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Happy as Lazzaro)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판타지, 이탈리아, 130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6.20 개봉
감독
알리스 로르바허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루카 치코바니
알바 로르와처
니콜레타 브라스키
토마소 라그노
세르지 로페즈
아그네즈 그라지아니
카를로 마시미노
시놉시스
이탈리아 인비올라타 마을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라짜로, 농장의 지주인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

이들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후작 부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가짜 납치계획을 세운다.

“가짜 납치 사건으로 밝혀지는 충격적인 담배 농장의 진실”

그리고, 소중한 우정을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라짜로!
94.23%
3.71점
키노라이트 분포
3개
49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23

송씨네 님의 리뷰
2019.06.21 23:32:25
늙은 늑대가 들려주었네. 어느 순수 청년의 슬픈 이야기. 순수한 선의 임에도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세상을 풍자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시작에 시대적 배경을 숨기다가 결정적인 사실을 오픈하며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죠. 라짜로는 젊음을 얻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저주였는지도 모릅니다. 데이빗 로워의 ‘고스트 스토리’가 떠올랐는데 영혼임에도 떠날 수 없듯 라짜로는 살아도 살아있음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 영화는 공포영화로 느껴진게 살아난 라짜로의 모습도 공포스럽지만 선의가 무시되고 그것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순간 살벌한 공포영화가 된 것이죠. 라짜로를 연기한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눈방울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네요.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amorfati 님의 리뷰
2019.06.18 13:45:41
라짜로는 구원을 시도한 자일까, 받은 자일까
이 영화는 오락용으로 보는 분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새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라짜로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것을 알지 못한 상태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라짜로는 구원자로 비추어 영화를 해석했습니다. (물론 헤어스타일도 한 몫;)
탄크레디는 라짜로가 구원해줘야 하는 속세의 인간, 다시 말해 우리들이라고 봤구요.
영화 초반부 탄크레디는 라짜로를 형제와 다름없다며 속이고 라짜로는 그것을 믿습니다.
애초에 라짜로는 시작부터 탄크레디의 거짓말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원래의 일에 점점 소홀하게 됩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의 벌(?)로써 열병을 앓게 됩니다.
그러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두번째 삶의 기회를 얻게 되나, 그 또한 탄크레디를 찾고 도와주는 여정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계속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자의 모습과 겹쳐보였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6.12 01:27:45
'행복한 라짜로' 초간단 리뷰
1. 태초에 영화가 했던 일들 중 하나는 관객을 낯선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우리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그럴때면 영화는 우리의 여행을 대신해왔다. 시오타역에 도착한 열차를 시오타역에 가지 않아도 맞이할 수 있었고 저 먼 하늘에 떠있는 달에도 갈 수 있게 했다. 혁명의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했고 싸이코 살인마가 사는 저택으로 초대하기도 했다(그 순간에도 관객의 안전은 보장돼있다). 그런데 영화가 초대한 세계들 중 가장 낯선 세계는 바로 '모르는 사람의 삶'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가 수십년전 이탈리아 중서부 시골에 사는 청년의 삶을 엿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서 낯선 세계란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인류는 이제 달의 뒷면까지 탐사를 시작한 상황에서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리체 로르와커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고맙게도 그물망처럼 촘촘한 세계의 네트워크에서 닿지 않은 빈틈을 관찰한다. 그곳은 이탈리아 중서부 시골마을이며 거기에는 라짜로가 살고 있다.

2.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청년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온갖 소소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듣는다면 마치 그가 '홍반장'처럼 만능 재주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그 정도 기술도 없고 지위를 얻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성실하고 긍정적인 '예스맨' 청년이다. 삐딱하게 본다면 '호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청년은 어찌나 성실하던지 마을 부잣집 청년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의 납치 자작극도 도와준다. 그러다 일이 잘못돼서 마을 사람들은 속세로 흩어지게 되고 라짜로는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진다.

3. '행복한 라짜로'는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다. 그렇다는 것은 라짜로가 메시아의 현신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라짜로는 처음부터 메시아였을까. 라짜로의 삶과 이 이야기에 큰 고비가 찾아온 지점은 라짜로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라짜로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라짜로가 죽을만큼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오랫동안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떠나고 오랜 시간 뒤에 라짜로는 깨어난다. ...아니, 정확히는 늑대가 부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늑대가 라짜로의 냄새를 맡고 있었고 바로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늑대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사실 이 영화에서 메시아는 라짜로가 아니라 늑대다. 라짜로는 늑대의 축복을 받은 '성자(聖子)'인 셈이다.

4. 거리의 성자처럼 길을 걷던 라짜로는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도시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재회한 라짜로는 그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먹을 것을 알려주고 강아지를 맡아준다. 사실 그것들은 마을에서 라짜로가 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졌고 도시의 밑바닥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됐다. 도시는 크고 비정하며 마을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피폐해졌지만 라짜로와 함께 희망을 찾는 듯 보였다. 심지어 음악까지 그들을 축복해주고 있었으니 라짜로는 가장 낮은 곳에 내려앉은 천사와 같았을 것이다.

5. 그런데 라짜로는 어느날 잘못된 선택을 한다. 탄크레디를 돕기 위해 은행으로 찾아간 것이다. 탄크레디는 데 루나 집안의 사람이다. 그 집안은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인물로 체포된 바 있다.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데 루나 집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집안의 재산을 복원하려는 것은 복종하며 살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자유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복종이 안식을 준다는 논리는 MCU에서 하이드라가 하던 얘기다. 그리고 그 얘기를 빼더라도 과거는 때로 미화되기 마련이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 누구라도 탄크레디가 라짜로에게 "우리는 배다른 형제와 같다"고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진 않을 것이다. 라짜로가 은행으로 찾아가 탄크레디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한 것은 미화된 과거로의 회귀를 요구한 것이다. 늑대는 그러라고 라짜로를 살려주지 않았다.

6. 영화는 라짜로의 생사를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나 떠나가는 늑대를 보며 라짜로가 죽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죽음은 절벽에서 떨어졌을때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스스로 내려놓으려 할 때 이뤄진다(만화 '원피스'에서 비슷한 대사를 들은 것 같다). 게다가 라짜로가 은행을 찾아가는 장면은 처음으로 누구의 요구나 지시 없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한 것이다. 첫 자유의지를 그렇게 썼다면 신도 노여워하기 충분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라짜로'는 돌고 돌아서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자본에 억압받고 구속된 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유의지라는게 이 영화의 의도일까. 그렇게 이해해보도록 하자. 적어도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내 심금을 확실히 울리기 때문이다. 라짜로가 영화의 제목처럼 행복하길 바라며 영화를 봤지만 그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7. 이쯤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신은 늑대의 형상을 빌어 라짜로를 구원했을까? 처음 그 절벽에는 정말 늑대가 있었을까?". 사실 라짜로가 사는 마을에 늑대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내내 소리만 들렸으며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처음부터 늑대는 마을을 지키려는 신의 의지였으리라. 라짜로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피를 흘렸고 고통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마을을 떠나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은 라짜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을 구하라고 한 셈이다. 그런데 그 대상에 데 루나 집안은 포함돼있지 않다.

8. 결론: 영화를 다 봤을 때 함께 본 여자친구가 물었다. "라짜로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워낙 그의 표정 자체가 감정이 없어보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눈물 흘린 순간은 있어도 웃은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행복한 라짜로'라는 제목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은 작가의 소망이자 관객의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라짜로가 어디에 있건, 혹은 다른 곳에 또 다른 라짜로가 있건, 그는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라짜로가 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이규민 님의 리뷰
2019.01.08 00:21:48
변하지 않는 건 라짜로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금 고쳐보면 그 누구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명하게 드러났다. 단지 그냥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외형만 달라졌을 뿐 그들의 성품, 악하거나 찌질하거나는 변치않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았다.

보기 전까지도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영화인데 그것이 거부감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엄청나게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음에도 강력한 성스러움이 단순히 종교적 맥락아래로만 해석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내 탄식의 한 숨 하나가 푹 내쉬어지고 눈물이 난다. 라짜로는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2018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타잔 님의 리뷰
2019.08.22 02:21:38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 지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에는 무수히 많은 기준들이 존재 한다. 그러나 <행복한 라짜로>속의 행복의 기준은 모호하다. 그저 막무가내로 사람들 틈에서 사람같지 않은 이미지들을 만들어서 마치 순결한 신의 존재처럼만 느껴진다.


<행복한 라짜로>속의 '라짜로'는 한번도 웃지 않는다. 거의 무표정으로 다니면서 말도 꼭 필요한 말들만 짧게 짧게 얘기 한다. 그래서 라짜로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느정도 읽혀지는 희로애락의 모습들이 라짜로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나이도 짐작하기 힘들다. '젊다'라는 느낌으로 20대처럼 보여지지만, 그가 한번 절벽에서 떨어지고 나서 시간은 급속도로 흘러간다. 자신의 시간만 정지되어 있었고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던 때로 걸어간다.


그래서 라짜로는 어느순간 신으로 보여진다. 천지창조 속의 아담과 이브를 떠올릴 필요는 없지만, 모든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하는 메시아적인 분위기는 영화 내내 지속된다.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의 삶에 익숙해지는 동료들 앞에서는 그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치명적인 사명을 지닌듯, 모든 사람들의 요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 요구에 거침없이 걸어가면서도 여전히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건 '라짜로'가 하는 당연한 일이다. 무결점의 신의 메시아이고 그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고 자신이 해야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충분히 기독교적인 시각이 진하게 묻어남에도 종교적인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현재의 기독교를 비롯해서 모든 종교들이 과연 종교만을 위한 집단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 할 수 없음에도, <행복할 라짜로>속의 이야기는 오롯하게 종교만을 위한 모습이다.


그것은 어떠한 종교적인 짙은 색체를 지닌 채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이나 하면서 스스로의 목소리만 높이는 현재의 종교계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가장 기본적인 메세지인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근원적인 목적에 가장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무엇을 믿던 상관 없이 착하게 진실되게 살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씀 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과연, 진짜로, 거짓없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라짜로를 통해서 묻고 있지만, 묻고 있는 감독 자신도 그러한 것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는 없다. 결국 현대사회로 돌아간 라짜로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 하지만, 그것은 결국 다시 메시아의 이미지도 환생되는 순간이다.


늑대가 선악과를 따먹지는 않았겠지만, 라짜로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나서 찾아가는 자유로운 도시가 노동과 착취로 폐쇄된 마을에 노비 같은 삶을 살았던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과 과연 어느 곳이 행복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폐쇄되어진 마을에서 일방적인 노동착취가 당연하게 느껴졌던 마을 사람들이 결국 강을 건넌 것이 에덴동산의 악마의 꼬임에 빠진 이브의 선악과가 되지는 않았을까.



늑대여도 좋고 음악이여도 좋고, 뭐여도 좋다. 다시 돌고 돌아서 절벽밑 어디에서 라짜로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고.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7.14 21:44:09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에 성인이 존재한들. 현대의 고립된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도시로 오니 그들은 부랑자에 지나지 않았고, 시간의 경과를 표현함에 있어서 좀 심심했다.
+) <더 스퀘어>와 <주피터스 문>이 생각났다. 종교적인 메세지가 다소 노골적이라 오그라드는 씬들이...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기행 님의 리뷰
2019.07.13 21:39:47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작품. 동화같으면서도 현실적이다.

라짜로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신앙적 질문이기 전에 삶을 살아가면 반드시 선택하거나 답을 해야 할 순간들이 오기에. 우리는 순수함을 선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함을 이용하고 끝내 더럽힌다. 영화 속 주변인들처럼. 그렇지만 때로는 선함이 전달되기도 한다. 과연 우리에겐 어떤 냄새가 날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박세훈 님의 리뷰
2019.07.13 16:55:34
순수하게 선한 성자에게선 담뱃잎 냄새가 났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blue 님의 리뷰
2019.06.30 19:51:35
‘순수함’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런 모습일까. 라짜로, 영화 내내 스크린에 이따금 등장하던 그의 옅은 미소가 끝내 눈물이 되고, 피가 되어 흐를 때 사람들이 그에게 건넨 나름의 따뜻한 마음들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짜로는 잘못이 없다. 그 세계가, 그 세상이 잘못한 것이다.
_
영화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그리고 라짜로의 부활이나 다름없는 사건을 통해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인간의 달라지지 않는 본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 보였다. 결국 자본주의에 이용당한 피해자들은 다시 가해자가 되어 다른 방식의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었고, 라짜로는 그들에게 다시 이용당하며 몸도 마음도 짓밟혀버린다. 이 모든 과정을 객석에 앉아 지켜보자니 너무 괴로웠다. 굳이 따져보자면 이미 이런 서사를 가진 영화는 꽤 많다.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서사랄까. 하지만 <행복한 라짜로>는 그런 서사와는 결을 살짝 달리한다. 라짜로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반항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들이 자신에게 시키는 것을 해내고, ‘우린 배다른 형제’라며 난생처음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는 친구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를 끝까지 도와주려 한다. 그뿐이다. 라짜로는 어떠한 앞뒤도 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이 험난하고 엉망인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재고 따지고 난리를 쳐야 하는데. 라짜로는 그저 내면의 소리만 따라간 것이?
_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많은 관심이 몰렸고, 나 역시 여러 번 관람했다. 우리나라 작품은 아니지만 <행복한 라짜로> 역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상영 시간이 거의 하루에 한 타임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이 작품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본성, 현대 사회의 현실에 대해 잘 꼬집은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_
아, 덧붙이자면 종교적인 의미가 아주 가득 담겨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엔 다소 한계가 있어서 나의 종교 지식이 원망스러웠다... 상영을 꽤 오래 지속한다면, GV나 큐레이터 상영으로 다시 관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노군 님의 리뷰
2019.06.26 19:25:39
라짜로의 행복은 어디있나요.
이탈리아 시골마을 인비올라타.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후작 부인인 데 루나 밑에서 일을 한다. 담배 농장에서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며, 전구도 없는 궁핍한 생활환경에서 생활하는 라짜로와 마을 사람들. 어느날 후작 부인이 아들 '탄 크레디(루카 치코바니)' 를 데려오는데, 입이 무거운 라짜로와 은근히 죽이 맞는다. 그러던 어느날 탄 크레디가 실종되면서 인비올라타에서 지내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는 이야기.





이 영화는 순전히 낚여서 본 영화다. 네이버 영화 정보란에 '김형석' 이라는 영화 저널리스트 양반이 '신약성서', '우리 시대의 예수' 운운하며 영화 행복한 라짜로를 극찬했는데(심지어 짜디 짠 별점을 주는 박평식 영화 평론가도 이 영화에 별점 7점을 줬다 - 박평식의 7점은 만점이라는 의미다 -),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지만 과연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의구심이 든다.



모든 예술영화들이 그렇듯, 상업영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래서 국내의 여러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들이 앞다투어 해외의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을 먼저 상영하려 힘을 쓰고, CGV 같은 공룡기업 멀티플렉스에서도 'cgv 아트 하우스' 같은 예술 영화 전용관을 따로 만들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영화들을 상영한다.



하지만 과연 예술 영화를 구분짓는 잣대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들었다.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상업 영화에 비해 소소하고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어렵게 만든다고 다 예술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또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만이 예술 영화는 아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듯한 카메라 워크, 16mm 필름으로 찍어서 보는 재미(??) 를 더했다고 예술 영화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비단 본작 뿐만이 아니라 여러 '예술 영화' 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저예산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다. 뻔한 상업 영화가 아닌, 예술 영화에서 받을 수 있는 어떤 '인간적인' 감동이라던가 확실히 가슴에 꽂히는 명징한 주제 따위가 예술 영화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두루뭉술한 표현력과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속성에 기대어 '이건 예술 영화랍니다' 라고 말해봤자 흥행이고 뭐고 평생 그런 영화나 만들라지... 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이 영화는.





아무튼 영화 행복한 라짜로도 그런 영화들에 속하는 예술 영화다. 예수님처럼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 를 떠올리면 쉬울 듯. 무보수로 후작 부인에게 쉴새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인비올라타의 마을 사람들에게 라짜로는 더 착취를 당한다. 매일 마을 사람들은 라짜로만 부르기 일쑤고 맘 편히 쉴 만한 시간도 쥐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라짜로는 혼자만의 공간을 산 꼭대기에 마련해 두는데, 어느날 마을을 찾아온 탄 크레디가 그런 라짜로와 잘 어울리게 된다. 라짜로가 몰래 만들어 놓은 아지트에서 며칠이고 밤을 보내고 엄마인 후작 부인에겐 납치 당했다며 몸 값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를 쓴다.

그 와중에 라짜로는 탄 크레디에게 받은 새총을 뒷주머니에 꽂은 채,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게된다(갑자기!). 평소 탄 크레디를 흠모하던 어린 소녀는 아들의 장난질에 분개하던 후작 부인 대신 경찰에 탄 크레디의 실종 신고를 내고, 그 바람에 경찰이 인비올라타에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후작 부인을 검거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날 라짜로가 늑대와 보름달의 힘으로(...) 눈을 뜨고, 마을을 내려가 보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미 모두 떠난 상태.

라짜로는 무작정 길을 걷던 와중에 후작 부인의 저택을 털던 도둑들을 만나면서 도시로 이주한 마을 사람들과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라짜로가 죽어있는 사이 시간은 2~30년이나 흐른 뒤였다.



꼬마아이였던 피포는 여자를 좋아하는 청년이 되어 있었고 그의 엄마인 안토니아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만나,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에 와서도 라짜로는 별 말 없이 그들을 돕는다. 마을 사람들의 범죄를 돕거나 지하철 인근의 불법 시설물에서 나는 나물들을 캐거나. 모두가 하나였던 인비올라타의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의 안위만 챙기기 급급한 이기적인 집단이 되어버렸고 오직 라짜로만 그대로였다(외모나 나이나 마음씨나). 탄 크레디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우연히 발견한 라짜로는 결국 성인이 되어 폭삭 망해버린 탄 크레디와 재회하게 되고 그가 줬던 '무기' 인 새총 덕분에 탄 크레디를 가난으로 몰고간 '은행' 에서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행복' 과 '결핍', '삶의 질', '마음씨', '공동체' 따위를 꾸준히 보여준다. 그 속에 (죽음에서 부활하며)이솝우화 처럼 서있는 라짜로가 있는데, 굉장히 어설픈 장치로 관객의 어리를 둥절하게 만든다. 명확히 캐치할 수 있는 주제를 어느정도는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뜬금없는 '음악이 우리를 따라왔다' 라는 대사나 라짜로를 살릴 때 나타났다가 라짜로가 죽은 다음에 홀로 도심을 거니는 늑대 등 감독 혼자만 알법한 소재들로 자위하는 영화다.





늘 이런류의 예술 영화를 보면 드는 생각이지만 관객이 알아먹기 어렵게 만든 이런 허접한 영화를 '예술' 이랍시고 무작정 빨아대는 평론가나 관객들을 보면 그냥 그네들끼리 영문도 모를 영화 만들어서 보고 평론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치 '신' 처럼 표현되는 라짜로의 절벽 씬 이후의 삶과 '선함',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 을 표현하기엔 영화 플롯을 너무 심각할 정도로 엉성하게 지어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비밀번호 재설정
새로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재설정
개인정보 취급방침 에 동의합니다.

문의 및 제안
소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신고
편파적인 언행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정치, 종교 등
욕설 및 음란성
타인에게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언행
개인 안전 보호
개인의 사적인 정보, 특정 개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방, 혐오 발언
도배 및 광고
영화를 보지 않고 남긴 것이 분명한 리뷰
스포일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