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워 (Cold War)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음악, 폴란드, 88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2.07 개봉
감독
파웰 파울리코우스키
배우
요안나 쿨릭
토마즈 코트
보리스 스직
아가타 쿠레샤
잔느 발리바
아담 보로노비츠
시놉시스
1949년 폴란드, 그와 그녀가 음악으로 처음 만났다
1952년 베를린, 함께하려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1954년 파리, 영원한 이별인 줄 알았는데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다
1959년 폴란드, 처음 만난 이곳에서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95.06%
3.82점
키노라이트 분포
4개
77개
별점 분포
리뷰
43

moviemon 님의 리뷰
2019.02.03 01:46:33
"시계추가 시간을 죽였네" <콜드 워>: 시간과 상관없는 사랑을 그리다
제8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다> (2013)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콜드 워> (2018)로 돌아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콜드 워>는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극심해져 도래한 냉전 시대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폴란드를 배경으로 삼는다.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차갑고 메마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명암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흑백 촬영을 택했지만, 4:3 화면비와 함께 전반적인 프레임을 구성하며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 미치는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미학적으로 그려낸다.

폴란드 민속음악에 관심이 많은 '빅토르 바르스키(토마즈 코트)'는 민속음악단 '마주르카(Mazurek)'를 이끄는 음악가다. 그의 음악단에 재능 있는 '줄라 리호(요안나 쿨릭)'가 찾아온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1949년 두 사람은 사회적 위치 및 과거와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음악을 매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1952년 두 사람은 음악 때문에 동베를린에서 헤어진다. 물론 엄연히 따지면 공산주의 정권의 간섭에 둘러싸인 음악적인 환경 때문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연출한 <레토> (2018)를 잠깐 소환해 이야기하자면 당시 소련 록 밴드는 정권이 원하는 사회적 역할만을 한다는 전제하에 활동할 수 있었다. 즉, 공산 정권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음악을 포함한 예술 분야를 선전 수단으로 삼았다.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지만 <콜드 워>에서 '마주르카' 민속음악단 역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지도자를 칭송하고 순수 슬라브주의를 주창하는 음악에 회의감을 느꼈을뿐더러 공산주의 국가 간의 결속력이 점점 강화되면서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을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빅토르'는 1952년 동베를린 공연을 마친 후 '줄라'와 함께 파리로 망명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망명 후 불투명해질 수 있는 삶이 두려운 '줄라'는 '빅토르'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며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재회와 헤어짐을 수차례 반복한다.

시대적, 정치적 한계가 명확해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완성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상황 속 감정 변화를 음악과 카메라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감정이 안정적일 때는 관현악의 선율과 전통적인 선율이 흐르지만, 감정이 불안정해질 때는 재즈를 포함한 현대적인 음악이 두 사람의 심리를 대변한다. 카메라 촬영의 경우 두 사람의 사랑이 이데올로기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을 때 진행 방향과 상관없이 어루만져주듯이 천천히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와 더불어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수평 트래킹 숏으로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두 사람의 사랑이 불안정의 상태에 빠지면 카메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흔들림을 주며 둘의 감정과 일체화된다. 특히, 1957년 파리에서 재회했을 당시 장면이 인상 깊다. 두 사람이 섹스하면서 시선을 교환할 때 잠깐 사운드를 소거하고 카메라는 두 사람의 얼굴을 온전히 담아내며 장면을 밀도 있게 구성한다.

'빅토르'와 '줄라'는 떨어져 있는 동안 각자 다른 사람과 연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빅토르'는 '줄라'가 자신에게 유일한 여자임을, '줄라'는 '빅토르'가 자신에게 유일한 남자임을 알아차린다. 근데,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한 채 1959년을 맞이하게 된다. '빅토르'는 '줄라'를 위해 전부를 포기하고, '줄라'는 '빅토르'를 위해 희생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모든 한계에서 초탈하기 위해 처음 만난 곳으로 떠난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이 모든 장애물로부터 해방된다. 그런데 이 사랑이 깊은 여운을 자아낼 수 있던 이유는 폐허가 된 교회의 벽에 그려진 신의 두 눈의 관점에서 '빅토르'와 '줄라'가 사랑의 서약을 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에 영원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뒤에 있던 수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경치는 메마르고 차가운 땅에 핀 꼿에 축복을 내려주는 인상을 남긴다.

만약 <콜드 워>가 뜨겁고 강렬한 러브스토리인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장애물을 이겨낸 불가능한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88분 동안 세월의 흔적과 두 사람의 감정을 세밀하고 진솔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줄라'가 부른 노래 '심장'의 가사 '시계추가 시간을 죽였네'처럼 시간에 상관없이 완성된 사랑을 <콜드 워>를 통해 감상해보길 바란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2.11 22:11:11
자유
요요요'

아마 이 영화를 보았으면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Dwa Serduzka' ,이 노래 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흐의 골든 베르크 변주곡이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골든 베르크의 아리아파트가 끝날 때쯤 들리는 노래는 다시 'Dwa Serduzka'이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인 빅토르가 학교에서 처음 연주한 곡은 쇼팽의 즉흥곡이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쇼팽으로 시작하여 바흐로 끝나는 영화다.



영화의 처음을 다시 상기해보자.

처음 보여주는 장면이 악기라는 것과 그 주인공과 관료가 함께 소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장면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연도와 장소가 나온다. '왜 여기서부터 해당 연도가 표시되는 것인가?'라고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것은 해당 연도에 줄라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영화의 해당 연도와 장소는 줄라 와의 만남을 가졌던 장소와 연도이다. 이 이야기인즉슨 남자의 시간과 장소에 그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그 시간과 그 장소가 그 남자에게 특별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부제목을 통해 멜로라는 장르가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지게 된다. 특히나 그들의 시간이 외부의 시간인 냉전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을 때 시대성이라는 것 또한 갖게 된다. 아마 대표적인 장면은 회의를 하는 장면일 텐데, 이때 민중 요가 아닌 혁명가를 강요하는 관료 뒤의 레닌의 초상화는 턱만 보인다. 그 회의 이후에 공연을 할 때는 공연장면과 함께 스탈린 얼굴이 걸게 그림에 길게 펼쳐진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상당히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음악, 시대성 때문은 아니다.

이 영화의 진면목은 페이드아웃과 음소거에 있다. 남자의 시공간에 여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향하거나 흔들리는 순간 페이드아웃이 시작된다. 약 7번 정도의 페이드아웃이 시도되는데 놀랍게도 페이드아웃 뒤 바로 다음 쇼트는 시간과 공간의 점프이다. 즉 남자의 세계에, 여자가 구심력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원심력으로 튕겨져 나가는 순간의 감정을 동결시킨 체 과정들을 생략하고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그 사이에 비어있는 감정들을 오롯이 얼려버린다.



이 영화의 제목이 단순히 콜드 워, 냉전만이 아니라 남녀가 이별할때의 차디찬 감정인 Cold를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얼려버린 차가운 감정의 끝에서 여자가 구심력으로 남자의 세계에 정착을 하고자 할때, 영화는 상영내내 들려주었던 이별 노래, 살아 돌아올 것을 약속하는 노래들과 함께 음을 소거시킨다.



파리에서 베드신 이후일 텐데, 처음 베드신이 기차 안에서 좁디좁은 공간에서 행하는 시끄럽고 급박한 베드신이었다면, 이 베드신은 고요하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 음악이 없는 그 조용함.

음악영화에 영화는 오히려 소리를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가 찾던 음악과 음악을 알아봐준 작곡가가 있으니깐,그 둘이 소리가 없는 센 강변에서 배를 타며 유람을 할 때 영화는 의도적으로 조명을 비춰서 노트르담의 성당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내 음악이 들려오고,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해당 연도만 나올 뿐 더 이상 장소는 나오지 않는다. 남자가 자신의 세계에서 여자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여자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남자는 중력을 파괴하고 여자의 세계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제 이 여자는 자신의 세계로 들어온 남자를 구한다. 이 남자가 다시 폴란드로 이민 신청을 한 뒤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여자가 구해주었기 때문이지만, 영화에서 음소거를 했을 때 노트르담을 비춰주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빅토르 위고르의 노트르담 성당은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시대와 묘사들 한가운데 존재하던 성당이었다면 이제 아래에서 위를 쳐다봄으로써 죽음은 없을 것이라며 쳐다본다. 이는 센 강 유람선 위에서 바라보는 감독의 소망이자, 곱추와 동일하게 옥상에 살지만 비극적이었던 위고르의 펜속 주인공 대신 즉흥적 악상으로 만들어진 쇼팽의 즉흥곡으로 시작한 빅토르, 이를 들었던 줄리의 시선임과 동시에 감독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 씁쓸하며 정적인 감정은 후반부 관료인 카츠마렉이 영화 초반 들려던 성당에 이 둘이 방문함으로써 정점을 찍는다.유일하게 카트 마렉의 독립된 쇼트를 가졌던 폐허 된 성당에 이 둘이 방문함으로써 이념과 출세를 위한 욕망은 지우고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한다.



물론 이 결말이 자유를 줄 것인지, 그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 바람 소리처럼 그 자유를 박탈할 거인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바흐의 곡 중 가장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골든 베르크 변주곡에서 본게임인 변주곡이 아닌 첫곡이자 끝 곡인 '아리아'만 연주됨으로써 나는 이 둘을 통속적으로 도식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엄격한 이념과 시대로 인한 죽음으로 내몰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다. 애초에 소리를 찾던 빅토르, 소리를 가진 줄라, 이 둘을 원래대로 놓아 줌으로써 끝내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그들은 소리가 있던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자신을 찾아준 음악인으로 부터 버림 받아 다시 역사라는 강에서 잠수 될뻔 하던 음악, 이를 다시 건져낸 음악인이 갈수 있는 곳은 이념과 세월로 부터 벗어나 음악이 애초에 있던곳으로 가는 순수한 여정밖에는 남있지 않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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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23:03:24
네 개의 눈이 아니라 두 개의 심장만이 남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감탄했다. 바로 든 생각이 있다면 영화과에서 향후 10년간 걸작으로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겠구나라 생각이다. 연출에 인간미가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는데다, 상징과 은유의 활용이 관객들을 압도한다. <버닝>이 은유로 스크린 뒤를 가시화하는 영화라면 이 영화는 은유를 단계적으로 쌓아나가는 체계적 은유의 영화다. 그만큼 이 영화는 빈틈을 허락하지 않고, 관객들을 서서히 설득해나가는 영화다.

우선 영화의 문법이 새롭다 느끼는 이유는 로맨스 영화지만, 음악영화의 외피를 띤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폴란드와 파리라는 두 대척점을 둔 뒤 이를 배경으로만 활용할 뿐 서브플롯으로 개입시키지 않는다. 이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음악(으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과 사랑뿐이다. <보이후드>나 <로마>의 반대 지점에서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모두 제거한 채, 시간과 인과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두 사람 외에 어떤 인물도 제 기능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감독의 연출법은 과감한 생략으로 인해 더 탄력을 갖춘다. 음악영화의 외피를 띠도록 만들어 이 두 사람의 사랑의 역사가 음악장르의 변화와 동치되도록 보이게 만드는 감독의 전략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이 변화되는 요인들을 사소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지질한 로맨스 서사에서는 사소한 오해들로 연인들이 헤어지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불타는 사랑을 두 사람이 속한 주변환경이 갈라놓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이데올로기를 동치시키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 처음 술주정꾼이 부르는 부정확한 음정의, 말 그대로 "야만적"인 감정만 존재하는 민속음악에서 시작해 이에 멜로디를 제대로 부여하는 악보와 춤이 생기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나타난다. 그 사랑은 스탈린을 찬미하는 음악이 등장하면서부터 방해받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콜드 워>는 음악이 내포한 이데올로기가 개인들의 사랑을 갈라놓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스탈린을 찬미하는 공산주의의 음악,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위선이든 꾸며내고 은유를 통해 사랑을 말하려는 자본주의의 재즈음악도 모두 부정한 채 영화의 첫 공간으로 되돌아가려한다.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거대한 모티브를 완성하는 건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이다. 이 체제로 인해, 두 사람의 에로스(생을 유지하려는 욕망)과 타나토스(무생물로 환원하려는 욕망)이 정비례해 증가하고 이 욕망의 긴장감이 관객들을 그 안에 빠져들게 한다.


이 영화에서 '은유'는 민속음악이라는 회귀 지점을 왜곡시키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가 찾으려는 진실은 은유로 표현될 수 없는 절대적 사랑이다. 이 절대적 사랑은 두 사람이 음악에서 벗어나 침묵의 공간으로 갔을 때에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순간 사랑을 서약하는 이 두 사람의 말이 멜로디로 들리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엔딩으로 인해 우리는 이 영화가 끝날 즈음, 서로의 스크린을 보는 "네 개의 눈"이 아니라 "두 개의 심장"으로의 우리를 마주할 수 있다. 이 사랑은 프레임 바깥에서 완성되는 투쟁으로의 사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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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23:10:47
2015년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한 여성의 가족사를 통해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담아낸 영화 <이다>로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60여 개 상을 휩쓸었다. 안제이 바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이후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폴란드 영화계에 쾌거를 이뤄낸 것. 그는 이번 작품 <콜드 워>를 통해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건 물론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다. <콜드 워>는 왜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을 주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콜드 워>는 제목이 의미하듯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49년 독일 나치에게서 해방된 폴란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을 이루는 냉전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주의 체제 하의 폴란드는 국가 주도 하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건 물론 전 분야에 걸쳐 간섭했다.

마주르카 악단을 운영 중인 빅토르는 폴란드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전통 민요를 부를 줄 아는 젊은이들을 모은다. 그는 전쟁의 아픔을 겪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을 주기 위해 악단을 꾸린다. 이 악단에 도시 빈민가 출신의 '줄라'라는 여인이 들어온다. 동료는 줄라가 시골 출신도 아니고 전과가 있으니 내보내자고 말하지만 빅토르는 "줄라에게는 무언가 있다"며 거절한다. 그 무언가는 그가 줄라에게 품은 사랑이었다.

줄라와 빅토르는 격렬하게 사랑에 빠지지만 조국 폴란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집권당은 마주르카 악단에게 전통 민요를 통해 당의 사상을 선전할 것을 요구한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만큼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원하는 빅토르는 당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불편을 겪는다. 여기에 줄라가 당의 명령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빅토르는 폴란드에서는 이 불 같은 사랑을 태울 수 없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줄라에게 함께 파리에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영원을 약속한 줄라가 나타나지 않고 빅토르는 혼자 파리로 떠난다. 이 이별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 본인 부모님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첫 번째는 <이다>에서도 보여주었던 흑백과 4: 3의 화면비다. 감독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된 당시 폴란드 국민들의 모습을 흑백에 담았다고 말했다. 불분명한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뚜렷한 색깔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흑백은 흑과 백으로 화면이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냉전 시대 당시에는 사상을 이유로 인간을 두 분류로 나누었다. 자유주의자가 아니면 공산주의자였고 나를 비롯한 우리를 백(아군)이라 여겼고 너희 혹은 저들을 흑(적군)이라 생각했다.

4: 3의 화면비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 다큐멘터리 감독 시절부터 사용하던 화면 구성으로 당시에는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 선택은 그의 예술 세계를 한층 높이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4: 3의 화면비는 고전적인 느낌을 살려준다. 이는 <콜드 워>가 지닌 클래식한 음악의 깊이를 화면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동시에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이 4: 3의 화면비를 통해 힘을 얻게 된다. 감독은 인물을 카메라 앞에 세우기보다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을 추적한다.


멜로/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과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해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거나 두 주인공이 돋보이는 앵글을 잡아 화면에 위치시킨다. 카메라 앞에 세워 멋있고 애절한 감정을 보여주게 만드는 게 로맨스 영화이다.

반면 <콜드 워>는 화면의 앵글에서 인물을 중점에 두지 않는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주인공을 추적하듯 카메라는 멀리서 관조한다. 이런 시점은 4: 3의 화면비에 맞춰 색다른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장면이 줄라가 공연 중 빅토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이때 화면은 단 한 순간도 줄라를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단원들 틈에서 슬픈 표정의 줄라만을 비출 뿐이다.

4: 3의 작은 화면비는 화면 전체에 인물을 집어넣지 않으면서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게 만든다. 이 시선이 중요한 이유는 <콜드 워>가 지니는 전개 때문이다. 감독은 사건이나 대사가 중심이 된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 아닌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서로를 향한 영원한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대사와 사건은 단편적이고 시간과 장소의 이동이 빈번하다. 그 빈 자리는 감각적인 화면과 청각을 밝히는 노래들이 대신한다. 사소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정을 만드는 구조가 아니기에 넓은 관점을 지니고 작품을 바라봐야 된다. 감독은 독특한 화면 구성과 인물을 향하는 카메라의 시선, 여기에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기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들과는 다른 그만의 애절하고 위대한 사랑을 그려낸다.

<콜드 워>는 전형적이고 통속적일 수 있는 시대의 아픔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신선하면서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클래식한 소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법과 표현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조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가슴 아픈 시선과 사랑의 위대한 가치라는 본질을 균형 있게 담아낸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카메라는 황홀한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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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19.01.26 22:47:12
거대한 원을 그리는 사랑
<라스트 리조트>, <파리 5구의 여인> 등을 연출했고, <이다>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신작 <콜드 워>를 관람했다. 이번 작품 또한 전작에 이어 흑백에 1.37:1 화면비를 고수한다. 60년대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다>와는 다르게, <콜드 워>는 세계 2차 대전 직후 냉전에 돌입한 동유럽의 상황을 그려낸다. 1949년의 폴란드, 1952년의 베를린, 1954년의 파리, 1959년 다시 폴란드. 영화는 민요를 부르는 사람들을 모아 악단을 만든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빅토르(토마즈 코트)와, 시골 출신은 아니지만 악단에 합류하게 된 줄라(요안나 쿨릭)의 사랑을 그린다.


영화는 냉전체제 밑에서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는 폴란드와 반으로 갈린 베를린, 자유주의 체제 안에 있는 파리 세 공간을 통해 이들의 만남과 이별을 담아낸다. 88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그려지는 만남과 이별 중 가장 순수한 모습의 첫 만남은 체제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악단의 공연에 당이 개입하고, 합창하는 단원들의 뒤로 스탈린의 얼굴이 등장한다. 결국 이들은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에서 이별한다. 그리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밖에 있는 파리에서 재회한다. 여기서 이들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미 연인이 있어도, 결혼을 했어도, 둘은 다시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재회한다. 심지어 자유의 가능성에는 (감옥에 수감될 것이 뻔한)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는 것 또한 포함된다. <콜드 워>가 그려내는 빅토르와 줄라의 사랑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촬영이다. 얼마 전 발표된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촬영상 후보에 지목된 것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전작 <이다>를 비롯하여 <히어 애프터>, <러빙 빈센트> 등의 촬영을 맡았던 루카즈 잘 촬영감독의 촬영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합창단 뒤로 스탈린의 얼굴이 등장하는 장면, 빅토르와 함께 잠시 소풍을 나온 줄라가 강물에 떠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일사불란하게 같은 동작을 그리는 단원들의 발 등은 감각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빅토르와 줄라의 상황을 압축적인 이미지로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담아낸다. 이데올로기, 국가적 분열, 전쟁 등의 상황에서의 사랑을 담은 영화는 많았지만, <콜드 워>는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 중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폴란드-베를린-파리-폴란드,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관통하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완성되는 둘의 사랑과 여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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뭅뭅 님의 리뷰
2019.01.26 15:17:35
전쟁 같은 사랑
콜드 워.
말 그대로 냉전이죠.
영화에서는 시대배경뿐만 아니라 남녀관계를 이렇게 비유한게 아닐까 싶어요.
흑백화면에서 펼쳐지는 뜨겁고 차가운 사랑은
오색찬란한 라라랜드 못지 않습니다.
전쟁 같은 사랑.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랑.
기어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랑.
터진 심장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치지만, 몸은 차갑게 식어버리는 그런 사랑....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랑을 잘 담아냈어요.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고나면,
포스터 속 문구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짙은 여운과 쌉싸름한 사랑을 잘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사과 님의 리뷰
2018.10.12 00:17:11
콜드 워
화면으로 인물을 가둔다. 멋지다. 브라보!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10개의 시퀀스로 나뉜다. 그건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재회하는 과정이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는 당시 폴란드 등의 유럽정세외 자신의 꿈을 찾는 과정이 맞물린다. 그러나 그들의 이별과 재회가 위의 것들에 큰 영향을 받진 않는다. 그들은 온전히 사랑할뿐이다.


감독의 전작<이다>에서 좋았던 지점은 ‘인물을 화면에 가둔 것’ 처럼 카메라속의 모든 것의 배치를 그리는 지점 하나와 이 배치가 ‘이다’라는 인물의 자아의 변화를 관객에게 일깨워주는 독특함때문이었다.
이 영화 <콜드 워>는 <이다>에서 더 나아간다. 화면에 인물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건물의 구조물, 흩날리는 눈과 인물의 수평적 배치 등을 통해 인물의 상황 등을 표현한다. 소재의 배치와 카메라 앵글, 인물의 변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경해 낸다. 심지어 그 영상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부산에서 만난 꽤 큰 수확이었다.

<이다>에서 주연을 맡은 요안나 쿨릭도 다시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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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Vet 님의 리뷰
2019.03.09 23:14:18
시계추가 죽인 시간의 자리를 감정으로 가득 채웠네
필자는 호흡이 긴 영화를 선호한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들이내쉬고 있는 숨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 자체만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건과 감정, 그리고 기억. 인생을 구성하는 이런 커다란 요소들 모두 시간의 흐름 위에 존재한다. 영화의 호흡이 길수록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 긴 호흡은 관객을 영화로 더 깊숙하게 안내하는 인도자이다. 이 영화의 방식은 이와 대척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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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러닝타임은 88분이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도 90분은 넘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짧은 러닝타임이다. 이 영화는 인물간의 관계와 사건에 집중하는 대신 감정과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린다. 극 중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크다. 대신 감독은 그 간극을 강렬한 감정들로 밀도있게 메꾼다. 이 영화는 짧지만 깊게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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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춘들의 사랑을 애절하게 담았다면, <콜드 워>는 이데올로기에 잠식된 현실 안에서 멀어지는 두 남녀를 더 처절하게 담아낸다. <라라랜드>의 사랑이 한때 뜨거웠던 지난날의 추억과도 같다면, <콜드 워>의 사랑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현실을 넘어 승화하는 신념과도 같다. 더 좋아하는 영화는 <라라랜드>이지만, 더 위대한 사랑은 <콜드 워> 속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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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인 <콜드 워>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냉전 시대를 뜻하기도 하고(흑백 영화로 담아낸 이유도 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중 인물간의 갈등을 표현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의 감정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예상치 못했지만 극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폴란드 전통민요로 시작해서 마지막 전통 결혼식으로 회귀하기까지 다양한 음악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맞게 흘러나온다. 그 강렬한 감정은 영화 속의 음악과 함께 감상해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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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 벤치 뒤로는 갈대가 조금 흔들린다. 그 미풍은 관객에게 감정의 태풍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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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엔딩 장면도 압권이지만, 초반부에 입을 벌리고 감탄한 장면이 있다. 빅토르의 즉흥 환상곡 연주에서 이레나의 재봉틀 소리로, 마지막에는 빗소리로 사운드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장면. 감독의 연출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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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주인공 '줄라'를 맡은 배우의 마스크는 익숙하면서도 개성적이다. 제시카 차스테인과 레아 세이두 그 사이 어딘가인데, 그 둘 중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 55년 유고슬라비아 공연 무대 위에서 빅토르를 보고 만감이 교차하는 그녀의 표정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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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래 님의 리뷰
2019.03.08 11:42:26
흑백 시집을 펼쳐보다
콜드 워의 전작 「이다, ida」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흑백정서가 콜드 워의 메시지와 맞물리며 가슴 먹먹하게 했다.
인연 우연 필연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산산한 사랑은 이어진다.
작은 촛불하나 밝히고 두 사람의 소박한 흑백결혼식은 흑백의 영훤으로 흐르고...
그 가운데로 고문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쓸쓸한 음악소리가 내 귀에만 들렸다. 두 사람만을 위한 영훤한 사랑의 전주곡이랄까?

그들의 사랑은 무채색인가?
현란한 소리도 유채빛 화려함도 없이
비 내리는 파리의 음습한 쓸쓸함이 가득 배어있던 그들의 사랑을...
그 두사람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영원한 사랑을 향해 걸어가는 걸까?
앤딩 장면이 먹먹하다. 아직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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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19.03.06 01:51:15
'콜드 워'는 '이다'의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작품으로, '이다'처럼 필름으로 찍은 4:3 비율 흑백 영화다. 50년대 냉전 유럽을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음악 감독과 가수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재회가 반복하는 뜨거운 러브 스토리를 전개한는 멜로다.
'이다'처럼, 이 영화 또한 굉장한 영상미를 뽐낸다. 아날로그한 감성을 자극하고 싶은 예술 영화들이 흑백 포맷으로 제작되는 것은 흔하지만, 그 중에서도 포리코브스키 감독만큼 흑백을 아름답고 깊이있게 다루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모든 프레임의 구도부터, 의상과 미술과 조명을 모두 완벽하게 조율하며 만드는 명암 대비가 만들어내는 실로 굉장한 영상미도 대단하지만, 깊이감과 운동성은 물론이고 정적인 감수성과 긴장감까지 제때에 포착할 줄 아는 연출은 감탄스럽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조명에 대한 컨트롤이 가장 좋았을 야간이나 실내 씬들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험난한 시대에 맞서 뜨거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주인공은 거의 첫 눈에 반하며 서로의 사랑에 의지하며 예술가로서의 꿈도 펼치고 싶어하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며 이들의 예술적 자유가 억압받으며 이들이 꿈 꾼 미래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자유 진영 vs 공산 진영으로 나뉘며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교류가 힘들었던 시절에 그 모든 경계를 넘어 사랑을 나눈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시기별로 나눈 구조로 전개한다. 영화는 오랜 기간에 걸친 러브 스토리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을 포기해야할지 말지의 상황에 놓이는 상황들을 골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세상 vs 주인공의 구도로 전개되는 갈등 구조가 바탕인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현실적인 어려움이 두 주인공의 열정적인 사랑을 가로막으면서 생기는 극적 긴장감과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두 주인공의 갈등과 고민을 중점적으로 전개해간다. 이 구조 덕분에 이 러브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보면서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에 변해가는 이들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플래시포워드가 잦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흐름이 좀 끊긴다는 느낌도 들긴 했다. 그런 점들이 영화의 페이스를 많이 늦춘 것 같지만 다행히도 영화가 90분도 안 될 정도로 짧기 때문에 영화가 지루해기 전에 잘 끊은 것 같다.
'콜드 워'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맞서 서로를 찾은 남녀의 뜨거운 러브 스토리다. 세상이 그들에게 원하는 것, 본인들이 이루길 원하는 것과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 때문에 험난했던 이들의 연애사는 긴장의 연속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감수할만한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들이 있었고, 포리코브스키는 그 모든 감성을 영화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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