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House of Hummingbird)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한국,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8.29 개봉
감독
김보라
배우
박지후
김새벽
정인기
이승연
박수연
손상연
박서윤
정윤서
설혜인
시놉시스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중학생 은희는 방앗간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온 가족이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 있을 동안, 은희는 오지 않을 사랑을 찾아 섬처럼 떠다닌다.

이런 은희의 삶에, 그녀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어른이 찾아온다.
85.32%
3.83점
키노라이트 분포
16개
93개
별점 분포
리뷰
71

김동진 님의 리뷰
2019.09.03 00:13:55
지금의 나, 그때 나를 뺀 세상의 전부
1. (...) '은희'가 느끼는 외로움 내지는 소외감의 중요한 원천은 영화의 배경이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점에서 온다. 좋은 '학군'을 찾아 모인 사람들 속에서 '부모 망신시키지 않는' 일이 중요한 가치처럼 주입되고 '서울대에 가는 일'이 마땅히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단계처럼 당연시되는 세계에서 '은희'에게는 같은 한문 학원에 다니는 '지숙'(박서윤)을 제외하면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교우'들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영화 초반,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린 '은희'의 뒤로 같은 반 누군가의 "저렇게 잠만 자고 공부 안 하면 우리 집 파출부나 하게 될 걸"이라는 말이 들린다.) 요컨대 <벌새>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경제적 형편이 아니라 사춘기 속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과 관계들, 특정한 지역 사회에서의 타인들과의 비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세계 자체다. (...) (2019.09.02.)
('지금의 나, 그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라는 제목으로 발행한 이메일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의 첫 글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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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의 일부라고 믿었거나 전부라고 느꼈던 존재들이 일순간 사라지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잘리거나, 무너지는 과정들을 차례로 겪으며, 끊임없이 불화하는 세계와 부딪히며, 우리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쉽게 주저앉지 않고 섣불리 연민하지 않으며, 공명하고 공감할 줄 알게 되며, 울고 난 얼굴로 눈을 뜨며 밥을 먹고 어제 만나지 못한 세계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가방 메고 주먹 쥐고, 여전히 궁금증을 안고. 영화 <벌새>에는 들을 수 없었던 대답들, 하지 못했던 질문들, 알고도 눈 감아야 했던 일들, 만져지는 상흔들이 있다. 이건 꼭 '은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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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님의 리뷰
2019.08.26 23:13:05
벌새
01.

영화 <벌새>의 은희(박지후)는 <아비정전>의 아비와 닮았다. 아비에게 명지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은희는 아비와 다르게 땅에 착륙하는데 성공한다. 이 착륙의 성공은 은희가 자신은 ‘표현’하며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함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작점에 명지와의 만남이 있다.



02.

명지는 어떤 지점에서 은희에게 영향을 주게 된 것일까. 그건은 명지가 은희를 바라봐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존중받았기때문이라 할수있다. 극 속 은희는 계속해서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가족, 친구, 남자친구등 말이다. 그들에게 은희는 사랑을 받고 주는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 은희는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뿐 감정적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 행동에 대한 액션과 리액션의 관계만 지속될 뿐이다.. 그러나 명지와 은희, 그녀들의 관계는 다르다. 명지는 은희에게 자신의 힘든 모습을 내보이며 자신도 너와 같고, 은희 그녀와 다른 자들에게 섣불리 동정을 갖지 말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힘들때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렇듯 은희는 명지에게 만큼은 친구, 여동생, 환자, 여자친구, 선배, 딸. 그 무엇도 아닌 은희가 되는것이다.



03.

극에서 ‘문’이라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간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문’이라는 소재는 장벽이라는 은유를 갖는다. 오프닝에서 은희는 902호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강하게 소리치고 벨을 누른다. 그러나 그녀가 사는 집은 1002호다. 번지수를 잘못찾은 것이다 1002호에 제대로 찾아간 후에 그녀는엄마가 문을 열어준 후에야 들어간다. (그녀가 집 문을 연것이 아니라, 엄마가 문을 열어준다.)그렇게 오프닝이 종료된다. 이에 반해 엔딩은 소풍을 가는 날 학교운동장에 소녀들이 수다를 떨며 모여있다. 주인공 은희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한다. 초반 은희는 잠을 청하며 소통을 단절한다. 그러나 운동장에서의 은희는 같은 학교의 친구들을 쳐다보다. 그녀를 못들어가게 막았던 ‘문’으로 은유되는 장벽도 사라졌다. 그녀가 친구들과 어떻게 될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 그녀는 장벽이 사라진 세계를 유유히 걸어다닐 것이다. 또한, 은희 언니인 수희(박수연)에게 문을 열어주는 존재는 은희 뿐이다.



04.

현재 ‘그 시절 그 나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겪거나 이야기 들었을 법한 경험,이야기’들을 94년의 은희는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그것을 겪는 은희를 바라본다. 이 감정은 괴이하다.

이 감정의 파동은 비단 94년 은희라는 소녀에게 일어났던 것에서만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순수의 상태에서 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고민을 94년이라는 시간으로 갖고 들어가는 것이다.

<벌새>리뷰를 읽으면 누구나가 하는 ‘보편적’인 단어는 아마 이 지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것은 지금의 누군가가 겪고 있을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감독 에드워드 양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비슷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두 감독이 다른 이유는 인물을 바라보는 거리에 있다는 지점을 상기하고, 새로 떠오르는 감독의 세계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을 생각하고싶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oviemon 님의 리뷰
2019.08.18 07:28:45
보편적 삶과 감정의 무게를 응축한 날갯짓, <벌새>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 김보라 감독은 전 세계 영화제 25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 <벌새> (2018)로 장편 데뷔하기 전부터 이와 같은 보편적인 심리를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이야기해 왔다. 전작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 (2011)에서는 리코더를 잘 연주해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 ‘은희(황정원)’를 중심으로, 이번 장편영화 <벌새>에서는 사랑을 위해 벌새처럼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중학생 ‘은희(박지후)’를 중심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흐를 감정을 묘사했다. 전작과의 차이점이라면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단순히 공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균열을 경험하는 개인을 벽에 금이 간 집과 맞물려 다루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세일즈맨> (2016)처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의 삶을 1994년 10월 21일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함으로써 묘사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이기에 1994년 서울만의 특정한 분위기를 전달하지만, 사랑 때문에 누구나 겪는 관계 속 붕괴와 그 후를 이야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기도 하다. ‘은희’는 몸집이 작지만 꿀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서 무더운 여름 공기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은희’는 가족, 친구, 후배 등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뜻하는 바를 이루기 직전까지 가지만 번번이 좌절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귀 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한 후 생긴 상처나 테이프로 가리려는 갈라진 방 벽처럼 ‘은희’의 주변에 상처의 흔적이 하나둘 기록된다.

그러다가 ‘은희’는 우연히 한자 보습학원에서 ‘영지(김새벽)’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 약간의 거리를 둔다. 왜냐하면 14세 소녀의 눈에 ‘영지’ 선생님은 세상과 다른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상처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슬픈 감정을 표출했을 때 보게 된 선생님의 모습을 기점으로 ‘은희’는 또다시 날갯짓한다. 이는 그동안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은희’에게는 ‘정말 힘들겠구나’ 혹은 ‘정말 슬펐겠구나’라는 동정에 가까운 말이 아니라 조용히 차 한 잔을 건네거나 무심한 척 나오는 작은 동작 등 위로하려 하지 않는 무언의 표현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삶은 무언가를 깨닫는다고 해서 그 이후가 영원히 평탄해지지 않고 굴곡진 길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럼에도 성장에서 중요한 시기에 얻게 된 깨달음은 관계 속 균열을 다시 한번 마주해도 더는 무너지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영화 <벌새>는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대단하지 않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인류의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은희’처럼 가까이에 있어서 등한시했던 주변을 꾸준히 돌아보며 ‘영지’ 선생님이 남긴 편지 속 내용처럼 삶이란 나쁜 일이 닥치면 좋은 일도 함께 한다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매일 누군가를 만나며 무언가를 나누는 행복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1994년의 이야기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경유해 미래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영화 <벌새>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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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네 님의 리뷰
2019.08.27 01:04:41
<벌새, 2018> #시사회 #스포주의

1994년 누군가의 이야기.
세계 각종 영화제 25개 부문 수상중.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던 자전적 이야기.

90년대는 그랬다.
응답해달라고 외치고 싶은 찬란한 시대임과 동시에, 돌이켜보면 야만스러움이 익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폭력과 학교체벌이 빈번했고, 거리에는 공기반 소리반이 아닌 담배반 연기반이 자연스러웠다. 사소한 도둑질은 범죄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교실 이데아'는 충격과 불편함을 줬고, 서태지는 우상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그 날도 저녁밥을 차린다. 남아선호사상을 근간으로 오빠는 여동생을 때릴 수 있었고, 동생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했다. 그래도 오빠는 가족의 중심이니 외고와 서울대를 목표로 온 가족의 서포트를 받았고, 여동생에게 꿈이란 잠을 잘 때 외에는 꿀 수 없었다. 오로지 '집안의 자랑' 혹은 '집안의 망신'이라는 이분법적 결과가 중요시 되던 시절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나라는 근 25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있음에 새삼 더 놀란다. 수십개의 전화번호를 외웠고, 급할 땐 삐삐에 8282를 쳤던 것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는 변화와는 결이 다르다. 해동검도와 서예학원의 반가움보다는 당시의 잔인했던 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이 영화가 참 교묘하고 치밀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독립영화라 할 수 있나.
버젯이 어느 정도 될까 의아할 정도로 장소, 소품, CG 등 저예산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 영화는 감독의 섬세한 고민과 세밀한 노력에 의해 완성되었다. 가장 먼저 개발되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낙후된 개포주공과 대치은마를 주요 촬영 장소로 설정하며, 당시 중학생이던 자신의 기억 속 자전적 이야기를 평범한 이름의 '은희' 라는 인물에 이입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인터뷰에 관객으로서 꽤나 경탄했다. 다만 주인공의 너무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으려 하다보니 다소 피로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오래 준비한 영화이니만큼 단단한 구성과 개연성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내 삶도 빛날 수 있을까?
은희 엄마가 외삼촌에게 그랬듯,
영지선생님에게 은희는 쓸쓸하게 떠나간 뒷모습까지 환히 밝혀준 등대였다. 그래서 은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충분히 '빛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여전히 너무 각박해 보일까봐. 그리고 영지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할까봐.


"독립영화의 탈을 쓴 영잘알 감독의 정답지 같은 영화."

"너무 잘 만들어서... 역설적으로 삭감되는 인간미."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시선, 박지후와 김새벽."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전해지는 삶 속 희망의 빛."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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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8.26 22:39:45
영화는 미시사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특징이 있다. 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의식을 조명한다. 이런 구성은 개인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깊은 공감과 이해로 그려낸다. 김보라 감독은 자신의 첫 데뷔작으로 1994년 당시 자신과 같은 나이인 소녀의 일상을 그려냈다. <벌새>는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맑지도 흐리지도 않던 은희의 일상을 통해 미시사로서의 역사를 말한다.

1994년은 군부 독재 정권의 잔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군부독재정권의 종식을 알리는 순간이었으며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꿈꾸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고도의 경제성장 때문에 국민들에게 근면성을 강요하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했으며 인간보다 물질의 가치가 우선이 되는, 시대의 변화를 향한 열망과 일상에서 겪는 변화의 체감이 온도차를 보이는 시대이기도 했다.

14살 은희는 공부 대신 그림에 관심이 있다. 여느 중학생처럼 남자친구와 어울리는 게 좋고 공부하라는 담임선생의 말에 신물이 나며 가족보다 친구와 어울리는 게 더 즐겁다. 평범한 중학생 은희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다. 첫 번째는 가족이다. 춤바람이 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한 어머니, 학원 대신 남자친구와 놀러 다니는 언니와 그런 언니를 잡으려 드는 아버지, 똑똑하지만 성격이 나쁜 오빠와 그런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는 은희의 관계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서로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사랑과 우정이다. 둘도 없는 친구 지숙과의 다툼과 남자친구 숫기 없는 남자친구 지완과의 끈끈하지 못한 관계, 갑자기 나타나 애정을 표하는 후배 유리의 존재는 은희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 낸다. 이런 영희에게 한문 학원 선생 영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은희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섬세하고 굳게 어루만져주는 영지의 위로는 존경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세 번째는 자신이다. 은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다. 또 가족 내의 문제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는 성숙한 성격도 아니다. 오빠처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고, 언니처럼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속일 수도 없는 은희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불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은희의 현재를 보여주는 소재가 혹이다. 은희는 귀 뒤에 난 혹으로 입원을 필요로 하는 수술까지 받게 된다.

이 혹은 은희가 지닌 내면의 고통을 의미하며 그 고통이 뭉치고 뭉쳐 혹이라는 형태로 형상화된다. 혹을 떼어내도 은희의 현재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1994년이 되어도 사회는 여전히 물질의 가치가 우선되고 가부장적인 강압과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이런 은희를 통한 보편적인 일상이 담아내는 당시의 의식과 시대상은 세 가지 소재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첫 번째는 여성이다. 은희의 가족에서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똑똑했던 어머니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떡 장사를 하는 아버지에 경제적으로 묶인 존재가 된다. 어머니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건 물론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걸 눈감아 주는,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보여준다. 이는 은희와 언니 수희 역시 마찬가지다. 수희는 질이 나쁜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학원을 빠지고 놀러 다니면서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수희의 모습은 개인의 일탈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오빠 대훈이 아버지에 의해 명문대에 진학해야 된다는 기대감에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는 점,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 스트레스로 엇나간 존재로 볼 수 있다. 은희는 대훈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폭력의 대상이 된다. 대훈의 폭행은 부모에 의해 남매간의 싸움으로 치부되고 눈앞에서 본 폭력 역시 침묵 속에 넘어가게 된다.

어머니는 은희에게 꼭 대학에 진학하라고 말한다. 대학의 로망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어머니의 못 다한 꿈을 이뤄달라는 소망의 의미보다는 대학을 나와야만 대우를 받는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구조에서 남성의 경제적 속박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어머니는 대학으로 보았고 은희는 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벌새다. 은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영지는 오랜 시간 대학을 휴학했다 말한다.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영지의 휴학은 당시 대학 내에서 불었던 민주화 운동과 연관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영지는 삶이 힘들 때 손가락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를 한다. 손가락만은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희가 영지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잘린 손가락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영지가 차 한 잔과 함께 은희의 아픔을 들어주면서 해결을 위한 조언보다는 위로를 해준다는 점, 재개발에 저항하는 현장을 지나가며 그들 편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은 세상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겨내기 힘든 공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지는 은희에게 '벌새 같은 삶'을 살아가라 이야기한다. 더 이상 맞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영지의 진심어린 조언은 제목인 벌새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벌새는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단독 생활을 한다. 또 몸 빛깔에 있어 암수가 비슷한 종이 많다. 영지는 시대의 여느 여성들처럼 가부장적인 폭력과 억압에 노출된 영지에게 이와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지켜내라는 인생의 조언을 건넨다. 이는 영지가 살아온 길이자 앞으로 영희가 가족 안의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다짐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수대교이다. 1994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성수대교붕괴사건은 너무나 빠르게 성장했기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겼던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번지르르한 외형에 비해 내부는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고 내면의 침식은 외부의 붕괴를 가져왔다. 은희의 가족은 떡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서울 중상류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외도를 눈감아 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교육신화에 매몰되어 대훈의 폭력에 눈을 감아주는 부모의 모습은 내적으로는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진, 겉으로만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성장과 성장에만 매몰된 채 그 내면의 관계를 보지 못하는 한계는 도입부의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은희가 집을 착각해 아래층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문명의 상징인 아파트의 문처럼 서로 한 건물에 살지만 서로를 향해 단단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고도의 성장 속 가려진 인간소외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성수대교의 붕괴는 이 마음의 단절과 서로를 향한 몰이해가 얼마나 큰 슬픔과 비극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벌새>는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의 내면을 보편적인 정서로 담아내면서 한 개인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감독은 당시의 의식과 사회상의 문제를 은희의 일상을 통해 그려내면서 따스한 위로와 함께 희망찬 미래를 그려낸다. 은희가 학원 책장에 걸린 책 중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고르는 장면은 영화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안정된 생활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크눌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이의 이해와 사랑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가치와 상반됨과 동시에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담아낸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아픔만이 가득한 은희의 삶에 희망찬 미래를 불어넣는다. 이 희망찬 미래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삶이란 돌이켜 보면 항상 맑지도 흐리지도 않던 나날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 당시에는 억압과 고통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과 소중한 행복이라 여기지 못했던 순간들이 기억을 장식한다. 그래서 아픔도, 고통도, 잘못도 날이 흐리다고 하늘을 탓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작품은 그런 순간들을 품은 이들에게는 아픔을 향한 공감과 위로를, 그런 순간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벌새처럼 현재와 맞서 싸우라는 조언을 건넨다. 보편적 개인의 오늘을 통해 시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하는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성장담에서 담아낼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조차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인생의 사춘기를 통해 같은 시대의 아픔을 품은 이들을 위로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될 가능성을 품은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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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옹 님의 리뷰
2019.10.31 12:53:26
시대를 앓는 소녀
1994년, ‘은희’(박지후)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 시절 여름, 은희는 말간 도화지 같았다. 은희는 이제 막 눈을 떠 시대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시대는 그런 은희에게 자신의 불온함을 하나씩 비치기 시작한다. 영화 <벌새>는 1994년 이제 막 시대에 눈을 뜬 은희가 어떻게 시대를 앓고 성장해나가는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늦은 밤, 은희의 언니가 학원을 빠졌다고 아빠에게 혼나고 있다. 아빠로부터 ‘년’이라는 비속어가 섞인 폭력적인 언사를 들으며 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 때 은희의 외삼촌이 술에 취한 채로 은희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은희네 집을 찾는다. 외삼촌의 등장으로 폭력은 일단락되고 잠시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의 어색한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고 은희 엄마가 깎아놓은 사과 한 조각도 들지 않은 채로 삼촌은 현관으로 나선다. 은희는 삼촌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드린다. 그리고 “몇 살이냐”고 묻는 삼촌의 질문에 짧게 답한다. 삼촌은 별 말없이 이내 문 밖으로 사라진다.
이때, 가족들이 문을 향해 서 있는 순서는 앞으로 있을 삶과 시대가 주는 상흔과의 거리를 보여준다. 방금 현관문을 열어준 은희를 시작으로 엄마, 언니를 거쳐 아빠를 지나 오빠가 제일 집 안쪽에 자리한다. 은희의 오빠는 시대와 가장 거리가 멀다. 그는 은희만큼 시대를 감각하지 못한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아빠의 총애와 기대를 받으며 자란 그는 시대에서 멀어진 딱 그만큼 좁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은희의 오빠는 부모의 다툼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은희에게는 가장 큰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은희의 오빠의 세계는 집 그리고 남성의 세계 둘 뿐이다.
반면, 은희가 응시하는 세계는 보다 다양하다. 남자친구, 친구, 그리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여자 후배와의 관계가 있고 그리고 은희의 삶의 방향키를 쥐고 은희의 시야를 틔워준 ‘영지’(김새벽) 선생님과의 관계도 있다. 은희는 유동하는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느린 속도로 사람들을 훑고 지나가는 시대가 궁금하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엄마는 은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 은희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부른다. 실은 은희가 집을 잘못 찾아간 것이었다. 한 층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자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온다. 은희는 자신이 애타게 엄마를 찾은 일에 대한 서글픈 마음이 아직 조금 서려있지만, 엄마는 은희보다는 은희가 사온 대파의 상태에 더 관심이 많다. 이렇듯 엄마는 은희와 묘하게 어긋나있다. 훗날 모녀의 어긋남은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은희는 항상 애타게 엄마를 부르고 있지만, 엄마는 살아가기에 바빠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남겨진 상실의 상흔을 홀로 핥느라 은희의 부름을 듣지 못한다.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를 직시하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은희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받아준 것은 한문 학원의 영지 선생님이다. 그녀는 세계의 표면을 보고 이제 막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된 은희에게 세계의 깊은 곳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연결”에 대한 것이다. 사는 일은 영지 선생님에게도 알다가도 모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은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인연의 깊이이다. 은희의 관계는 이제 막 가정과 학교를 넘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은희가 맺는 관계의 수가 많아지고 복잡해질수록 은희에게 필요한 것은 뿌리이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뿌리가 맞닿은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폭력 앞에 무너져 내릴 때, 버틸 수 있는 삶의 뿌리 또한 은희에게 전한다.
개인이 시대에 불온함에 맞아 세차게 흔들릴 때 삶을 붙들어 줄 뿌리로 영지 선생님은 ‘손가락’을 이야기 한다.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지 선생님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손가락’이다. 그렇기에 영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불러준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시는 밤”으로 시작하는 <잘린 손가락>이라는 노래는 영지 선생님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을 담은 노래이다. 아마 그녀가 앓는 시대가 있다면, 그 마음은 손가락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있을 것이다.
은희에겐 혹이 있다. 귀 밑에 만져지는 멍울을 남자친구는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는 곧바로 혹임을 알아차린다. 영화 속에서 몇 없는 남성들은 모두 수직적이며 각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빠는 가장으로 군림하고 담임선생님도 ‘노래방 대신 대학 간다’를 외치게 시키며 날라리를 색출하는 사람이며 오빠는 폭력을 행사하며 육체적 우위를,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우며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시대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시대를 민감하게 읽어내지는 못한다. 은희의 혹을 지나쳤던 것처럼, 폭력을 지나치고, 사랑을 지나치고, 유대를 지나친다. 은희의 혹은 이들이 움직이는 시대의 폭력과 무관심, 단절이 차곡차곡 쌓여 자라난다. 은희에게서 혹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일방적으로 시대를 받아들이며, 시대를 앓았던 한 사람이 시대의 혹을 떼어내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대를 읽어나가겠다는 의미다. 혹을 떼어낸 은희에게 영지 선생님이 찾아온다. 그리고 은희에게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 있지마” 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시대의 거대한 움직임은 아직 어린 은희가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큰 벽과 같다. 그리고 그 벽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치 벼락처럼 내리쳐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단단하고 커다란 벽 앞에서 은희는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상실을 마주한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이다.
은희의 언니는 성수대교를 타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생이었다. 은희를 비롯한 은희네 가족은 운이 나빴다면,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일상을 잃을 뻔 했다.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 날의 저녁식사 시간에 오빠가 눈물을 터뜨린다. 이렇게 은희의 오빠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죽음 앞에서 삶의 불온함을 통렬하게 체감한다. 은희가 매 순간 세상의 부조리를 목격하며 이해해 나갔던 것과는 다르게, 가장 뒤늦게 가장 아픈 방식으로.
하지만 은희에게도 성수대교의 참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의문을 던진다. 영지 선생님이 참사가 일어난 그 시간, 그 다리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희는 자신이 준 책 선물에 화답하여 영지 선생님이 스케치북과 함께 보낸 소포를 받는다. 은희는 한문학원을 관두어 더 이상 학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영지 선생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 떡을 들고 소포에 적힌 주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 곳에는 영지 선생님은 없었다. 성수대교에서 죽음을 맞이한 영지 선생님의 시간은 은희가 소포를 받으면서 끝이 났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의 방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본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그 손끝에서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말했던 생(生)을 본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에게 묻는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하지만 그 질문이 적힌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못하고, 영지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 은희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그 대답을 대신한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지 알다가도 모를 세상에 영지 선생님이 내린 단 하나의 완전한 답은 ‘유대’이다. 마음의 뿌리를 맞잡아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을 유대.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사라진 한강변에 서서 오래토록 영지 선생님을 가슴에 새긴다. 일상은 상실을 묻고 다시금 흐른다. 하지만 은희는 가끔 출렁이는 시대의 움직임에 전보다는 덜 흔들릴 것이다.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유대의 뿌리를 내린 은희는 더 이상 시대를 앓는 것이 아닌, 더 오랫동안 현상을 응시하고 감각하고, 읽어나가며 시대를 뚫고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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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님의 리뷰
2019.10.19 19:29:05
1994년 서울의 은희가 받은 상처들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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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 님의 리뷰
2019.10.16 13:22:13
우리 모두의 김은희
벌새, 빠른 날갯짓으로 날아다니며 꽃의 꿀을 먹는 새. 작지만 아주 빠르게 난다는 새. 영화<벌새>의 영문 제목은 ‘House of Hummingbird’, 벌새의 집이다. 해서 영화는 주인공 은희를 담고 있는 둥지인 것만 같고, 영화의 시선은 둥지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은희의 시선을 오롯이 옮겨온 듯하다. 영화 속 은희의 나이는 열다섯. 흔히들 ‘중2병’이라고 부르는 나이.



마음의 상승기류와 사춘기의 긴장이 하늘 높이 오르고, 죽는 것 따위 두렵지 않으며, 그것이 정말로 용감하다기보다는 너무 멀어서, 죽음을 추상이라고 깔보게 되는 때. 때로는 삶을 업신여기는 방식으로 젊음을 누리게 되는 시절. 마음은 싱숭생숭한데 몸은 막 자라서, 정신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휘청거리고 마는 나이. <벌새>의 주인공인 은희는 온몸과 마음으로 그 시절을 앓으며 통과해나가는, 열다섯 소녀다.



영화는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렇게 은희의 열다섯 시절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절 안에 담긴 어느 지점에, 우리의 생이 포개어져 있음을 찰나 동안이라도 느끼게 된다. 은희의 삶과 나의 삶이 동일시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언젠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감각이 자연히 되살아남을 경험한다. 다시는 못 볼 것을 예감하게 만드는 뒷모습, 내게 오래도록 머무는 상대의 시선, 몸에 새겨지는 폭력의 흔적, 간질간질한 스킨십, 배신감에 흘러나는 눈물, 상처 난 마음을 가만히 쓰다듬는 손길. 푸르른 녹음의 계절에 은희는 몸에 이 같은 감각을 나이테처럼 하나씩 새겨가며 삶을 불려나간다.


***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더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인물의 앞모습 보다 뒷모습이 더 눈에 어려 내가 마주한 모습 너머를 곰곰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들이, 더러 있다. <벌새> 속 인물들은 은희뿐 아니라 모두가 그 너머를 건너다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떤 인물은 더 골똘히 들여다보고 싶은가 하면, 어떤 인물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절로 그러게 돼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잡았다. 한 영화에서 모든 인물이 이토록 입체적이고, 또 제 역할만 해내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벌새>가 그 쉽지 않은 걸 힘주지 않은 채 무던히 해내줘서, 그 가치가 참 귀하다 여겨진다.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내 마음에 안착한 찬란한 <벌새>. 영화를 보며 몇 번을 숨 고르고, 보고 난 뒤에도 한참을 뒤척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빗장을 열고 들어와 한껏 휘저어놓고, 고리를 풀어 들썩이며 울게 만들더니 끝내는 살아갈 힘을 준 영화. 그렇다. 간혹 어떤 영화는 사람을 구하고, 또 살아가고 싶게끔 만든다. 앞으로 나는 삶의 길목 곳곳에서 이 영화를 떠올리고, 또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짤막한 줄거리가 설명하듯 <벌새>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다. 영화에는 중심축이랄 법한 사건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시절, 은희를 지배했던 삶의 편린들만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은희는 ‘우리 모두의 은희’가 될 수 있게 된다. 내 유년이 너의 유년과 같지 않아도, 2019년이 1994년과 같은 동시대가 아니더라도, 나의 감각이 어느 순간 은희의 것과 합치가 되고, 또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과 아주 다르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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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 님의 리뷰
2019.10.15 16:09:18
시간이 지나 잊어버렸던 폭력들을 상기시켜준 영화
영화는 장면과 시간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커다란 사건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진 않지만 친구의 말대로 난 이영화가 슬펐다.
관찰자로써만 이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후로 물음표가 많아져서 머리가 복잡했던 영화기도 했다.은희는 문제 많은 가정에서 자라났나? 은희의 문제인가? 도대체 이 영화는 뭐가 문제인가?
어떤 지점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없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은희의 14살.보통의 나날들.
그러나 영화가 답답한 이유는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선입견,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 등 다양한 지점의 답답함들을 나 역시 느껴본 적 있기 때문이다.

지나고 싶지 않은 시간을 마주할 때, 내가 그저 견디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에도 손가락을 움직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음에도 살아있음에 신비함을 느낀다며 영지의 입을 통해 작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나 자신조차 잘 모르고 지나간, 알면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지나간 폭력들이 내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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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15:58:31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상처와 치유의 시기.
인생은 그렇게 얽히고 섥히며 돌고 돌아, 흘러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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