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2017) - 키노라이츠
1987 (1987:When the Day Comes)
드라마 / 2017

개요
드라마, 한국, 129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7.12.27 개봉
감독
장준환
배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유승목
현봉식
박지환
이용직
박지홍
김경덕
김의성
최광일
김수진
김종수
김혜정
조우진
임철형
이창훈
서현우
이현균
김승훈
박경혜
이화룡
시놉시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처장은 조반장(박희순)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한편, 교도소에 수감된 조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
95.47%
3.87점
키노라이트 분포
13개
274개
별점 분포
리뷰
74

선우 님의 리뷰
2018.01.03 11:20:37
올 해 최고의 한국영화는 아니었지만
일찍부터 시사회나 여러 매체들의 후기에서 올 해 최고의 영화라고 익히 들어온 장준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1987>을 보았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그러나 지금과 사회의 온도는 확연히 달랐던 당시의 시대상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한열 열사 이야기 등 전두환 정권의 여러 만행들을 극화하여 만든 고발영화이자 시대극이었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 박종철이 고문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일이 발생한다.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의 지시 아래 고문 가담 경찰들은 사건을 은폐하고자 시신을 최대한 빨리 화장하기로 모의하고, 당일 당직 검사인 최검사(하정우)에게 찾아가 시신 화장동의서에 날인을 요청한다.

평소 가뜩이나 '남영동 군바리'들의 건방이 못마땅했던 최검사는 사망 후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부모도 보지 못한 대학생의 시신을 바로 화장해버리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며 완강히 거절한다. 이후 여지없이 상부로부터 날아드는 전방위적 압박이 그를 옭죄나, 그는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반골기질이 다분한 '똥개' 스타일. 화장동의서에 날인은 커녕 시신 보존 명령을 때려버리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사건 조사에 착수한다.

"조사관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경찰의 이 말도 안 되는 사건 진상 발표를 믿지 못한 윤기자(이희준)는 당시 남영동 내부에 들어갔던 담당 의사를 잠복 취재해 진실을 전해듣고 세상에 알린다. 희대의 고문치사사건에 대학가 등 시민사회가 들썩이고, 이를 수습하고자 당국은 일선 형사 두 명만 긴급 체포해 꼬리자르기에 나선다.

나는 많은 이들이 '저주받은 걸작'이라 이름붙인 장준환 감독의 (비운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를 사랑하는 관객 중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가 <화이>라는 영화로 10년 만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도 반가웠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오랜 공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전작의 흥행 실패로 인한 상업적 부담이 컸던 탓일까. <화이>는 장준환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보기에는 뭔가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1987>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 정도 소재라면 장준환 감독의 인장을 충분히 새기면서 동시에 흥행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캐스팅도 김윤석, 하정우, 김태리, 유해진, 이희준. 누가봐도 대작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역시나 직접 확인한 결과물 역시 만족스러웠다. 상업영화로서의 장점을 두루 갖춘 가운데 장준환 감독의 고집과 뚝심도 군데군데 엿보인 수작이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모르는 연령대의 관객에겐 놀라움과 감동을, 그 시대를 관통하며 지나온 세대의 관객에게는 애잔함과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익히 아는 실화를 극적으로 잘 엮었으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극의 품격을 한껏 올려준다.

하지만 동시에 장준환 감독이라서 더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물론 좋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봤을 때와 비슷한 인상을 불러일으킨 초반부에 비해 중후반부의 전개와 연출이 약간 아쉬웠다. 비중 배분을 비롯한 캐릭터 저글링도 아주 말끔히 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특히 강동원이 등장하는 부분. 배우의 잘못은 아니지만 뭔가 영화적으로 톤이 겉도는 느낌이었고, 김태리와의 플롯은 다른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은 좋은 영화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어설픈 신파로 관객을 몰아가지 않고, 장르적 쾌감을 실은 채 차근차근 질주한다. 비록 올 해 최고의 한국영화는 아니었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 만한 한국영화였다. 특히나 촛불정국을 거친 2017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연대감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침묵하는 다수가 광장의 성난 시민이 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자신의 모든 걸 내걸고 투쟁한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P.S

1. 영화 <1987> 쿠키영상은 없지만 스텝롤 이전에 실제 6월 항쟁을 촬영한 사진들이 나열된다.

2. 강동원, 설경구, 여진구 등 유명 배우들이 깜짝 등장하므로 사전에 배역과 관련된 스포일러를 접하지 않고 가시는 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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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2 08:07:44
주인공이 없는 영화, 아니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로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한 시대를 그리다. 평범한 사람들의 힘, 불의에 맞선 목격자들의 용기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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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3:33:48
별거 아닌 내용, 반전도 없다
단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큰 정의감도 시대정신도 없었다
단지 그렇게 되기까지 각자의 이야기가 맞물렸을 뿐

언젠가 들었던 고은 시인의 문답으로 갈음하고 싶다

이렇게 놀자 대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라는 질문에

너희들이 이렇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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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8:23:38
끝을 모를 긴 어둠 속에서도 작고 초라해보였던 개인의 신념과 선택이 늘 세상을 바꿔왔음을.
<1987>의 그들 모두는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광장에서 우리와 만나면서 또 다시 증명해 보인다.
해당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기에, 우리가 빛을 빚진 그 시대를 129분간 잠시 살아보게 해준 이 영화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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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18.01.05 16:45:08
처음이다. 역사적인 사건이 있던 그때, 1987년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말이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최근에 천만영화였던 <택시운전사>를 비롯해서 이미 스크린에서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에 버금갈만한 뜨거운 1987년 6월의 이야기는 <1987>이 최초다. 이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도 이 역사적인 시간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이 왜 자신이 첫번째 주자가 됐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1987>은 그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하여 담았다. 그동안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대표하는 광주항쟁 영화들을 보면서 숱하게 눈물을 쏟아야 했지만, 역사적인 그때 그일들에 대한 눈물이였지, 오롯하게 영화에 의한 눈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 1987년의 첫번째 이야기인 <1987>은 역사적인 그때 그일에 대한 눈물은 물론, 그 시대의 이야기가 주는 실화의 힘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제대로' 담아내서 보는이의 가슴을 울리며 그 어떤 실화영화보다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그야말로 뜨겁고 뜨겁고 뜨겁다.

<1987>속 임물들은 유이하게 한병용과 연희를 제외하면 실화에 근거를 두고 역사적인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자칫 무겁고 진중하기만 한 다큐적인 영화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과 많은 스타배우들의 힘으로 그러한 단점들을 상업영화의 틀로 완벽하게 복원한다.

특히 포스터 어디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생각지도' 않은 많은 스타들이 깜짝 등장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름도 없는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모든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배우들이 '깜짝' 등장할때 마다 영화속 캐릭터의 힘은 배가
되고, 그 효과는 이러한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아주 적절하면서 영화의 순간을 각인 시킬수 있는
적절한 역할을 동시에 발휘된다.

그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마치 1막, 2막으로 나뉘는 연극무대 처럼 한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다음 주자가 이야기를 이어 받는다. 박처장과 최검사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거기에 윤기자가 이어받고, 거기에 한병용과 연희가 다시 끼어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한열까지 이어지고, 연희가 6월항쟁의 한복판에 팔을 걷어붙이고 올라서면 이 뜨거운 이야기는 광장의 촛불 처럼 순식간에 하나로 묶여진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였다면 박처장에 반기를 들며 대항하는 최검사에게 정의감이나, 영웅의 옷을 입혔겠지만, 최검사가 대항하는 이유는 예전에 '그들' 때문에 똥물을 뒤집어 쓰며 당했던 것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트러블 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자존심일 뿐이다.

다른 상업영화에서 쉽게 소비되는 정의감이나 윤리의식을 앞세운 '히어로캐릭터'의 모습은 <1987>에서는 찾아볼 수없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의 상황과 함께 시대상까지 자연스럽게 대변하는 도구로 쓰여짐과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일반 상업영화와는 다른 기시감으로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제공해 주는 역할까지 충실하게 수행한다.

특히 유이한 허구의 인물로 집어넣은 김태리가 연기하는 연희는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보여지는 이한열과의 어울림은 자칫 무겁고 진중하기만한 영화라는 통념을 지울 수 있는 영화적인 각색이 각별하게 돋보이는 구성이다. 그러한 영화적인 각색에서도 주제의 진중함은 잃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러한 것들은 이 영화가 단순하게 역사적인 비극에만 기댄 안일한 상업영화가 아님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동안 보지 못한 장준환 감독이 또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1987>이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나온 것은 의아하기 보다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안 만든 것이아니라 못 만든 것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1987년의 삼십년 후의 오늘의 모습은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정말 30년이라는 시간은 '그때' 보다는 조금은 나은 시간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내일 뉴스룸에 <1987>속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면 모두 말도 안된다고 웃을 수 있을까? 입닫고 눈감고 시키는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도 역사도 반복된다. 지금의 몇십년 후에 <2017>이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그러지 못했을까? 를 통감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1987> 같은 영화가 필요하다. 이 영화 한편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뀝니까" 의 답변이 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스쳐가는 진실의 중요성은 충분히 학습된다. 첫끗발이 개끗발이 아니라 한발자국이라도 떼어야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1987>을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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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 님의 리뷰
2018.04.06 14:45:24
6월 혁명을 완성하다

이제 '이런 영화'는 좀 지겹다는 관객에게 장준환 감독은 아직 봐야 할 게 남았다며 또 한 편의 영화를 슬며시 건넨다. 하정우 특유의 경쾌한 스텝에 가볍게 미소 지으며 관람을 시작했다가 극 중 인물의 마음들이 같은 곳을 향해 점차 모이기 시작하면 자세를 고쳐잡게 된다. 강동원의 처절한 몸부림에 머리가 쭈뼛서는 경험을 한 뒤 김태리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나면 어느새 가슴은 뜨겁게 달궈져 있다. 영화 '1987'(12월27일 개봉)이 주는 영화적 경험이 그렇다.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일각에서 '이런 영화'로 평가절하하는 건 시대의 아픔을 영화의 힘으로 돌아보지 못하고, 그 아픔이 흥행 코드로 활용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1987'은 다르다. 지금의 시대정신과 공명(共鳴)하는 과거를 다루면서 이야기의 도착점과 형식의 목표가 일치하며, 이 작품의 지향점을 마음 속 깊이 새긴 배우들이 함께있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들로 '그때 그곳'(1987년a)에서 '지금 여기'(2017년)를 보게 하는 것, 유사 소재 다른 작품들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여진구)이 고문당해 사망한다. 대공수사처장 박처원(김윤석)은 사건 은폐를 위해 시신을 하루빨리 화장할 것을 지시하지만,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화장동의서에 사인하지 않겠다며 버틴다. 고문치사임을 직감한데다가 권력에 휘둘리기만 하는 검찰에 짜증이 난 그는 옷 벗을 각오로 이 일을 언론에 슬쩍 흘리고, 이로 인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작은 물결이 모여 거대한 파도가 되고, 힘겨운 발구름이 합쳐져 땅을 뒤흔드는 지진을 만들며, 외마디 외침이 뭉쳐져 거대한 함성이 되는 과정이 '1987'에 담겼다. 역사는 영웅 혹은 구원자의 깜짝 등장이나 어떤 결정적 사건에 의해 찰나에 뒤집어지는 게 아니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동이 쌓여 조금씩 전진하는 거라고 영화는 말한다(박 처장은 반복해서 "네까짓 게 혼자 뭘 할 수 있겠냐"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에 내재된 공통된 의지가 검사에서 기자로, 교도관에서 대학생으로, 종교인과 운동가로, 그리고 결국 광장에 모인 시민의 거대한 물결로 이어져 확장되는 이 작품 특유의 릴레이식 전개는 필연적인 연출이었을 게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비열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려는 시민 공동체 그 자체다. 영화는 30년 전 그들의 폭압을 언급하며 슬퍼하고 분노하며 주저앉기보다 30년 전 우리의 인간적 숭고함을 보여주며, 상처입은 한 발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내딛으며 나아간다.

이 작품이 박종철의 죽음으로 열리고 이한열의 죽음으로 닫히는 건 바로 그런 의미다. 마지막 두 개의 시퀀스 또한 상징적이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가는 이한열 열사, 좁고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 넓은 광장으로 나와 군중의 함성을 목도하는 대학교 신입생의 얼굴이 그것이다. 박 처장은 애국(愛國)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워 행동하지만,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다만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냐"며 움직일 뿐이다.

'1987'은 출연 배우들이 가슴 속에 담은 공통된 염원이 스크린 밖으로 발산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김윤석·하정우·유해진·이희준·박희순·김태리 등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는 게 아니다. 이들은 여타 작품에서보다 적은 분량을 배정받고 특정 지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퇴장할 뿐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의 마음 속에 남아 살아숨쉰다. 그건 아마도 그들의 눈에 담긴 의지와 바람을 관객이 충분히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김윤석은 앞서 이번 작품을 '쇼트트랙 계주'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는데, 자신의 역할이 끝나도 선수들이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트랙 안에 남아있다는 의미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지난 겨울 광장을 밝혔던 촛불을 소환한다. '1987'은 올해 3월10일의 결정이 결코 우연히 얻어걸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는, 우리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겨워도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다. 1987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2017년의 변화 또한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한 게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세상에 대한 요구였다. 최 검사가 박 처장에게 "법대로 하자"고 말하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영화 '1987'을 걸작이라고는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전개상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특정 설정과 장면이 삽입된 건 이 작품의 최대 단점이다. 과시적으로 보이는 몇 개 신(scene)은 의도가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1987'이 아름다운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목표가 올바르고, 그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이 정직하며, 이 과정에 참여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진솔하다. 1980년 광주를 온전히 담아낸 영화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과 달리 1987년 6월 항쟁은 '1987'로 상당 부분 완성됐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글)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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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20:46:57
그 누구도 주인공은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묶여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 보다는 분노에 가득찼던 것 같다. 다만 역사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영화화 했을 경우 픽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은 좀 있었다. 되도록 몰입하지 않고 되도록 인물과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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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d. 님의 리뷰
2018.01.13 01:20:57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으로 발생한 비극을 직접 재현하고 스펙터클로 소비하는데에 아무런 브레이크가 없는 영화. 고문의 현장과 사망의 순간마저 재현해버리고 이들의 죽음을 극적으로 포착하는 카메라. 이 죽음이 추동하는 감정의 스펙터클로 연희의 변화와 엔딩-광장 씬의 감동은 성립한다.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의 능숙한 활용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1987년의 광장을 만들어낸 다양한 인물상을 조명하면서도 거칠 것 없이, 박진감있게 진행되는 영화의 힘은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거칠 것 없이 진행되는 영화가 훌륭한 솜씨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과거에 대한 뜨거운 낭만과 신화이고 이는 과거를, 그리고 현실을 단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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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04:20:47
나는 근현대사 공부를 싫어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서워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허구의 인물 연희에게 애정이 간다. 모두가 숲을 봐야 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내 앞의 나무가 다치고 베이고 있으니 숲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보호가 먼저인,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장준환 감독은 이번 [1987]에서 이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잘 들여다보고 겸손하게 다독이면서 이 나무의 일이 바로 숲의 일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영화의 시퀀스를 끌어가는 인물을 보면 누구 하나 주연이랄 게 없다. 악인으로 등장하는 대공처장(김윤석)만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유일한 주연이라 할 수 있는데, 박종철과 이한열, 동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과 기자(이희준), 그리고 공안부장(하정우)과 교도관(유해진)까지.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악인을 넘어서고, 모두가 영화의 주역이 된다. 그리고 그 역할을 관객에게까지 번지게 한다. 결국 연희 역시 허구의 인물이 아닌, 어딘가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학생이었을 것이다.

리뷰 + :
https://blog.naver.com/chbadafx/22118248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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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 님의 리뷰
2018.01.11 00:09:41
2017년 영화계의 주류는 '역사'였다. 연초 한국 근·현대사를 되짚으며 사회와 정치를 풍자했던 '더 킹'을 시작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열사 박열·가네코 후미코 부부를 다룬 '박열', 다소 논란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의 상처였던 '군함도', 1980년 5월 광주를 재조명했던 '택시운전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던 '아이 캔 스피크',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40여 일간 항전했던 '남한산성'까지 전부 역사라는 이름 아래 관통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1987년 이야기를 다뤘던 상업영화들은 거의 없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영화계에서 불문율처럼 1987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오히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직·간접적으로 담은 영화들보다 훨씬 적었다. 그나마 지난 3월에 개봉했던 '보통 사람'이 있었지만, 수많은 국내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7년에 있었던 사건들을 모두 아우르는 작품이 2017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공개되었다. 제목에서부터 확 와닿는 '1987'이었다.

'1987'은 1987년 1월에 있었던 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그해 6월에 있었던 6월 민주항쟁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만들었다. 주요사건을 무려 두 개나 다루고 있는 만큼, 연출하는 감독이나 출연하는 배우들의 부담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언론시사회 당시 장준환 감독이 "10년간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열매를 맺는 천연사과를 드리고 싶다"로 말했듯, '1987'은 작위적으로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물 흐름처럼 완성했다.

두 가지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1987'은 '택시운전사' 만큼, 아니 '택시운전사'를 넘어섰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에서 옥에 티로 꼽혔던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 같은 인위적인 연출은 '1987'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열'을 만들고자 세심한 것 하나하나까지 고증에 온 힘을 쏟았던 이준익 감독처럼 '1987' 팀은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에 접근했고, 그들의 노력은 뜨거운 눈물과 깨알 같은 웃음, 1987년을 달궜던 뜨거운 열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30년이 지난 2017년으로 가져왔다. 한국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는 듯 했다.

'1987'이라는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단순히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 자신의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참여했던 수많은 배우의 열연과 에너지가 모두 전달되었던 것도 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거대한 쇼트트랙 계주에 참여해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하나둘 달걀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바위가 깨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악역을 자처했던 김윤석과 박희순, 그리고 정의를 위해 불씨를 댕기는 역할이었던 하정우, 유해진, 이희준, 김태리 등 6명의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참여한 수많은 조연배우와 용기 있게 출연했던 특별출연 배우들 또한 빛났다. 김종수와 조우진의 절절한 통곡에 모두 내 일처럼 슬퍼했고, 1987년 학생운동 출신의 우현이 정반대 진영의 대표로 등장해 당시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으며, 작은 분량이지만 박종철·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여진구, 강동원의 존재감 모두 '1987'을 위해 크게 이바지했다. 간만에 영화를 보면서 모든 배우가 훌륭했고 고맙다고 느끼긴 실로 오랜만이었다.

-2017년 12월 13일 '1987' 언론/배급 시사회 관람-

원문링크 :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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