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열의 음악앨범 (Tune in for Love)
멜로/로맨스 / 2019

개요
멜로/로맨스, 드라마, 한국, 122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8.28 개봉
감독
정지우
배우
김고은
정해인
박해준
김국희
정유진
최준영
유열
남문철
시놉시스
"오늘 기적이 일어났어요."

1994년 가수 유열이 '음악앨범' 라디오 DJ를 처음 맡던 날, 제과점에서 일하던 대학생 미수(김고은)는 우연히 찾아온 현우(정해인)를 만나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때,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기다렸는데…"

다시 기적처럼 마주친 두 사람은 설렘과 애틋함 사이에서 마음을 키워 가지만 서로의 상황과 시간은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도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과 함께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두 사람…
59.21%
2.7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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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리뷰
59

타잔 님의 리뷰
2019.08.29 02:03:20
정지우? 진짜 맞아?
나는 정지우 감독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의 신작 소식만 들어도 기대를 하는 편이였는데 <유열의 음악앨범>은 예외였다. 멜로라는 장르는 이미 <해피엔드>에서도 멋지게 표현했기에 상관이 없지만, 이야기를 떠나서 두 주연 배우가 정해인과 김고은이다.


<생강><해피엔드><사랑니><4등>을 만든 감독이 두 주연배우만으로도 어떠한 영화일지 충분히 예상되는 달달한 로맨스를 찍는다고? 당연히 우려스러웠다. 그리고 몇번을 확인했다. 그 정지우가 그 정지우 인지 말이다. 그 정지우가 틀림이 없다. 그러한 우려스러움에도 개봉 첫날 극장을 간 것은 역시 정지우라는 이름을 믿었고, 그의 영화니 예상과는 조금은 다른 영화이기를 바랬었다.


결론적으로 <유열의 음악앨범>은 개인적으로 정지우의 최악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올해 나온 한국영화중 가장 커다란 실망감을 준 영화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정지우라는 이름을 지우고, 정해인과 김고은의 이름까지 지운다면 이 영화는 개봉을 제대로 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의 만듦새다. 어느날 우연히 만난 남녀가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지만, 운명적인 이야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냥 말도 안되는 억지 우연만 남발한다.

특히 영화 속에 두 남녀는 어떠한 모습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은 없이 그저 이쁜 얼굴로 매번 이유없는 생글거리는 클로즈업으로 모든 이야기들을 퉁~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클로즈업을 위해 두 남녀 외의 인물들은 그 둘만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로 그 둘이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는 순간만을 위해 희생된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 둘의 우연한 만남을 위한 도구로써의 역할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세계관도 오직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만을 위할 뿐이다. 형편없고 성의 없는 각본이다.


이야기 속에 서사는 의미가 없다. 어느날 우연히 빵집을 하는 미수 앞에 현우가 나타나고 알바를 시작한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일에 현우는 무단결근을 하고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된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 후에 둘은 우연히 빵집 앞에서 다시 만나고 뻘쭘 할 새도 없이 바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다음날 군대를 가는 현우는 그 이후 연락을 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다. 그리고 또 몇년 후 둘은 우연히 또 다시 만난다. 그리고 바로 같이 동거라도 할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억지 설정들이 남발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됐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싸우는지, 왜 헤어졌는지, 왜 다시 만나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판타지 영화 였던가? 세상 어디에 존재하는 나의 운명 같은 반쪽을 언제든 만나게 된다는 전설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연결해주는 판타지적인 메시아가 되어 그들의 운명같은 사랑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해해 주어야 하는 분위기다. 대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정해인과 김고은의 천사같은 미소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나는 정해인과 김고은을 둘다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재앙이되어야 하는 현실이 바로 이 영화 인지도 모르겠다. 그 천사같은 미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나에게 그 두 사람이 배우로써의 의미는 크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미수의 캐릭터다. 특별한 썸을 보여주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남자를 집안에서 재우고, 어느날 갑자기 수년을 만난 연인 마냥 달달해지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헤어지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바로 다른 남자에게 가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다시 헤어진 남자에게 가는 말도 안되는 캐릭터이자, 여성으로써의 자존감은 도저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매력없는 캐릭터다.


영화는 다시 돌아와 두 남녀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미수는 곧 다시 말도 안되는 이유로 현우를 떠날 것이고 현우는 말도 안되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하면서 화를 낼 것이 상상된다. 그리고 미수는 또 새로운 남자의 만남을 반복하고 결국에는 또 다시 눈물 지으면 돌아올 것 같고.



나는 지금 조금 격앙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정지우가 이런 말도 안되는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분을 참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믿을 수 가 없다. 그동안 내가 알던 <생강><해피엔드><사랑니><4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으로써는 이러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감독이 어느 한정된 영화만을 만드냐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치, 목숨걸고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전사가 하루아침에 보수야당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승엽이 매번 홈런을 칠수 없고, 메시나 호나우도도 매번 골을 넣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영화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유는 정지우라는 이름을 빼더라도 <유열의 음악앨범>은 충분히 실망스럽고 충분히 조잡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blue 님의 리뷰
2019.09.04 23:19:48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았다. 사실 별로 끌리지는 않았는데 윤상, 이소라 님의 음악이 등장한다길래 문득 궁금해져서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보고 난 후의 소감은... 음, 묘한 영화였다. ‘좋다가 살짝 이상하다가’를 반복하더니 후반부엔 박해준둥절... (그는 결국 좋은 차만 태워주고, 현우를 뛰게 만들고 끝난 것인가!) 주연인 미수-현우 캐릭터를 제외, 다른 인물의 활용이나 마무리가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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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묘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개연성의 문제나 캐릭터의 활용이 아쉬운 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아주 조금이라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장센에 상당히 약한 나로서는 아마도 배우들의 외모도 한몫했을 테고 (가끔 쓸데없이 솔직한 편^^) 90년대에 걸맞은 감미로운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삽입된 것 역시 이 영화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더불어 미수와 현우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신이 꿈꿨던 것과는 다른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사랑의 감정 사이에서 느끼는 묘한 박탈감이나 혼란스러움 역시 꽤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미수가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부터 다시 현우와 연락이 닿게 된 날까지, 그리고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연락이 끊겨 울면서 메일을 쓰던 미수의 그 솔직하고 내밀한 모습까지... 적어도 그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내게 손에 꼽히는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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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어딘가에 하나뿐인 존재를 만나 서로 알아가고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연이 아닌’ 운명 같은 일인지,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도 오직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욕심이 과했다는 것. 좋은 장면들이 많다고 해서 ‘한편의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다기보단 갑작스러운 것들이 지나치게 많았기에, 게다가 욕심이 과한 것치고 타이틀로 내세운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하나의 장치인 ‘라디오’도 결국 이도 저도 되지 못한 채, 모호한 위치에 있다가 끝나버리고 말았기에 더욱더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계속 아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정말, 잔잔하고 평이하더라도 꼭 다시 챙겨보고 싶은, 착하고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운 작품이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노군 님의 리뷰
2019.09.09 23:01:22
한국형 멜로 기근 현상이 낳은 기묘함.
1994년, 가수 유열이 처음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던 날, 엄마가 남긴 빵집에서 일하던 '미수(김고은)' 앞에 불현듯 나타난 '현우(정해인)'. 교복차림의 그 아이는 다짜고짜 미수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다. 얼결에 잘생긴 알바생 하나를 고용하게 된 미수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언니인 '은자(김국희)'와 함께 생계를 이어가지만 어느날 갑자기 월급을 가불받고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탄채 사라진 현우. 그리고 1997년, 2000년, 2005년까지 꾸준하게 우연처럼 만나고 불현듯 헤어지게되는 남녀를 그렸다.

현우는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고등학생 때 옥상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그만, 한 친구가 아래로 떨어져 죽은 것. 밑에서 옥상을 쳐다보던 다른 친구들 덕분에 현우가 죽은 친구를 밀었다는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윽고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덕분에 소년원을 나오게 된 현우. 그 바람에 학교도 그만두고 그 길로 미수네 빵집에 취직을 한다. 살인 미수에 그쳤던 다른 친구들도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 알바를 뛰는 신세. 혼자 멀쩡하고 편하게 빵집에서 일을 하는 현우를 연신 찾아와 매장 영업에 훼방을 놓는다. 그 꼴이 보기 싫었던 현우는 미수의 언니인 은자에게 가불을 받아 그 길로 다시 빵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1997년. 대한민국에 IMF가 찾아오고 미수는 빵집을 처분하게 된다. PC통신인 천리안이 보급되던 해에 미수는 대학생 신분이 되어,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직전이다. 학교 선배중 하나가 라디오 인턴과 일반 회사 정규직 중 어느걸 택하겠냐는 물음에 미수는 정규직을 택했고 미수가 택한 정규직이 탐이났던 학교 친구 '현주(정유진)'는 어쩔 수 없이 라디오 인턴으로 취직을 한다. 헌책방과 이삿짐 처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우는 할머니를 업고 모셔다 드리다 문 닫은 빵집 앞에서 미수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수네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지만 다음 날 군입대를 앞두고 있던 현우라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미수는 기지를 발휘해, 현우에게 천리안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주며, 휴가 때 꼭 접속해서 메일을 읽어보라고 권하지만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미수는 정규직 공장을 그만두게 되어 이사를 가게된다. 자신의 꿈이었던 작가의 길을 걷는 현주에게 자극받아, 이직이라는 큰 결심을 한다.

그리고 2000년. 현우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미수가 살던 집을 얻고, 그 집 비밀번호가 미수의 학번이자 미수가 만들어준 자신의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임을 알게된다. 그 무렵 미수는 잘나가는 출판사의 이직에 성공했고 현우는 검정고시를 패스해, 대학생이 된다. 미수네 '출판사 사장(박해준 / 종우 역)'이 가지고 있던 건물의 2층에 현우가 몸담은 영상관련 업체가 이사를 오고 미수와 현우는 그렇게 세 번째 만남을 갖게된다. 하지만 여전히 멀쩡하게 사는 것 같은 현우가 꼴보기 싫었던 옛 학교 친구들은 죽은 친구의 기일이라며 현우를 만나러 오고, 태권도장 차량 운전을 하던 친구의 차에 핸드폰을 깜박하고 내린 현우는 미수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되자 크게 분노하며 미수에게서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하필 그 때 미수를 좋아하던 출판사 사장은 현우에게 미수를 그만 놓아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돈으로 사랑을 사려했던 출판사 사장은 옛날 미수의 빵집도 매입하면서 그녀에게 베이커리를 다시 시작하자고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2005년. 이전에 현우네 영상관련 업체가 문을 닫게되면서 라디오 방송국에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된 현우.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실시하던 '보이는 라디오' 의 영상 장비를 설치하던 와중 신청곡과 부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얘기해 달라는 유열의 물음에 주저없이 '미수'라는 말을 꺼낸다. 여전히 출판사에서 일하던 미수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현우를 다시 만나러 가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잘 포장하면 한없이 로맨틱하고 남자 주인공의 어두운 과거까지 더해져, 일반적인 로맨스물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겠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없고 제목도 유열의 음악앨범이지만 왜 그런 제목을 갖게 됐는지 의문이 드는 영화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를 표방하는 영화지만 거죽만 슬쩍 빌려다 쓴 모양새고 1990년대의 찬란했던 문화 황금기에 지나치게 기대려고 애를 쓰는 영화 되시겠다. 굳이 그런거 없이도 스토리 자체만으로 그럭저럭 평타 이상은 칠 수 있는 영화였지만 마지막 엔딩이 진짜 좀 어거지였다. 출판사 사장의 끊임없는 애정 공세에 실컷 부를 누리며 살던 여자가 어느날 갑자기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전남친을 찾아 뜀박질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었음. 그리고 그 순간에 뭐든지 다 미수에게 퍼줄 것 같았던 출판사 사장은 뭘 하고 있었나?

종우가 지닌 미수에 대한 사랑의 크기는 캐릭터를 갑자기 누락시켜도 될 정도로 하찮은 것인가?


차라리 엔딩에 나왔던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메인 테마와 제목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법한 영화. 이게 다 요즘 한국형 멜로가 씨가 말랐기 때문에 불거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과거로의 회귀가 어느정도 메인 프레임으로 씌워져 있고 잘생긴 남자배우와 연기력 좋은 여자배우가 들어가 있어, 백보 양보해서 '건축학 개론' 을 잇고싶어하는 욕심이 과하게 보였달까. 추석 시즌을 앞둔 극장 비수기에 개봉했지만 이제 꼴랑 백만명을 넘은 유열의 음악앨범 관객수를 보고, 역시 한국 관객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음을 느꼈다.

다만, 그 때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플레이 리스트의 영화적 활용에는 만점.

썩은 악귀 처럼,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관되면 꾸준히 안 좋은 길을 걷게되는 현우의 운명도 상당히 클리셰적인 면이 많은 캐릭터 설정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엔딩곡으로 쓰인 콜드 플레이의 fix you 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남자 주인공인 현우의 사정과 너무 잘 맞아 떨어져서, 진짜 큰 감동이었음. 콜드 플레이의 음악이라곤 'VIVA LA VIDA' 딱 한 곡 빼고 쳐다도 보지 않던 나도 곡을 찾아 듣게 만드는 힘을 지닌 노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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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3 07:03:11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유열의 음악앨범>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90년대 00년대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한 점이 있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라디오 매체가 크게 기여한 바는 ‘없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유열의 음악앨범>이라 라디오를 통해 두 주인공의 관계가 움직일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둘의 첫 만남과 끝 만남을 기억하게 해줄 매개체가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임팩트가 너무 미미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차현우가 소년원에 가게된 계기와 김미수의 대표와 김미수의 관계에서 그 부족함이 두드러졌다. 영알못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내가 영화의 개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마저도 논리가 부족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흐르는 아련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의 부족한 개연성은 의문을 갖게 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영화를 참 많이 본 친구인데, 차현우가 소년원에 가게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마저도 관객들이 차현우를 신뢰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열의 음악앨범>이 홍보할 때 내세웠던 그때의 감성, 아련한 느낌과 그리움은 영화 내내 잘 드러났다. 잔잔한 흐름은 갈등이 존재할 때에도 가슴아픈 마음을 끊지 않았다.

스크린 속 199X년, 200X년이 떠오르면서, ‘그때 난 몇살이었지, 그때 나는 어떤 일을 겪었었지’를 떠올리게 하며 주인공의 경험과 비교해보는 맛은 90년대, 00년대 배경을 가진 영화에게 주어지는 특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특권을 당당하게 누리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하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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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19:29:43
기다림의 형태에 관한 질문
1. 우리는 고도를 기다린다.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다소 희한한 내용을 다루는데, 그 이상함이란 다음과 같다. 이 희곡은 제목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가 나오지만 정작 고도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고도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아서 우리는 그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를 알 수 없다. 예컨대 이 작품은 고도가 아니라 그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런 기다림의 순간에 대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이 작품의 화법인 것이다.






두 남자는 아무 말이나 해댄다. 아무 말이나 해대기에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간에 대략적으로는 이어진다. 이 대목이 이 작품이 정말로 기다림을 보여주는 것에 모든 것을 할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두 남자가 누구이든, 고도가 누구이든 간에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는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말하자면 이 희곡의 중심 주제는 제목처럼 ‘기다리며’라는 현재진행형의 마음이다. 여기서 잠깐, 나는 방금 그들이 기다리는 게 ‘마음’이라고 말했다. 고도라는 인물을 통해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 자체가 본질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형태에 가깝다. 그래서 이 희곡은, 기다림의 끝으로 나아가는 운동 에너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즉 이것은 철학보다는 과학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이것이 과학으로 보인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를 감정으로 헤아리는 것보다, 뇌의 신경 사이 시냅스가 보내는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메커니즘에 관한 호기심이 더 동한다. 이런 비유조차 여전히 헷갈리지만, 적어도 <고도를 기다리며>가 어떤 작품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전달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는 언어가 아니라 원인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되어서, 본래의 형태를 잃고 관념이라는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우리 눈에 관찰된다. 이때 그 신호가 어떤 함의가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그 신호를 받아 행동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교훈을 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관념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우리의 교훈은 어떤 형태로 다가올까? 이것이 <고도를 기다리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 기다림의 형태에 관한 질문






내가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김고은(미수)의 모습이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고도의 자리에 있는 건 현우(정해인)이기에 두 남녀는 실제로 만난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허나 그런 만남의 사이에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현우의 모습이 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자석의 같은 극과도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은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그들이 끌어안은 숙명을 풀어주면 서로는 자유로워질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이것은 확실히 부조리극이다. 이때 만약 당신이 연애담을 말하는데 어떻게 부조리를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이 부조리극은 아니고, 세상에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 또한 부조리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장소에 있는 어떤 이를 보여주는 게 부조리극이라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 먼지 중에 두 개를 골라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 먼지에 관하여 말 그대로의 먼지, 세상의 사물로부터 날려오는 잔분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물 위에 떠다니는 꽃가루를 관찰한 브라운 운동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오래전 과학자들은 물 위에서 바람도 불지 않고 물결도 치지 않는데 꽃가루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고, 그 원인을 몰랐다. 단지 그것을 발견한 로버트 브라운 박사의 이름만이 남겨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브라운 운동을 다시 주목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물 분자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 그에 부딪힌 꽃가루 입자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이 모습은 마치, 퇴근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 열차의 움직임이 사람들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나에게도 큰 파장으로 다가오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쉽게 말해, 미시 세계에서의 나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이지만 거시 세계에서의 나는 주변 환경에 휘둘리기만 하는 소극적인 존재이다. 즉 여기서 부조리한 것은 당신 주변을 가득 메운 퇴근길의 인파이지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부조리해 보인다. 무언가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또는 객관적이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하여도 자신의 시야를 기준으로 자신을 파악하는 작업은 한계가 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관찰 카메라와 같은 것으로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객관적일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조리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파악하는 작업은 실존에 관한 철학적 물음이지만, 외부를 기준으로 우리를 볼 때 우리 자신은 세상을 이루는 부속품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은 실존에 관해 묻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우리 자신은 세계의 질서를 보고 있다. 어쩌면 이를 두고 신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신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다. 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가 세계의 원리를 모두 알기에 신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신인 것인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즉 전자는 과학의 신이고 후자는 철학의 신이다.






3. 영화의 두 가지 분류






기본적으로 영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라는 점에서 우리를 신으로 만든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행위는 자신을 신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등장한 영화의 두 가지 분류가 여기에 있다. 첫 번째는 과학의 신이고 두 번째는 철학의 신이다. 물론 그 두 가지는 어느 하나가 고도화될 때 다른 하나를 집어삼키기도 하므로 딱 잘라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습관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이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원리, 생리(生理)를 온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타인의 속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대략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마법이 아니다. 삶의 기술이라 할 수 있겠고, 이에 따르면 결국 신이라는 것 또한 기술적 숙련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영화를 창조하는 행위는 기술을 갈고 닦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이를 두고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세계가 거의 마술적인 행보를 보이는 반면에,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기술이기 때문이다. 즉 기술이 마술을 만들었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때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독심술이라는 게 과학보다는 철학에 더 가깝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우리는 이를 두고서 과학이 철학을 만들었노라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이 가져올 파장 또한 엄청나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영화가 예술의 영역에 들어선 이후로 우리는, 영화가 철학을 담은 매체라고 생각했지 ‘과학’의 영역에 몸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분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고도로 발달한 영화는 거의 마법처럼 보일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연역 해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가끔 영화가 신에 가까운 무언가로 보일 때가 있다. 허나 세상에 신이란 없다. 그것은 기술적 숙련의 결과이다. 영화가 우리를 바라볼 때, 그가 우리 삶의 원리와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면, 그것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지 영화가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부로 속아준다면 꽤 재밌는 결과가 도출된다. 신에 대한 우상숭배가 실은 기술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영화를 본다는 건 결국에는 기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 본다는 것에 관하여






본다는 건 물음을 던지는 행위이다. 우리는 시각을 통해 물음을 던지게 된다. 헬렌 켈러의 말처럼 본다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물음을 던지는 건 축복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눈이라는 게 시각이라는 마법을 행하지만, 결국에는 시력이라는 기술을 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예컨대 마법이 축복이라면 그것은 곧 기술이다. 기술은 축복이며, 물음을 던지는 건 마법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세상을 본다고 말할 때 그것은 특별하게 정해진 대상이 없다. 응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소리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는 시각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수전 손택은 인간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를 두고서 폭력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위에서 했던 말은 다음처럼 바뀌게 된다. 폭력은 마술적이다. 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은 폭력이다. 다시 말해서 본다는 게 축복일 경우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초점 잃은 시각은 그저 폭력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물음을 던질 때 모호하게 흐려버리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오늘도 멀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유열의 음악앨범>은 본다는 것의 두 가지 방향에 관한 영화다. 이는 각각 철학과 과학이라는 방향으로 나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곳곳에 삽입된 이유는 시대를 구분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기 위함인데, 어찌 보면 영화의 제목인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컨셉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다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작중에서 현우가 말하는 자신의 트라우마이다. 현우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미수에게 말한다. 현우는 자신의 삶은 친구를 잃은 그 순간에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는데, 이때의 삶이란 그가 아는 지평선 안쪽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니 지평선의 바깥에서 다가온 미수에게 현우가 끌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잠깐, ‘당연하다’라는 말에 태클을 걸 당신에게 다음 같은 부분을 말해두고 싶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태초의 사랑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서로에게 끌린다. 말하자면 사랑이란 거의 마법 같은 일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란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현상은 두뇌의 화학작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감정이 어디에서 흘러온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인식의 범위, 그 지평선 안쪽에서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을 한다는 건 물음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내 마음에 찾아온 이방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출신을 묻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들은 항상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한다.






5. 당연하다는 것에 관하여






그러나 이때 현우는 자신의 이전 삶까지는 미수가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현우에게 사랑이란 미수가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미수에게 사랑이 물음을 던지는 행위라면, 현우에게 물음을 던지는 행위는 곧 폭력이다. 예컨대 영화의 후반에 현우가 미수의 곁을 떠나버린 건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게 이유이다. 미수에게 사랑이 포괄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하지만 현우에게 그런 이해는 그저 무차별적인 폭력에 불과하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서로가 믿는 신이 다름에도 거의 결말에 다다랐으니 어찌 보면 잘 버텨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수가 숭배하는 게 닿으려고 하면 멀어지는 현우라는 관념이라면 그녀는 철학이라는 신을 믿는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신이란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 전반에 통용되는 법칙을 뜻한다. 아마 미수에게는 세계 전체가 현우라는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이것일 텐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현우와 마주치는 미수의 모습에서 그걸 찾아볼 수 있다. 이 만남은 거의 운명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운명이라는 이름의 마술이고 마술이라는 이름의 영화이기도 하다. 즉 마법 같은 만남, 그 영화가 본다는 것의 축복으로 변하는 게 미수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관념의 형태로 미수에게 흘러오는데, 영화는 그에 대한 시각적 표시로 라디오를 택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처음으로 런칭하던 날 찾아온 현우는 미수에게 있어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스크린 안에서 스크린 밖으로 옮겨갈 때, 그것은 디제시스가 미메시스로 확장되는 순간이 아니라 세계 안에 신이 깃드는 신성한 순간이다. 이 신성함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응하여서 영화 전체를 신성하게 만들고 본다는 것을 성스럽게 한다. 물론 이것은 이 영화가 미수의 시점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귀인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영화의 시점에서 현우는 신비로운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이 영화가 미수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면 현우는 라디오의 음악처럼 다가와 금세 세상 너머로 퍼져버리지만, 우주를 떠도는 보이저 1호의 골든 디스크처럼 점점 더 멀어져만 갈 무언가이다. 허공에 퍼진 연기가 사라지지만 대기 중에 녹아들듯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현우라는 관념의 전체화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는 마치 우주로 나간 히틀러의 연설이 현대에 와서 다시 수신되었다는 괴담처럼 미수에게 처음 찾아와 시간이 흘러 다시금 나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추억의 음악, 그 레트로에 관한 마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v2mBkKYW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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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곰 님의 리뷰
2019.09.04 13:31:11
초반에 비해 후반이 아쉽네요.
탄탄한 초반 밋밋한 중반 아쉬운 후반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DaDaSi 님의 리뷰
2019.08.28 16:03:27
감정보다 앞선 감성
상당히 반가운 영화입니다. 최근 멜로 영화들은 코미디가 결합된 방식의 가볍거나, 장르로 혼입이 되어서 사용되곤 합니다. 이 영화는 90년대 한국 멜로 영화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에 볼 수 있었던 느낌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시대의 사랑하는 방법과 현대의 사랑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영화

멜로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주는 영화가 아닌 공감을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보여주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멜로 영화는 관객들의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킬 장치들도 필요합니다. [유열의 음악 앨범]은 레트로 감성을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실제 90년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들과 그 시대를 보여주는 소품의 디테일들은 당시의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소는 영화에 삽입된 음악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당시에 발표된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모습입니다.

정지우 감독의 이야기처럼 영화에 가사가 있는 음악을 쓰는 경우는 가사로 인해 영화의 내용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사용하는 편입니다. 이런 사항에 대해서 영화는 정면 돌파를 선택합니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전면으로 내세워서 그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죠.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유시대, 영원한 사랑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사용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들의 심경에 대한 설명을 노래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을 따라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멜로는 감정이 중요한 영화입니다. 한국의 멜로 거장이라고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는 두 인물 표현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인물의 감정 표현은 인물이 슬픈 표정을 지어서 슬퍼 보이는 것과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인물이 울고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던 주인공 정원에게 그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이유가 생기고, 자신이 없어지고 남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씩 준비를 하는 과정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죠. 그에게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을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유명한 장면을 통해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왜 아버지가 싸준 쌈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요? 이런 장면은 대사로 표현하지 않아도,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인물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멜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감정을 다룰 때는 이런 식으로 배경을 알고 있어야 이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상황은 인물의 배경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상당히 예민한 캐릭터도 느껴지거나, 혹은 밥 먹다가 혀를 깨물어서 펑펑 우는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사를 통해서 감정의 변화 혹은 공감을 위해서는 이 인물들에게 당위성 혹은 상황에 대한 개연성이 필요한 것이죠. 이 영화의 취약한 점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3번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3번 모두 서로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도 3번 모두 각자 애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번 모두 비슷한 이유로 헤어집니다.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것은 버린 쓰레기를 다시 집으로 들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꺼려하는 일입니다. 만약에 영화가 이런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면, 인물들이 서로를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1년 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너의 결혼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인공 우연은 승희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우연은 끈질긴 구애를 통해, 승희와 사귀게 되었고 둘은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승희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승희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연은 그녀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녀와 다시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이 영화는 첫사랑이라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우연의 순애보 행보가 이해가 되는 것은 우연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학 개론] 또한 그렇습니다.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추억 위주의 이야기로만 전개되어 마음은 크지만, 서툴렀던 그때의 모습을 적절한 추억팔이와 적절한 유머로 잘 보여주고 있죠. 결론적으로 두 영화 모두 영화 속에서 이들이 감정이 생성되는 모습이나 시간이 지나고 재회하게 되는 장면에서 과거의 추억과 현실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두 사람이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과의 분리도 어정쩡합니다. 제가 영화 [애프터] 리뷰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폭발할 것 같지만, 천천히’ 이 말은 감정은 끓어오르지만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전에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간질간질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유열의 음악 앨범]은 불로 달군 프라이팬을 요리하기 직전에 물에 담그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사랑이 올라오려고 하면 그 분위기를 가라앉힙니다. 물론, 이들에게 걸림돌이 있어야 영화가 극적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걸림돌이 매번 그의 친구들이 되는 것일까요?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인 믿음이라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미수가 갑자기 현우의 친구들을 찾아간 것과 그런 미수의 행동에 갑자기 발끈하는 것도 매끄러운 연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사건의 결과보다는 인물의 감정이 중요한 영화라는 점에서 사건의 전개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쌓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감정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이런 영화가 반가울뿐더러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추억 여행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곡까지. 생각해보면, 노래가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힘보다는 음악의 힘이 큰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영화를 보는 동안은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에 취해서 재미있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감정의 힘이 떨어지고, 영화가 끝난 뒤에 곱씹어 보는데 별로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재밌게 본 영화가 될 것 같네요.

다음 리뷰는 영화 [벌새]입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owlppami 님의 리뷰
2019.11.10 17:12:24
14년 전이면 공감할 수 있었으려나
정지우 감독의 신작 로맨스 그리고 핫한 배우 김고은, 정해인으로 꽤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1994년 KBS FM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방송을 시작하던 날 만나게 된 미수와 현우, 이후 10년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선남선녀 배우가 연기하는 달달한 감정의 예쁜 영상에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OST.
딱 이 정도의 장점만 느껴집니다.

어지간히 우연에 기댄 이야기 진행 그리고 손바닥 뒤집듯 급변하는 분위기로
이는 인물들 마저 심각한 변덕쟁이로 만들어버려 공감이 아닌 갸우뚱을 불러일으킵니다.
장면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어두운 과거를 가진 현우란 인물은 겉치레일 뿐, 오로지 '정해인'에 기대고 있습니다.
극 중 "현우야"가 아니라 "해인아"라고 불렀어도 전혀 위화감이 안 느껴졌을지도요.

과거 배경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적인 멜로/로맨스, '기다림'에 대해선 애절함이나 미학보단 짜증 섞인 답답함이 느껴지고
20대의 긴 시간 동안 변치 않는 한결같은 주인공의 모습이 아름다움보다는 괴이할 따름입니다.
남는 건 어리숙한 첫사랑의 그 감정 정도일까요.

주인공들처럼 75년생 형 누님들과는 나이차가 있지만 그 시대를 겪어본 입장에서 그 시절 그 나이대의 모습들이 잘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안에서의 시간 설정은 어쩐지 시대적 상황을 녹여내려는 것보다 오로지 '유열의 음악앨범'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에 끼워 맞춘 모양새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라디오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됐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고 말이죠.

공감은 저 멀리 떠나버리고 어딘가는 굉장히 전형적인 옛날 감성에...
차라리 그냥 2005년에 나왔다면 그나마 괜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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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scott 님의 리뷰
2019.10.09 01:43:26
감독님한테 약간 배신당한 느낌입니다.
유열의 음악앨범을 봤는데 많이 아쉽네요.



정지우감독님영화에서 캐릭터의 감정이 켜켜이 쌓아나가는 흐름이. 사라지다니 좀 황당하면서 살짝 배신감같은 감정이 드네요.



이렇게 감정이 툭툭 끊어지고 연결성이 없는 영화가 정지우 감독님영화라니...





해피엔드와 사랑니가 갑자기 그리워졌습니다.ㅜㅜ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정태희 님의 리뷰
2019.09.30 20:04:15
청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아름답다.

그러나 따라갈 수 있는 감정선은 야트막하고 이들이 품은 상처는 흐릿해 크게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기대했던 '음악'과 '라디오'라는 재료조차 영화에선 그 존재감이 미미해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제목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끝에 남은건 정해인과 김고은의 얼굴,
그리고 콜드플레이의 Fix You 뿐.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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