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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비밀 (Everybody Knows)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133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8.01 개봉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리카도 다린
바바라 레니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즈
인마 케스타
시놉시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고향을 찾은 라우라.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떠들썩한 결혼식 파티를 즐기던 중 사랑하는 딸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은 라우라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오랜 친구이자 과거 연인이었던 파코까지 나서 딸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잘 아는 주변인에 의해 시작됐을 거란 이야기를 들은 라우라.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라우라와 가족 모두는 미묘한 긴장감 속에 서로를 의심하고 지금껏 모두가 숨겨온 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70.27%
3.25점
키노라이트 분포
11개
26개
별점 분포
리뷰
27

야구곰 님의 리뷰
2019.08.19 09:07:07
지금까지 이런 미스터리는 없었다.
역쉬 아쉬가르 바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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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카키 님의 리뷰
2019.08.16 21:42:44
막장에 익숙한 나로선...
줄거리.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두 아이와 함께 고향을 찾은 '라우라', 그곳은 이웃도 마치 가족처럼 지내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이다. 결혼식 후 한참 동안이나 파티가 열리고, 드디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어라? 먼저 자러 들어갔던 딸 아이가 없어졌다. 하필이면 정전까지 되어 온 마을이 컴컴한 가운데 딸을 찾아 나선 라우라. 하지만 흔적도 보이지 않고... 다음 날 몸값을 요구하는 연락이 온다.

라우라는 과거의 연인이었던 '파코'의 제안으로 경찰 출신 탐정을 찾아가는데, 그는 범인이 가까운 사람일거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만큼 부자가 아니었다는 라우라네의 경제 사정을 시작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들. 과연 그 끝은?



-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어바웃 엘리><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세일즈맨> 등을 통해 쭈욱~ 극찬을 받아 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감독의 영화를 애정했던 분들도 이번 영화는 좀... 이라고 평하시는 듯~ 가만 보면 스토리가 가장 단순해서 그런 게 아닐까싶다. 영알못인 나 조차도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



- 나는 이 감독의 영화 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세일즈맨> 이렇게 두 편을 봤는데, 사실 그 영화들은 이게 뭔가~ 하면서 봤다. 특히 각종 영화제 수상에 호평까지 잔뜩 받았던 <세일즈맨>이 더욱 그러했다. 영알못은 수상작과 거리가 멀지. 후훗~



- 내가 세 번째로 접하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메인 스토리는 단순하다. 평화롭고 별 문제 없어 보이던 한 가족, 나아가 한 마을에 내재된 비밀과 갈등이 뜻밖의 '유괴 사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하면 될 듯. 헌데, 소소한 갈등은 물론 영화이 핵심이 되는 '누구나 아는 비밀'도 큰 충격을 전해주진 못한다. 일단 우리는 막장 드라마에 너무나 익숙하고, (땅 거래를 놓고 오고가는) 계급 갈등 문제 등은 스치듯 지나가서 뭐지? 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리고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부자인 척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기도 하고 말이다.



- 긴장감이 고조되는 쫀쫀한 전개였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133분은 너무 길기만 했다. 그렇게 별로~ 라며 영화를 보고 난 뒤 바로 든 생각은 아! 역시 이런 유명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부족하구나...라는 것이었다. 헌데, 리뷰를 찾아 보니 감독의 이름값에 비해선 아쉽다라는 평이 많아서 나름 위안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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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17:27:20
치정에 의한 출생의 비밀을 골자로한 납치 범죄극.
막장 드라마로는 캐릭터의 심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지만 범죄극으로는 빈구석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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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15:54:47
관계가 있는 한 비밀의 시작과 파국은 계속 된다
https://blog.naver.com/renorous/22160261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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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익 님의 리뷰
2019.08.05 18:45:04
비밀이 관계를 형성하고 무너뜨리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꾸준하게 가족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온 감독이다. 특히 관계의 불안함을 다루는 데 있어서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비슷한 주제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왔음에도 그 영화들이 인상적인 깊이감을 갖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번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 역시 가족 드라마에 미스터리를 더한 형식으로 관계를 파고든다. 비교적 최근작들인 <세일즈맨>과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비교를 한다면 훨씬 화목한 분위기를 깔고 들어가는 영화다. 하지만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비밀'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그 은밀함처럼 화목해 보이는 관계 뒤에 불안하게 지탱되고 있는, 그리고 마침내 무너져버리는 방식에 대해 영화는 탐구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사건을 늦게 배치한다.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영화 초반, 대가족이 모여 결혼식에 참석하고 뒤풀이 파티를 즐기는 장면까지를 마치 생중계하듯 인물들을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긴 호흡으로 담아낸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이 가족은 화목한 가족입니다'를 수없이 강조한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이 아닌 파코[하비에르 바르뎀 분]까지도 이 공동체에 합류시켜 영화를 이끌어나갈 인물들과 분위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레네[칼라 캄프라 분]가 납치된 이후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앞서 소개된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를 부수면서 흘러간다.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하게 적을 수는 없지만 영화 초반 기본적인 설정으로 제시됐던 정보들(ex. 파코는 농장주다)에 대한 설명이 붙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레네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정보들이지만 영화는 그 정보로 인해 범인을 추적하기보다는 그 정보가 드러남으로써 감춰져있던 감정의 골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몰랐던, 누군가는 알고도 모른 채 살아왔던 비밀이 어떻게 관계를 지탱해왔고 비로소 누구나 알게 됐을 때 어떻게 이 관계를 무너뜨리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여러 인물이 주요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고른 인물 묘사를 하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이번 영화는 보다 확실한 방점을 찍고 인물을 묘사한다.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인물들 중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파코를 중심으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영화는 사건의 비극을 겪으면서 비밀로서 감춰왔던 감정의 골과 그로 인해 지탱됐던 화목한 관계를 드러내고 무너뜨렸다면 대놓고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새로운 사이클을 제시한다. 범인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전까지 대부분의 장면들을 라우라와 파코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영화는 기존의 라우라와 파코, 두 시점과 더불어 새로이 두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라우라와 파코의 비밀이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되고 그로 인해 보인 관계 변화의 사이클이 끝났다면 새로이 시점을 부여받은 두 인물을 통해 다시 한 사이클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마치 이것이 하나의 메커니즘임을 강조하듯이.


완성도와 재미만을 따진다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특별하게 뛰어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복제적일 정도로 비슷한 형식과 인물들을 가지고 다시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이러한 자기 복제가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유사하면서도 나아가는 방향에서 대척점에 있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다웠던 <누구나 아는 비밀>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와 상당히 가까이 있으면서도 간담이 서늘한, 감독 본인만의 색채가 잘 베여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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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님의 리뷰
2019.08.05 16:24:12
꽤나 느린 호흡이란 걸 알고 봤는데도 너무 지루했다. 심리 위주라지만 전개가 심각하게 느릿느릿하다.

결혼식장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범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비밀이 뭔데?!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쯤 비밀이 밝혀지고 비로소 제목을 곱씹게 된다. 원제는 Everybody Knows라는데 국내 제목이 더 와닿음. 제목 하나는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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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네 님의 리뷰
2019.08.02 13:39:17
흙먼지는 물로 씻으면 그만, 비밀은 초강력 세제로도 지울 수 없는 찝찝함. 이 정도면 가정파탄 전문 감독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작품입니다. 데뷔작부터 시작된 그의 가족이야기는 조국 이란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 배우들로 확장되고 있죠. 중국만큼 배우나 소재제약이 심한 이란에서 결국 세계관 확장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이야기는 결혼식 축제에서 딸을 찾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데 납치범을 알고나면 허무해지죠. 그들(?)은 포도밭 팔아 생긴 몸값을 손에 얻었지만 이 개싸움의 진정한 승리자인지는 의문입니다. 연인이자 부부인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는 탈부착 시스템이 가능한 유일한 배우들일지도. 부부역할은 당연한 것이고 사연많은 연인으로 이 두 사람만큼 잘 연기할 배우도 드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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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09:48:36
우리 삶의 주변부를 채우는 찌꺼기 ​
1.







아쉬가르 파라디는 좋은 이야기꾼이지만 친절한 목동은 아니다. 그는 이야기를 잘 성립시키지만 그에 대한 인과를 해설해주지는 않는다. 모든 이야기는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고, 관객은 그것을 목격하여 스스로 맞추어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이야기 밖에 존재하는 독립된 참여자로서, 티브이 앞에 둘러앉아 떠들어 대는 명절날 가족의 모습을 재현하게 된다. 저 사람은 어떻게 될 거야. 어때 내 말이 맞지. 이런 식의 훈계가 보여주는 것은,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외부적인 연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보통의 영화가 관객을 스크린을 통해 분리하면서 관찰자적인 시선을 견지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서사를 통해 내부 서사를 분석하게 하는 담론분화적인 시선을 견지시킨다. 요컨대 이것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관찰이 아니라, 사건의 중심에 얽히고 싶지 않은 이들의 관찰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옆집 아들이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 엄마, 그래서 그 아들은 지금 뭐 하고 다니는데. 이렇게 물어오면 대부분의 어머니는 자녀에게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옆집 아들은 말 그대로 옆집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러니 이것은 이상한 관계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우리와 맺어져 있지만, 맺어지면 끊기는 게 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에 다르게 접근하면 더 이상해진다. 옆집 아들에 대해 우리가 추궁할 때, 어머니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직접적인 대입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기의의 전달 요소로 사용하기 위해 기표를 연쇄하는 게 이 이상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표의 연쇄는 오로지 기의의 전달을 위해 사용된다. 다르게 말하면 기의는 기표를 통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이처럼 고정되지 않는 기의를 보면서 우리는 추리 게임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처럼 미끌미끌하게 재미있는 게임이다. 여기서 물고기를 정말로 잡는 게 게임의 목표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의 진짜 목표는 그것을 타인과 함께함에서 나오는 즐거움이다. 혼자서는 재미없지만 여럿이서 해야 재미있는 것들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를테면 술 게임은 술을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 어울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들은, 대체로 기표 아래로 미끄러지는 서사 구성을 취한다. 여기서 기표는 영화이고 기의는 관객의 삶이다. 관객들은 영화 아래로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자신의 여러 삶을 대입해보게 된다. 요컨대, 영화가 어떻게 굴러가든 간에 관객은 그들의 삶에 진정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소재일 뿐이고, 그 소재에서 피어나는 관객의 이야기야말로 영화가 열매를 맺는 장소이다. 이를 포도 덩굴에 빗댈 수도 있을 듯하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도입부는 포도를 따는 농장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하비에르 바르뎀의 말처럼, 이곳의 진가는 포도가 아닌 와인이다. 즉 그의 이야기는 영화 안에서 수확되는 게 아니다. 추출된 후에 인생이라는 창고 안에서 숙성된다.







2.







이는 삶에서 영화의 의의를 찾는 것과는 다르다. 그의 영화가 묘사하고자 하는 관계는, 영화 밖에서 여러 형태로 재현되고 그래서 줄곧 미끄러지게 된다. 일정한 형태에 귀속될 수가 없으니, 닻을 잃은 배처럼 정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영화가 취하기에 좋은 태도는 아니다. 소수의 영화광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가 확실한 무언가를 자신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화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아직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고 그들은 생각한다.







여기서 알지 못했던 사실이란 게 꼭, 의미가 있는 무언가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판타지, 신기루의 마법이다. 현실에서 볼 수 없거나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소리다. 아마도 이 부분이 아쉬가르 파라디 영화의 이상함이 아닐까 한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다. 그러므로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에서, 서사만을 떼어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여기에는 편집의 능숙함과 같은 영화 장인의 면모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무엇이 장점일까. 또는 우리가 왜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서 내가 오판했을 가능성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어느 관객에게는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가 열광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다음 문장을 보고 나면 당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영화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그건 우리가 열광할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독일전에서의 승리처럼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기를 고대한다. 말하자면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 그에 끌려다니게 하는 게 영화의 장력이다. 마치 데이비드 핀처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의 영화는 텐션이 없다. 영화 내적으로는 말이다. 아무리 예측 가능한 이야기더라도 그 텐션을 적당히 조절하면, 밀당하는 연인관계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법인데. 그걸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밀당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파라디에게 서사는 영화를 이루는 요소가 아니다.







그는 밀당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만약 밀당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는 카메라에 조금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는 카메라를 지시기호처럼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관계와 맥락을 명징하게 잇는다. 이는 단순히 쇼트와 리버스 쇼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면 덩굴처럼 각자의 가지가 선으로 꼬이는 게 아니라 그물처럼 엮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그 그물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그물은 전체로 볼 때 하나의 연쇄지만, 어느 부분에 불을 붙여도 곧 전체로 퍼져나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의 카메라도 가족 전체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어디를 찍어도 같은 결과로 귀결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결과론이다.







여기서 그의 영화를 두고 결과론이라고 말하는 대목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는 늘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지만, 적어도 앞서 말한 그물이라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쉽게 해결될 문제이다. 그물형 구조는 그물끼리 엮이는 매듭이 같고, 따라서 그 원리를 이해한다면 나머지 부분도 그렇게 직조되어 있으리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들판의 어느 곳에 불을 붙여도, 들판은 모두 타게 될 것이다. 같은 원리로 그의 가족이 파멸에 다다르는 과정은, 어디에서 불씨가 붙었든 간에 종국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시간문제일까? 같은 원리로 직조되는 매듭을 두고 미래의 이야기를 가정하기란 몹시도 쉬운 일이다. 한마디로 뻔하다는 소리다. 허나 그럼에도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는 뻔한 이야기임에도 그리 뻔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앞서 우리는 아쉬가르 파라디를 보고 이야기꾼이지만 목동은 아니라고 말했었다. 요컨대 그는 양을 몰기보다는, 양으로 사람을 꾀어 담소를 나누는 바드(방랑시인)에 가깝다. 즉 그의 영화에서 서사는 미끼상품이다. 이 미끼를 문 당신은 거미줄 전체에 자기 삶의 울림을 더하게 될 것이며, 그 울림을 듣고 아쉬가르 파라디라는 거미는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파라디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3.







이제 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아쉬가르 파라디의 최신작이다.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관람하면서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평소에 영화를 좋아하던 나는 그들의 관계를 후반에 가서야 깨달았는데, 반대로 영화에 관심이 없는 부모님은 처음부터 그걸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내가 영화를 보는 눈이 부족한 게 더 큰 이유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영화를 잘 모르는 부모님이 영화를 꿰뚫어본 것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단지, 평소에 한국 코미디 영화와 액션 영화를 즐겨보시던 부모님이 꾸벅꾸벅 졸면서도 내용은 다 파악한 게 이상했을 뿐이다.







코미디와 액션이라는 장르는 흐름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가 아니라 흐름이다. 개연성이야 어떻든 간에, 신체-언어의 리듬이 맥락이 되기만 한다면 관객은 그것을 즐긴다. 채플린 시대로 간다면 그 코미디는 유연하게 이어지는 운동 이미지일 테고,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완벽한 타인>을 예시로 든다면 그것은 언어 이미지일 테다. <타짜> 같은 영화를 예로 들면 이렇다. 화투패의 내려치는 이미지가 언어의 유희성을 담지하고서, 손모가지를 날리는 망치로 표현된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여기서 신체는 언어가 되고, 언어는 다시금 신체가 된다. 그 와중에 카메라는 자연스레 인물의 얼굴과 손을 오가며 그 둘을 접합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기표는 그런 시선의 움직임, 기의의 응시를 미끄러지게 하도록 사용될 뿐이다.







채플린의 손짓과 발짓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 이미지가 되어, 가리키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기표를 쏜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는 채플린이라는 기의가 있다. 물론 가만히만 있을 채플린이 아니다. 채플린이라는 기의가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는데, 이때 우리는 같은 동작이라도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는 채플린의 영화에서 늘 나오는 떠돌이 캐릭터가, 영화마다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채플린이 아니라 채플린의 몸짓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들이다.







이를 두고 어쩌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맥락이 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다. 여기서 다시금 도돌이표를 찍어 위로 돌아가자. 아쉬가르 파라디는 밀당에 관심이 없다. 밀고 당기는 것은 그저 줄다리기일 뿐, 무언가 유의미한 에너지의 총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밀고 당김에서 도출되는 에너지는 핵분열처럼 그저 파괴적이기만 할 뿐인, 그렇게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텐션일 뿐이다. 실제로 그런 류의 영화, 를 보고 나면 정말로 피곤해진다. 아마도 <곡성>이나 <나를 찾아줘>를 보고 나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밀당은 분명 서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그 원료로 당신을 소모하고 폐기물은 마음에 잔여로 남는다. 그러므로 그런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에 남은 것은, 영화를 보게 하는 것 말고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때 우리는 그 찌꺼기에 대해 논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라디의 영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또한 찌꺼기이기 때문이다. 위의 불쾌한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궁금해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포도를 불러내고 싶다.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는 찌꺼기가 된다. 그렇다면 포도는 과연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에 관한 설명은 다음처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포도는 즙을 짜서 곧바로 버린다. 즙을 짜고 나면 더는 필요가 없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포도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포도는 즙을 짜고 나면 텅 빈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즙이야말로 포도의 본체이다. 다시 말해서 포도는 의미를 자아내는 게 아니라 의미 그 자체이다. 이것이 핵분열적인 서사의 텐션에서 버려지는 찌꺼기와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포도는 와인에서 그저 기표일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포도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것일 뿐, 포도 아래에는 와인이라는 기의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영화는 이 사실을 관객에게 말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 인생의 지혜가 노년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걸 두고 인간이 성숙해진다, 숙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를 두고 와인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와인은 오래될수록 n년산이라는 칭호가 붙는데, 이는 중간에 한 번이라도 개봉하면 사라지게 되는 타이틀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그물이 끊기는 순간에 그 숙성은 거기서 멈춰버린다. 이를 재개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때 우리에게 남은 건 그 와인을 마시는 것, 인간이라는 기표에게 삶의 기의를 불어넣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기표에 삶의 기의를 불어넣는 작업은, 그만큼 인간이 허울뿐이고 삶의 의미는 부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어디를 가나 볼 법한 풍경이지만, 어디를 가도 볼 수 있기에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존재론의 명제와 반대이다. <너의 이름은>의 그 유명한 대사,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를 찾는다. 또는 찾고 있다. 이 행위에서 추동력은 언어가 아니라 신체, 즉 기의가 아니라 기표에 자리한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텅 빈 공동을 바라본다는 것,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그 안에 도래할 자신의 잔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그 찌꺼기는 도출되지 않는다. 즉 그 기다림은 충족되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을 향한 자기 분열적인 손짓이고, 그래서 맥락은 없어진다. 그 영화에서 나오는 혜성처럼, 그것은 찌꺼기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아가기에 결국 나아간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때 나는 당신이 그 나아감의 연유를 캐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나아가고 있는 건가. 요컨대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건 무엇인가. 그 출발지의 마음 가짐과 도착지의 목표물은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이 물음에 답은 없다. 그게 아쉬가르 파라디가 물음도 답도 하지 않고, 그저 나아감-운동 자체만을 보여주는 이유이다.







나는 자신을 분열시키면서 그것을 추동력으로 사용하는 게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파라디의 영화가 유의미함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유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라디의 영화는 찌꺼기기를 소모하지 않아서 우리가 그걸 취할 수 있다. 그걸 버리든 말든 별 상관은 없고, 우리가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면 찌꺼기는 우리가 좀처럼 마주하기 싫어하는 것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의 주변부를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엄마 친구 아들이 뭘 하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나아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는 것도 좋다는 뜻이다. 직접적인 힌트는 아니어도, 간접적인 영향은 될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사족을 달고 싶어졌다. 내가 이 글에서 던진 질문은 회수해야 하니까. 결론적으로 파라디의 영화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확고한 이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여기서 확고함이란, 신념이 아닌 유착이나 정착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삶에 안정이 생기면, 그러니까 루틴이 생기면 우리는 그에 적응해 다른 생각은 해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늘 하던 대로 하고 나면, 원형을 이루는 쳇바퀴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까맣게 잊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전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된다. 쳇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끝없는 자아분열적인 운동 이미지만이 도출된다. 그렇지만 삶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속에 남은 족적, 그 찌꺼기 자체이다. 요컨대, 확고한 마음이 낳는 합리적인 찌꺼기는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아마 그래서 파라디의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확연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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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19.07.29 09:37:54
당신만 모르던 사실, 씨실과 날실로 직조한 비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은 숨길 수 있다고 믿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언젠가 당신의 목을 조를지 모른다. 제71회 칸영화제 개막작 '아쉬가르 파라디'감독의 <누구나 아는 비밀>이 그것이다. 15년 전 '아쉬가르 파라디'감독이 우연히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다 실종 아동 전단지에서 영감받아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천재 이야기꾼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신작을 만나보았다.

행복감이 감도는 결혼식 날,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의 딸이 납치된다. 흥겨워야 하는 가족 파티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라우라에게 문자가 온다. 돈을 준비하라는 것. 이제부터 사이좋던 가족이 서로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동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의자가 된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농장의 근로자였다. 어떤 일이 터지면 가까운 사람, 나보다 못한 사람을 의심하는 게 첫 번째다. 그 화살은 천천히, 그리고 깊게 영역을 넓혀간다.

가족들은 헐값에 땅을 산 파코(하비에르 바르뎀)를 탐탁지 않아 한다. 아버지는 하인의 자식이라며 파코를 의심한다. 30년도 더 된 일을 거들먹거리며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같이 오지 않은 라우라 남편은 물론이며 납치된 이레네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된다. 화목했던 가족이 지옥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한편 이 사건에서 유난히 겉도는 인물이 있었다. 이 인물의 상황이 초반부 살짝 언급되는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어쩌면 파코의 전 재산을 강탈하려는 이 집안의 가족 사기극이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이 가족의 일원이 아닌 파코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는 모습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신분의 굴레, 옛 연인에 대한 미련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코는 영혼과 돈 모두를 탈탈 털린다.

영화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침묵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씨실과 날실로 정교하게 직조한다. 추리물이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범인을 찾게 된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가미한 심리전이 백미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다 중후반부 이 사건의 범인을 알게 되었을 때 드는 허탈함이 밀려온다. 영화 속 선악 구도를 명확히 두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은 눈덩이처럼 커져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흔히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은 비밀을 누설할 확률이 크다. 역시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누구나 다 아는 비밀, 당신만 모르던 사실은 뜨거운 뒤통수가 되어 돌아온다.

이란의 대표 감독 '아스가르 파르하디'를 통해 스페인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가장 믿어야 할 가족의 날선 신경전과 민낯을 보았다. 어쩌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에서 볼법한 막장 요소가 반갑거나 식상할 수 있겠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부부가 이번에는 과거 연인 관계를 연기한다. 두 배우 호흡이 빛나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8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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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 님의 리뷰
2019.07.26 12:31:31
인간의 내면 파헤친 미스터리
동생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친인척들이 고향으로 몰려들었다.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도 모처럼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간만에 치러지는 결혼 예식은 마치 인력이라도 작용하는 양 그동안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을 고향으로 일제히 끌어 모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형제들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다.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에서 치러진 예식은 더없이 화려하였으며, 새로운 삶을 약조한 동생 내외에겐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이 더해졌다. 이어진 피로연은 축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흥에 겨웠고, 참석자들은 무리를 이뤄 함께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며 분위기에 취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피로연장 한 쪽에서 다른 이들처럼 축제를 즐기던 라우라의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갑자기 피로를 호소하는 바람에 급히 침실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던 도중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이레네는 온데 간데 없고, 그녀가 누워있던 침대 위에는 과거 납치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결혼식 파티 도중 납치된 딸... 가족조차 서로 의심하는 사람들

흥겨움에 한창 들떠 있던 결혼식 피로연장은 이레네의 실종 소식과 더불어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가라앉고 만다. 이윽고 라우라에게 날아든 문자메시지 한 통. 이레네가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으며,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질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라우라는 딸의 납치 소식에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만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그녀를 납치해간 것일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동생의 결혼식 피로연 도중 라우라의 딸이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 딸을 찾는 과정에서 과거의 진실이 차례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부각되는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는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영화 <세일즈맨>(2017),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등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마다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탁월한 연출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 작품 역시 한 여성의 납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레네의 안위 때문에 납치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해하는 라우라와 친지들. 이들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가운데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들부터 순차적으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고향땅에서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라우라의 옛 연인이자 그녀와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한 파코(하비에르 바르뎀)도 딸을 잃어버려 애를 태우는 라우라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납치범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파코가 납치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라우라, 그리고 라우라의 가족들과 얽힌 관계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인간의 내면 파헤친 미스터리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납치범이 특정되지 않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덧 내부를 향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가족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납치범이 딸의 석방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하고 나선 시점이 바로 이의 분기점이다. 납치범의 요구 조건과 액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결국 돈이 이번 사건의 열쇠일까?

범인이 외부가 아닌 그들 내부에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 점차 힘이 실리자 서로를 향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그에 따라 장르적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간다. 일반적으로 가장 신뢰했던 이들이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로 인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결혼식 피로연 때까지만 해도 더없이 끈끈했던 가족 공동체였건만, 납치 사건으로 인해 이들 사이에 의심이라는 괴물이 파고들면서 어느덧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마저도 쉽게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불신과 의혹이 발화하여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순간 인간관계에 어떠한 균열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시선은 의문투성이인 범인의 실체를 쫓는 일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게 된다. 영화 제목 그대로 누구나 아는 비밀 때문일까? 오히려 어느 누구에게나 내면에 잠들어있을지 모르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소환하고, 이로 인해 더없이 끈끈했던 관계마저 쉬이 헝클어뜨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된다.

당장 돈이 아쉽게 되자 수십 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을 들먹거리거나 묵혀온 진실과 아픔을 들춰내어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는 사람들.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흡사 막장 드라마를 빼닮은 듯한 이 황당한 사건들은 영화가 미스터리 장르라는 사실을 문득 잊게 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결국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춰내고, 이를 통렬하게 비트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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