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드라마 / 2017

개요
드라마, 영국,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7.04 개봉
감독
리처드 이어
배우
엠마 톰슨
스탠리 투치
핀 화이트헤드
벤 채플린
제이슨 왓킨스
루퍼트 밴시타트
로지 카바리에로
닉키 아무카 버드
안소니 캘프
니콜라스 존스
에일린 월쉬
시놉시스
존경 받는 판사 피오나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은 가운데,
치료를 거부한 소년 애덤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게 된다.
이틀 안에 치료를 강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애덤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피오나는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고,
그날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예기치 않은 파장을 일으키는데……
92.86%
3.45점
키노라이트 분포
3개
39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26

이정식 님의 리뷰
2019.06.27 13:25:56
이것은 당신을 위한 몰락입니다
이 영화는 명석하고 우아하다. 피오나 역의 엠마 톰슨만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 워킹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사라방드’가 느릿한 선율로 배경을 가득 채워주기 때문만도 아니다. 당대 최고의 영국 시인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가 나오기 때문만도 아니다. 공간 배경, 화면의 톤, 색감, 얼굴의 주름조차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등장인물의 섬세한 연기, 선율까지. 영화 속 모든 요소들이 명징한 개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전체의 조율된 우아함으로 하나 된다.

영화 <칠드런 액트>는 ‘속죄’, ‘암스테르담’으로 세계의 갈채를 받은 이언 매큐언 작가의 동명소설인 ‘칠드런 액트’를 바탕에 두고 있다. 특기할 부분은 이언 매큐언 작가가 직접 영화 <칠드런 액트>의 각본을 맡았다는 것. 소설 <칠드런 액트>와 영화 <칠드런 액트>가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영화 <칠드런 액트>는 두 사람에게 돌연 무심하게 그어진 삶의 절단선을 응시하는 영화다. 한 사람은 피오나 판사(엠마 톰슨)고, 또 한 사람은 애덤(핀 화이트헤드)이라는 청년이다. 피오나는 판사로서 매 재판마다 법적 엄밀성을 기해 최선의 판결을 내리곤 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애덤은 투병 중이면서도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려고 몸부림친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 잭은 ‘외도’를 선언하고 집을 떠나는데, 피오나는 한순간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할 겨를도 없이 애덤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의하면,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피가 섞이는 것은 부정한 것이므로 수혈을 받지 않겠다고 애덤과 부모는 선언한 것. 판사 피오나는 휴정을 선언하고, 애덤의 속마음을 듣고 싶어 직접 병원으로 향한다. 다시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삶의 절단선이, 바로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그 장면에서 그어진다.

이 영화의 주요 뼈대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질문(딜레마)이 아닐까. 어느 것 하나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만드는 질문(딜레마)을 마주하는 사람은 피오나다. 거대한 질문(딜레마) 앞에서 그녀는 무슨 말이든 대답(결정)을 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 이 점에서 그녀의 직업이 판사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그녀는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대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마주하는 질문(딜레마)이 쉽게 대답하지 못할 문제라는 점이다. 영화가 시작된 이후, 첫 번째 그녀가 맡은 재판은 하나의 신체에 두 사람의 머리가 붙어서 태어난 ‘샴쌍둥이’ 재판이다. ‘쌍둥이를 이 상태로 가만히 두면 두 사람 모두 죽지만, 수술을 하면 한 사람은 온전히 살 수 있다. 대신 다른 한 명이 죽는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가장 옳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두 사람 모두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여기에 대한 반박. 그렇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다른 한 명이 마땅히 죽는 건 공정한 걸까?(죽는 사람은 대체 왜 그가 되어야 하는가?) 또, 생명이 그런 식으로 계량화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두 생명’의 가치가 ‘한 생명’의 가치보다 더 높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미 마이클 샌댈의 유명한 강의인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주장이 ‘공리주의’에 토대한 생각임을 들은 적 있다. 또, 공리주의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은밀히 소외시킨다는 것도 들은 적 있다. 여기에서 이 논의를 더 밀고 갈 생각은 없다. 도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어느 것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딜레마다. 그러나 법정은 다르다. 인류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과물인 현재의 사법 체계는 절차와 체계, 그리고 방법과 논리에 있어서 완결성에 최대한 집착한다. 그러므로 법에 있어서 저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결국 그녀는 한 사람을 살리도록 수술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하고 재판을 종료한다.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피오나에게는 두 층위의 삶이 있다. 공적인 삶(판사)의 영역과 사적인 삶(피오나)의 영역이다. 흥미롭게도, 두 영역에 모두 공평하게 두 가지의 질문이 던져진다. 먼저 공적인 삶(판사)의 영역에 던져진 질문. 1) 샴쌍둥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2) 수혈을 거부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여호와의 증인 환자에게 수혈을 강제할 수 있을까. 이제 사적인 삶(피오나)의 영역에 던져진 질문 두 가지. 1) 홀연히 집을 떠나 외도하는 남편의 문제(그를 다시 사랑할 것인가, 이대로 헤어질 것인가) 2)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애덤의 문제(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법조인에게 존경을 받는 판사여서 그런가. 그녀는 언뜻 결정 내리기 어려운 두 재판을 모두 단호한 태도로 명징한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 던져진 질문 앞에서, 그녀는 어떤 답도 선뜻 내리기 주저한다. 왜 그녀는 그토록 어려운 판결은 명료하게 내리면서, 삶의 문제 앞에서는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두 층위 사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피오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의 대사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녀가 삶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삶은 법이 아니라 도덕을 다루는 장”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수많은 조목으로 세밀하게 가지를 쳐나간 법 체계는 지나치게 매끈해서,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러 욕망들, 한 웅덩이 가득 고인 절망, 무수한 결여가 모두 모인 ‘삶의 근원적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법은 광경을 조망하고, 삶은 실존의 심연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법의 대표격인 ‘판사’가 삶의 질문에서 입이 턱 막힌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피오나와 애덤은 무슨 관계였을까. 사랑의 관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애덤이 일방적으로 피오나를 동경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옳은 지적 같으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설명이다. 피오나도 애덤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 옳을까. 나는 이 둘을 ‘샴쌍둥이’ 관계로 설명하면 어떨까, 궁리했다. 사실 피오나와 애덤은 많은 부분에서 흡사하다. 삶에서 처한 조건이 그랬고, 세상을 인식하는 세계관도 비슷했다. 두 사람은 각각 신앙(여호와의 뜻)의 세계관과 이성(합리, 법)의 세계관으로 모든 세계의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나뉘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 의해 견고한 세계관이 깨어진다.

애덤이 피오나를 극진히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동안 신앙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고 느꼈으므로, 수혈을 허가한다는 피오나의 판결은 자신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피오나는 왜 애덤에게 마음이 갔던 걸까. 사실 그녀는 애덤을 성가셔했다. 그랬던 그녀의 태도가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병이 다시 악화돼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애덤을 본 이후였다. 애덤에게서 무엇을 발견했길래. 어쩌면 그것에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몰락하는 애덤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죽음의 목전에서 애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전 자유로워져요.” 이제 죽어요가 아니라, 자유로워진다는 것. 몰락하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샴쌍둥이 중 한 명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덤은 몰락하면서 피오나에게 ‘하나의 윤리’를 선물한 것이다. 지금껏 대답하지 못했던, 비로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윤리. 그것은 바로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모든 일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것. 죽음이 아니라, 자유. 그러고 보면, 판사의 판결은 주체적이 아니라 수동적이다. 수많은 판례와 가지 쳐나간 법적 조목을 어기지 않고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피오나였으므로, 애덤에게서 그녀는 하나의 윤리(자유)를 선물받은 것이다.

이제, 내가 왜 두 사람이 샴쌍둥이 관계 같다고 궁리하게 됐는지, 결정적인 장면을 말해야겠다. 피오나는 애덤의 몰락을 목격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뒤이어 들어온 남편 잭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다. 어두 컴컴한 곳에서, 그녀는 비에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쇼트의 쌍둥이를 이미 본 적 있다. 피오나를 만나기 위해 뉴캐슬까지 찾아온 애덤 역시 비를 홀딱 맞은 채로 멍하게 서 있었다. 두 쇼트는 모두 각 사람에게 단절선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건너간다. 애덤은 자신이 헌신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앙을 버리겠다고 말하고, 피오나는 울면서 애덤과 관련된 일을 남편 잭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다.(내내 대답을 피하던 피오나가 처음으로 잭에게 상세하게 대답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 모두 깊은 심연에 있던 그 무엇이 고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변했다.

두 사람의 삶에 그어진 단절선은 어디에서 출발한 걸까. 나는 그들이 ‘몰락하는 표정’을 목격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애덤은 부모님을 진정한 신앙인의 표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수혈을 못해서 죽는 것이, 죄를 지으며 사는 것보다 낫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무 의심 없이 순종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혈을 허락한다는 판결이 나자 죄를 짓는다고 비통해할 줄 알았던 부모님이 은밀히 기뻐했다고. 애덤이 목격한 그 표정은 (신앙인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되기 어려운, ‘(신앙인의) 몰락의 표정’이다. 피오나 역시 몰락하는 애덤의 표정을 마주 봤다. 그들은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함께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는 잠시 휘청이고, 가치의 지표가 바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잉태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인가’. 내내 수동적이던 두 사람의 삶의 태도에 균열을 가하는 질문이다. 요컨대 몰락은 목격자에게 하나의 윤리를 쥐어준다. 이제 목격자는 하나의 윤리를 선물 받았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애덤과 피오나의 몰락을 같은 자리에서 다 함께 목격한 또 한 사람, 바로 우리 각자. 몰락의 목격자는 생명의 종말에서 다시 또 다른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누군가의 파국으로부터,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탄생한다. 그질문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일평생 움켜쥐었던 것이 허탈하게 바스라지기도 하고, 아주 고요하게 침몰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나아가야한다. 딱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환영처럼 일렁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단번에 파괴된다 하더라도, 새벽 어스름의 서늘함을 통과해 나가야 한다. 비에 젖은 채로 우두커니 서있던 애덤과 피오나의 얼굴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신형철)이다. 그러니, 목격자는 이제 자신의 지표를 수정할 준비를 하라. 견고한 구속을 깨트릴 준비를 하라. 이것은 당신을 위한 몰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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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 님의 리뷰
2019.07.27 20:22:31
'여호와의 증인' 믿는 소년이 백혈병 걸리자 일어난 일
'만 17세' 미성년, '애덤 헨리'(핀 화이트헤드)는 백혈병에 걸렸지만, 부모와 자신이 믿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인해 '수혈' 치료를 받길 거부한다. "타인과 피를 섞는 행위 자체가 타락을 부른다"라는 종교적 신념 때문인데, 덕분에 만 18세 '성년'이 되기까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 '애덤'을 데리고 있는 병원 측은 보호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런던 가정법원에 '강제 수혈'을 요청한다.

2019/07/08 메가박스 코엑스
--- 이하 리뷰 전문은 알려줌 하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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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네 님의 리뷰
2019.07.22 15:23:46
신앙의 배신.
법과 정의의 이율배반.
엠마톰슨이 끌고가는 이성과 감성의 내적 갈등.

제목은 칠드런 액트.
'아동법' 이라는 뜻이 암시하듯,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피오나 메이(엠마톰슨)가 여호와의증인 가정에서 자란 18세 소년 애덤 헨리(핀 화이트헤드, 덩케르크)를 만나게되며 펼쳐지는 스토리다. ⠀
이언 매큐언의 책 'The Children ACT' 가 원작이며, 영화에서도 각본을 직접 맡았다. 2017년 영국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토론토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이 되었고, 영국에선 18년 8월에, 국내는 19년 7월 4일 개봉했다.

엠마톰슨 하드캐리.
그녀가 연기한 피오나 메이는 사회이자, 법이자, 어른을 상징한다. 차갑고 이성적인 머리로 살아가야하는 판사의 고뇌를 표현하는 섬세한 감정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녀의 남편으로 호흡을 맞춘 잭 역의 스탠리 투치도 캐리 서포트한다.

법이 정한 기준. 만 18세
종교와 부모가 만들어준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애덤. 그 아이의 선택과 행동이 안타까울 지라도,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가 본 세상은 너무도 좁았다. 법은 애덤을 어른으로 인정했지만, 신앙과 부모와 사회는 그를 성인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어른들 또한 불완전한 존재.
피오나 메이와 잭의 부부관계가 그렇 듯, 사회에서 추앙받는 판사와 대학교수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계속 나를 사랑해주겠냐는 피오나 메이의 소녀스러운 대사가 머리속을 스쳐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런던의 서늘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싸늘하고, 철저하고, 냉정하게. 적절했다.


"이 노래에 가사가 있는 줄 몰랐어요."

"같이 살래요..."



☆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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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곰 님의 리뷰
2019.07.22 08:56:55
엠마 톰슨의 매력이 뿜뿜
지금 까지 이런 엠마 톰슨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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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훈 님의 리뷰
2019.07.17 12:45:25
감정선에 충실한 정극
"인물과 인물의 고뇌와 감정선에 충실한 정극"

영화는 아동 청소년법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법과 종교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형식적인 틀에 초점을 맞춘 삶과 그와 반대로 내용적인 즉 자유의지대로 사는 삶의 대립까지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상당히 조용하며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깊이있는 대사를 많이 주고 받으면서 관객들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올바른가??에 대한 질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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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님의 리뷰
2019.07.10 18:57:10
엠마 톰슨과 핀 화이트헤드의 재확인, 그 이상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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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희 님의 리뷰
2019.07.10 17:02:42
언뜻 보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 같지만 <칠드런 액트>는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다

'잭(스탠리 투치)'은 항상 자신보다 일이 우선인 '피오나(엠마 톰슨)'에게 지쳐 외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 전날 밤에 벌어진 남편의 폭탄선언이 아니었다면 '피오나'는 '아담(핀 화이트헤드)'을 만나러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년, '아담'은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판사인 '피오나'의 명령으로 수혈을 받아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 '피오나'와의 만남으로 '아담'은 지금까지 의지해왔던 신(God)보다 더 커 보이는 존재를 느끼고 '피오나'에게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하나의 선택과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의 인과율, 인간의 존엄과 종교, 도덕, 사랑 등 <칠드런 액트>는 함축된 다양한 주제들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연결되어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져줄 것이다.
아마 극장에서의 즐거움보다 극장을 나오면서 느끼는 여운이 더욱 길고 강렬하지 않을까

쉽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1등 공신은 역시 '엠마 톰슨'이었다. 우아한 카리스마를 비치지만 그 아래 흔들리는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 그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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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23:16:38
단순한 법정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칠드런 액트입니다.

엠마 톰슨 배우야 워낙에 유명한 배우라 설명할 것도 없고
덩케르크 주연을 맡았던 배우 핀 화이트헤드
그리고 다작으로 탄탄한 연기력의 스탠리 투치까지
이들의 호흡이 궁금했던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는 단순하게 소년/아동법 (The Children Act)에
대한 내용과 판사 역할의 엠마 톰슨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인 줄로만 알았는데 중반부 이후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엠마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완벽주의 판사이기 때문에
남에 대해 법을 집행하고 아주 객관적이고 논리정연하게
판결을 짓지만 막상 너무 일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남편은 아예 뒷전이 되었고

삶의 밸런스가 상당히 한쪽으로 치우쳐진 상황이었습니다.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엠마의 삶은 자연스레
남편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죠.

그 와중에 평소 여러 아동법을 진행한 판사였지만
아직은 미성년자지만 몇 개월 후엔 성인이 되어
본인의 의사를 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 이단에 빠져
신과 신앙이라는 이유로
백혈병에 걸린 아이지만 수혈받기를 거부하는 사건을 맡게 되는데
종교와 신에 대한 신뢰로 거부하는 쪽
그리고 종교와 신을 떠나 생명이 죽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그걸 극단적인 방법으로
거절해서 죽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하고 살리려는 쪽
두 법정 싸움을 하게 되는 과정 가운데

법 즉 fact 감정에 대한 부분 그리고 이성 사이에서
이성을 선택해 양쪽의 의견을 다 무시할 수 없었기에
몇 개월 후 성인이 되는 남자아이를 직접 병원으로 가서
만나서 그의 스토리를 듣게 됩니다.

사실상 이것 자체가 판사가 자신의 고정관념 혹은
법적인 규율을 어느 정도 부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죠.

허나 그 선택과 결정(판결)이 과연 옳은 일이고
최선이었는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관객에게 역으로 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엠마 톰슨의 완벽주의 존경받는 판사 역할은
정말 실제 판사의 고충과 고뇌 그리고 삶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흡입력을 주게 되고
남편 역할의 스탠리 투치도 아내의 사랑을 갈구하고
부부 사이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걸 받아주지 못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아내를 이끌어 가려고 하지만
쉽게 되지 않고 부부 생활도 하지 못하고
그도 총애 받는 교수이지만 집에서는 막상 외로운
한 사람을 잘 그려냈으며
핀 화이트 헤드 역시 이미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신예 배우로
이 작품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피아노를 이용한 BGM이
영화를 잘 이끌어주고
모든 걸 대변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 원작이고
사회적 규율, 윤리, 종교, 자유, 법 다방면으로
계속 관객에게 고민하게 하고 단순하게 법정의 이야기가 아닌
완벽주의 판사 그리고 죽음을 앞두었던
미성년 남자아이의 삶, 감정, 정서적인 모든 부분까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송씨네 님의 리뷰
2019.07.06 13:06:48
종교적 신념에서 자신의 신념으로. 소년은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써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거기에 자유가 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하지만 그 선택이 옮은 일이었는가 묻고 싶습니다. 영화는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시종일관 답답으로 시작해 답답으로 끝나는 느낌입니다. 애덤은 2번 혹은 3번의 방황과 고민을 합니다. 첫번째는 부모님의 뜻대로 교리가 진리라 생각하고 종교활동을 합니다. 두번째는 백혈병에 걸린뒤 법의 판결로 수혈을 받아 살아납니다. 세번째는 수술 회복후 자아에 고민하고 자신이 살도록 도와준 피오나에 의지하려다 그게 어렵게 되자 자신의 신념이라면서 수술을 거부합니다. 저는 첫번째와 두번째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고 법적인 힘으로 벗어났기에 두 개 모두 자신의 신념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세번째는 자신의 선택했다고 하지만 고민했다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신에게 무책임한, 자기 자신을 학대시키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세번째 선택도 옮지 않았다는 것이죠. 애덤은 결국 평생을 살면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자유를 찾았다고 말하지만 시한부의 삶이었다면 그게 옮은 선택일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앞날에 꽃길만 가득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피오나는 나름 애덤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배풀었고 남편과 별거 아닌 별거 상황이었지만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죠. 엠마 톰슨은 절제의 미를 보여주고 핀 화이트헤드는 폭주하는 소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7.05 23:41:56
당신의 선택으로 바뀐 내 인생
평도 괜찮고 마침 당첨된 예매권도 있기에 선택한 영화.

뭔가 심오한듯한데 나한텐 별로였다.



판사의 선택. 소년의 선택. 남편의 선택.

각자의 선택으로 변해버리는 상대방의 인생.

각자가 마주하는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는데 칠드런 액트라는 제목은 영국의 아동법이라고 한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된 사항을 판결할 때 법정은 무엇보다 아동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실 이 내용을 알고 있다면 영화의 큰 줄기는 대충 예상되버린다.

모르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가 되고...

소년을 설득하고 판사는 고뇌하고... 이런 갈등구조를 예상했던 나로선 맥빠지는 전개였지만 영화가 진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판사의 선고 이후부터 이루어진다.

단순히 종교적 신념과 법적 조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선택과 그 선택이 주는 변화에 대한 각자의 수용태도에 대한 이야기. 근데 내겐 좀 난해했다ㅠㅠ



우선 배우들의 연기는 참 좋았다.

엠마 톰슨은 정말 판사처럼 보였고 핀 화이트 헤드는 정말 환자같이(?) 보였다.

엄정하면서도 법이란 이름 아래 타인의 삶을 구해주는 판사.

하지만 자신의 삶은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 실제로 저런 판사가 있을 것만 같고 그런 판사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덩케르크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핀 화이트 헤드. 소년 같다가도 청년 같았던 종잡을 수 없었던 캐릭터를 잘 살려 보여줬다. 그 외에도 남편이나 판사 서기관 배우들도 잘해주었고...



근데 문제는 이들의 선택과 삶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해도 잘 안되고 설득도 잘 안됐다.

결국은 정해놓은 선택을 서로가 했던 건지... 아니면 서로의 태도가 영향을 끼쳐 선택이 바뀐 건지...

중요한 게 그 결말이 아닌 결말을 향해 나가는 각자의 태도였겠지만 그조차도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더라;;;

누군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그런 전개를 생각하고 봐서인지 몰라도 암튼 난해하더라;;;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라는 생각이 맴도는 걸로 봐선 내겐 별로 괜찮은 영화는 아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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