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브르 사 비 (My Life To Live)
드라마 / 1962

개요
드라마, 프랑스, 85분, 청소년 관람불가, 2019.04.04 개봉
감독
장 뤽 고다르
배우
시놉시스
레코드샵의 점원으로 일하는 ‘나나’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세상을 놀라게 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 ‘거리의 여자’가 되기로 한다

가혹하기만 한 ‘나나’의 삶에 운명처럼 사랑이 찾아오고
그토록 그녀가 바라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지만,
곧 그 자유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 마는데…

“나는 자유로워”
93.33%
3.78점
키노라이트 분포
1개
14개
별점 분포
리뷰
5

moviemon 님의 리뷰
2019.04.07 22:15:17
소격 효과로 인한 관찰과 생각 <비브르 사 비>
IL FAUT SE PRÊTER AUX AUTRES ET SE DONNER A SOI - MÊME MONTAIGNE
(당신 몸을 다른 이들에게 잠시 내어줄지언정, 당신 자신은 당신 자신에게 바쳐라 - 몽테뉴)

1962년에 제작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1962)는 베를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소격 효과(alienation effect)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영화이자 가장 성공적인 효과를 거둔 영화로 유명하다. <비브르 사 비>는 각 장에 몰락 혹은 죽음을 암시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의해 몰락하는 한 여인의 삶을 다루지만, 등장인물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대화를 단절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관객이 등장인물에 동화되는 일을 차단한다. 대신, 이와 같은 소격 효과는 관객과 영화 사이의 거리를 형성하며 관객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찰을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관객 본인의 삶을 자문하도록 유도한다.

<비브르 사 비>는 처음부터 '나나(안나 카리나)'의 얼굴의 앞면과 옆면을 사운드의 분절과 함께 단편적인 숏으로 보여준다. 보통은 숏과 숏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시퀀스를 만들지만,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숏과 숏의 연결성보다 각 숏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숏과 숏의 충돌을 허용한다. 또한 자연광의 노출 부족과 과다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촬영도 소격 효과를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관객이 처음부터 '나나'와의 심리적 동화를 차단한다. 근데, 이 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구성은 12개의 독자적인 장으로 이뤄진 블록 구조다. 각 장이 시작할 때마다 소주제가 제시되거나 특징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는데, 이는 관객의 이성적인 관찰과 능동적인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함과 관련 있다. 이때 이성적인 관찰과 능동적인 생각은 그녀의 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녀의 삶이 몰락하게 만든 주변 환경적인 요소와 사회 전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관객의 자세를 의미한다.

관객의 이성적인 관찰을 유도하기 위해 분절적인 구성뿐만 아니라 전혀 획일적이지 않은 표현 및 전달 방식을 활용한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은 허구적인 내용에 진실을 추가하기 위해 시네마 베리떼(cinema verite)적인 경향을 따르는데, 현실을 충실하게 기록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롱 테이크(long take)와 딥 포커스(deep focus)를 활용한다. 하지만,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딥 포커스 촬영을 배제함으로써 영화라는 매체가 심어주는 환상을 거부한다. 즉,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결합을 위해 롱 테이크 기법을 유지하는 반면, 딥 포커스 촬영을 과감하게 거부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게다가, 환상을 거부하기 위해 <주말> (Week End, 1967)의 주된 숏 중 하나인 수평 트래킹 숏(lateral tracking shot)이 고안됐다. 카메라가 오로지 수평적으로 움직임으로써 공간의 깊이가 형성되지 않았으며 결국 평면적 화면이 구축된다. 이처럼 영화적 환상이 깨짐으로써 관객은 인물의 대화나 표정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게 된다.

대화 장면의 경우에도 전형적인 숏과 리버스 숏 구성을 무시하는 대신, 아이룸(eye room)이 아예 확보되지 않은 스크린 안(on-screen) 인물의 목소리와 스크린 밖(off-screen) 인물의 목소리의 결합으로 낯선 대화 장면을 만들어낸다. 혹은 숏과 리버스 숏 구성을 따라 하더라도 노인과의 철학적인 담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인물의 시선을 절대로 일치시키지 않음으로써 비극적인 현실 감각을 강화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현실 감각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각과 청각의 불일치를 이용한 장면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나나'가 남성과 매춘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대화 장면 대신 파리 전경을 비추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시청각적 불일치를 완성한다. 그런데, 시청각적 불일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장은 포우의 단편을 인용하는 11장이다. 책으로 청년의 입을 가려 그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대신 장 뤽 고다르 감독 본인의 내레이션을 내보냄으로써 '나나'가 밖으로 내몰려지고 남성의 쾌락을 만족하기 위해 희생되는 여성의 사회 속 위치와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민하게 만든다.

근데, 무엇보다 관객에게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호소력 짙게 요청하는 순간은 매춘과 관련된 정보를 열거하는 장이다. '나나'와 남성의 질의문답 형식을 통해 관객에게 매춘의 역사, 관련 법률적 조항, 통계수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방대한 정보는 관객에게 매춘을 하는 '나나'의 일상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대신 빠르고 파편적으로 묘사하는 방식과 더불어 매춘을 일종의 볼거리로 바라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관객은 객관적인 위치에서 정보를 처리하며 꿈을 위해 발버둥 칠수록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내는 법률적 문제와 남성 중심 사회의 문제를 고찰하게 된다. 게다가,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나나'와 같은 여성을 안전하게 보호할 사회적 장치가 오늘날에도 마련되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사랑과 꿈을 잃은 '나나'는 끝까지 자신의 행복을 자문하지 못하고 결국 차가운 거리 위에 버려지고 만다. 차가운 거리 위에 쓰러진 그녀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개인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본인의 삶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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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섭 님의 리뷰
2019.04.28 13:16:35
꽃잎이 떨어질 때 슬퍼했던 건,
바람에 흔들렸던 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봤던 누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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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23:50:13
자신의 삶을 구원받지 못한 이 한 여인은
이 세상, 또는 감독에게 버림받는 듯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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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님의 리뷰
2019.04.15 01:49:36
잔다르크의 숭고한 희생에 눈물을 흘리는 여자이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의 삶을 심판대로 밀어넣는 아이러니.

영화관에서 숙면하느라 뭐야? 뭐지? 했는데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보니까 그렇게까지 당황스러운 영화는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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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lue 님의 리뷰
2019.04.13 20:01:21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2년 작품인 <비브르 사 비>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판으로 재개봉하였다. 누벨바그에 대한 지식이 깊은 편은 아니어도, 그동안 마주했던 누벨바그 영화 모두 너무 흥미롭고 여운이 길었기에 이 재개봉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드디어 관람한 오늘, 그 반가움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좋은 영화를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_
영화는 마치 한 편의 교과서 혹은 철학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인 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나나는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 총 12개의 장을 통해 나나의 상황, 장소, 만나는 사람을 자막으로도 명확히 제시할 뿐만 아니라 나나의 내면 깊은 감정 혹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조금은 차갑고 냉담한 시선으로 지켜볼 뿐. 개인적으로는 이런 점에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인생의 순서처럼 받아들였달까.
_
내가 이렇게 그녀를 한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게 만든 데엔 거리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6장, 카페에서 철학자를 만나 이야기하는 11장의 영향이 컸다. 대사가 정확하진 않지만, 나나는 매춘부의 삶을 사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선택은 자신의 것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라고. 같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고 있는 친구에게 용기를 주던 나나의 모습을 보며 왠지 나는 나나의 어떤 선택에도 그녀를 내 멋대로 판단하거나, 선택의 옳고 그름을 정의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11장에서 마주한 철학자는 선택의 오류를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이 영화의 결말이 우리에게 ‘선택의 오류’로 다가오겠구나 예상했다. 하지만 오류가 슬프지 않았던 이유는 ‘죽음’이 진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_
나나는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 모든 삶의 순간들은 그녀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녀의 삶을 지켜본 우리, 즉 관객들은 영화 속 그녀를 동정할 수 없다.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직 그 상황을 ‘선택’한 나나에게만 스스로를 동정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살았으니까.
_
덧.
영화 속에서 거리를 비출 때, 극장에 걸려있던 <쥴 앤 짐>을 보니 ‘카트린’의 삶과 나나의 삶의 대비가 상당히 강렬하게 느껴졌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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