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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 (My Neighbor Totoro)
애니메이션 / 1988

개요
애니메이션, 가족, 판타지, 일본, 87분, 전체 관람가, 2019.06.06 개봉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배우
히다카 노리코
사카모토 치카
이토이 시게사토
시마모토 스미
키타바야시 타니에
타카기 히토시
마루야마 유코
와시오 마치코
스즈키 레이코
히로세 마사시
아마가사 토시유키
치바 시게루
시놉시스
1955년 일본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 상냥하고 의젓한 11살 사츠키와 장난꾸러기에 호기심 많은 4살의 메이 는 사이좋은 자매로 아빠와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온다. 자상한 아빠 쿠사카베타츠오는 도쿄에서 대학 연구원이며, 입원 중이지만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엄마가 있다. 곧 퇴원하실 엄마를 공기가 맑은 곳에서 맞이하기 위해서다. 숲 한복판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낡은 집을 보며 자매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들뜬다.

사츠키가 학교에 간 뒤, 혼자 숲에서 놀고 있던 메이는 눈 앞을 지나가는 조그맣고 이상한 동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뒤를 쫓아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큰 나무 밑둥으로 떨어지는 메이. 그곳에서 메이는 도토리 나무의 요정인 토토로를 만난다. 메이는 사츠키가 돌아오지마자 토토로를 만난 것을 자랑하지만 사츠키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아빠를 기다리다가 사츠키도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

비를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빌려주자 토토로는 답례로 도토리 씨앗을 건넨다. 토토로와의 만남으로 행복감에 부풀어있는 사츠키와 메이. 그러나 그때 병원에서 어머니의 퇴원이 연기되었다는 전보가 온다. 불안해하는 메이는 혼자 엄마를 찾아 병원으로 떠났다가 길을 잃는다. 온 동네를 뒤졌지만 메이는 흔적조차 없고 저수지에선 어린 여자아이의 샌달이 발견된다. 사츠키는 메이를 찾기 위해 애타게 토토로를 부르는데.
98.83%
3.99점
키노라이트 분포
2개
169개
별점 분포
리뷰
31

여주찬 님의 리뷰
2018.06.19 14:01:54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뭔지 물으신다면
1.

"바람이 되고 싶어"
 
살면서 본 영화 대사 중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뭔지 물어보는 문장을 읽고 나는 곧바로 <이웃집 토토로> 속의 이 대사를 떠올렸었다. 몇 년 전 토토로를 본 뒤로 마음 속에서 항상 메아리치던 말. 어제는 그 말이 처음 불어오던 순간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몇 년 만에 다시 영화를 틀었다. 영화는 흘렀고 어느새 팽이를 타고 바람을 따라 유영하는 토토로의 배에 찰싹 붙어 있는 사츠키가 메이에게 그 말을 던진다.

"메이, 우리가 바람이 됐어!"

응? 뭐야 이거 내 기억과 다르잖아! '바람이 되고 싶어'가 아니라 '바람이 됐어'였다고? 따져보면 바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아직 바람이 되지 못한 상황에 어울린다. 이미 아이들이 바람이 되어 날고 있던 극 중 상황과 다르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대사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기대했던 대사가 나오지 않자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만약 원래 대사가 내가 기억하던 대사보다 좋았다면 실망스런 마음은 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곧 나는 바람이 됐다는 말보다 바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더 바란 거였구나. 그런 마음이 들자 어쩐지 서글퍼졌다. '바람이 되고 싶어'와 '바람이 됐어' 간의 차이는 어쩌면 나와 이 아이들 사이의 간격은 아니었을까. 더 이상 토토로를 볼 수 없는 나, 고양이 버스에 탈 수 없는 나, 그래서 바람이 될 수 없는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영화를 추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내 상상 속 대사를 버리고 싶지 않다. 그냥 가지고 갈래. 앞으로도 그 '바람'을 가지고 토토로를 추억하고 싶다 나는. 바람이 됐던 아이들을 보면서 바람이 되고 싶다고 갈망했던 내 모습으로, 토토로를 남겨두고 싶다. 그런 내 모습을 잃고 싶지 않다.


2.

"할머니 정원은 보물 언덕 같아"

콩, 가지, 오이, 토마토, 옥수수를 잔뜩 수확한 사츠키는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나 천진한 표현이라니. 내게 <이웃집 토토로>는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보물 마을 같았다. 처음 이사 온 메이와 사츠키는 집과 집 주변을 신나게 뛰어논다. 동구리(도토리지만 동구리라 부를래) 하나하나를 신기해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찾기를 그렇게나 재밌어하고 까망이(스스와타리지만 까망이라 부를래)를 검뎅이 귀신이라 부르며 찾아다니고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걸 재밌어하는 아이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매순간순간이 얼마나 멋있고 흥미로운 그림일까. 새의 날갯짓에 감탄하고 꽃의 개화에 탄성 지르고 지는 노을에 감동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메이와 사츠키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나 풍성한 영화가 있을까. 흐르는 냇물 소리, 문이 드드륵 열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자전거의 따르릉 소리, 아빠를 기다릴 때 빗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들이 일깨워주는 감각. 때때로 흐르는 음악 역시 눈물나게 감동적이다. 토토로는 또 어떤가. 물방울 하나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나 좋은지 눈을 크게 뜨며 활짝 웃는 토토로에게도 마을은 매순간이 보석 같은 곳이지 않을까. 역시 바람이 되는 특권은 매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존재에게만 허락되는 걸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적인 속도 역시 그 순간순간을 더 살펴보게 만든다. 달팽이가 줄기를 오르는 모습을 느긋하게 보여주고, 호수에 동심원이 퍼지는 시간을 끝까지 따라간다. 토토로와 메이의 만남을 그 세계만이 유일하다는 듯 천천히 꽉 차게 담아낸다. 먹구름부터 똑 하고 떨어지는 한방울을 보여준 뒤에야 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자매, 갑자기 등장한 토토로 역시 차분하게 비 아래서 한참을 서있는다. 또 그들 옆에 무심하게 걷는 두꺼비를 관조한다. 달보다 높은 곳,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꼭데기에서 오카리나를 부는 토토로네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영화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꿋꿋함이 참 좋다. 물리적으로 같은 속도의 시간을 살면서도 더욱 의미없이 흘러가버리는 내 시간도 더 꽉 붙잡아 두고 싶어지는 영화다.

메이가 처음 대왕 토토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지개 너머 꿈의 세계로 가는 도로시가 떠오르기도,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도토리 덕후 토토로의 도토리 길을 따라 도착한 입구를 지나면 신비로운 작은 통로가 나온다. 열심히 형 토토로와 동생 토토로를 따라가면 등장하는 기세 좋은 대왕 토토로(잠만보가 생각난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신비로운 풀과 꽃이 가득한 토토로 아지트에서 누리는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낮잠. 정녕 나는 토토로 배에서 잠에 들 수 없는건가. 바람이 되는 새벽도 황홀하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있을까. 어쩌면 오늘 나를 스치고 갔던 바람도 다른 토토로나 고양이 버스가 지나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토토로는 자꾸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3.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

환상적인 새벽이 지나 도착한 아침에, 사츠키와 메이가 깨어난다. 곧바로 마당을 바라보지만 토토로와 함께 키워낸 나무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실망감은 이내 환희로 바뀌는데 그건 바로 그곳에 심었던 도토리에서 싹이 난 것이다! 그러면서 메이와 사츠키는 바로 이 대사를 외친다.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새싹이 난 것만으로도 토토로를 상상하며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겨우 새싹이 난 것 뿐인데 저렇게나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토토로가 준 선물은 아닐까. 새싹을, 올챙이를, 구멍 뚫린 양동이를, 별 것 아닌 자연의 순간을, 일상의 스침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토토로는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토토로 역시 그런 존재고. 메이와 사츠키가 더 자라서 토토로가 단지 꿈이 되어버리더라도, 그래서 더 이상 토토로가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지라도, 그건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다며 봄의 새순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녀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싶다.


4.

<이웃집 토토로>는 토토로와 애기 토토로들, 메이와 사츠키 말고도 참 따뜻한 어른들이 있다. 까망이를 본 메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스스와타리를 봤나보구나. 착한 사람들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지"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토토로를 봤다며 거짓말이 아니라는 메이에게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아. 너는 숲의 정령을 만났던 모양이구나. 행운이 따른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라고 말해주는 아빠. 이제 나는 토토로와 만날 수 없다. 까망이를 만질 수 없다. 고양이 버스에 탈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믿고 얘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그래도 꽤 괜찮지 않을까. 여전히 귀신이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어하고, 허리를 한껏 숙여야하는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두 딸을 따라 나뭇가지 통로 속을 엉금엉금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5.

메이와 함께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는 정류장 앞의 사츠키.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가 온 동네를 적시고, 해가 떨어져 저녁이 찾아온 길가는 불현듯 외로워진다. 이웃 할머니네에 가있으래도 말을 안 듣는 어린 동생은 편하게도 꾸벅꾸벅 존다. 그런 메이를 챙기며 사츠키는 무서웠다. 엄마는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할까, 아빠는 왜 이렇게나 늦는걸까. 혹시나, 혹시라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메이를 책임져야할텐데. 무겁게 내리는 빗방울이 사츠키의 마음을 짓누른다.

나도 어린데, 나도 토토로가 보고싶은 어린 아인데, 가족의 도시락을 챙겨야 하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하는 사츠키는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메이만큼 순수한 아이인데 사츠키는. 첫째라는 이유로 그녀는 메이 앞에선 아이가 아닌 언니가 되어야 했다. 아빠가 뒤늦게 도착하자 토토로를 봤다며 방방 뛰는 사츠키, 할머니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사츠키, 엄마 앞에서 귀신이 나오는 집을 자랑하는 사츠키에게 참 마음이 쓰였다. 사츠키는 빗 속에선 아빠의, 주말에 오지 못한다는 엄마의 소식 앞에선 엄마의, 갑자기 없어진 메이를 찾으면서는 메이의 부재를 사무치게 걱정했다.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며, 하지만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 하에 나오려는 눈물을 뒤로 미루고 미루는 그녀였을 것이다. 토토로는 이 세번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다. 게다가 토토로는 사츠키가 여전히 아이일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너무 고마웠다. 토토로가 지켜준 건 메이일 뿐 아니라 사츠키였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Han 님의 리뷰
2019.06.30 22:35:29
비서사적인 요소로 존재하는 순수함의 세계.
대부분의 지브리 영화는 영화 내 세계관의 낭만과 향수를 동력 삼아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과 평화를 동경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황폐하고 삭막한 현실 세계와 달리 지브리는 그 현실 세계를 일종의 유토피아로 대체하여 낭만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지브리 세계가 가진 고유한 낭만과 향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바로 현실 세계와 유사하면서 동시에 지극히 판타지스러운 이율배반적인 조합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과 같은 대부분의 지브리 영화는 근대적 세계에 현대/미래적 기술 수준을 보유한 스팀 펑크라는 이질적인 가상의 SF/판타지 장르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설정은 세계의 근간 자체는 구시대를 향하고 있지만, 세계의 방향성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꾼다는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에 거주하는 우리가 겪지 못한 것들을 겪었던, 혹은 앞으로 겪어야 할 평행 세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서구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픽사와 디즈니의 세계는 우리가 전혀 겪어 보지 못한 가상 공간을 토대로 하거나, 지극히 동화적인 공간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지브리 세계가 가진 특유의 이질적인 정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즉, 지브리 세계에 자연스레 스며든 알 수 없는 근원적 노스탤지어와 낭만주의는 중간자적인 시공간 설정에 기인한다. 우리네 현실과 너무 닮았지만, 전혀 다른 그 세계는 비행과 자연이라는 메타포로 전 지브리 영화에 걸쳐 표현된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실사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유한 정서를 실사 영화가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그런 점에서 아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성공적인 실사화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만약 실사화가 가능하다면, 과감히 말해 우리는 앞으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며 마음을 치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브리의 정신적 지주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이웃집 토토로>는 유독 지브리 영화 중에서도 영화 세계 본연의 순수함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순수함을 동력으로 하여 세계관의 활기를 보충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세계 자체가 순수함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데다, 앞서 얘기한 이질감 넘치는 중간자적인 세계의 설정 또한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구현된다. 오히려 <이웃집 토토로>는 1950년대의 일본 시골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현실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웃집 토토로>를 아우르는 순수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여기서 영화 외부에 해당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적인 트리비아를 잠깐 언급하고 싶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웃집 토토로>를 제작할 당시에 '일본에 진 빚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제 나이와 극 중 50년대의 시골을 활보하는 주인공 사츠키의 나이가 유사하다는 점을 염두해 본다면, <이웃집 토토로>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순수하게 구현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영화들보다 <이웃집 토토로>의 세계가 순수하고 청량한 까닭은 바로 감독 본인인 미야자키 하야오 스스로가 누구보다 간절히, 때 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순수한 동심의 세계는 다름 아닌 '토토로'에 의해 완성된다. 극사실적인 배경에서 차별화된 존재인 '토토로'가 영화 전체에 판타지성을 부여하고, 세계를 지탱하는 순수함의 정서와 결합하여 영화 전체의 정서를 아우르고 있다. 즉, <이웃집 토토로>는 중간자적인 시공간 설정 아래 형성된 노스탤지어와 낭만주의를 향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순수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창조된 세계에 부가적으로 존재하는 판타지성이 순수함의 정서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미야자키 하야오는 유럽풍의 배경을 잠깐 내려두고 전원적인 배경의 일본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환상인 '토토로'를 소환하여 소망한 것은 무엇일까.

어쨌든 <이웃집 토토로>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소망을 순수하게 담아내는 영화라 할지라도, 그러한 사적인 의도가 반드시 관객의 보편적인 동심과 순수성을 충족하는지의 여부는 다른 문제다. 관객 개개인의 과거를 소환하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전략적 선택이 필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토토로>는 관객 모두의 보편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매우 어려운 과업을 손쉽게 해낸다. 우선 어린아이인 메이와 사츠키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아이들의 시선을 세심히 따라간다. 그로써 관객 개개인의 유년 시절의 추억과 환상을 환기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과거가 그랬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그려낸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집 토토로>에는 짖궂고 괴상망측한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딸, 이웃 할머니와 친구, 신비한 존재인 토토로까지 모든 캐릭터가 선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만약, 영화에 특정한 악역을 상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외부의 구체화된 대상이 아니라 캐릭터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형성된 귀신과 같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주인 없는 빈집에 사는 마쿠로쿠로스케도 처음엔 메이와 사츠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실은 온순하고 귀여운 캐릭터였지 않은가. [이웃집 토토로 아트북]에서 진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년기에 태풍은 일종의 축제나 체험과 같아,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역의 이야기보다 훨씬 스릴 있고 매력 있는 경험으로 남을 수 있기에, 태풍 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초조해하며 두근대는 아이들의 모순적인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내용.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들의 감정과 내면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영화를 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 현상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두려움을 아이들이 성장하며 느끼는 보편적 체험으로 탈바꿈하여 추억을 환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늦은 저녁에 사츠키가 장작을 구하러 잠깐 마당에 나갔을 때, 갑작스레 불어온 강렬한 바람은 사츠키에게 공포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었지 않은가. 하지만 후반부에 실은 그 바람이 고양이 버스(혹은 토토로)임이 밝혀지게 되고, 오히려 영화는 사츠키의 두려움을 포용하면서 하늘을 날게 만드는 바람으로 바꾸어버렸지 않은가. '우리가 바람이 되었어!'라는 명대사는 아이들의 심리 변화를 이해하는 대사이면서 동시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아이들과 어른들이라는 층위로 분리하면서 영화 전체의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주제로 기능한다.

사실 사츠키와 메이가 이사한 시골은 처음부터 순수함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영화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아버지인 타츠오와 어린 딸들인 사츠키와 메이는 이삿짐을 가득 실은 삼륜차에 몸을 싣고 시골로 귀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삼륜차가 다리를 건널 때쯤에 반대선 차로에서 자전거를 탄 한 남자가 옆을 지나가는데, 이를 본 사츠키와 메이는 남자를 경찰로 오해하여 이삿짐 속에 꼭꼭 숨으려 한다. 하지만 실은 그 남자가 경찰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은 메이와 사츠키는 벌써 지나가 버린 남자에게 다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한다. 이처럼 첫 장면에서 다리를 건너는 행위와 사츠키와 메이가 경찰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이웃집 토토로>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지브리에서 다리는 늘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을 뜻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다리를 건넘으로써 기묘한 판타지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사츠키와 메이는 도시에서 시골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며, 도시로 대표되는 실제 현실과 역사와는 다른 순수함의 세계(시골)로 진입하는 셈이다. 토토로가 존재하는 이 순수함의 세계는 구체적인 배경 설정과 시골이라는 공간이 담지하고 있는 회고적 성질을 돌이켜볼 때, 또 다른 평행 세계의 과거로 향하는 진입로에 가깝다. 푸르고 정겨운 풍경은 순수함의 세계를 형형히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평온을 안겨줌으로써, 과거로의 매혹과 향수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다리를 건널 때, 사츠키와 메이가 경찰로 오해한 남자는 무엇일까. 여기서 핵심은 성별이나 인간의 존재가 아닌 경찰의 유무다. <이웃집 토토로>에는 순수함의 세계에 저항하는 악과 같은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순수함의 세계에서 경찰은 필요 없거나 아예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무한한 이상과 행복의 세계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즉, <이웃집 토토로>의 첫 장면은 한 가족이 시골의 다리를 건너며 귀향한다는 지극히 간결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순수 세계의 존재를 관객에게 은밀히 전언하는 셈이다.

<이웃집 토토로>가 구축한 순수함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완성도는 되게 사소하고 작은 부분에서 결정된다. 다소 곤란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웃집 토토로>의 세계는 서사적으로 불필요한 요소(쇼트)에 의해 완성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사츠키와 가족이 함께 목욕하는 쇼트. 밖에서 들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에 아이들은 무서워하고, 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려 호탕한 웃음과 농담으로 목욕탕을 정겨운 공기로 메운다. 그다음 쇼트에는 <이웃집 토토로>의 테마곡 중 하나가 흘러나오며, 집 안에 숨어있던 마쿠로쿠로스케가 집 밖의 거대한 나무로 날아가는 행렬을 익스트림 롱샷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사츠키 가족은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웃집 토토로>는 마쿠로쿠로스케와 거대한 나무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를 끝내지 않고,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추가 쇼트를 이어 붙인다. 심지어 음악을 갑자기 소거하면서 잠들어 있는 사츠키 가족의 모습을 부감으로 5초가량 담아낸다. 여기서 가족이 잠든 쇼트는 단지 가족이 잠들어 있다는 사건만 존재할 뿐, 그 외에는 어떤 정보도 주어져 있지 않다. 동시에 가족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로 볼 때 아무런 영향이 없다. 다시 말해, 사츠키 가족이 잠든 이 쇼트는 굳이 필요한 쇼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풀 샷에서 익스트림 롱샷으로 확장되며 명랑한 음악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할 것만 같았던 영화가, 굳이 다시 음악을 소거하면서까지 가족의 취침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추가 쇼트가 없더라도 내용 이해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편집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불필요한 쇼트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서사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쇼트를 왜 굳이 선택했을까? 다소 과잉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추가 쇼트는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아닐까. 또한, 영화를 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관객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행복이란 관념을 마치 가족이 곤히 잠들어 있다는 평온함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는 듯 보인다. 행복의 관념은 어떤 중요한 사건과 결과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종류의 쾌락이 아니라, 정겹고 보편적인 일상의 연속에서 발생하는 마법이다. 이처럼 행복을 특별한 순간과 체험으로 다루기보다, 평온한 감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접근으로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는 <이웃집 토토로>의 방법론은 순수함의 세계를 완성하는 데 가장 미시적이지만 동시에 핵심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편집의 리듬감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우리가 꿈꾸는 과거를 스크린 위에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다.

다시금 영화를 복기하면, <이웃집 토토로>에는 비서사적인 요소의 배려와 이해로 탄생된 아름다운 쇼트가 가득하다. 특히 일본 영화는 자연 풍경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가. 정적인 자연경관과 동적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호흡을 통해 숲의 공간과 토토로라는 상징적 존재를 적절히 조화하여 영화적 판타지를 잘 살려냄은 물론, 영화 전체의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업을 성취해낸다. 그렇기에 <이웃집 토토로>는 서사의 밀도가 매우 낮은 영화다. 단순히 극적 긴장감의 높낮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얼개를 뜯어보면, 서사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비행을 통한 하늘의 풍광, 유럽 배경의 이질적 세계, 어린 소년과 소녀의 성장담, 환경 보호와 같은 지브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스토리텔링 또한 <이웃집 토토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이웃집 토토로>는 극적 전개와 갈등을 과감히 배제하고, 애니메이션이 주는 감각적이고 투명한 움직임, 음악과 미장센의 조화와 같은 비서사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사건의 유기적인 연결 정도와 서사의 밀도를 의도적으로 낮춰, 관객이 서사에 종속되지 않게끔 한 뒤, 관객 스스로가 각자의 추억을 불러오기 용이하게 만든다. 이는 순수함의 세계가 지닌 근본적인 자유로움에 한 발짝 다가서는 셈이며,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본질 탐구로 이어진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웃집 토토로>는 그럼에도 단순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순하면서, 단순하지 않다. 이 말을 영화 내 대사와 비교하자면,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와 똑같다. <이웃집 토토로>가 주는 영화적 경이로움의 기저에는 비서사적인 요소로 건설된 순수함의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그 세계에서 각자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애니메이션 주는 감각적 체험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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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1 22:18:37
어른 마음을 귀신같이 아는 지브리,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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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님의 리뷰
2018.08.10 20:15:06
우산 두 개씩 들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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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님의 리뷰
2018.04.14 16:35:06
감상에 빠지지 않고 해피엔딩을 늘어놓는 건 까다로운 일이다. 이 영화는 이 일을 쉽게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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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님의 리뷰
2018.02.01 21:22:43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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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yun97 님의 리뷰
2019.07.05 14:30:55
순수함만이 주는 행복
어릴 적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저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그런 귀여운 영화라고만 느꼈었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될수록 잃게 되는 그 순수함. 그 순수함을 하야오 감독은 무척이나 잘 표현했다.
그 시기에만 보이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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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님의 리뷰
2019.06.30 10:07:32
동심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탁월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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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02:12:45
따뜻한 감동이 있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가족애와 유년시절 추억을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그리게 이끈다.

애니메이션으로 감동을 주는건 영화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오래된 작품이지만
정서적으로 한국에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며 따뜻함과 추억을 보는 내내 선사한다.

아빠와 딸 둘이 같이 목욕을 하고
손잡고 뛰어놀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기쁨을 느끼고 즐거워 하는 모습은
지나쳐버린 우리의 순수함을 되찾게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난 아빠와의 이런 추억이 없다.
실사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인데 이 모습들을 보니
괜히 울컥하고 부럽기도 했다.

요즘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토토로를 비롯 언니 역할의 사츠키
여동생 역할의 메이
캐릭터 모두가 그냥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남녀노소 모두 흐믓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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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Job 님의 리뷰
2019.06.25 01:19:53
밝은만큼 그림자는 짙어진다.
#이웃집토토로 #MyNeighborTotoro_となりのトトロ #미야자키하야오_제작각본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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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항상 그 알 수 없는 이질감을 고민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기에 매번 찝찝했었다. 스크린으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에 이동진 평론가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 이질감이 설명되었다. 항상 밝고 항상 어두운 인간따위는 없다. 밝으면 밝을수록 그만큼 짙은 그림자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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