되고 인용된 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다른 제작사와는 다르게 지브리 스튜디오는 DNA를 물려준 곳이 없고, 그래서 사실상 죽음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이 스튜디오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첫 번째, 이들 제작사의 주제의식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하야오 개인의 목표였다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그들 모두의 목표였다면, 하야오가 약해지면서 주제의식도 덩달아 약해지는 일은 없었을 테다. 두 번째, 이들 제작사의 주제의식이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는 너무 낡은 게 되었다. 위의 지적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그들의 지적이 구시대에는 합당했으나 신시대에 맞추어 변화해야 함에도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단지 지브리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하자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작품을 만들 때는 제작사가 아니라 작품 별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제작사 위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일관성과 안정감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유연한 대처가 불가하다. 찰나를 놓치면 도태되는 지금 시대에 유연한 대처가 불가하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현 지브리 스튜디오의 모습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반대로 디즈니-픽사 스튜디오는 <토이 스토리 4>를 선보이며 자체적으로 설정했던 한계를 깨부수고, 시대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는 그 모습에 걱정과 우려 혹은 비난과 실망감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시대의 조류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요컨대 이것은 따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조류에 올라탈 것인지의 문제다.



그런데 사람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브리 작품에서)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이 주로 여성이고, 작품의 서사가 그런 여성 주인공을 보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몇몇 작품군, 특정 시기에 도드라지는 현상이지만 그 시대와 우리 시대를 감안하면 굉장히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지브리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여전한 인기를 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지브리의 여성주의 계보로 언급되는 것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마녀 배달부 키키>, <모노노케 히메>. 다른 작품도 그런 맥락이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손꼽히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주의와의 결합이다.



지브리 전체에 퍼져있는 풍조는 자연주의와 여성주의 그리고 전쟁이라는 세 가지이다. 전자는 <이웃집 토토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마루 밑 아리에티>를 꼽을 수 있다. 후자는 위에서 말한 것들이며, 전쟁을 다루는 작품은 <반딧불이의 묘>, <붉은 돼지>,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꼽을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하나만을 보고 분류했을 뿐, 지브리 작품에는 여러 풍조가 혼합되어 나타나고는 한다. 작품 하나만 예로 들면 <모노노케 히메>는 여성주의와 자연주의와 전쟁이라는 세 가지 테마 모두가 어울려서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은 부족 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자연과 그 자연이 인간 전체에 복수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주인공의 모험담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산(이시다 유리코)이 보여주는 활약은 자연의 원대함과 결합하면서도, 인간의 편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한다.



2.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 인간과 전쟁, 자연과 전쟁. 각각의 주제의식은 유기적으로 어울린다. 그 점을 제하고서라도, 여성을 중심으로 모든 기표가 맞물리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산이라는 캐릭터는 자연의 메타포이면서도 그런 자연의 구원자로서 설정된 여성이다. 그녀는 자연 아래에 인간이 있고, 그런 인간이 자연을 개발한다는 건 어머니를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자연은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기에 여성성이 평화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남성성이 전쟁에 빗대어지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구도는 대립항이 아니라 독립항으로 존재한다. 여성은 어머니-자연으로서의 역할을, 남성은 아버지-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다르게 말하면 여성은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세계를, 남성은 그 위에 세워진 올림푸스의 신들을 담당하게 된다. 이때 올림푸스의 신들이 인간과 닮았으면서도 완벽한, 그럼에도 인간적인 면모가 도드라진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영생만을 누릴 뿐, 인간처럼 질투하고 인간처럼 사랑한다. 그말인즉슨 그리스 신화에서 중점이 되는 게 신인 이유는, 단지 초점이 그곳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지 정말로 그들이 세계의 중심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신화에서의 중심 소재는 그들의 배경, 즉 세계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인공 아시타카와 그가 지나쳐가는 마을은 작품의 중심 소재가 아니다. 자원개발을 통해 다른 부족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유하는 그들은, ‘영생’이라는 육체의 단단함 말고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신에 빗대어진다. 그들이 유사 신이 되어 세계의 질서, 일본의 토속 신앙에서 유래된 자연-신을 살해하려고 들 때 ‘세계’는 곧 공격태세를 갖추게 된다. 결과적으로 세계를 이루는 건 신이 아니라 세계이며, 신 또한 인간과 함께 청소되어야 할 것으로 분류된다. 그런 이유로 산이 신의 영혼에 인간의 육체를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가 어떤 포지션인지를 떠올려보라.)



이 부분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전체에 대한 비판점이 생겨난다. 지브리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여성과 남성을 갈라놓고, 남성을 ‘Man’으로 즉 ‘인간’이라는 범주에 넣고 있다. 반대로 여성은 세계에 대응하며, 그녀들의 헌신으로 세계가 돌아가고 그 위의 생명 또한 존재할 수 있노라고 말한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자멸할 때, 여성들은 용광로를 돌리는 등의 생산성-생명력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여성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일본 사회에서 ‘신토(神道)’라고 불리는 자연 숭배가 오래도록 이루어져 왔음을 떠올려 본다면, 여성이라는 것은 곧 세계의 근간이자 원리가 된다. 눈치챌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이것은 에코 페미니즘과 궤를 함께하고 있으며, 비판점 또한 동일하다.



그러나 이것이 궤를 함께한다 하여도, 에코 페미니즘이 되지는 못한다. 여성이 자연-가이아에 대응하는 것만으로 그 둘을 일치시킨다면 심각한 오독이 된다. 오독을 피하려면 이 작품에서 남성들이 하는 일이라곤 단지 전쟁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전쟁이 보여주는 폭력성을 남성의 일, 인간이 자본을 취득하기 위해 소모하는 비용으로 취급한다면 이것은 페미니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작품에서 여성들은 세계 그 자체이고 남성들은 그 위를 살아가는 인류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지브리의 교묘함은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남성과 여성에 그것을 할당시키면서 우리를 오독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갈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두 갈래 길이라는 선택지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서 세계에 여성성을 부여할 경우에는, 남성들을 위해 여성이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며 그것은 떨떠름하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다는 말은, 남성이 여성을 착취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어진다. 또한 그런 식의 진행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갈구하는 엔딩 장면에 다다르면, 여성성은 남성성을 환하게 포괄하는 천사에만 그치게 된다. 물론 마음씨가 넓다는 게 칭찬일 수는 있겠으나, 작품의 도입부에서 멧돼지 신이 저주를 내렸던 만큼의 분노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는 점은 큰 의구심으로 남는다.



그 때문에 <모노노케 히메>는 생태주의가 아니라 자연주의로 불러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각에서는 결말부에서 제시되는 해결책이 다소 급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생태주의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허나 이 작품의 참된 주제의식은 결말 장면에서 ‘서로의 위치에서 살아가자’고 말했던 것에 있지 않다. 여기서 위치에 있어야 할 것으로 지정되는 건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원리’이다. 과학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이성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명확하게 파헤쳐서 그들의 규율로 편입하는 것이라면, 자연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감성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그들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그것은 영혼이나 유령처럼 과학이 닿지 않는 세계의 깊숙한 곳, <이웃집 토토로>의 숲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주한 으슥한 야시장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지브리의 세 가지 주제의식을 엮는다면, ‘원리는 늘 그곳에 있었다.’ 정도가 맞는 답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세계를 발명한 게 아니라 발견한 것이며, 이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조명되는지를 설명해준다. 태초에 인간이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빌려왔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것을 사용한 후에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인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가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게 자신들이 본래 향하던 지점, 그 구성원을 동일하게 돌려놓는 것이라면. 그 속에서 진행되는 건 가장 처음으로 주어진 이름, 자신의 존재원리가 된 사실을 본래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에 따라 센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생겨나며, 이때 그들의 본래 정체가 드러나면서 ‘거짓된 이름’은 사라지고 ‘진실된 이름’이 드러나는데, 그 결과 그들은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3.



그렇게 보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지브리 영화 중에서 다소 특이한 면이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굉장히 간단한데, 13살을 맞이한 키키(타카야마 미나미)가 마녀 가문의 명을 따라 독립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맥락상으로 볼 때 마녀란 게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굳이 마녀의 대를 이어야 할 이유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잇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말하자면 마녀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재, 메타포가 될 수 있었다. 사라져 가는 무언가라는 점에서 장인정신으로 볼 수도 있겠고, 그에 근원하는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허나 영화는 그런 고민을 부여하기보단, 키키라는 인물 자체의 성장에 집중한다. 요컨대 이것은 마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며, 마녀라는 설정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잘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녀라는 소재가 굳이 쓰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가장 명료한 대답은 마녀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점이다.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서부터 여(女)가 들어가는 이 단어에는, 중세 시대에 이루어졌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비록 근대로 오면서 본래 의미가 희미해졌지만, 삶을 편리하게 하는 마술만이 남은 이 단어에는 여전히 체취가 남아있다. 여기서 마녀의 박해를 근거로 키키의 자립극에 활기찬 배경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겠고, 그것은 합당하다. 키키의 부모님 대,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는 사라진 마녀에 관한 말들은 이 작품이 시작되기 이전의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많던 마녀들이 줄어가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작품이 답하는 방식은, 직설화법 대신에 마녀라는 단어 하나일 뿐이다. 요컨대 이것은 마녀라는 수수께끼, 작품 내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외부에서 동아줄을 찾는 해석게임인 셈이다.



물론 그 두 가지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고리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의 머리속으로 넣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형성된 해방의 충동만큼은 선명하게 남는다. 이것은 마치 해변에 밀려온 파도가 흔적없이 되돌아가 버리지만 자국은 남는 것과 유사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20세기의 후반에 지난 20세기 유럽풍으로 꾸며진 이 배경 속에서, 박해받지 않았더라도 마녀는 여전히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지브리의 화법을 발견한다. 그 말인즉슨 마녀가 사라지는 건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며, 그저 그것이 순리이기에 사라지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마녀는 사라지는 것에 의미가 있는 원시적 어머니라고도 볼 수 있을 테다. 지금 이 세상을 있게 했고, 인간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나면, 도시의 그늘에 가려 저 멀리 원시림 속으로 추방되는 것들. 이 도식 속에서 마녀사냥은 곧 자연을 개발하는 행위와 동의어가 된다.



다시금 강조하자면, 여기서 마녀사냥과 자연개발을 동등하게 배치한 것을 여성적 맥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흐름이 이어져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작품 안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마녀와 여성이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마녀라는 것은 성별이 아닌 존재의 원리로 작동한다고 말이다. 이를테면 작품이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드러나는 묘사를 살펴보자. 마녀가 되기 위해 성급히 떠나는 키키의 뒷모습은 유년기에서 청소년이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요컨대 이것은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통과의례이며, 정착에 성공했다는 게 그에 대한 극명한 증거이다. 대체로 어른이 된다는 건 독립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니 그렇게 보아도 좋다.



하지만 키키가 출발하는 시기가 만월의 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보름달과 어른, 이 두 가지는 달거리를 시작하는 순간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관습을 설명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키키가 떠나는 시기는 첫 달거리를 시작한 순간이라 보아도 무방하며, 작품의 시작부터 끝은 첫 달거리를 성공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떠나는 수련인 것이다. 작중 키키의 나이로 13살이 언급된다는 점도 시기상으로 맞아떨어진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마녀의 힘이 몸 상태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하는 키키의 숲 속 친구는 보름달이 뜨는 날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은유를 한데에 불러 모은다. 그녀는 일시적으로 마녀의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된 키키에게, 자신도 그럴 때가 있다면서 한숨 돌리고 오면 말짱하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격려해준다. 말하자면 본래 첫 달거리는 불완전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마음 편히 있으면 본래대로 돌아갈 테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달거리라는 것은 보름달처럼 주기적으로 순환하고 유지되는 세계의 존재원리이다. 그리고 마녀는 세계의 원리를 이용하는 혈통으로서 점진적으로 사라져 가는 존재이다. 이때 여성이라는 성별은 마녀이면서도 달거리를 하는 존재로 언급된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데, 달거리와 마녀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중개점만으로 이루어지는 그 두 가지의 접합이 달거리가 어떻게 마녀의 힘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해줄 뿐이다. 요컨대 이러한 발견은 지브리의 주제의식인 ‘원리는 늘 그곳에 있었다.’를 설명해준다.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 토속 신앙에서 따온 마나(Mana)라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이 세계관에서 마녀가 힘을 쓸 수 있는 건,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마나의 운용법을 깨우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세계의 존재원리를 여성으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인간 개인의 측면에 적용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마침내 이곳에 다다른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결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세계에는 흘러가는 원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세계에 대입하는 지브리 세계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여성이 곧 세계이고, 그곳이 우리 삶의 터전이기에, 그들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까? 이는 바람직한 생각이지만 그렇게 좋지만은 않기도 하다. 지브리 영화에서 여성들은 존중받거나 배려받아야 할 만큼 유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을 두고 존중이라는 단어를 택한다면 무례가 될 테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여성성을 독립항으로 설정했다. 세상 만물에는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일본의 신토와, 과학-전쟁 그리고 자연-인간으로 갈라지는 분할법 사이에서 그런 도식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지브리는 그보다 더 큰 것, 세계와 인간이라는 거시적 담론 안에서 두 개의 상징 안에 구도를 집어넣고 있다. 이에 사용되는 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기표이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거북이나 소라를 볼 때 외관으로 성별이 아니라 종족이 먼저 떠오르듯이, 지브리의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하나의 종으로서만 자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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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00:11:16
마녀 배달부 키키 후기
마녀 배달부 키키 후기
13살 초보마녀 키키의 모험이야기에요.
이번이 스튜디오 지브리 X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30주년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한 작품입니다.

초보마녀 키키 그리고 소중한 키키의 친구 검은 고양지 지지
이 두 캐릭터가 영화를 전부 주도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영화의 스토리가 엄청난 뭔가가 있고 그런건 없어요ㅎㅎ

하지만 지금까지도 명작이라고 이웃집 토토로와 함께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인데도 불구하고 유럽 배경의 실사처럼
스케치와 연출이 뛰어나고
또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보이는게 아니라
실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꽤 디테일합니다.
그리고 뭐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아실거라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제목은 조금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데
마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마녀가 아니라
마법을 부리는 소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마법사가 아닌 나무지팡이를 타고 날 수 있는
소녀라고 편하게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

잔잔함속에 보여주는 감동과 여운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양기자 님의 리뷰
2019.07.02 11:12:51
13살 초보 마녀의 수련기, 30년 만에 돌아왔다
마녀인 어머니 '코키리'(노부사와 미에코/최문자 목소리)와 인간인 아버지 '오키노'(미우라 코이치/임진응 목소리) 사이에서 태어난 '키키'(타카야마 미나미/소연 목소리)는, 마녀의 관습에 따라 13살이 되는 해에 검은 고양이 '지지'(사쿠마 레이/민지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마을로 떠나게 된다. 마녀에게 딸이 생긴다면, 같은 해에 태어난 검은 수컷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관습이 있는데, '지지'가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마을 주민들과 부모의 배웅을 통해 집을 나와 마녀 수련을 떠나고, 평소 바다를 동경하던 '키키'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커다란 마을에 정착한다.

2019/06/28 CGV 신촌아트레온
--- 이하 리뷰 전문은 알려줌 하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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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명 님의 리뷰
2019.07.01 16:39:34
빗자루드론배달부 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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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16:46:22
보고있으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마법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다 좋아하는지라 또 볼 생각에 무척 기대했던 영화.

비록 가까운 상영관이 없어서 주말에 멀리 나가서 봐야 했지만 그럴 가치가 충분했다!!



마녀라면 누구나 떠나야 하는 수행여행!!

엄마의 빗자루와 친구인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떠나는 모험!!

오늘도 열심히 날아다니는 키키와 지지의 행복한 모험이 기대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믿고 본다.

이젠 새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없지만 과거의 그의 작품들은 볼 때마다 새롭고 재밌고 행복하다.

언제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키키도 그러했다.

대략적인 줄거리,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몇 가지 장면들.

30년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도 촌스럽다는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마치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것처럼 두근거리며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거 같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을 난 참 좋아한다. 약자인 여자와 어린아이. 그 두 가지가 결합돼서 약함이 아닌 자립심과 강인함, 그리고 서툴지만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타인을 향한 배려심까지 보여주는 모습에 늘 감탄하고 감동한다.

키키도 마찬가지다.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해야 하고, 마녀가 익숙하지 않은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선의로 다가오는 친구를 경계하고 밀어내던 모습에서 점점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뭉클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가장 만화다운 상상력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러니까 팬으로서 다른 작품들까지 궁금해하고 보게 되는 거겠지.



너무나 유명한 토토로, 하울, 센과 치히로.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으니 언제 한번 시간을 내어서 전 작품을 정주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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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 님의 리뷰
2019.06.27 03:04:13
아직 많이 살진 않았지만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떤 순간들이 뭉게뭉게 떠올랐고 앞으로도 저편 넘어 있을 내 인생의 수 많은 순간들 속에서 두고두고 생각날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꼭 인생의 순간이 아니어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일렁일 때도 그냥 어쩌다 어떤 그림을 보고서 큰 설명을 할 순 없지만 마음을 움직여 눈물이 벅차오르는 둥 그런 감정들 속에서도 떠오를 것 같다.

걷다보면 어느새 날아오를, 저 높이 날다가도 두 발 딛고걸어갈 어느 곳이든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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