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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Happy as Lazzaro)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판타지, 이탈리아, 130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6.20 개봉
감독
알리스 로르바허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루카 치코바니
알바 로르와처
니콜레타 브라스키
토마소 라그노
세르지 로페즈
아그네즈 그라지아니
카를로 마시미노
시놉시스
이탈리아 인비올라타 마을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라짜로,
농장의 지주인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
이들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후작 부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가짜 납치계획을 세운다.
“가짜 납치 사건으로 밝혀지는 충격적인 담배 농장의 진실”
그리고, 소중한 우정을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라짜로!
100%
3.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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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별점 분포
리뷰
9

이규민 님의 리뷰
2019.01.08 00:21:48
변하지 않는 건 라짜로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금 고쳐보면 그 누구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명하게 드러났다. 단지 그냥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외형만 달라졌을 뿐 그들의 성품, 악하거나 찌질하거나는 변치않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았다.

보기 전까지도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영화인데 그것이 거부감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엄청나게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음에도 강력한 성스러움이 단순히 종교적 맥락아래로만 해석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내 탄식의 한 숨 하나가 푹 내쉬어지고 눈물이 난다. 라짜로는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2018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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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19.06.19 00:40:18
영화적 마법조차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
*스포일러 포함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행복한 라짜로>의 예고편에는 별 다른 대사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라짜로”라는 이름만이 예고편 내내 반복된다. 영화의 첫 대사 역시 “라짜로”이다. 1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의 주인공인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이름은 수없이 호명된다. 그와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소작농들은 그에게 다양한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 소작농들을 부리는 후작인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는 담배 재벌인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호명한다. 라짜로라는 이름은 성경 속 나사로(Lazarus)를 연상시킨다. 예수의 호명을 통해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 구원의 전조로 받아들여지는 이름이다. 라짜로가 일하고 거주하는 담배농장은 소작이 금지된 이후에도 땅주인인 데 루나 후작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이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은폐하며 계속 소작농으로 살게 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공간은 ‘염전 노예 사건’ 등을 연상시키는데, 영화 속에서는 공권력 대신 신부가 등장하여 이 공간을 유지한다. 소작농 마을의 안토니아(아그네즈 그라지아니)는 후작의 저택 곳곳에 숨겨진 순교자들의 초상화를 라짜로에게 소개해준다. 그리고 정확히 영화의 절반이 흐른 지점에서, 라짜로는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진다.


라짜로의 추락 이후, 라짜로와 탄크레디의 가짜 납치 공모 때문에 마을을 찾은 경찰에 의해 담배 재벌이 벌인 대사기극이 들통난다. 주민들은 도시로 거처를 옮겨가고, 담배 재벌은 몰락한다. 그리고 절벽에서 떨어진 라짜로가 눈을 뜬다. 시티폰을 쓰던 대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로 시간이 흘렀고, 라짜로와 함께 살던 주민들을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라짜로는 절벽에서 추락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라짜로의 추락은 주민들의 구원으로 이어졌다. 라짜로의 순교는 소작농 마을을 찾아온 경찰에 의해 그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도시로 거처를 옮긴 이들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레일러나 물탱크를 개조해 살아가고, 후작의 저택에 있던 물건들을 훔쳐 팔거나 강도행위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라짜로의 순교는 온전한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라짜로의 부활에서 지배권력과 결탁했던 종교는 지워지고, 대신 공권력의 치안에 의해 유지되는 계급이 빈자리를 채운다. 나사로의 부활은 종교적 구원을 예지했으나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라짜로의 부활이 예지한 계급적 구원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리어 국경의 난민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경매하며 소작농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소작농들은 도시의 빈민이 되었다. 성당을 벗어나 라짜로와 빈민들을 따라오는 성가는 간단한 위로를 전할 뿐이다.


라짜로의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일종의 타임슬립은, 라짜로의 시점에서 보자면, 순식간의 소작농들을 도시의 빈민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난민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들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순식간에 옮겨진 사람들이다. 이것은 계급 간의 추락이 아닌 이동의 순간이다. 순교, 부활, 구원의 마법적인 서사마저도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리얼리즘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후작 부인을 겨냥할 무기라던 새총을 들고 은행을 찾은 라짜로의 얼굴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부활하던 순간 나타났던 늑대가 다시 나타나고, 라짜로가 숨을 거두자 늑대는 은행 밖으로 나가 유유히 도시를 돌아다닌다. 라짜로는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다. 예수의 자리엔 착취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사람이 들어가고, 마법적(혹은 종교적)으로 도래한 구원의 순간은 또다시 지연된다. 탄크레디는 기침하는 것이 담배를 펴야 한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미봉책을 믿으며, 한없이 지연되는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지금이다. 라고 <행복한 라짜로>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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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2:46:03
극복하기 힘든, 절망적인 세상
성자도 극복하기 힘든 자본주의. <기생충>의 배다른 형제 같은 영화. 종말을 예견하는 새로운 계시같은, 구원조차 못할 세상을 행한 경고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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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fati 님의 리뷰
2019.06.18 13:45:41
라짜로는 구원을 시도한 자일까, 받은 자일까
이 영화는 오락용으로 보는 분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새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라짜로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것을 알지 못한 상태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라짜로는 구원자로 비추어 영화를 해석했습니다. (물론 헤어스타일도 한 몫;)
탄크레디는 라짜로가 구원해줘야 하는 속세의 인간, 다시 말해 우리들이라고 봤구요.
영화 초반부 탄크레디는 라짜로를 형제와 다름없다며 속이고 라짜로는 그것을 믿습니다.
애초에 라짜로는 시작부터 탄크레디의 거짓말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원래의 일에 점점 소홀하게 됩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의 벌(?)로써 열병을 앓게 됩니다.
그러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두번째 삶의 기회를 얻게 되나, 그 또한 탄크레디를 찾고 도와주는 여정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계속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자의 모습과 겹쳐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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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0:32:55
이탈리아에서 더 빛을 발하는 그것의 현대적 우화
https://blog.naver.com/renorous/22155989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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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19.06.13 00:19:49
'행복한 라짜로'는 당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탄 작품인데, 그럴 만한 참신함과 주제의식이 담긴 흥미로운 영화다. 순수한 시골 청년 라짜로를 따라가며, 그와 같이 사는 주변 인물들과 새로 만나는 인연들을 통해, 영화는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에 대한 구슬픈 비판을 한다.

라짜로는 성경에서 나사로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나사로는 신약성서에서 두 인물의 이름인데, 하나는 예수의 열정적인 제자 중 한명이자 예수의 한마디에 부활을 한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지 나사로로, 생전에는 부자에게 무시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가 죽고 천국에 가게 된 우화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동명이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찌보면 이 두 성경 인물들의 합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라짜로는 정말 바보라고 할 정도로 순수한 청년이며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순수함 때문에 그는 사람들한테 속고, 이용당하기만 한다. 여기에 영화는 인간의 역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계급사회의 역사성을 추가하며 순수한 정신과 호환이 안되는 추하고 악한 인간 사회를 비판한다. 주연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새하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와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검은 곱슬머리에 화룡점정으로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눈빛을 보면 5초 이내로 이 캐릭터가 때라고는 하나도 묻지 않은 순진한 사람임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탄탄한 중심 연기가 있기에, 관객은 주인공의 특성에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며, 현대 사회라는 오즈에 천사가 갑자기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어둡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과 그를 통해 힘든 세상을 사느라 잠시 잊고 있던 순수함, 행복을 다시 맛보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또다른 본성,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며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들이 올라간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옛날 옛적에는, 로마의 국부과 될 로뮬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빨던 시절에도 과연 그랬을까하는 인간사에 대한 서글픈 감독의 생각이 담긴 하나의 우화와도 같은 이 영화는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비관적이면서도 약간의 희망적인 낙관도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층민의 일상을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리는 이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바탕이 보인다. 특히 슈퍼 16mm 필름의 빈티지한 룩과 거친 질감은 주인공의 시련 많은 여정과 세상의 분위기를 더욱 풍만케 해줬다. 화사함과 창백함을 오가는 영상미부터 주인공에게 언제나 들어가는 아이라이트까지, 이 영화는 시각적인 연출로 이야기를 펼칠 톤을 완벽히 설정하며, 주인공의 문명 오디세이를 통해 인간을 탐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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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01:27:45
'행복한 라짜로' 초간단 리뷰
1. 태초에 영화가 했던 일들 중 하나는 관객을 낯선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우리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그럴때면 영화는 우리의 여행을 대신해왔다. 시오타역에 도착한 열차를 시오타역에 가지 않아도 맞이할 수 있었고 저 먼 하늘에 떠있는 달에도 갈 수 있게 했다. 혁명의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했고 싸이코 살인마가 사는 저택으로 초대하기도 했다(그 순간에도 관객의 안전은 보장돼있다). 그런데 영화가 초대한 세계들 중 가장 낯선 세계는 바로 '모르는 사람의 삶'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가 수십년전 이탈리아 중서부 시골에 사는 청년의 삶을 엿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서 낯선 세계란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인류는 이제 달의 뒷면까지 탐사를 시작한 상황에서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리체 로르와커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고맙게도 그물망처럼 촘촘한 세계의 네트워크에서 닿지 않은 빈틈을 관찰한다. 그곳은 이탈리아 중서부 시골마을이며 거기에는 라짜로가 살고 있다.

2.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청년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온갖 소소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듣는다면 마치 그가 '홍반장'처럼 만능 재주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그 정도 기술도 없고 지위를 얻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성실하고 긍정적인 '예스맨' 청년이다. 삐딱하게 본다면 '호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청년은 어찌나 성실하던지 마을 부잣집 청년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의 납치 자작극도 도와준다. 그러다 일이 잘못돼서 마을 사람들은 속세로 흩어지게 되고 라짜로는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진다.

3. '행복한 라짜로'는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다. 그렇다는 것은 라짜로가 메시아의 현신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라짜로는 처음부터 메시아였을까. 라짜로의 삶과 이 이야기에 큰 고비가 찾아온 지점은 라짜로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라짜로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라짜로가 죽을만큼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오랫동안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떠나고 오랜 시간 뒤에 라짜로는 깨어난다. ...아니, 정확히는 늑대가 부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늑대가 라짜로의 냄새를 맡고 있었고 바로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늑대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사실 이 영화에서 메시아는 라짜로가 아니라 늑대다. 라짜로는 늑대의 축복을 받은 '성자(聖子)'인 셈이다.

4. 거리의 성자처럼 길을 걷던 라짜로는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도시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재회한 라짜로는 그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먹을 것을 알려주고 강아지를 맡아준다. 사실 그것들은 마을에서 라짜로가 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졌고 도시의 밑바닥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됐다. 도시는 크고 비정하며 마을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피폐해졌지만 라짜로와 함께 희망을 찾는 듯 보였다. 심지어 음악까지 그들을 축복해주고 있었으니 라짜로는 가장 낮은 곳에 내려앉은 천사와 같았을 것이다.

5. 그런데 라짜로는 어느날 잘못된 선택을 한다. 탄크레디를 돕기 위해 은행으로 찾아간 것이다. 탄크레디는 데 루나 집안의 사람이다. 그 집안은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인물로 체포된 바 있다.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데 루나 집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집안의 재산을 복원하려는 것은 복종하며 살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자유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복종이 안식을 준다는 논리는 MCU에서 하이드라가 하던 얘기다. 그리고 그 얘기를 빼더라도 과거는 때로 미화되기 마련이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 누구라도 탄크레디가 라짜로에게 "우리는 배다른 형제와 같다"고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진 않을 것이다. 라짜로가 은행으로 찾아가 탄크레디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한 것은 미화된 과거로의 회귀를 요구한 것이다. 늑대는 그러라고 라짜로를 살려주지 않았다.

6. 영화는 라짜로의 생사를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나 떠나가는 늑대를 보며 라짜로가 죽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죽음은 절벽에서 떨어졌을때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스스로 내려놓으려 할 때 이뤄진다(만화 '원피스'에서 비슷한 대사를 들은 것 같다). 게다가 라짜로가 은행을 찾아가는 장면은 처음으로 누구의 요구나 지시 없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한 것이다. 첫 자유의지를 그렇게 썼다면 신도 노여워하기 충분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라짜로'는 돌고 돌아서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자본에 억압받고 구속된 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유의지라는게 이 영화의 의도일까. 그렇게 이해해보도록 하자. 적어도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내 심금을 확실히 울리기 때문이다. 라짜로가 영화의 제목처럼 행복하길 바라며 영화를 봤지만 그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7. 이쯤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신은 늑대의 형상을 빌어 라짜로를 구원했을까? 처음 그 절벽에는 정말 늑대가 있었을까?". 사실 라짜로가 사는 마을에 늑대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내내 소리만 들렸으며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처음부터 늑대는 마을을 지키려는 신의 의지였으리라. 라짜로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피를 흘렸고 고통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마을을 떠나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은 라짜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을 구하라고 한 셈이다. 그런데 그 대상에 데 루나 집안은 포함돼있지 않다.

8. 결론: 영화를 다 봤을 때 함께 본 여자친구가 물었다. "라짜로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워낙 그의 표정 자체가 감정이 없어보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눈물 흘린 순간은 있어도 웃은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행복한 라짜로'라는 제목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은 작가의 소망이자 관객의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라짜로가 어디에 있건, 혹은 다른 곳에 또 다른 라짜로가 있건, 그는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라짜로가 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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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23:30:30
라짜로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영화인데 익무내에서 평이 좋길래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



누구에게든 쉬운 사람인 라짜로.

그리고 누구에게든 헌신하는 라짜로.

그런 라짜로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해줄까?



라짜로는 우리가 흔히 나사로로 알고 있는 성경 속 인물이다.

죽음에서 살아난 그 나사로. 그리고 나사로와 부자 비유에 등장하는 그 나사로.

물론 영화는 성경 지식이 없어도 무난하게 볼 수 있긴 하지만 묘하게 어렵고 난해하다.



사기꾼에게 속아 착취당하는 마을 사람들. 그 마을 사람들에게 착취당하는 라짜로.

중반까진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어서 어렵고 힘든 주인공의 인생 드라마인 건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야기를 완전 틀어버리는 큰 사건이 일어난 후 분위기가 확 바뀐다.

대체 ‘라짜로는 왜 저렇게 살까?!’ 라는 답답한 심정이 ‘저 사람들은 왜 저러는 걸까’로 확대되고 다시 ‘라짜로는 왜 그러는 걸까?’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라짜로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제목과는 정반대로 라짜로는 절대 행복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땅을 치며 울어도 시원찮을 상황인데 그는 불평 한마디가 없고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그래서 라짜로에게 감정이 이입되다 보면 제발 그가 편해졌으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라짜로의 삶을 이루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왜 저들 곁에 머무는 걸까?!’라는 생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무소유의 아이콘인 라짜로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서 욕심이란 게 생기고 그러면서 라짜로는 열병을 앓는다.

사기꾼에게 속아 착취당하던 이들이 문명세계로 나와서 어렵게 살아가면서 과거를 그리워한다.

음악에 이끌려 성당을 찾은 이들을 박대하고 쫓아내는 성직자들에게서 그들의 예배 수단인 음악이 떠나버린다.

영화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장면들로 신비롭게 이 사회를 비꼰다.

그리고 납득가지 않는 결말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론 용납이 안되는 결말. 꼭 그래야만 했던 건지...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 에효 복잡하다ㅠㅠ

그냥 나는 라짜로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가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못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겠고...



그나저나 거의 접할 기회가 없는 이탈리아 영화. 그것도 처음 보는 주인공인데 푹 빠져서 봤다.

그 눈빛과 외모 참 신비롭더라. 성경이나 신화 속 인물을 연기해도 잘 어울리겠단 생각이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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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님의 리뷰
2019.02.03 22:35:59
현대에서 동화, 신화를 길어 올리는 매혹적인 시도. 세상을 더 아프게 바라보게 되는, 기적 같고 마법 같은 순간들 중 라짜로의 무구한 표정이야말로 단연 기적 같고 마법 같아, 그래서 더 부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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