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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Maurice)
드라마 / 1987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영국, 134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11.07 개봉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배우
휴 그랜트
제임스 윌비
루퍼트 그레이브즈
덴홈 엘리어트
사이먼 캘로우
빌리 화이트로우
배리 포스터
주디 파핏
포비 니콜스
패트릭 갓프레이
벤 킹슬리
마크 탠디
시놉시스
20세기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우연히 만나게 된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낡은 관념의 무료한 대학 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발전해가고,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의 우정은 서서히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사랑 하나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모리스와 그 모든 걸 잃는 게 두려운 클라이브의 사랑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100%
3.5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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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리뷰
16

moviemon 님의 리뷰
2019.11.01 17:18:15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모리스> (1987)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 (2015)에 가깝다. 시대적 분위기와 시선 때문에 같이 시작한 사랑임에도 배우 휴 그랜트가 연기한 ‘클라이브’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을 깨달음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듯이 현실에 순응한다. 반면, 배우 제임스 윌비가 연기한 ‘모리스’처럼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고 진정한 선택을 하며 용기 있게 현실에 맞선다. <모리스>는 표정이 명확한 ‘모리스’와 오묘한 ‘클라이브’ 간의 대조를 통해 원점 대칭 함수 같은 사랑의 선택과 그 결과를 짙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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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vom 님의 리뷰
2019.11.01 12:26:05
32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옛날영화 특유의 뚝뚝 끊기는 편집이 인물 감정선을 놓치게 만들때도 있지만 20세기 초 배경에 아름다웠던 배우들만 봐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않고 클래식이란 이런것 이라고 영화가 스스로 증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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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lue 님의 리뷰
2019.11.01 00:34:42
영화 자체로 시대에 저항하며, 희망에 불을 붙인다
모두가 부정하는 사랑을 지켜보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리스> 속 모리스의 사랑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그의 사랑 역시 모두에게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보니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모리스의 흔들림이 생생히 느껴진다. 정작 모리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우쳐 준 클라이브가 모리스의 감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까지 외면하고 떠나버렸으니 그 감정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
영화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찌할 줄 모르던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잠시 외면했다가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한 모리스와 시대적 제약 때문에 생긴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사회의 기준을 따르기로 한 클라이브, 이 두 사람과 함께 (살짝 갈팡질팡하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에 더욱 솔직하기로 한 알렉을 등장시키면서 현실과 사랑 중 사랑에 손을 들어준다. 영화 자체로 시대에 저항하며, 희망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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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받던 시절, 모리스와 클라이브 그리고 알렉이 우리에게 묻는다.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려다 이끌려버린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지, 그것을 벌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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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영 님의 리뷰
2019.11.12 23:35:55
100년을 날아서 돌아온 영국의 색과 냄새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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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옹 님의 리뷰
2019.11.12 21:34:21
다른 길을 걷는 같은 사랑
1900년대 영국, 소년과 선생님이 해변을 거닐고 있다. 선생님인 남자는 집안에 남성 어른이 없는 소년에게 백사장에 그림을 그려 남녀의 성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남녀가 만나 생식이라는 생명의 지고한 순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소년의 몸이라는 성전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척박한 사랑의 토양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교리가 사회를 꽉 조이고 있었던 시대, 백사장에 서서 성교육을 듣던 소년이었던 ‘모리스’(제임스 윌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클라이브’(휴 그랜트)를 만난다. 계절이 바뀌어가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우정의 선을 넘어서 무르익어갈 무렵,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난 널 사랑해”라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그동안 기독교,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백인 남성인 모리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다. 그 또한 클라이브를 사랑하지만, 그의 마음은 죄악으로 뒤덮여 지옥에 가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클라이브에게 솔직하게 고한다. 모리스는 백사장에 서 있던 소년시절만큼이나 순수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악의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혼란을 말해 클라이브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사랑은 정신만의 일이 아니다. 그 뜨거움은 사람의 몸도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리스는 사다리를 대고 창을 넘어 들어와 클라이브에게 입을 맞춘다. 시대가 주입한 개인의 내적 혼란을 딛고서 두 사람이 사랑으로 뛰어든 순간이다.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사랑은 모리스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두 사람이 수업을 빠지고 함께 강가로 향했던 날, 그 모습을 보았던 교수가 그동안의 나태했던 행동들을 지적하며 모리스에게 정학 처분을 내린 것이다. 대저택과 엄청난 땅을 소유한 촉망받는 인재인 클라이브에 비해 교외의 중산층인 모리스는 학교에서도 비교적 단죄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모리스는 그 길로 학교를 나와 증권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모리스는 일련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클라이브와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선택을 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반면, 클라이브는 사랑의 위기 앞에서 그 사랑을 잘라낸다. 클라이브는 이 사랑의 잔인한 결말을 보았다. 리슬리라는 학교 동창이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노역을 포함한 6년의 징역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클라이브는 그 때 모리스와의 사랑이 두 사람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줄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는 모리스 모르게 홀로 사랑을 떼어내며 앓다가 쓰러진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모리스에게 사랑의 종말을 고한다.
처음 맞는 사랑이 떠나는 사건 앞에서 모리스는 또 다시 사랑만을 원했던 연약한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클라이브의 저택을 오가며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최면을 통한 전환치료까지 받는 모리스 앞에 ‘알렉’(루퍼트 그레이브즈)이 나타난다. 알렉은 클라이브 집안의 사냥터지기이다. 중산층인 모리스보다도 한참이나 계급이 낮은 그와의 사랑은 클라이브와의 사랑과 역순으로 진행된다. 가장 강렬한 육체적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때도 두 사람의 사랑은 문을 넘어 진행되지 않는다. 알렉은 오랫동안 모리스의 방을 향해 걸쳐 놓은 사다리를 타고 창을 넘어 그의 방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눈다. 영화는 당시 영국에 서린 동성애에 대한 커다란 벽을 이렇게 표현한다.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밤중에 높은 벽을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람 키보다 작은 창문으로 숨어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숨어들어간 그 곳에서의 사랑은 사회가 정의한 사랑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애가 끓고 몸이 달아오르는 뜨겁고도 순수한 모습이다.
클라이브와의 사랑에서 상처받았던 모리스는 알렉과의 사랑을 의심한다. 하지만 알렉은 클라이브만큼이나 뜨겁게 모리스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모리스는 계급에 근거한 속물적인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알렉의 사랑을 확신한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버릴 마음으로 알렉을 향해 달린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모리스의 뒷모습을 클라이브가 바라본다. 그리고 플래시백으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케임브리지 시절의 모리스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 때가 되어서야, 모리스와의 사랑을 끝냄으로서 이야기에서 계속해서 주변부를 맴돌았던 클라이브의 사랑이 빛난다.
그는 모리스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끊어내었지만, 그 사랑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친구’로 만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온종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리스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껴안는 방식이었다면, 클라이브의 방식은 그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토록 바라보는 방식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리스를 바라보는 클라이브, 모리스가 달려 사라진 정원을 응시하는 그의 마지막 눈빛에는 영화 중에서 가장 깊은 사랑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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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님의 리뷰
2019.11.12 10:57:40
예상했던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정체성을 지키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느 쪽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홍보처럼 진짜 주인공은 아니었으나 휴 그랜트 미모의 정점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모리스 역의 제임스 윌비 연기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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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réer 님의 리뷰
2019.11.12 00:15:55
백 년 전 도착한 이름, 모리스
“백 년 전 도착한 이름”

“왜 많은 사람은 소수(少數)의 자연(自然)을 인정하지 않는가?”

태양이 지지 않던 1914년의 영국,
작가 E.M. 포스터는 소설 ‘모리스’를 통해
세상에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섞인 동성애 소설 ‘모리스’는 시대적 상황 탓에 그가 사망 한 뒤 1971년 출간된다. 이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의 각본 겸 제작자로 알려진 제임스 아이보리가 1987년 영화화했고, 올가을 국내 정식으로 도착했다.

영화 ‘모리스’는 주인공 ‘모리스’가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성장해가는 내용이다. 1900년대 영국 배경의 퀴어 로맨스로 당대 규범과 종교, 의식과 명령에 -모리스의 본능과 무의식이 충돌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깊은 우정을 쌓는다. 방학이 끝난 어느 날,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한다. 당황한 모리스가 어찌할지 모르지만, 금세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둘은 연인이 된다. 이후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새로운 사랑이 등장하며 영화는 백 년 전 물음을 다시 잇는다.

“왜 많은 사람은 아직도, 소수(少數)의 자연(自然)을 인정하지 않는가?”

작년 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과 올봄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2017> 는 수많은 대중의 공감을 이끌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환기해주었다. 내게도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 ‘올리버’와 ‘엘리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 ‘모리스’는 앞선 두 작품의 감동에는 다소 못 미친다. 애틋한 감정보단 이별 후 혼란해 빠지는 심리를 더 많이 비추고, 밀고 당기는 사랑의 묘사가 급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1900년대 동성애에 대한 처벌과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지만, 이런 표현은 극적으론 올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연결되는 에피소드에 잦은 ‘페이드 아웃’ 전환은 보는 이의 감정 몰입과 이야기의 흐름을 헤친다. 몇 개의 시퀀스를 덜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완전히 결별한다. 클라이브는 자신의 창문을 꼭 닫은 채 타인의 언어로 살기로 하지만, 모리스는 창문 너머 자신의 언어로 살기로 한다. 나라는 자연을 인정하고 사랑을 향해가는 모리스의 미소에, 편안한 햇살이 비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어떤 이들은 클라이브의 선택에, ‘시대가 가로막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 안타까운 동정을 보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다.

여기에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현실적으로는…. …때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라는 말은 모두 가짜다.

사랑해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거다.
나머지는 아무리 설명한들 변명에 불과하다.

그때의 우리, 당신 혹은 난 선택을 했다.
안 좋은 상황이었어도, 고심을 거듭했어도,
일방적인 방향이었어도, 누군가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간들 선택을 바꾸려 할까?
개선할 확신이 서는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곤 싶은가?

나에게 물어본다.
당신께도 묻는다.

어쩌면 ‘때’라는 이름 뒤에 숨어,
과거 혹은 현재의 선택을
근사한 변명으로 포장하는 건 아니냐고….

나는 이제 ‘때’라는 말을 믿지 않고,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통과한 사랑과 사람,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 예의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분다.
이 계절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며
겨울을 반갑게 안아내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의 계절도, 피고 지는 자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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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19.11.11 11:54:39
퀴어 고전, 32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
영화 <모리스>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제작, 각본, 각색을 맡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32년 전에 완성했던 영화다. 1987년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30여 년 만에 정식 개봉을 했다. 해외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영화가 국내 첫 정식 개봉이라는 점은 80년대 후반 동성애를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소설《모리스》도 1914년 작품이지만 57년 후인 1971년에서야 출간될 정도로 1910년 대 영국의 보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은 1967년에서야 동성애 처벌법이 폐지되었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 모두 사회의 금기에 맞서 지난한 우여곡절 끝에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하워즈 엔드》, 《전망 좋은 방》, 《모리스》 등 E.M 포스터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제임스 아이보리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영국 상류층 모습과 풍경을 미학적으로 담아냈다. 낭만적이고 우아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계급 간의 위선을 드러냄으로써 지금 봐도 손색없는 클래식 로맨스의 영역을 갖추었다 할 수 있다. 지금은 중년이 된 휴 그랜트와 제임스 윌비, 루퍼트 그레이브즈의 풋풋한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첫사랑은 느닷없이 온다

1900년대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리스(제임스 윌비)는 무료한 학교생활을 그럭저럭 보내고 있다. 삼위일체와 기독교, 남학교의 위계질서와 권력에 숨 막히던 터였다. 우연히 클라이브(휴 그랜트)를 만나 자유와 성(性)정체성에 눈을 뜬다. 클라이브는 애간장을 태워 모리스를 더 깊이 빠르게 만든다.

둘은 동성애가 범죄이며 질병이던 20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을 키워간다. 처음에는 클라이브가 먼저 다가왔지만 모리스는 커진 마음을 토로할 수 없어 힘들다. 그 와중에 클라이브는 내적 갈등이 커진다. 그리스에서 플라토닉 사랑의 합리성을 찾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다. 둘은 사회의 규율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탈출구를 찾고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며 관계를 알고 있는 하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결국 클라이브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벌어진다. 동성애로 붙잡힌 리슬리 경의 추문으로 클라이브는 흔들리게 된다. 가문과 직업적 명예를 두루 갖춘 리슬리 경의 파멸이 마치 자신의 미래일까 봐 혼란스럽다. 이후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멀리하고자 하고, 모리스는 그런 클라이브가 야속하기만 하다. 고민에 빠진 클라이브는 이 사랑이 병이 아닌지 의심하며 이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의 사랑을 가감 없이 표현했지만 시대와 사회의 벽에 부딪혀 클라이브는 타협점을 찾는다. 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자 모리스는 혼란에 빠진다.

누구를 사랑하든 사랑이야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은 모리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와 갑자기 떠나가려 한다. 붙잡을 수 없는 모리스는 혼자 상처를 감내하려 분투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약이나 물리적인 상황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음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앤과 행복한 모습을 보며 가슴은 쓰라리지만 플라토닉 사랑으로라도 곁에 남아 자신만의 사랑을 키우고자 다짐한다. 마음을 떨쳐보려 최면술을 쓰거나 의사를 찾아가 병이라면 치료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클라이브 집에 머물던 어느 날, 하인 알렉(루퍼트 그레이브즈)과의 하룻밤은 또 한 번의 금기를 넘어 모리스의 삶을 뒤흔든다.

당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 행위였기 때문에 상류층인 모리스와 하인 알렉은 또 다른 금기였다. 이들은 동성애와 계급 차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성장해간다. 범죄라는 틀 안에서 고통 받지만 자신도 모른 채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로 응수한다. 사랑은 이성애든 동성애는 그냥 그렇게 끌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행복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권 중 하나다. 뜯어말린다고, 법으로 처벌한다고, 치료를 받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모리스>의 플라토닉 사랑, 동성간의 육체적 합, 신분을 뛰어넘는 용기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가치로 인정받는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지나 극복한 경험은 훗날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받을 당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32년 전 농밀한 소년들의 첫사랑을 보여준 전력은 90세가 넘은 노장에게 트로피로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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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님의 리뷰
2019.11.11 00:16:27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단순히 시대의 공간적 배경보다도 당시의 "낡은 시대감성"까지 고스란히 되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가 아닌,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덩그러니 남고 점점 추락했답니다의 철저한 패배주의적 낭만으로 남아야만 하는 그 시대의 관념이 오롯이 담겨있다. 탁 트인 해안가에서 시작해 밀물에 밀리고 음악과 글에 휩쓸려 결국 낡은 임시거처와 닫힌(정확히는 닫힐) 방문에서 끝나는 위선과 기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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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혁 님의 리뷰
2019.11.09 13:50:33
세상 반쪽이 그리는 로맨스, 모리스
낙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해변에 힘겹게 그려낸 낙서는 썰물에 사라지지만, 어쩌면 지워지지 않았다. 1971년 출간된 E.M 포스터의 소설 '모리스'를 원작으로 제임스 아이보리가 1987년 완성한 '모리스'는 해변에 스쳐간 어떤 찰나의 이야기다. 20세기 후반 제복을 입고, 정해진 말만 쓰고, 정해진 사람과 사귀고, 관계를 갖는 자연 아닌 자연에 살던 시절, 그 말은 왜인지 그리도 힘들어 말이 아닌 낙서가 되었다. 아빠가 부재한 홀(올란도 웰즈)은 어느 오후 학교 선생님과 함께 해변을 걷는다. 선생님은 소년에서 남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둘의 어떤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라고는 해도 그 말엔 알맹이가 비어있고, 에드워드 시대 영국에서 그건 좀처럼 말이 되지 못하는 말, '신성한 비밀'이다. 젖은 해변에 나무 막대로 간신히 힘겹게 그려지는 인간의 어떤 자연. 자리를 뜨려던 선생님은 아차 싶은 맘에 발길을 돌리지만, 썰물 뒤엔 파도가 밀려오고, 비밀은 여전히 비밀이곤 한다. 하지만 영국 남서부 해안을 배경으로 한 길 위에서, 고작 발걸음밖에 남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밀물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1913년에 쓰여진 소설은 E.M 포스터 사후에나 발간되었고, 그만큼 뒤늦게 찾아온 썰물 속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담과 이브가 아닌, 조금 흐렸던 날 파도가 남기고 간 흔적의 로맨스. '모리스'는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지나간 어떤 애잔했던 시절의 이름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에드워드 시대는 규제와 차별, 형식과 권위가 조금씩 틈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정해진 틀과 형식에 갖춰 재단된 마을은 정연한 자연의 한 폭같지만, 그건 동시에 금욕과 절제가 가려버린 풍경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플라톤을 이야기해도, 기독교의 수 백 년 전 교리를 이야기해도, 어딘가 돌아가야 하는, 등을 돌리고 피해야 하는 길목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해 홀(제임스 윌비)은 보다 더 규제와 틀에 짜여진 날들을 보내지만, 그만큼 가려졌던 자리의 자욱은 새어나온다. 귀족 출신에, 별장을 소유하고,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클라이브(휴 그랜트)와 시골 마을 유지 집안에 사업으로 가세가 등등한 모리스 가문의 홀. 빈틈없이 짜여진 우아하고, 고상한, 아름답고 귀품있는 날들에 '그 날'이 찾아온 건 어쩌면 보다 자연스러운, 가장 본래의 자연의 그림일지 모른다. 우정과 사랑, 남자와 여자, 쓰여진 글자 사이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감정이 있고, 비밀이 되어야 하는 순간은 영화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소설에 담긴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감정을 조심스레 가져오며 가리어진 자연의 작고, 미세하고, 여린 떨림을 잡아낸다. 감추어야 하기에 간절하고, 드러낼 수 없어 진실한 순간이 화면에 미동을 그린다. 조여맨 벨트, 목 아래까지 잠근 버튼을 하나 풀어낼 때의 아찔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낙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는 홀과 클라이브, 그리고 클라이브의 별장에서 일을 하는 알렉(루퍼트 그레이브즈), 세 개의 추로 움직인다. 도덕과 이성, 논리의 세계를 쫓지만 크라이브의 마음은 왜인지 자신을 향하고, 가장 아름다운 관계라는 '우정'은 현실이 되지 못한 '자연'의 박제된 풍경일 뿐이다. 책을 건네며 마음을 전해보지만, 활자에 봉인된 '마음'은 좀처럼 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함께 세상을 논했지만, 항상 빈틈을 응시하던 리즐리(마크 탠디)가 군인 병사와 이곳이 아닌 저곳, 선 너머의 어딘가에서 일종의 '불온한 행각'을 저지른 뒤, 세상이 그들을 재단하기 시작하며, 클라이브는 눈을 감고 홀은 '너머'를 바라본다. 숨겨왔던 벽돌 틈새 자연이 드러난 순간, 오래된 저택 지붕에 빗물이 새어 떨어지던 저녁, 부정했던 마음 한 구석의 그리다 만 낙서가 떠오르는 찰나. 영화는 친척 아저씨의 힘을 빌려, 수소문해 알아낸 체면술사의 집을 방문해 홀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려 하지만, 비 새는 지붕을 고친다 한들, 본래의 지붕이 되지는 못한다. 어김없이 동성애가 금기시 되던 시대, 세상의 반쪽만이 존재하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서사이다. 그럼에도, '모리스'는 억압에도, 수 백 년 이어진 견고한 질서에도, 금욕에서 새어나오는 어쩌면 가장 순수한 '사랑'을 끌어낸다. 클라이브가 자신의 '모럴'을 변명하기 위해 플라토닉을 이야기할 때, 고작 사랑 하나를 위해 이렇게나 애쓰는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끊임없이 부정하고 도달한 곳, 수없이 의심하고 찾은 마음. '사랑'의 역사는 이곳에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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