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 엔젤 (2018) - 키노라이츠
알리타: 배틀 엔젤 (Alita: Battle Angel)
액션 / 2018

개요
액션, 어드벤처(모험), 멜로/로맨스, SF, 스릴러,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122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2.05 개봉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배우
로사 살라자르
크리스토프 왈츠
키언 존슨
마허샬라 알리
제니퍼 코넬리
에드 스크레인
에이사 곤살레스
미셸 로드리게즈
라나 콘도르
캐스퍼 반 디엔
잭키 얼 헤일리
조지 렌드보그 주니어
제프 파헤이
시놉시스
모두가 갈망하는 공중도시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고철도시로 나누어진 26세기.
고철 더미 속 모든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알리타는 마음 따뜻한 의사 이도의 보살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도는 사이보그인 알리타에게 특별한 과거의 비밀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스터리한 과거로부터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한편, 새로운 친구 휴고는 알리타가 위험한 고철도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과 함께 기억을 되찾도록 돕는다.

알리타가 자신의 과거에 다가 갈수록 도시를 지배하는 악랄한 세력들이 그녀를 노리며 제거하려고 하고 자신이 착취와 약탈의 고철도시를 구할 수 있는 열쇠임을 깨닫게 된 알리타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새로운 세상을 위해 통제된 세상의 무시무시한 적들과 맞서게 되는데…
74.67%
3.23점
키노라이트 분포
38개
112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124

2019.02.07 10:48:42
'알리타:배틀엔젤' 초간단 리뷰
1. 이성을 갖고 돌이켜보면 '아바타'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기발한 화두를 열어두고도 더 깊게 고찰하지 못한 이야기, 다시 말해 이미지에 전복된 채 겉만 핥다가 끝나버린 이야기가 아쉬운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카메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과거 그는 리들리 스콧의 우주괴물에 불과했던 에이리언의 생태계를 창조해냈으며 '아바타'에서는 무려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최소 조물주라고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다. 어쩌면 제임스 카메론은 영상기술과 생태계 등 '이공계적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스토리텔링과 같은 '인문계적 능력'은 다소 약하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알리타:배틀엔젤'은 그런 제임스 카메론의 인문계적 능력이 녹아든 영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역시 그의 인문계적 능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알리타:배틀엔젤의 이야기는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기 때문이다.

2.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나를 꼽아보자면 독립된 이야기로써 서사가 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마블의 영화들이 주로 범하던 실수다. 이런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앤트맨과 와스프'의 경우 마블영화의 전후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이야기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야기 안에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이는 전작과 연관성을 이해해야 갖춰지는 '기승전결'이다. '알리타:배틀엔젤'은 이것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야기 속 여러 상황들은 4월의 벚꽃잎처럼 떡밥을 흩뿌리고 있다. 예를 들어 헌터워리어의 바(Bar)에서 격투장면은 단순히 자팡(에드 스크레인)과의 갈등을 위해 등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의미있는 캐릭터들이 꽤 있었지만 영화에서 이들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내내 등장하던 URM 전투의 회상장면도 이 이야기 안에서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들 장면은 거대한 시리즈를 염두해 둔 '떡밥'이다. 다시 말해 '알리타:배틀엔젤'은 시리즈를 지나치게 염두해두고 만든 탓에 정작 영화 안에서는 의미없는 장면들만 주구장창 봐야 한다. 당연히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3. 혹자들은 "시리즈 영화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언급하고 싶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분명 다음 영화를 염두해 둔 언급이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장면은 영화 안에서 기능을 하고 의미를 갖는다. 3부작으로 기획된 또 다른 영화인 '백투더퓨쳐'의 경우 전편에서 기능을 하던 장면이 다음 이야기에서 숨겨진 기능을 하는 지능적인 시도도 한다. 반면 '알리타:배틀엔젤'은 누가 봐도 시리즈를 염두해뒀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마치 '배트맨 v 슈퍼맨'이 범했던 실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기분이다. 이야기 안에서 의미를 갖지 않는 장면에 지나치게 시간을 할해한 것은 실수다. 아니면 영화를 더 길게 만들더라도 장면들을 영화 안에서 모두 풀고 갔어야 했다.

4. '알리타:배틀엔젤'의 거의 유일한 강점이라고 봐야 할 액션장면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액션을 시퀀스별로 나눠서 나열한다면 여기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가렛 에반스의 '레이드2'를 예로 들어보자. 여기는 끝내주는 액션씬이 여럿 등장한다. 이 액션들은 간결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다. 여러 액션씬들 중 가장 클라이막스가 되는 장면은 주방에서 벌어지는 1대 1 싸움이다. 약 10분 가까이 진행되는 이 싸움은 온전히 두 배우의 몸동작에 집중하며 아드레날린을 극대화시킨다. 이전의 1대 다수의 싸움과 비교하면 육체의 대화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다. '알리타:배틀엔젤'에서는 '레이드2'의 주방액션을 대체할 장면이 모터볼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물론 강렬했다. 다만 다른 장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렬하다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간간히 드러나는 URM의 전투 장면이나 그루위시카와의 지하 싸움에 비하면 압도적인 인상을 찾기 어렵다. 짧게 끝나서 아쉬운 영향도 있다.

5. 저 옛날, 미국에서는 3명의 개또라이가 있었다. 영화와 만화책 보는 걸 좋아한 이 개또라이들은 저마다 취향을 반영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한 친구(쿠엔틴 타란티노)는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까지 할 정도로 거장이 돼버렸고 다른 친구(일라이 로스)는 취향껏 영화를 만들다가 누군가에게 납치돼 세뇌라도 당했는지 이상한 영화('벽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만들었다. 마지막 친구(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이상한 형(프랭크 밀러)과 어울려 다니다가 고생하더니 새로운 형(제임스 카메론)과 친구를 먹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일라이 로스의 처참한 그것보다야 만족스러웠지만 예전의 그 개또라이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마셰티 킬즈 어게인 인 스페이스'의 영화화만 바랄 뿐이다.

6. 결론: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베르세르크' 실사판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다. 나는 '알리타:배틀엔젤'을 보면서 '베르세르크' 실사판에 대한 작은 희망을 봤다. 이제 '베르세르크'의 이미지를 구현할 기술력은 갖춘 듯 하다. 각색능력만 갖춘다면 그것을 영화화 하는 것도 가능하지 싶다. ...일해라 뚱땡이들(길예르모 델토로, 피터 잭슨).


추신) 마지막 장면의 '그 분'보다 더 궁금한게....'스타쉽 트루퍼스'의 캐스퍼 반 디엔이 출연했다는데...대체 뭘로 나온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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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님의 리뷰
2019.02.01 11:07:23
알리타를 보는 관객이 가장 먼저 마주칠 난관은 주인공 알리타에게서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다. 알리타와 그를 둘러싼 환경의 부조화를 표현함으로써 알리타의 출신을 강조하려는 의도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만화의 싸구려 CG화를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만 준다. 알리타에 익숙해질라치면 세계관에 대한 무한설명이 뒤를 따른다. 새로움을 느끼라는 것 같지만 사실 새롭지 않은 내용이다. 대충 지구가 멸망한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사이보그가 보편화되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이 자렘과 아이언시티라는 공간적 분리로 표출된 세계. 20년을 기다린 숙원 프로젝트라는 점은 20년동안 원작에 영향받은 작품들이 쏟아져나왔고 오히려 알리타가 그들을 다시 복제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탓에 약점이 된다. 등장인물들의 서사 전개에서도 비슷한 약점이 드러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주인공과 주인공과 사랑을 키워가지만 자신의 과오와 욕망으로 인해 파멸의 단초를 만드는 남자 조연, 자상한 아버지, 사실 하수인에 불과했던 악당, 꼴보기 싫은 적대자, 등등등. 클스토프 발츠, 마허샬라 알리, 제니퍼 코넬리 같은 유명 배우들을 조연으로 기용하면서 그 이름값만 빌려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영화 전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터볼이란 스포츠에 대한 묘사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몇 안 되는 장점에는 소수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영상미 - 그럼에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 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피튀기는 화려한 액션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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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 님의 리뷰
2019.02.01 09:14:07
지금까지 이런 영화는 없었다. 이것은 영화인가 과학인가.
‘‘알리타’를 보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더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CG 모션캡처로 구현한 알리타.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불편한 골짜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최소화한 웨타팀의 기술력은 경이로운 수준. 사견을 조금 덧붙이자면, 알리타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CG 이야기로 이어가면, ‘알리타’ 팀이 준비한 후반부 모터볼 시퀀스는 가히 예술이다. 총 40대 카메라가 투입할 정도로 공들인 만큼, 액션 하나하나가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리고 공중도시 자렘과 고철도시 및 다른 사이보그 병기들 비주얼도 휼륭.

원작인 ‘총몽’과 일정 부분 설정이 다르고 영화화 과정에서 설정오류도 있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 보기엔 문제 없다. 그로데스크하고 암울한 원작보단 조금 더 밝은 톤이면서도 윤리적인 메시지는 놓치지 않았다.

하루빨리 ‘아바타’ 프로젝트가 끝나고 ‘알리타’ 속편이 나오길. 이 영화는 정말 3D 안경을 끼고 봐야한다.

-2019년 1월 28일 ‘알리타: 배틀 엔젤’ 일반 시사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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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19.02.01 13:19:02
'알리타 배틀 엔젤'은 일본 만화 '총몽'의 할리우드 실사화 버전인 사이버펑크 SF 액션물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우연히 쓰레기장에서 한 사이보그 소녀를 찾은 박사가 그녀를 고치게 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 알리타가 자신의 과거와 정체를 찾는 일련의 모험을 화려한 비주얼과 액션으로 전개해 나아간다. 이 영화의 예고편과 광고 등의 홍보 과정을 보면 주로 액션과 기술력을 집중으로 마케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몽'에 대해선 OVA 애니메이션 버전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사실 이 이야기에 큰 매력을 느끼진 않았으나, 2시간 가량의 시간과 할리우드 기술력이 합쳐지면 뭔가 특별한 게 나올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기술에 홍보를 초점을 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거 밖에 밀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CG 기술력에 대해 말하자면, 상당히 훌륭하다. 고철도시의 풍경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이보그들 캐릭터들을 위한 모션캡쳐와 분장의 조화 같은 세계관의 디테일은 물론이고, 모든 액션 씬들의 복잡한 동작들과 애니메이션들도 모두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나 예고편에서 나온 모터볼 추격전이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어떤 면에서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많이 연상되기도 했다. 고철도시의 디자인은 '레플원'의 콜럼버스 슬럼가의 '블레이더 러너' 스타일 어둡고 빽빽한 버전으로 느껴졌고, 모터볼 시퀀스도 '레플원' 초반의 뉴욕 레이스 시퀀스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할리우드의 역사 깊은 두 VFX 제작사인 웨타 디지털과 ILM의 일종의 라이벌 구도가 보여지는 대목이었다. 결과만 보면 ILM의 '레디 플레이어 원'시각효과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웨타 디지털의 '알리타'는 좀 더 야심찼다고 생각한다. 3D 효과에 대해 첨언하자면, 일부 액션 씬들과 풍경 숏들에서는 아주 훌륭했으나, 제2의 '아바타'라고 보기엔 어렵다. 이왕 볼 것이면 3D로 보는 것이 낫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CG 기술력에도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주인공 알리타에 있다. 예고편 공개 때부터 이슈가 된 일본 애니 스타일 큰 눈 디자인에서 이미 이 영화는 주연 배우의 완전한 모션 캡쳐를 토대로 새로 디자인한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운다고 선포했다. 예고편을 봤을 때 내가 가장 우려가 된 점은 바로 "불쾌한 골짜기" 효과였다. 모션 캡쳐 기술이 굉장히 많이 발전하긴 했으나, 아직 우리가 충분히 몰입할 만한 인간 표정을 구현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리타가 다른 CG 위주의 캐릭터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인간 캐릭터 옆에 있을 때, 특히 인간 캐릭터인 크리스토프 발츠나 키안 존슨과 함께 투숏에 놓일 때엔 너무 비교가 돼서 알리타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표정 연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키안 존슨의 휴고와 감정적 호흡을 맞추기 위해선 웃기도, 울기도, 화를 내기도 해야하는데, 이 감정들을 드러내기 위한 표정 구현이 너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미소를 지을 때도 누가 억지로 입꼬리를 옆에서 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울 때는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고, 화를 낼 때는 카리스마와 강렬함이 별로 안 느껴졌다. 주연 배우인 로사 살라자르의 연기력 한계일 수도, 기술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아직 모션 캡쳐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목이었다. 키안 존슨이 딱히 훌륭한 배우라는 인상을 받진 못 했으나, 기본적인 연기만으로도 감정 전달에서 알리타를 압도했다는 점이 이 영화에게는 제일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들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수많은 안면근육들을 가지도록 진화했고, 이 근육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는 능력도 탁월한데, 아직 2019년의 컴퓨터들은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만한 연산능력이 아직은 없다는 방증이 바로 이 영화다.
나는 애초에 '총몽'이라는 IP에 익숙하지도 않으며, 고작 본 거라곤 1시간 가량 되는 2부작 OVA 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재미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에는 이 이야기의 매력을 느끼기는 커녕, 원작이 그냥 나랑 안 맞는게 아니거나 과대평가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싫증이 났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인 "세계관 설명 1-세계관 설명 2-...-액션 쾅!-세계관 설명 n-세계관 설명 (n+1)-액션 쾅!!!!" 식의 구조를 띈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대사 상당 부분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보단 세계의 룰을 설명하는데 쓰이고, 누군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할 때마저도 대사 수준이 아주 기초적이고 허접하다. 물론 SF나 판타지 영화 같은 경우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런 설명들은 인물들의 초반 대사에 자연스럽게 몰아넣거나, 정보가 너무 방대하면 아예 프롤로그를 따로 만들거나 자막으로 내보내면 된다.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중간중간에 새로 등장해서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방해해한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다. 이 영화에 어떤 캐릭터 A가 있는데,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휴고가 알리타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좀 뒤에는 이 A가 다시 한번 알리타 앞에 자기 소개한다. 같은 캐릭터를 두 번씩이나 대사로 설명하는 건 편집에서 걸러냈어야할 부분이다.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A는 B, C, D, E 등의 여러 캐릭터들을 더 소개하는데, 한 씬을 통째로 할애하는 수준의 모놀로그지만 결국 이 캐릭터들은 모두 단역 수준의 비중이었다. 무익하고 재미도 없고 비효율적인 스토리텔링의 정석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원작을 오마주하려는 씬들이 억지로 삽입된 부분들도 보여서, 중간중간에 흐름을 어색하게 깨버리는 부분들도 굉장히 짜증났다.
대사들에 대한 불평의 연장선으로, 캐릭터들이 정말 너무 별로다. 영화 끝에 내가 알리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독립심이 강하다, 잘 싸운다 말고는 별로 없다. 알리타의 행동과 동기는 씬마다 다른 수준으로 일관성이 없어서 대체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너무 힘들었다. 조연들은 비교적 비중이 적거나 단순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덜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일부 캐릭터들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좀 괜찮게 느껴진 캐릭터는 크리스토프 발츠의 이도 박사, 마허샬라 알리의 벡터 정도였다.
말 나온 김에,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는 그저 그랬다. 로사 살라자르는 연기력 문제인지 기술의 한계인지 판단할 수 없어 뭐라 할 수는 없어 그냥 넘어가겠다. 다만, 그녀를 통해 앤디 서키스의 대단함을 세삼스레 또 느끼게 됐다. 키안 존슨은 처음 보는 배우이며 아직 경력이 짧은 배우이긴 하나, 주연급 역할을 꿰차기엔 아직 카리스마나 내공이 부족해 보이긴 해도 기본기는 있는 것 같았다. 제니퍼 코놀리는 아름답긴 하나 캐릭터의 비중이 너무 작은데다가 엉망진창으로 그려져서 그냥 배우에 대한 동정심만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크리스토프 발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와 '장고'로 혜성처럼 등장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타란티노의 각본 밖에서는 그 강렬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그의 포스트-타란티노 필모에서 가장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 것은 '다운사이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발츠는 완전 성격파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는 굉장히 과장된 캐릭터들 속에서 대활약하는 연기자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배우로서 별로라는 말은 아니지만, 연기폭이 생각보다 넓지 않거나, 적어도 기복이 상당히 심한 배우인 것 같긴하다. '알리타'에서의 그는 절제와 자상함을 주로 표현해야 했는데, 그의 말투나 연기 스타일에는 어울리지 않은 배역처럼 느껴졌다. 리암 니슨이나 마크 라일런스 같은 배우가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에 반해 마허샬라 알리의 벡터는 꽤나 전형적인 악당이지만, 원작 캐릭터 디자인과의 싱크로율도 괜찮았고 배우 본인의 카리스마도 상당하기 때문에 제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TV와 영화에서 굉장히 다양한 배역들을 훌륭하게 소화한 내공이 돋보이는 연기였다. 이상, 두 오스카 남우조연상 출신의 서로 다른 연기 스타일들과 그 결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는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아카데미 수상한 연기자가 조연 맡았으며 훌륭한 CG와 꽉 찬 세계관은 있으나 캐릭터와 스토리가 이 무게를 전혀 견디지 못했다는 점에서, '알리타 배틀 엔젤'과 흡사한 최근 영화로는 '주피터 어센딩'인 것 같다. '알리타'는 액션 씬들에서는 훌륭한 기술력을 과시하며 소위 말하는 눈뽕은 충분히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없다. 이 캐릭터들에 대한 몰입이나 애착도 안 느껴졌고, 이야기도 흐름이 어색했다. 결론적으로, '알리타'는 아주 훌륭한 기술 데모 영상이긴 하나, 영화로서 추천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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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군 님의 리뷰
2019.02.01 09:09:07
시각효과의 자신감, 이야기의 진부함 그렇게 무승부
0. <타이타닉><아바타>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꿈의 프로젝트`였던 <알리타: 배틀엔젤>(이하 `알리타`)는 비록 감독 자신이 직접 연출하지 않고, `신 씨티` 시리즈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영화 속 곳곳에 그가 구현하고자 한 시각적 포인트들이 눈에 띄었으며, 원작 <총몽>을 본 적이 없지만 보고 싶게 만들었다.(이건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1.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은 대추락 300년 후 26세기 지구 모두가 갈망하는 공중도시(자렘)과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고철 도시로 나눠져 있으며, 우연히 고철 더미에서 닥터 이도(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으로 기억을 잃은 채 살아 돌아온 사이보그 알리타(로사 살라자르)가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스스로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담은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다.


2. 영화 속 시각효과가 사용된 캐릭터의 경우 보통은 클로즈업을 피하는 편인데 <알리타>는 클로즈업을 피하지 않은 채 자신감 있게 시작한다. 그렇게 마주한 알리타의 얼굴은 투명한 눈동자, 미세한 모공과 주름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머리카락 찰랑거림의 디테일들이 잘 구현되어 있었으며, 인물의 다양한 감정 변화마저도 표현해 낸다. (큰 눈은 `눈은 마음의 창`이란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짐작한다.) 또한 알리타 이외에 다양한 사이보그 캐릭터들과 공중도시(자렘)와 고철 도시의 풍경 그리고 액션 시퀀스들의 시각효과도 훌륭한 편이었으며, 이런 시각효과의 자신감이 허세가 아닌 제대로 설득당하는 느낌이었다.


3. 이런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구성은 그리 새롭지 않은 한 인물의 성장담처럼 보였다. 물론, 개연성이 담보된 짜임새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 개연성이 도구적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점은 아쉬움 아닌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단계별로 이뤄진 이야기의 층들이 크레셴도처럼 점점 커지고, 이에 맞춰 액션 시퀀스의 규모가 비례하고 있으며, 액션의 폭발적인 타격감이 돋보였다는 점은 다행 아닌 다행이다.


4. 이렇듯 영화 <알리타>는 알리타의 정체성 찾기에만 집중한 이야기의 구성과 기술적 자신감이 합쳐져 만들어진 작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알리타 이외에 주요 캐릭터들이 알리타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고 느껴졌으며, 감정 변화도 밀도 있게 그려지지 않고 있단 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 생경함 속에서도 다양한 자양분을 통해 목표를 향해 나가는 알리타의 모습은 비단 상황적 이미지 때문이었지만 묘한 감정적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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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whi 님의 리뷰
2019.02.08 14:51:45
감독 : "아!아!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떡하지?(발동동)"
리뷰어의 사전정보
○ 국내 풋티지 상영이라고 30분가량의 영상을 보여주는 시사회에서 이미 약간은 감상함(용산 CGV 3D IMAX로)
○ 풀 영상도 아맥으로 보고싶었으나 개인사정상 280석정도의 일반관에서 관람

알리타:배틀엔젤

정리- 너무 급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는 캐릭터의 감정선.
아이맥스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눈뽕의 진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후회하지 않을까?
엔딩을 이렇게 할꺼면 그냥 쿠키를 써라.
황석희의 번역오타


혼자 너무 급한 우리의 알리타... 뭐가 그리 급한지 쫓아가질 못하겠네
게다가 우리 감독님은 또 하고 싶은 건 많아가지고 이거저거 다 만지작 거리면서 가느라 깊이 있게 제대로 완성되는 시퀀스가 거의 없다.
알리타는 이도 박사에게 발견되어 다시 태어나고 2일간 이도박사를 의심도 했다가 구하기도 했다가 인간남자랑 썸도 탔다가 스트리트 모터볼도 체험 했다가 아주 너무 바쁘게 살던데 갑자기 게으른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는...
이렇게 급하게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캐릭터의 감정적 깊이감이 너무나 얕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알리타는 왜 그렇게 악을 증오하는가? 이도 박사는 왜 갑자기 알리타의 요구에 순응하는가? 휴고는 왜 그토록 자렘을 가고싶어 하는가? 등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얕고 단편적으로 설명되고 그러다 보니 장르 특유의 철학적 사색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게 한다. 하나하나가 이렇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님에도...
이런 급한 호흡의 전개는 세계관의 설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리 어느정도 알고 갔는데도 이정도면 이건 내가 너무 알아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거거나 그냥 설명이 부족하거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론 후자라고 생각된다.

이미지, 솔직히 이 영화는 이미지로 이야기 구성의 미흡함을 덮어버릴 수도 있는 영화다. 풋티지 상영때 처음 본 그 영상미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건 아이맥스로 봤을 때의 이야기이다. 일반관에서 그것도 280석 규모의 크지는 않은 화면으로 볼때는 이미지의 화려함으로 이야기의 미흡함을 덮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눈뽕 맞기엔 너무 약하다는 것.
물론 이건 영화제작사가 뭐 어쩔방법은 없는데 애초부터 눈뽕으로 승부 보려 한 건 약간 안일한 생각이니 감수해야지.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알리타의 제작이 미뤄지면서 제임스 카메론감독에서 로버트 로드리게즈감독으로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였는데 그게 그냥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 이상하고 망작이라는건 아니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아바타와 알리타 두 작품 모두 이미지의 힘을 극대화 시킨 영화다. 오죽하면 아바타는 3D버젼이 따로 개봉 할 정도로 이미지의 힘을 강조한 영화들이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아바타는 그런 이미지의 힘, 눈뽕으로 인물 간의 감정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눈뽕을 극대화하는 신을 감정을 설명하는데 사용함으로써 그 깊이를 불어넣은 반면 알리타는 눈뽕을 그냥 눈뽕으로 쓴게 전부이다. 이미지의 힘을 오락적 요소로만 사용한 것, 그것이 작은 부분일지 몰라도 연출가의 차이로서 나타나는 꽤나 큰 마이너스요소가 됨에는 분명하다.

엔딩,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자 실망스러운 부분.
종종 이런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영화에서 보여지는 밑밥깔기식 엔딩,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끝맺음이 나지 않고 어영부영 끝나는 마무리 구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는 건 비판의 대상이 전혀되지 않지만 이렇게 빠르게 진행을 시키며 가장 중요한 감정의 절정신에서 조차 그 여운을 남기지 않고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진행 된 것으로 대충 넘기고 마무리해버리는 연출은 마감시간 늦어서 대충 마무리한 웹툰의 엔딩같은 느낌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호흡을 좀 늘리더라도 주인공 알리타의 감정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후속작 홍보는 쿠키영상으로 쓰는 게 완성도가 더 높지 않았을까? 굳이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끝나지 않은 이런 뒷처리 다 못한 찜찜한 기분을 들게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아이맥스로 본다면 이미지의 화려함이 주는 감동만으로도 충분 할 것이다. 물론 아이맥스가 워낙 비싸고 약간의 경쟁을 해야 티켓을 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만약 아이맥스가 아니라면 최소 400석이상의 대형 상영관을 이용할 것. 그래야 눈뽕으로 콩깍지가 씌일 수 있을 것이다.

2019.02.08 메가박스 코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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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19.02.07 02:43:58
시대가 변하듯 영화도 변한다는 것
세상은 변하고 있다. 덕분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더 좋고, 더 편하고, 더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지만, 정착 근본의 의미는 그러한 시대적 변화와 큰 상관 없이 그 근본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근본의 의미조차 변해야 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알리타:배틀엔젤>- (이하 '알리타')은 영화라는 근본의 공간이 이제는 변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영화 같다. <아바타> 가 나왔을때만 해도 변함없이 제임스카메론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여전히 빛나고 그가 아니라면 감히 상상할수도, 만들수도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감독 창작의 공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알리타>는 그러한 <아바타>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다.

<아바타>는 지금껏 영화라는 창작의 공간에서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관 자체를 모두 감독 스스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집을 지을때 설계를 하고 땅을 파고, 기초공사를 하고, 지붕을 얹고, 석가래를 올리고....모든 작업을 차곡히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창작으로 진행 됐다.

그에 비해 <알리타>는 그러한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뛰어난 원작의 이야기를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함께 최첨단의 CG를 이용해서 새로운 이미지와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기술'적인 것은 분명하게 '뜨악~' 할만 하지만, 특별한 아이디어나 창작의 순간으로 어떠한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 이야기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바타>가 등장하면서 혁신이라고 불릴만한 영화의 기술과 함께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고, 지금껏 본적없는 세계관을 하나 하나 창조해내면서 영화의 일대혁신을 몰고왔던 제임스카메론의 창조의 정신과는 전적으로 비교조차 될 수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2019년 현재, 전세계 영화팬들은 뜨악!~하게 하는 <알리타>는 <아바타>가 나오기 전부터 제임스카메론이 구상하던 작품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제임스카메론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아바타>를 능가하는 영화가 됐을 지도 모르겠지만, 로버트로드리게즈의 <알리타>는 그 어떤 영화적인 성취로 보여지는 부분들은 없다.

그래도 자신만의 색깔을 강렬했고, 그동안의 필모에서도 그러한 특별함은 분명하게 어필하였기에 제임스카메론은 그에게 이 영화를 맡겼겠지만, 전작에서 느껴졌던 로드리게즈 만의 색깔이나 특별함은 <알리타>에서는 거대한 자본이 몸소 느껴지는 CG들의 향연에 가려 어떠한 특별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알리타>의 가장 커다란 단점은 부족한 서사와 그 서사가 구성되어지는 이야기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미지들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들은 이미 디스토피아적인 여러 영화속의 이미지들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그러한 이미지들을 이 거대한 이야기의 서사를 대신하려는 모양새로 느껴진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가 내세우고 싶은, 영화적인 상상의 이미지를 최첨단 CG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기술의 영화 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방증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이야기의 서사보다 이미지들에 더한 장점을 가진 로버트로드리게즈 선택의 역효과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알리타>속의 액션은 그 어떤 액션 영화속의 시퀸스 보다 현란하고 화려하다. 특히 모터볼 경기 장면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러한 장면과 시퀸스 들은 처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포머> 이후 등장하는 '철거영화' 같은 타격감이 육중하고 탁한 여러 액션 영화속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모습들과 겹쳐지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26세기의 시대적 배경 또한 이미 스필버그의 <레디플레이어원> 속의 모습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영화는 더 많은 CG와 더 많은 철거영화들이 등장할 것이다. <알리타>는 그 변화의 시점을 선포하는 영화 같다. 설득력있는 서사보다 모터볼 경기의 장면들 훨씬 더 비중있게 그려질 것이다. 그래서 정신의 영화가 아닌 기술의 영화로 완전하게 뒤바뀌는 날이 멀어 보이지 않는다. 모터볼 경기의 현란함에 빠져드는 관객들은 하나둘 늘어 갈 것이고, 그러한 상상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는 장면이 등장하는 않는 영화들은 어느순간 적은 개봉관으로 옮겨가면서 관객들의 선택은 자신도 모르게 일방적이 되어가는 현실이 다가 올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뜨악할만한 CG의 기술은 영화의 '창작'이라는 공간이 '기술'이라는 공간으로 점점 변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알리타>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박수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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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21:51:54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눈은 튀어나온다
<알리타 : 배틀 엔젤>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단언컨대 주인공 알리타(로사 살라자르)의 큰 눈이다. 흡사 일본 애니메이션의 그것을 보는 듯한 그 눈에 대해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은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눈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면, 알리타는 그만큼 넓은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결과물이야 어떻든 간에 원작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 연출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그 큰 눈의 이질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게 평단의 주된 평가다. (“생각보다”) 이는 어쩌면 제작자와 감독이 CG에 워낙 능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애초에 그 큰 눈을 정체성으로 내세웠으므로 관객이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따져 물을 수 있는 지점은 그 큰 눈이 어디에서 왔고 여기에 잘 적응했느냐는 것일 테다. 왜냐하면 이 큰 눈은 여태까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 작품 중에 그것을 잘 활용한,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이 없어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보면 알리타의 동료들 눈은 그저 평범하므로 이 큰 눈은 그녀만의 정체성일 테다. 다르게 말하면 그 큰 눈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뜻한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그 큰 눈이 왜 필요한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있을 이유도 확실하고 없을 이유도 확실하다면 그것을 밀어붙인 이유만이 남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작품이 본래 만화였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만화에서 큰 눈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데 (<세일러문> 시리즈라던가), 그것이 3D라는 심도를 갖는 순간 이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요컨대 그 큰 눈은 본래 이상하지 않았고, 그게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그 눈이 존재하는 장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0차원은 점의 세계인데, 그 점은 뇌 어딘가에 박혀있는 기억이다. 그리고 1차원은 선의 세계인데, 그것은 음악으로 대표되는 리듬, 청각적 심상으로 표현되곤 한다. 또한 2차원은 면의 세계인데, 그것은 회화로 대표되는 풍경, 시각적 심상으로 표현되곤 한다. 마침내 3차원은 깊이의 세계인데, 그것은 카메라로 대표되는 공간, 공간적 심상으로 표현되곤 한다.



요컨대 영화라는 것이 3차원의 예술인 것은 카메라의 깊이에 리듬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에서 전반의 어머니와 후반의 케인을 관통하는 그 카메라에는 사진의 원근법에서 더 나아간 깊이감 (Deep Focus)이 있었다. 또한 그 리듬, <재즈 싱어>의 알 존슨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을 때 유성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할리우드의 부흥기에 잠깐 등장했던 3D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통해 다시금 현대에 등장하기까지는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말하자면 그 3D는 영화가 나아가야 할 다음 장소임에도 아직은 나아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2D)도 충분한데 굳이 자본을 들여서까지 무리하게 나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 자세하게 따져보면 카메라를 통해 2D에서 3D를 구현해낼 수 있는데, 왜 굳이 ‘진짜’ 3D로 넘어가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 카메라는 회화에서 원근법이라고 부르는 그 깊이감을 동적인 사진으로 끌어왔고, 관객들은 그것으로도 만족해서 화면 자체가 튀어나오는 3D 시네마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관객들은 그 3D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2D로 상영되는 그 전통적인 영화가 현실의 재현, 현실 이미지의 포착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이미지는 어찌 됐든 현실 위에 존재하는 유물론적인 사고를 지니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다. 반면, 그 3D는 2D인 것을 관객의 뇌에서 자체적으로 깊이감을 불어넣는 수용자 중심의 시각 편성, 요컨대 3D 시네마를 즐기려면 ‘안경’을 껴야 하는 것과 같은 부가적인 요청이 있고, 그런 피로감은 영화의 환영이 환영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환영에 개입한다는’ 배신감을 주었을 테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게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처럼 믿고 싶은 욕구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던 영화는 가짜 3D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그 심도는 기술적인 한계가 아니라 기술적인 만족에 가까운 것이다. 심지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VR 기술도 근본적으로는 액정 패널에 근본하므로 진정한 3D는 아니다. 말하자면 그 3D는 오로지 인간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그 3D가 요구하는 깊이감이란 것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정도, 단편적인 이해가 ‘사진’에 비유된다면 그곳에 ‘깊은 생각’을 불어넣어 세계의 확장을 이끄는 인간의 고등적인 사고, 그것이 카메라다. 단편적인 세계에서 시간이라는 엔진을 달아 세계 속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게 영화라는 예술인 셈이다.



즉 영화를 보는 행위는 우리가 생각을 스크린에 꽂아 넣는 것이고, 그래서 눈은 중요하다. 눈은 세계를 뇌로 인도하는 시각장치가 아니라, 뇌가 세계에 접속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블레이드 러너>의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을 떠올려보자, 또는 <싸이코>의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장면들이 눈을 클로즈업한 것은 지금부터 어느 세계로 접속하겠다는 출발신호와도 같았다. 우리는 그 눈을 보며 레플리칸트의 세계와 주인공이 살해되고 남은 살인자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 만약 눈이 세계를 뇌로 인도하는 장치였다면 시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을 테다. 다시 말해서 그 시각을 제공하는 카메라가 스크린을 만들어주지 않았을 때, 영화 속 그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눈이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시각장치’라는 공통점을 지니게 된다면, 그 두 가지 차이점은 단지 인간과 기계라는 차이일 뿐이다. 영화가 제시한 것은 그것 또한 ‘깊이’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불이 켜지고 스크린이 올라가면 영화가 제시하는 세계는 사라져버리는 것에 반해, 우리가 눈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눈앞에 없는 그 세계를 우리는 여전히 볼 수 있다. 요컨대 눈이라는 것은 세계를 본다는 것에 있어 불필요하기까지 하다고 여러 미디어는 말해왔다. 이를테면 눈을 가리고 득도한 무협지의 여러 영웅들, 또는 시각 장애를 딛고 일어난 현실의 여러 사람들, 이런 것을 보면 분명 인간은 눈이 없어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알리타가 큰 눈을 지닌 것은 우리에게 3D라는 심도를 말하기 위해, 눈이 앞으로 튀어나온다는 의미의 팽창이 아니었을까? 『총몽』이라는 만화가 스크린 위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3D를 통해 우리 눈앞으로 튀어나와야만 했던 이유는, 단지 스크린이라는 2D 세계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닐까? 요컨대 이 3D는 우리가 아니라 알리타 본인에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자아를 잃은 것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스크린 밖으로의 내지름 (<슈퍼맨> 시리즈는 늘 슈퍼맨의 정권이 뒤따른다), 즉 그 깊이감을 강조하는 형식이 개입하는 것을 자주 보아오곤 했는데, 어쩌면 이 영화에서의 내지름(알리타의 정권지르기!)은 2D 갈리(알리타)가 3D (알리타)화 되는 데 필요했던 과정이 아닐까?


‘거짓말 같은 게’ 아니라 ‘거짓말’



알리타를 보면서 그녀가 거짓말 같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은 그녀가 거짓말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거짓말 같은 게’ 아니라 ‘거짓말’이다. 문제는 그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게 자렘과 고철마을이라는 세계이며, 이 세계는 애초에 허구의 세계이지만 영화라는 이름의 실사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그 실사를 거부하고 거짓말을 표방하는 그 큰 눈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진실된 세계에서 홀로 거짓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요컨대 그녀는 영화 속에서 정말로 살아있는 걸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3D 효과를 잘 활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효과가 작품 속의 이야기에 깊숙하게 연계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 테면 그 호랑이는 정말로 있었을까? 라고 우리는 생각해보게 되는데, 즉 <라이프 오브 파이>가 던지는 물음은 영화 내부에만 그치지 않고 3D 시네마라는 물리적인 효과를 통해서 작품 밖의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요컨대 그런 것이 이 영화에도 유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이 영화에서 알리타의 큰 눈은 그녀가 만화에 기반을 두어 영화로 터전을 옮겨왔음을 말하는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이 영화는 원작과 현실이라는 양 갈래 사이에 ‘영화’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알리타는 갈리로서 갈리는 알리타로서 이름만 바꾼 채로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다. 이른바 깊이, 2D와 3D를 오고 가는 그 모습은 단지 우리에게 ‘스크린과 지면이라는 이름의 2D로만’ 관찰된다. 말하자면 그 네모난 창에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 ‘깊이’가 개입된 ‘진짜 세계(자렘)’를 그녀는 목격하게 된다.



만화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것은 네모난 프레임을 깨고 인물들이 다른 컷에 개입하는 것, ‘제4의 벽’을 깨는 행위이다. (최근에 <데드풀>에서도 그것을 실현한 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행위들은 만화/영화라는 각자의 세계 속에서만 이루어졌다. 요컨대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콘텐츠로 변형 및 재생산되는 요즘의 풍토에서, 여러 세계의 같은 주인공이 그 여러 콘텐츠를 주체의식을 갖고 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 만화에서 이 영화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음을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것은 안 되는 일일까? 왜 만화는 만화로서만 영화는 영화로서만 별개의 세계로서 존재해야만 할까? 그 만화에서 이 만화에 등장한 어느 인물이 같은 인물, 즉 평행 세계에서도 단 하나의 개체만이 존재한다는 개념은 본래 있었지만 (<트랜스포머> 만화에서의 유니크론처럼), 여러 매체를 관통하면서 하나의 주체가 하나의 ‘생(生)’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마치 그들의 거주지가 본성마저 결정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를 테면 만화 캐릭터는 심도가 없고, 영화 캐릭터는 심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한국인은 한국인다워야 하고 미국인은 미국인다워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미국계 한국인은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두 가지 세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할 가능성을 우리가 미리 차단해버렸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만화와 영화를 오가면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할 가능성을 우리가 미리 차단해버렸던 것은 아닐까? 출신지, 연고 ‘매체’가 인물의 특성을 결정한다는 그 뿌리 깊은 매체 유물론의 사고는 어디에서 근원한 것일까?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만화의 영화화라는 ‘튀어나옴’의 매체 미학을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2D가 3D로 변하는 과정에서 변하는 것은 매체, 그 거주지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적인 변화일 뿐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 점을 간과하고 만화의 영화화를 기획한다면 만화 캐릭터가 어설프게 영화의 법칙에 따르려고 애쓰는, 그 애쓰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처참한 완성도에 웃음이 먼저 나오는, 팬들로서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함에 통탄하게 되는 그 모습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영화화가 아니라 영화로의 이주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캐릭터의 삶을 지지해야 마땅할 텐데, 왜 영화가 만화를 캐스팅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쉽게 말해 만화의 영화화를 지지한다면 그들이 매체를 이동하는 과정에 돌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그 돌다리는 2D에 3D를 불어넣는, 그사이에 심도라는 이름의 돌다리를 놓아주는 것, 캐릭터가 영화로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리타 : 배틀 엔젤>이 어떤 성공한 영화화의 사례일지에 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가겠지만, 이것이 만화가 어떻게 영화로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석적인 답변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그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아니라, 그 눈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담긴 인물의 세계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왔다. 그리고 그 인물의 세계가 세계 전반으로 확장되는 것은 만화의 영화화 작품이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이고, 이런 차이점이 영화라는 단독 콘텐츠와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이다.



CG의 생(生)



점선면, 면이라는 시간의 단편을 쌓아 올리면 그것은 공간이라는 적층이 된다. 시간이 있기에 공간이 있고 따라서 영화는 시간이 있기에 그 속의 세계(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화에 매료되어 영화로 옮길 때 생각했던 것은 그런 생각이었다. 만화라는 매체 혹은 공간이 아니라, 만화라는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바르트의 말처럼 그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공간은 그 시공간 속에 몸담았던 이들에게만 유효한 것인데, 만화 속에서 삶을 보낸 등장인물들의 삶도 그 사진 속에서만 유효한 것일 테고, 하지만 만화를 영화로 만들 때 (거주지를 옮길 때)는 인물들에게 그 삶에 대해 물어볼 수 없으므로, 각색하는 이가 알아서 잘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이런 어려움이 영화 속의 사이보그 닥터 이도(크리스토프 왈츠)에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일까? 사이보그로서 사람을 재탄생시킨다는 것은 기본 베이스를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육신을 기계에 맞게 각색하는 것이다. 악기로 치면 음계를 조율하는 행위이고, 자동차로 치면 윤활유를 치는 것이며, 연애에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인 셈이다. 그리고 사이보그를 만든다는 것은 선 끝의 점들을 잇고, 그 선들을 꼬아 육체의 면을 이루어내고, 그런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 알리타라는 인격이 형성된다. 또는 우리는 자렘이라는 세계와 고철마을을 잇는 것이 거대한 선 여러 개를 꼬아 만든 강철 케이블이라는 점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다. 그 케이블은 두 세계를 잇는 것, 그 케이블은 두 ‘세계’를 잇는 선인데, 그 자렘이란 것은 깊이가 개입된 결과였었다. 다시 말해서 작품 속의 세게에서 깊이라는 건 ‘높이’라는 것으로 지칭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강철마을과 자렘을 갈라놓는 깊이란 것이 바로 만화와 영화의 근본적인 경계처럼 보이게 된다. 왜 자렘은 고철마을 사람들에게 ‘비행’을 금지했을까? 자렘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 물음은 이렇게도 쓰일 수 있을 테다. 왜 영화는 만화에게 ‘비행(=n차원도약)’을 금지했을까?



나는 이 영화에서 리얼리즘을 따지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웨타 디지털은 이미 <혹성탈출>과 <반지의 제왕>을 통해서 컴퓨터를 연기하는 인간을 만들어낸 바가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대한 질문은 매체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캐릭터의 리얼리즘이 되어야 한다. 그 캐릭터는 정말로 살아있는 걸까? 이때 만약 누군가가 그 캐릭터는 단지 콘텐츠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을 돌려주어야 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 세계에서 계속 살아갈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면, 만화 속 캐릭터가 영화에 옮겨와서도 계속 살아갈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만화에서 영화로 살아가는 과정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고 어떤 고충이 있을 것인가?



눈을 감으면 새까맣게 변한다는 점에서 영화관과 우리의 시야는 비슷한 면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눈을 감아도 우리의 생각은 멈추지를 않는데, 그렇다면 영화의 스크린이 꺼져도 그 세계는 멈추지 않을 것인데, 만화 책장이 끝나고 그 어둠이 세계에 서릴 때, 그것을 피해 영화로 이주해 온 소녀의 모습은 눈을 감은 뇌 속에서 스크린의 어둠으로 이주한, 아티스트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화 초반에 자렘의 쓰레기 배출구에서 떨어진 그녀의 모습을 자렘이라는 면의 세계에서 강철마을이라는 선의 세계로 떨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테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영화 초반에 알리타가 떨어지는 모습을 현실의 세계에서 영화의 세계로 진입하는 우리의 의식으로도 볼 수 있을 테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를 영화가 되려는 만화의 모습으로 보는 게 맞을 테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긍정해 준 게 제임스 카메론이다. (<아바타>가 나비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알리타를 위해 깔린 노선에 가까워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만화가 영화로서 살아가는 법, CG의 생(生)에 관한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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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 님의 리뷰
2019.02.03 19:35:02
[ 마흔 세 번째 리뷰 ] 알리타: 배틀 엔젤
알리타가 개봉전 미리상영을 하는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IMAX 3D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볼 수 있는 기회였죠. 용아맥에서 보고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서울에 살고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시간이없었거든요. 무엇보다도 돈이... 그래서 부산에 유일한 IMAX관, 서면 CGV에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일단 간단하게 보고 나온 후기를 말씀드린다면 CG, 영상미, 액션이 정말 너무나도 좋았던 영화였고 이 영화는 개봉할때 4DX로 볼 영화입니다.

고철쓰레기장에서 발견된 한 로봇. 몸은 완전히 없어지고 머리만 있는데, 뇌가 살고있는것을 확인한 이든박사는 로봇을 데리고 갑니다. 몸을 로봇몸으로 감싸 다시 생명을 불어넣게 해줬죠. 이전에 안좋은 사건으로 죽은 딸의이름 '알리타'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을 합니다.

- 연기
​아.. 연기 진짜 미쳤습니다. 사실 흠이 안보였던 연기였습니다. 특히나 알리타 연기를 한 '로사 살라자르'는 진짜... 미친거 아닙니까?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연기가 정말 미쳤습니다. 온 몸이 CG라서 그녀의 진짜 모습은 보긴 힘들었다만 연기 너무 잘했습니다. 선이 악으로, 악이 선으로 변하는 모습에서도 연기가 너무 좋았고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사실 처음에 그녀의 이름을 '알리타'라고 지어질때 눈물날뻔...

​- 스토리
스토리는 상당히 긴 영화입니다. 사실 이렇게 1부 2부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워야겠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2부가 기대됩니다. 진짜... 그리고 사실 시작부분을 화려하게 매꾼 영화이기도 하지만 스토리가 조금 길어 여러가지의 TMI가 담겨있는 부분도 없지않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엄청 긴 영화는 아니고 적당한 2시간 짜리 영화여서 마음에 드네요. 스토리가 긴 만큼 여러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었는데 특히나 이 영화는 바로 '로맨스'요소가 담긴 액션 SF영화였습니다.

- 비주얼
​이 영화는 미쳤습니다. 일단 IMAX 3D관람자로써 할 수있는 말은 입체효과도 좋았고, CG도 좋았으며 화려한 액션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아주 아주 부적합한 모습이 없지않아 있었습니다. 많이 잔혹학 시대에서 잔혹한 기술과 잔혹하고 무섭게 생긴 로봇, 사람과 로봇을 살해하는 모습도 잘 담겨있었기에 아이들과 보러갈 사랍들이라면 조금 주의를 해야할 영화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잔인하다는게 아니라 잔인함을 로봇으로 승화시켜 보여줬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보기에는 좀 무섭지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CG는 일단 진짜 좋았다는 점.

​- 결론
​오~래전부터 예고편만 바라보았던 이 영화는 사실 개봉일이 많이 밀린걸로 저는 알고있었습니다. 알리타는 지금 미국에선 상영또한 안한 상태이면서 한국에선 빨리 개봉을 한 영화인듯 합니다. 정말 오랜 세월이 지나 드디어 접한 영화였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고, 액션과 컨셉, CG와 달달한 로맨스까지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스토리상으론 유치해 보이지만 영상으로써는 결코 아이들이 쉽게 볼 수없는 영화이기에 내용과 영상이 좀 안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추천드리고싶네요. 4DX로 보면 이 영화는 더 재밌을듯 합니다. 스릴넘치는 액션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겠죠!

남녀노소 즐길 수 없는 액션영화지만 꼭 시간나신다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초록색 신호등과 4점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새날 님의 리뷰
2019.02.02 15:18:42
입덕을 부르는 매력적인 캐릭터 '알리타'
26세기, 도시는 대추락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닥터 이도(크리스토프 왈츠)는 폐허로 변한 도시의 고철 더미 속에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를 발견하고 자신의 거처로 그녀를 데리고 온다. 잘린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 자리에는 슈트가 씌워지고, 여기에 이도의 따뜻한 보살핌이 더해진다.

이도의 정성 덕분에 알리타는 얼마 후 상처를 딛고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등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조심스레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는 알리타, 그녀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친구 휴고(키언 존슨)가 생기는 등 주변에 점차 눈을 떠가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적들이 알리타에게 적의를 드러냄과 동시에 조각조각 끊겨 파편화돼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은 기억을 잃은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가 전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SF액션블록버스터로서 영화계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키시로 유키토의 일본 만화 시리즈 <총몽>이 이의 원작이다.

거대 스케일의 세계관,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액션

영화 속 세계는 둘로 크게 나뉜다. 모두가 갈망하는 하늘 위의 공중도시 자렘 그리고 폐허로 변해 고철 쓰레기가 가득한 도시가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설정은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혀 정반대의 중력이 존재하는, 각기 다른 세상을 그린 프랑스 영화 <업사이드 다운>을 연상케 한다. 상부세계로 불리는 위쪽 세상과 하부세계로 불리는 아래쪽 세상은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자렘과 고철도시를 각기 빼닮았다. 모든 자원과 자본이 집중되는 등 세상은 상부세계가 지배하고 있으며, 하부세계는 디스토피아로 그려져 있다. 두 세계의 접촉은 금기 사항으로써 영화는 바로 이 금기에 천착한다.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자렘과 고철도시 사이에는 아직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결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비밀이 감춰져 있다. 휴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공중도시 자렘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지만, 자렘은 아직까지 그 실체를 한 번도 드러내 보인 적 없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도시였다. 알리타는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남과 동시에 악과의 일전을 펼치며 점차 전사로 성장해간다.

상반된 두 도시로 나뉜 독특한 세계관과 그에 걸맞는 거대 스케일, 그리고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화려한 액션은 단연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라 할 만하다. 특히 모터볼 경기의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짜릿한 종류의 것이었으며, 전광석화와 같은 알리타의 몸동작에 이은 적을 향한 타격감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고도 남을 만큼 시원시원한 것이었다.

혁신적인 기술로 알려진 웨타 디지털이 시도되었으며, 블루스크린을 벗어나 배우들이 슈트를 착용, 이를 일일이 캡처하는 방식인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 적용되어 탄생한 CG 알리타 캐릭터 역시 매력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입덕 부르는 매력적인 캐릭터 ‘알리타’

실제로 영화 속 알리타의 움직임은 CG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 사람과 함께하는 연기에도 이물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만으로도 기술력의 성장은 놀랍기 짝이 없다. CG 기술력이 또 한 단계 상승했음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다. 기술을 토대로 하는 영화 산업의 점증적인 발전을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알리타는 반은 인간이며 반은 기계인 사이보그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캐릭터다. 적을 향해서는 무한한 적개심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날렵한 동작과 필살기로 적들을 단숨에 쓰러뜨린다. 반면 친구에게는 따스한 우정을, 또한 연인을 향해서는 순정을 드러낼 줄 아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한없이 순수하고 여린 듯 보이는 소녀 알리타의 이면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이 늘 상존하고 있어 측은지심을 유발해온다. 아울러 정의감에 분노가 폭발, 악에 당당히 맞서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흐름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복잡 미묘한 알리타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영화 <마녀> 속 ‘자윤’ 캐릭터가 절로 떠오른다.

이렇듯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은 볼거리 이상의 강력한 매력을 뿜어낸다. 알리타는 덕후들의 입덕 요소를 골고루 갖춘 캐릭터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설날 연휴엔 입덕을 부르는 알리타의 매력에 흠뻑 도취해보는 건 어떨까? 그녀의 덕후 될 준비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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