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드라마 / 2000

개요
드라마, 일본, 대만, 173분, 전체 관람가, 2018.06.28 개봉
감독
에드워드 양
배우
오념진
금연령
켈리 리
조나단 창
이세이 오가타
진희성
소숙신
가소운
시놉시스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8살 소년 양양은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

양양의 사진 속에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실의 절반’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96.97%
4.41점
키노라이트 분포
2개
64개
별점 분포
리뷰
16

여주찬 님의 리뷰
2018.07.08 20:31:24
인생 참.. 영화 참..
"인생 참 별 거 없써어~". 3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인생 참 별 거 없어. 인생 참 별 거 없어. 아직도 가끔, 가끔은 그래도 인생에 뭐가 있을 것만 같은 내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말에 어떠한 반발심도 생기지 않았던 건 바로 그 뉘앙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체념하는 듯한 말투가 아닌 그게 참 재밌다는 식의 따뜻한 말투. 굳이 과잉, 확대 해석하자면 '인생 진짜 별 거 없는데도 이렇게 살아가는 거 보면 참 웃겨어~'하는 것 같았달까.

참 때 묻지 않은 질문이다. 산다는 건 뭘까. 인생은 뭘까. 그 질문이 망라하고 있는 범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나는 그것에 대해 차마 입을 뗄 용기 조차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였던 등장인물들은 어떤 대답도 줄 수 없는 할머니 곁에서나마 그 질문 주위를 배회하며 이런저런 말을 던진다. 그러다가도 대수롭지 않게 "인생 참 별 거 없다"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그 말처럼 다시 자기만의 자리로 돌아가 좌절과 희망을 같이 머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중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팅팅이 할머니 무릎에 누워 위로받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현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어느 오후 위로 그 아주머니의 뉘앙스 같은 햇살과 손길이 부드럽게 자리한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이다. 원래 별 거 없다고. 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 글을 써볼 용기를 낸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게 어느 순간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된 이후 자연스레 보잘것없는 감상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게, 글을 쓰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때론 내가 적어내는 글에 진심이 담겨있긴 한 걸까, 어쩌면 그냥 가식인 건 아닐까 혼자 질문하곤 했다.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것만 같은데. 단지 영화를 보는 시간만 좋은 건 아닐까.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있으면 내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그냥 그게 좋았던 건 아닐까.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삶의 이면을 담아내는 역할로서 영화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양양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뒤통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데, 사실 사람은 뒤통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도 직접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면 영화를 본다는 게, 영화가 인생을 담아낸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영화를 보며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느꼈던 건 그냥 스스로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내 생각은 팅팅이 패티의 말에 가졌던 의문과 다름 아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그러해야 한다는 패티의 말에 팅팅은 그러면 영화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패티는 현실에선 경험하지 못하는 걸 경험하게 해준다며 살인의 예시를 든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가 인간의 수명을 3배나 연장시킨다는 삼촌의 말을 곁들인다. 이 말이 어쩌면 영화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친 많은 것들을 영화가 새로이 경험시켜 준다고 했을 때, 영화 역시 모든 걸 경험하게 하진 못한다. 아무리 많은 영화를 보며 지식을 늘리고, 다른 삶을 체험하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해도 본질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은 하나고 살아가는 동안 볼 수 있는 영화 역시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은 패티의 말에서 영화를 보는 이유와 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찾았는데, 내가 그것에 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팅팅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으신다. 영화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도 한참 짧다. 물론 영화 이전에도 그 역할을 하던 것은 존재했겠지만 그럼에도 역사 속엔 자신과는 다른 삶이나, 자기 삶의 이면을 제대로 깨닫거나 상상하지 못한 채 죽어간 무수한 영혼들이 있어 왔을 것이다. 그럼 영화를 보며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은 것뿐일까.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지 못했던,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걸까. 그전에 영화가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건 맞는 걸까. 영화 없이도 충분히 삶에 대해 훌륭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인간에겐 정말 영화가 필요할까.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이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가 정직하게 현실을 담아내야 하고, 양양의 카메라가 존재하듯 존재해야 한다면, 영화는 대체 뭘까. 그러니까, 그런 영화가 표현하고 있다는 이 인생이란 건 대체 뭘까.

다시 말해 영화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말들에 대한 불편함이 가져왔던 의문은 끝내 바로 처음 가졌던 때 묻지 않은 질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답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앞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말했듯 그 질문 -영화를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위를 배회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인생 참 별 거 없다던 아주머니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정말 감히, 영화의 이응도 모르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영화 참 별 거 없다고". 그러면서도 '그런 영화 보는 게 그래도 꽤 좋아서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예매를 하고, 오늘 밤에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이런 내 모습이 참 웃기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 그 질문을 꼭 쥐고 영화랑 친구 먹으며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던 NJ의 말처럼 영화 보는 것에도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쓰는 이 글 역시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솔직함과 가식의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 갈팡질팡하며 글을 쓰겠지. 그래도 그 뉘앙스를 잊지 않으려 한다. 팅팅을 쓰다듬던 할머니의 모습이 허구라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내게 영화는 바로 팅팅의 머리 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될 그 기억 같은 거라고 믿을 테다.

정말 사소한, 하지만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다녀서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길. 그런데 서서 버스를 타고 가던 내 눈에 버스가 나아가는 길 뒤로 멀어지는 길이 보였다. 작은 언덕을 넘어갈 때였는데, 버스가 위를 향하다가 다시 아래를 향하는 동안 버스 뒤에선 길이 아래를 향하다가 다시 위를 향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내가 그걸 잊을 수 없는 건 꽤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10년도 넘게 계속 다녔던 길인데 항상 나는 앞을 보거나 옆을 보고 있었지 뒤를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멀어지는 길이 다 알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양양의 카메라가 무엇을 향했는지 안다. 바로 그 버스 뒤편의 길을 향해있던 것이다. 비록 여전히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또는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돌아가신 할머니 앞에서 읊조리던 양양의 마지막 편지처럼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인간에게 영화가 필요하다는 표현이 함의하고 있는 것 같이 인간의 삶이 조금이라도 풍성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나는 여전히 무의미함과 불완전성 속에서 불안해하며 팅팅의 말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영화는 말해주고 있으니까. 일단, 주말에도 나는 영화를 한 편 정도 보러 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 볼품없는 글 하나를 슬며시 적어 띄운다. 누군가에게 닿아 티끌만큼의 의미라도 줄 수 있다면 나도 양양의 카메라 셔터를 단 한번쯤은 누르는 셈이 아닐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정말이지 부끄러운 글만 늘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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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님의 리뷰
2018.06.24 01:16:03
하나 그리고 둘
01.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안타깝지만, 가끔 에드워드양 감독의 7년의 투병과 짧은 영화 제작 시간을 생각하면, 그의 죽음이 더 슬프고 안타깝고 아련하다.

02.
나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보다 이 영화가 좋다. 그건 이 영화는 고령가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수 있기때문이다.

03
양양이 그림을 그리던 때부터 글을 쓰는 딱 그만큼만의 시간을 영화는 그린다.
혹자는 결혼식에서 장례식으로 끝났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양양의 성장이 이 극에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양양의 마지막 낭송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양이 극속에서 들려주는 대사, 보여주는 행동들이 작품을 아우르는 것들로 많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오로지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04.
가족은 해체된다. 그건 대만의 역사의 영향, 가족 구성원의 성장에 따른 것일수 있다. 단하나의 시건으로 그들이 해체되진 않지만, 각자의 삶으로 인해 흩날려 부셔지듯 해체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결속은 유지된다. 그게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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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냥 님의 리뷰
2018.09.03 14:56:28
인생은 그렇게 흐른다.
영화의 시작은 결혼식이다. 정확히 따지면 생명의 시작이다. 아디의 부인인 샤오린에 배 속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이 없는 양양의 사촌 동생이 있다. 영화는 그 생명의 시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무리는 할머니의 장례식이다. 영화는 생명의 시작과 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전체가 인생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인생은 반복되어 있다. 양양에서 팅팅의 이야기, 그리고 NJ의 이야기는 반복이다. NJ는 셰리와 과거의 추억을 말한다. 그 추억 속 이야기는 NJ의 자녀인 팅팅과 양양의 현재와 비슷하다. 양양도 사랑인지는 모르지만 한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팅팅은 패티와 영화를 보고 횡단보도에서 손을 잡으며 함께 호텔에 간다. 그 모든 과정은 셰리와 NJ의 과거다. 그렇게 사람들의 인생은 반복되고 흐른다. 자신의 미련함을 말하고 과거에 대한 후회를 말하지만 그렇게 반복된다.
이토는 NJ에게 말한다. 하루하루 경험하지 미래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험은 두려워한다고. 인생이 참 그러하다.
양양은 사진을 찍는다. 양양의 사진에는 사람들의 뒷통수가 담겨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인생의 부분들을 사진에 담는다. 패티의 삼촌은 말했다. 영화를 통해서 인생을 세 배로 살 수 있다고. 우리가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인생의 부분, 이면들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일 것이다. 카메라 그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점을 보고 길일을 잡으며 소망하며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는 것 뿐.
밍밍은 종교로 도망을 간다. 하지만 밍밍은 결국 같았다고 말한다. 인생은 그렇게 도망갈 수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유리창과 거울에 비춘 모습들이 많다. 유리창을 통해서 거울을 통해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관조된다. 렌즈를 지나가며 비추어진 초상들은 카메라에서 사진이 되고 영화가 된다. 영화 속 사진이, 그리고 영화 그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관조하며 보여줬듯이 영화 속 거울과 유리창도 우리의 인생을 관조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거울에 유리창에, 그리고 필름에 우리의 모습이 비추어 보여주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일상을 말하는 모습에서 등장인물들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춘다. 특히 NJ는 그 과정에서 과거를 반추한다. 거울오 비추어서 인생을 다시 봤지만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를 흘러갔고 지금 거울에 비추는 모습은 현재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생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숙연히 필연적으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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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님의 리뷰
2018.07.15 23:41:25
영화가 언제나 뒤를 보는 건 우리가 항상 앞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건 우리가 사랑을 겪는 순간이 누군가의 뒷모습을 발견할 때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나는, 삶이라는 걸 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은 계속 하나이지만, 둘일지도 모른다고 믿기에 이 평생의 아침을 계속 맞는 것이 아닐까. 그 하나가 결국 나를 울게 할 것을 알면서도. 왜 이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은지 늘 슬퍼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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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7:26:33
<하나 그리고 둘>, 흑과 백이 아닌 이분법의 연속에서
<하나 그리고 둘>, 흑과 백이 아닌 이분법의 연속에서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에드워드 양 감독은 생소한 편에 속한다. '대만'이라는 국적과 '뉴웨이브'라는 예술가 딱지가 왠지 모를 거리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걱정을 안고 영화관에 입장한 당신은 끝내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증거로 최근 국내에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개봉해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에 힘입어 감독의 유고작인 <하나 그리고 둘>이 오는 28일에 재개봉한다.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8순위에 오르기도 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명성과는 별개로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2000년에 개봉했는데, 당시 대만 영화의 대만 시장 점유율은 단 2%에 불과하여 정작 대만에서 상영되지 못했다는 뒷사정이 있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만 사람들도 대만 영화를 모르고 우리도 대만 영화를 잘 모른다.

일반 관객들이 익히 아는 대만 영화가 <나의 소녀시대>나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상업 영화인 것을 떠올려 본다면 에드워드 양의 예술 작품이 쉽게 외면받을 것이란 사실을 가볍게 예측할 수 있다. 상업영화의 달콤함과는 달리,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마치 한 편의 풍경화와도 같아서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미묘하게 축조된 세계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지나쳐 보내도 매 순간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에드워드 양의 세계가 대만인의 삶을 그리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 중산층의 일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알다시피 세계 어디를 가나 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이란 우리네 삶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삶의 고단함을 제하고도 대만 영화와 한국 영화는 그 분위기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건 두 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그렇다. 윗부분이 북한으로 가로막혀 사실상 섬처럼 취급되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도 타이완 섬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 유사성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대만 영화는 어딘가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힘


이 영화를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건 권장하고 싶지 않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하지만, 감독 본인이 일평생 대만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몸보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굳이 언급하자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타인의 삶을 3시간 동안 유기적으로 엮어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3시간 동안 대만 어느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선을 지닌다. 하나는 가족 중 가장 나이 든 할머니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어린 8살 손자의 시선이다. 영화는 결혼식장에서 시작해 장례식장에서 끝을 맺는데, 두 장소 모두에 할머니와 손자가 있다. 가장 늙었고 가장 어린, 삶을 시작하는 곳과 삶을 끝내는 곳이라는 수미상관의 구조에서 그 양쪽을 잇는 중심점은 어디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양극단에서 두 가지 시선을 끌어오고 그 타협지점이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흔한 이분법의 구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진 것들은 한쪽으로만 흐를뿐 반대로 거스르지는 못한다. 비유하자면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란 에너지가 풍차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인물이 겪는 사건과 감정이 시간대로 흘러가며 주변 인물에게 다른 형태로 영향을 미치지만, 그 반대는 불가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역사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다른 형태로 비슷한 결과를 자아내는 동력원은 마치 '엔트로피'다.

영화에서 엔트로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손자의 아빠 'NJ'는 30년 전 첫사랑을 만나지만 그녀를 뿌리친다. NJ의 아내는 할머니가 쓰러진 후 슬픔에 빠져 집을 나간다. 그 외에도 여러 사건이 NJ 가족 각자에게 벌어지지만 끝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은 순탄하지는 않다. 그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동시대의 모두가 다음 주자를 향해 내미는 바턴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건들이 다음 장면에서 벌어질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영화는 이 엔트로피 형태를 손자 '양양'을 통해 통렬하게 부수어 낸다. 이른바 '네거티브 엔트로피'라고 부르는 것이다. 플루서라는 사람은 풍차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삶을 거스를 수 있게 된 게 '기술의 발달' 덕택이라고 보았다. 쉽게 말해, 사진기나 컴퓨터로 삶을 기록할 수 있게 되어 더는 현재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사람은 더는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었다. 이른바 '기록의 힘'이며, '시대의 재조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뒤통수를 찍는 소년


영화 중간에 쓰러진 할머니는 영화 마지막의 장례식장에서 영면에 든다. 반면 손자 양양은 그런 할머니를 향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내 든다.

이때 양양이 하는 말 중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 있다. 이 짧은 문장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그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음 시기에 흩어질 에너지를 부여잡는 '네거티브 엔트로피'의 힘이다. 양양은 곧 흩어져 남들이 보지 못할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양은 아버지로부터 카메라 하나를 선물 받는데, 그 카메라로 주변 사람들의 뒤통수를 찍고 다닌다. 사람들이 왜 멀쩡한 사진이 아니라 뒤통수만을 찍냐고 묻자 양양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은 뒤통수를 일평생 볼 수 없다"고 말이다.

사람은 일평생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는 유명한 문구처럼 우리는 뒤통수를 보지 못한다. 거울이나 카메라와 같은 도구가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내 뒤통수가 어떻냐고 물어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살면서 다른 이들의 수많은 뒤통수를 보는데 대부분은 그들을 떠나보낼 때다. 그래서 뒤통수란 이별의 상징이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밟고 지나가야 할 디딤돌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이러한 양양의 태도는 다시금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데, 사람은 관속에서 하늘을 보며 눕지 바닥을 향해 눕지는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나이가 든 할머니는 정면을 향하게 되고 나이가 어린 양양은 뒤통수만을 본다. 할머니는 죽음으로써 영영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양양은 그 중간중간을 담아두려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러니 그것은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흑과 흑이 아닌 것' 사이에 담긴 여러 색을 담으려는 시도다. 그 여러 가능성 중에 백색도 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대비 속에서 중심을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건 마치 1과 4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2와 3을 찾아내어 다시금 그 중간을 보는 것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며


사실, 영화가 내보이는 '중간의 태도'는 양양에게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영화는 인물의 대사와 카메라 모두를 동원해가며 관객들에게 그 사실을 신신당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카메라 연출은 '거울'이다. 카메라는 창가나 거울 속에 비친 인물의 모습에 초점을 둠으로써 현실을 교묘히 피해간다. 개중에는 CCTV나 인화된 사진처럼 기계적인 시선도 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직접 인물을 목격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본다. 그러니 실제보다 왜곡될 수밖에 없고, 그 왜곡으로 어긋난 현실을 덮어보려 시도한다.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 장면들은 밖의 풍경과 안의 풍경이 겹쳐져 있으므로 몹시 희미하다. 말하자면 안과 밖이 섞여 있고, 그건 마치 '중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안은 이미 알고 있고 밖은 아직 모른다는 점에서 '중간'을 현재라고도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중간을 보는 것은 현재를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들의 시도는 현재를 보려는 시도다. 혹자는 이미 우리가 현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지금 당장 옆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뒤늦게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는 평화롭게 일상을 즐기던 중이었을 것이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호들갑을 떨지만 다시금 잊어버리고 만다. 기계의 힘을 빌려 현재를 기록하는, 에너지를 거스르는 '네거티브 엔트로피'의 힘은 그런 것들을 기억하려는 시도다.

인물의 대사들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매일 반복되는 건 불확실함 뿐인데 왜 눈을 떠야 하는지 의문이에요"라고 묻자, 이후의 장면에서 NJ는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매일은 모두에게 처음인데, 왜 그걸 두려워해야 하지?" NJ의 대사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에너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바라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엔트로피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는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NJ는 술자리에서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며 "이건 마술이 아니야. 나는 모든 패를 알고 있어."라고도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는' 말을 통해 과거현재미래를 통칭하며, 그것을 패를 뽑는 '지금 이 순간'으로 비유함으로써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만 중산층의 2000년대가 아니라 대만사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건 딱히 시간에 얽매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해왔던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는 '지금 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그 일이 '해왔던 일'이 되면 다시금 양극단 사이에서 '지금 하는 일'이 새로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건 현재를 산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 그리고 둘. 그 뒤에 끝없는 수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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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님의 리뷰
2019.01.24 14:48:15
프레임이 수직과 수평으로 잘린다. 나무에 의해서, 기둥에 의해서, 때론 벽, 창틀, 난간... 인물들은 어디엔가 갇히거나 어디론가 밀려난다. 급기야 카메라는 (인물이 부재한) 빈 공간을 비추며 목소리만 허락하고, 인물을 반사시키거나 유리 위의 잔영을 포개며 그 존재마저 불투명하게 흐린다.

삶이란 결국 급변하는 사회와 알 수 없는 관계의 틈 속에서 혼자 깨닫는 과정일 테다. 무엇보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알 수도 없는 것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는 걸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한 무력감 마냥, 이중의 프레임 혹은 분절적인 프레임 안에 놓인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공간을 잃어버린 양 방황한다.

그럼에도 영화 속 장면들처럼, 천둥번개의 비구름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하늘은 곧 덮고 있는 구름과 함께함으로써 아름답지 않던가. 특히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넘어 위안과 용기를 얻던 NJ처럼, 영화는 그 분절적인 프레임과 잔영을 정갈하게, 또 미묘하게 배치함으로써 도리어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것만 같다. <하나 그리고 둘>을 단지 신자유주의 시대의, 다 커버린 '고령가의 소년'들이라고 초라하게 표현하기엔, 이처럼 삶의 불순물에서부터 희망을 얻으려는, 왠지 야릇한 영화의 시선이 걸린다.

이를테면 "매일이 새로운 아침"이라는 오타의 말. 방황하던 어제를 두려워할지언정, 어찌됐든 내일은 어제와 오늘과는 다른 하루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의 슬픔이야말로 위태롭던 어제를 톺아보고 여전히 어려운, 그러나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테다.

만약 영화가 볼 수 없던 걸 끄집어내는, 가시성(혹은 투시성)의 문제라면, 무력감과 용기, 수치와 아름다움, 과거와 현재(심지어 미래), 얼굴과 뒤통수를 함께 포개어 놓는 <하나 그리고 둘>의 시선은 참으로 겸허하다. 함부로 다가서지 않고 차마 조심스러운 카메라. 비록 세상은 험난하게 흘러가나, 삶은 다름 아닌 내게 주어진 몫이기에 카메라조차 섣불리 끼어들지 못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다만, 흘러가는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으면, 마침 우리의 뒤통수를 찍어낸다면, 정말 나머지의 절반의 진실과 미처 놓쳐버린 (사소하지만 소중한) 용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결국 우리와 삶은 너무도 하나라 차마 삶을 둘러볼 여유가 생겨나지 않건만, 오직 영화만이 한발 물러나 그 곁을 내어준다.

물론 카드의 뒷면과 앞면을 한번에 아는 일은 약삭한 트릭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관객을 위해 기꺼이 투시하려는 영화는 단지 조작된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용기를 얻는 것. 이는 결코 트릭도, 허구도 아니다. 영화의 롱테이크와 롱숏이 주는 침착한 경청의 느낌은, 바로 그 태도에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보다 삶을 보려 하고, 어쩌면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하려는 그 불투명함에 있는지 모른다.

대만의 시대와 사회를 경유하여 도착한 영화의 깊은 시선을 채 가다듬진 못하겠다. 오히려 양양의 낭창한 목소리에 다소 기만적인 부끄러움마저 밀려온다. 허나 꼭 그만큼, 무력감과 함께 이상한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중해질 것만 같다는 확신은 든다. 과연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나도 이제 다 컸"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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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철 님의 리뷰
2019.01.13 20:52:17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작지만 의미있는 이야기. 가족이란 굴레로 묶여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와 비밀을 가진 주인공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욕망과 현실의 갈등,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 평범하지만, 사려 가득한 시선으로 그 모두를 통찰하며 채워가는 메시지는 세상에 왜 영화가 필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인장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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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섭 님의 리뷰
2018.12.23 22:05:29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결과는 지금과 비슷했을 거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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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22:02:10
하루하루가 처음인 우리 인간
결혼으로 하나의 가정이 탄생하고,
죽음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이별하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연처럼,
가정이 탄생하는 순간과
(즉사가 아닐지라도) 죽음이 임박하는 순간이 겹쳐질 수 있는게 삶이다

그런만큼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격동적인 역사이지만
중국-대만의 역사는 어떠한 관계인가?

자신의 뒤도 돌아보기에 숨가쁜 개인이고 국가였었지만,
그 격동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을 찬미하며
그 격동을 함께 견뎌낸 공기, 호흡,가족, 역사에 대한 헌사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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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18:46:38
꼬마 철학자 아들과 철인(哲人) 아빠의 삶 훔쳐보기
처남xx 하는 짓에 주먹이 울더군. 넉넉한(?) 미소로 대해주는 아빠의 넓은 마음을 리스펙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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