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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Warning: Do Not Play)
공포(호러) / 2018

개요
공포(호러), 미스터리, 한국, 86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8.15 개봉
감독
김진원
배우
서예지
진선규
김보라
시놉시스
8년째 공포영화를 준비하던 신인 감독 ‘미정’은 어느 날 후배로부터 지나친 잔혹함으로 인해 상영이 금지된 영화에 대해 듣는다.

실체를 추적하던 중 만난 그 영화의 감독 ‘재현’은 "그 영화는 잊어, 죽음보다 끔찍한 인생 살기 싫으면"이라고 경고하지만 ‘미정’은 그의 경고를 무시한 채 더욱 더 그 영화에 집착한다.

이후, 이유를 알 수 없이 벌어지는 기괴하고 끔찍한 일들.

극장에 불이 꺼지는 순간, 공포는 바로 등 뒤에 있다.
33.33%
2.32점
키노라이트 분포
12개
6개
별점 분포
리뷰
15

doona09 님의 리뷰
2019.08.18 15:19:28
당신은 욕망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가
영화란 극장의 불이 꺼지는 암전 후 누군가를 본다는 관음의 행위다. 누군가는 찍히고 누군가는 찍는 행위를 시소 타듯 넘나들며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한다. <암전>은 연출과 상영이란 과정을 이용해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과연 죽도록 보고 싶은 10년 전 영화 <암전>과 20년 전 폐쇄된 극장 괴담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 될 수 있을까?

# 뒤틀린 욕망이 만들어 낸 영화라는 결과물

극장 공포체험 <암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던 영화감독의 패기 가득한 공포영화다. 김 감독과 박 감독은 <암전>으로 성공하려는 욕망이 닮았다. 둘 다 제일 힘들 때 공포영화를 보며 고통을 잊었던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공포영화를 통해 삶을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김 감독의 <암전>을 꼭 봐야 할 이유다.

영화제 단편의 호평으로 장편 영화의 기대가 큰 박미정 감독(서예지)은 뭐라도 내놓아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10년 전 한 대학교 졸업작품회에서 튼 영화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 나선다. 이야기인즉슨 가장 무서운 영화를 찍고 싶던 감독 대신, 극장에서 죽은 귀신이 찍었다는 이야기다. 점입가경으로 영화 시사회 중 실제로 관객 반이 나가고 한 사람은 심장마비로 즉사했다고 한다. 이에 탄력받아 영화제도 출품했지만 상영 취소가 떨어져 저주받은 영화로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실로 절실했던 박 감독에게 이만큼 솔깃한 소재가 없다. 수소문 끝에 김 감독을 허름한 다방에서 만난다. 무언가 쫓기듯 두려움에 가득 찬 김재현 감독(진선규)은 이야기에서 손 떼라 경고한다. 하지만 공포영화의 법칙이 늘 그렇듯. 하지 말라는 것, 가지 말라는 곳에 주인공은 앞장서며 명을 재촉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 참혹한 결과처럼 박 감독은 더 큰 욕망에 사로잡혀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 원한의 이유는 최소한 밝혀줘야..

이후부터 10년 전 만든 영화 <암전>을 사수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사람의 욕망이 큰지 귀신의 욕망이 큰지 내기하는 듯 엎치락 뒤치락이다. 하지만 귀신은 최소한 무슨 원한으로 사람들을 해치는지 개연성은 보여주어야만 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도입부는 신선했지만 후반부 영화 <암전>의 모든 게 밝혀지면서 늘어져 버리는 결정적 이유다. 박 감독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던 김 감독의 영화를 같이 본 관객도 실망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도 없는데 오디션부터 봤던 시도부터 잘못되었다. 영화를 통해 구원받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는 어디 가고, 입봉하려는 욕심 때문에 주변인을 죽음으로 내몬 민폐 캐릭터로 전락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돼'라고 읊조리면서 10년 동안 왜 끌어안고 있었냐는 말이다. 끝낼 거면 진작 끝냈어야 했다. 본인 때문에 시작된 죗값을 치르고 있던 건지, 무서운 영화 1위 탈환이 겁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전>은 김진원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든다. 예전의 인기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 공포영화 시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위해 부단히 연구한 흔적도 보인다. 탈색한 머리, 검은 뿔테안경, 민낯, 주근깨, 다크서클로 만들어지는 박미정은 광기가 부른 신인감독 그 자체였다. 서예지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가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예쁜 여배우 이미지를 소비하던 서예지가 보여주는 어두움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공포보다 더 무서웠던 사실은 그렇게까지 몸과 마음 던져 찍어야 했던 프로정신이었다. 섣부른 직업정신이 부른 과잉이 더 무서웠던 영화다. 순간을 찍기 위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카메라를 보고 있으려니 '로버트 카파'의 명언이 떠올랐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이다" 당신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충분히 다가서있는가 묻고 싶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8.21 20:32:27
들여다보고 투입하는 카메라
1.


<암전>은 김지원 감독 본인의 취향이 듬뿍 담긴 영화다. 이를테면 공포영화를 통해 영화에 입문했다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 속 주인공 미정(서예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즉 영화에 대한 사랑의 출발선이 같다. 물론 이것만으로 감독의 애정을 운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직접 노리고 만든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 사랑 고백이 더 도드라지는 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차분히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미정(서예지)이 이제 막 입봉을 앞둔 신인 감독인 것처럼, 그 또한 장편 상업영화에서는 <암전>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암전>을 두고 김지원의 상업계로의 입봉 작품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니 이 영화는 ‘김지원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를 설명하기에 하나의 단서가 된다. 즉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작가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지표를 하나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첫 번째 영화에서 신인감독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꽉꽉 눌러 담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싫지 않은 열정 과잉인 셈이다.



이제 작품의 도입부로 들어가자.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는 만석인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미정의 모습이다. 그런데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들어오자, 잠에서 깨어난 듯 보이는 미정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이 장면의 의도는 아마, 작품의 시작을 작품의 결말에 자리한 상영회와 수미상관으로 잇기 위한 것일 테다. 여기서 수미상관은 홀로 남겨진다는 관객의 공포에서, 만석이 채워진다는 감독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이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의 입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후자는 그럴싸하지만 전자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관객이 홀로 극장에 남겨지는 게 그렇게 두려운 일이던가. 물론 어두운 장소에 문이 잠긴 채로 혼자 남아있으면 무서울 만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작품의 본 서사에 공포를 보탤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 본편에서 폐극장 안에 갇히는 미정의 모습과 대응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당장 스크린 바깥에서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주변에 이것을 함께 관람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 관객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요컨대 스크린 안쪽이 미정의 내면을 보여주는 정신분석학적인 장소인데 반해, 스크린 바깥에서 스크린의 안쪽은 그저 몰입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관객의 극장에는 그들이 의도하는 공포가 넘어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오프닝 시퀀스는 작품 전체를 견인하는 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의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 둘 용도로 삽입된 시퀀스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시퀀스를 두고서 본편에서의 미정의 모습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시퀀스는 단지 미정의 심리적 상태, 그 출발점을 미리 전제해두는 데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막이 오른다. 이 시퀀스 다음에는 악몽에서 깨어난 미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말하자면 관객으로서의 미정은 꿈속에서만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다. 즉 현실에서 그가 감독이라면, 꿈속에서는 관객이 된다.



따라서 어쩌면, *영화 속 <암전>을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미정의 모습은 ‘관객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영화 속 <암전>을 욕망하게 되는 순간, 미정은 꿈속에 빠지게 된다. 나는 바로 이 대목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본디 영화라는 게 꿈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잘 알려졌지만, 작품 속에서 영화란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로의 꿈’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정이 *영화 속 <암전>에 얽힌 소문을 찾아가는 첫 번째 단계에서, 술자리에서 만난 대전대 학생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드니 빌뇌브와 같은 명감독의 이름을 읊어대면서 ‘어떻게 해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즉 그들은 영화를 그대로 ‘꾸거나’, 혹은 영화를 ‘꿈꾸고’ 있다.



2.



이 흥미로운 꿈의 중첩에 관하여 할 말이 있다. 우리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극장 안의 우리가 극장 안에 홀로 남겨진 미정을 보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해당 시퀀스에서 영화 속 미정과 영화 밖의 우리는 관객 대 관객으로서 대응하는데, 그런 대응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감독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듯이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그것을 전반적으로 통찰할 동료 관객(생각으로 떠도는 여러 욕망)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영화는 꿈의 내부에서 관객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대상물, 나라는 감독의 시점으로 바라본 나라는 대상물에 관하여 말하는 이중 피동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이중피동 형식은 여러 메타영화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실은, 굳이 ~ 영화에 붙는 수식어일 필요가 없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두 번의 피동, 내가 무엇이라고 여기는 게 사실은 나라는 전체를 포함한 무엇이었다는 사실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보면, 이것은 상투적인 언어로 점철된 현학적인 말에 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느 영화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이 시퀀스는 마치, <시네마 천국>의 안티 오마주처럼 보인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은 어린 시절에 검열을 당해 보지 못했던 남녀의 키스 장면을 한 데 이어 붙인 조각 필름을 극장에 홀로 남아 관람하는 어느 감독의 모습인데, <암전>의 도입부는 극장에 혼자 남은 미정의 모습이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이 자신을 있게 한, 지금의 꿈을 이루게 해준 어린 시절의 ‘꿈-영화(하지만 상실되었던 그러나 지금은 조잡하게나마 편린으로 복구된)’을 보고 있다면, <암전>의 감독은 자신을 있게 하는, ‘꿈에게 삼켜지는 관객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공포/욕망’을 ‘꿈’ 꾸고 있다. 요컨대 <시네마 천국>이 꿈에 두 번 다가서는 이중 능동의 영화라면, <암전>은 꿈에 두 번 삼켜지는 이중 피동의 영화이다.



이에 따르면 *영화 속 <암전>의 감독인 재현(진선규)이 자신의 영화에 관하여 했던 말은 어떤 함의를 갖게 된다. 그는 “이 영화는 귀신이 찍었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귀신이 자신의 동료들을 죽였고 그 모습을 영화로 찍어놨는데, 자신은 단지 그것을 헐레벌떡 주워오기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걸 들으며 생각했던 것처럼, 미정도 그 말을 하는 재현을 두고 미치광이쯤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이것이 공포영화인만큼 그건 진실이었고, 미정도 재현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서 ‘귀신이 찍은’ 양질의 공포영화를 만들어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폐극장에서의 장면들은 미정 역을 맡은 서예지 배우가 온몸을 뛰어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한다. 트리비아에 불과하지만 이걸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다. 폐극장에 내쳐진 미정은 그곳에서 죽은 과거의 여배우 유령을 목격한다. 여배우의 생전 모습이 담긴 필름이 스크린에 영사되는 가운데, 그 스크린의 중앙에서 미정이 이리저리 몸을 헤매고 있다. 그러면서 미정은 과거에 *영화 속 <암전>을 만들었던 스태프들이 살해당할 때, 그들을 죽인 귀신에 빙의하여 그들을 죽이는 ‘체험’을 ‘현재’에 하게 된다. 즉 이것은 현재에서 체험하는 과거이거나, 과거의 그들을 죽인 게 현재의 미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알 수 없다. 영화가 그 해석의 길을 모호하게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둘 중 무엇을 택하든 간에, 꿈의 공간에 진입한 미정이 겪는 모든 상황을 ‘꿈’으로 엮어버릴 수 있다. 해석이 무의미하거나 자유롭다는 소리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꿈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스크린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우리가 과연 그것을 체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은, 애초에 스크린을 통과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인데, 만약 우리가 그 안에 부드럽게 진입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영화는 바르게 체험될 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귀신을 만나 미쳐버린 재현의 모습을 두고서, ‘내면의 결여가 자리한 실재계의 주이상스’와 접촉한 재현이 그곳으로부터 나온 후에 줄곧 리비도의 분출을 겪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건대 이 해석은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맞는 말도 아닌 듯하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그들의 폐극장으로 진입한 순간 ‘극장’이라는 그곳의 특수성으로 인해 꿈이 대체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이 극장 안에는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내던 그 이름, ‘국도극장’과 그곳의 여배우 순미(조아라)의 사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3.



모르는 이들을 위해 잠시 부족한 첨언을 하자면, 국도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1990년대 초까지 존재했던 극장이다. 1913년에 개장한 이 극장은 1990년에 철거되었는데, 짐작하시다시피 이곳은 우리나라 영화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다소 과장을 하자면 성스럽기까지 할 상징성이 있다. 한국 최초의 감독이라 불리는 나운규도 이곳을 거쳐 갔을뿐더러, 일제강점기라는 특성상 ‘제대로 된 한국영화’가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이곳에서 개봉했다는 점은 이곳을 특별하게 한다. 따분한 역사 공부는 여기에서 끝이니 자리를 떠나지 말아 주시길.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고, 봉준호가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가 이 부분을 눈여겨본 것은 이 영화가 꿈에 관한 영화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위에서 (충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설명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폐극장이 어떤 곳인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내부에 이 극장에서 촬영되었다는 영화관계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그곳에는 자살했다는 여배우 순미와 그 뒤의 국도극장 글자가 찍혀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영화가 지금은 사라진 국도극장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살려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정말로 국도극장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곳은 꿈의 공간이며, 이미 사라진 극도극장을 세트로 재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국도극장이라는 시대를 풍미한 한국영화사의 유산과 그 안에서 여배우 한 명이 화재로 인해 숨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나는 그 두 가지 사실을 하나로 이어 붙이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 여배우가 제 꿈을 다 이루지 못한 채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그녀의 직업이 배우라는 점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테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스크린을 두고 관객과 감독의 관계에 관해서는 언급했지만, 정작 그 꿈의 운반자로 지정된 배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카메라에 찍혀지는 자신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자신이 아니라 연기의 대상을 연기해야 한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최근 유행하는 관찰형 예능프로그램을 생각해보라. 관찰형 예능프로그램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평소를 보여준다고 홍보하지만, 그들이 카메라를 인식한 순간 이미 그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게 된다. 즉 그들은 카메라를 인식함으로써 연기자가 되고, 연기하는 직업인 배우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지만 사실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두 가지 자연스러움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꿈의 유무이다.



배우는 타인의 꿈을 연기하는 직업이다. 요컨대 배우를 꿈꾸는 것은, 타인의 꿈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평소 모습은 이중능동이 된다. 다시 말해서 배우는 누군가의 영혼을 뒤집어씀으로써 그들의 꿈으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꿈 안으로 직접 진입하는 능동적인 직업이다. 말 그대로 그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평소 모습은 그들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을 때다. 카메라가 그들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의식하고 그곳에 자신이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 이상,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즉 카메라에 자신을 투입하지 않으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피동과 능동이라는 두 가지 상태 모두로 작동한다. 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꿈을 들이미는 직업이라면, 반대로 카메라가 그들을 삼키려고 다가올 수도 있을 테다. 이 사실은 찍히고 싶지 않을 때도 찍혀야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잔 손택이 말하던 카메라의 특별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가두어놓는 흉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4.



여기서 문제. 감독은 <암전>의 주인공을 왜 감독으로 설정했으며, 왜 그 무대는 폐극장이고, 그 극장의 피해자는 국도극장의 여배우인가. 영화의 주인공인 미정이 사용하는 도구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시네마를 보여준다. 반대로 미쳐버린 옛 감독 재현은 비디오 테이프 시절의 사람으로, 그가 찍은 *영화 속 <암전>은 비디오 테이프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를 두고 미래인이 과거의 유물을 ‘발굴’해낸다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허나 어찌 되었든 간에 이들의 모습이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확실한 표지라면, 그들이 서로 마주하는 폐극장은 영화라는 하나의 교집합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꿈의 세계일 테다.



이 폐극장은 아마도 영화는 꿈이기에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그렇지만 부차적으로는 이 영화가 *영화 속 <암전>과 같은 제목을 공유한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너무 직설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이 미장아빔 구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이 극장에 앉아있는 미정의 모습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사실 이것은 미래가 과거에게 보내는 일종의 구조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위에서 말한 바를 겹쳐보면,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즉, 이것은 아무쪼록 투입하는 쪽이 투입 당하는 쪽에게 힘을 전달하는 구도이다. 그리고 아마 이것이 이 영화를 통해 김지원이 하려던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수잔 손택의 카메라를 지적했던 문단을 복기해두고 싶다. 배우는 카메라를 향해 꿈을 들이미는 직업이다. 반대로 카메라가 우리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히 많은 변형을 해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카메라를 스크린에 대응하거나 하는 식의 번역이다. 먼저 이것을 스크린에 대응할 경우, 스크린을 향해 꿈을 들이미는 것은 관객-배우이다. 요컨대 우리는 영화를 보며 다양한 삶을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이 맥락에 따르면, 거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를 묻던 마녀는 꿈으로부터 배신당한 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국도극장에서 사망한 옛 여배우가 바로 그렇다. 다시 말해서, 그 여배우는 스크린에 배신당했고, 카메라에 배신당했으며, 꿈으로부터 배신당한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본다’는 것,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폭력이 된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다음 문장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들여다보고’ ‘투입한다’는 것이 카메라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CCTV라는 공공기관의 카메라와 스마트폰이라는 개인의 카메라로 가득 찬 현대 사회는 그들의 영화를 각각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는 우리가 공포영화라고 생각하는 <암전>의 바깥에 우리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우리 욕망의 중간 지대로 설정된 <암전> 속 폐극장은 꿈의 몽롱함을 자아내는데, 이곳은 여배우가 죽은 자리이자 한국 영화의 성지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주려 하고, 혹은 보임 당하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암전>에서 불이 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정제된 어둠에 관하여 ‘어둠이 내린다’라는, ‘꿈이 내린다’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적어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 꿈을 능동형과 피동형으로 고쳐 쓰려는 야생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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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님의 리뷰
2019.08.20 19:49:53
영화 속의 영화, 폐극장 소재는 흥미로우나 속은 텅 비었다. B급도 아닌 어정쩡함. 어설픈 점프스케어만 남발한다.

영화 내용보다 영화감독이 무서웠다. 영화 함부로 복사하질 않나, 주인없는 남의 집에 들어가지 않나. 오로지 영화밖에 모르는 민폐 캐릭터다. 주인공의 촬영에 대한 과한 집착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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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9 23:53:38
'암전' 초간단 리뷰
1. 오래전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지인이 "'령'은 꽤 괜찮은 공포영화가 아니냐"라고 말했다. 영화 '령'은 김하늘, 류진, 남상미가 주연한 영화로 전국 56만명의 관객이 든 2004년작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썩 괜찮은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내 대답은 "'령'이 괜찮은게 아니라 그 시기에 공포영화들이 죄다 구려서 상대적으로 나아보인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떤 영화들이 그런 '상대적 띵작'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암전'도 그런 영화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잘 만든 영화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못 만든 영화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장단점이 정말 확실하다. 이것은 산지직송 신선한 채소와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서 만든 요리와 같은 영화다. 이제 신선한 채소와 음식물 쓰레기를 나눠보자.

2. 영화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일은 꽤 재미있다. 이것은 만드는 사람도 재미있는 일이고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데드풀'이 하는 짓들을 말한다. 공포영화에서도 이런 시도는 종종 일어난다. 그 영화들을 우리는 '파운드 푸티지'라고 부른다. 1999년 '블레어 윗치' 이후 20년을 이어온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는 분명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적응하기 시작했고 영화 역시 "관객을 속이자"라는 사명을 져버렸다. 그 와중에 '암전'의 시도는 꽤 신선해보였다. 아주 노골적으로 '제4의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를 넘실거린다. '암전'에서 그 널뛰기를 보는 재미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3.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대체 공포영화 얼마나 보신거냐"라고 물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암전'의 음식물 쓰레기는 바로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기괴해보겠다고 묘사한 것들은 전형적인 표현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라기 보다는 저 옛날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근데 그거보다 안 무섭다). 특히 귀신이라고 등장하는 녀석은 '신세계'에서 정청이 쓰고 나온 명품 선글라스처럼 시커먼게 하나도 안 보인다. 놀래키려고 등장해도 한 3초 뒤에 "귀신이었어?"라며 정신차리게 된다. 화재로 죽은 귀신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랬다면 목을 꺾어서 가야코처럼 걷던지 천장에 매달려서 거꾸로 걸어오기라도 하던지 동작으로 겁을 줬어야 했다. 귀신이 시커먼데 활발하지도 않다.

4. 문제의 영화 속 영화 '암전'에서는 3명의 스탭들이 죽는다. 감독 나름대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겠다고 작정한 모양인데 솔직히 하품만 나온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피와 비명이 난무해야 하는 시점인데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시시하다. 나름 귀신이고 공간조작도 하는 능력이 있다면 좀 더 창의적으로 죽여도 괜찮았다. 예를 들어 '이벤트 호라이즌'에서 번개같이 지나가는 지옥의 풍경을 늘여서 담아낸다는 각오로 찍어도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3명은 숫자가 좀 적다. 2명 정도 더 추가했더라면 풍성한 그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름 '저주받은 영화'로 등장한 작품의 장면인데 정말로 부천에 출품된 대학교 졸작보다 '졸작'이다.

5. 부족한 표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에는 주인공의 긴박한 상황과 귀신의 얼굴을 오버랩하는 레트로풍 연출이 등장한다. MTV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뮤직비디오도 이거보다는 세련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에 등장한 군산 국도극장은 정말 끝내주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암전'의 소재와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를 맞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곳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몇 개의 연출도 꽤 훌륭했다('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연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레트로풍 연출을 한다는 점은 아이디어가 거기까지라는 의미다. ...이 아이디어, 대단히 아깝다.

6. 영화가 이 지경이 된 몇 가지 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이 영화는 돈이 없다. 가난하게 만든 티가 팍팍 난다. 그러나 이 가난은 결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거 더 고민만 했어도 기발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아이디어로 밀어붙였다면 어설픈 표현따위는 자제해도 충분했다. 빈틈은 뭘로 채워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런 환경에서 메이저의 영화를 지향하다 보니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투자자가 뭘 강요한 것인지 감독의 역량이 여기까지였는지 알 수는 없다. ...물어볼 생각도 없다.

7. 결론: 나는 "제 아무리 엉망진창인 영화라도 건질만한 것 하나쯤은 있다"는 말을 믿는다. '암전'은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엉망진창인데도 건질 것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김진원 감독이 혹평에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그는 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다. 그것을 세밀하게 다듬을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공포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할타자만 즐비한 타선에서 2할 중반대 타자를 보는 기분과 같다.


추신) 서예지가 원래 미인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서처럼 스타일링 해놓으니 정말 예쁘다. '암전'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서예지의 미모와 스타일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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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곰 님의 리뷰
2019.08.19 09:02:17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20억도 안되는 제작비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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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옹 님의 리뷰
2019.08.17 14:40:47
오래도록 기억될 한국 공포영화의 수작. 극장에서 봐야 제맛
자잘한 설명 보다는 공포 자체에 집중하는 보기드문 한국 공포영화의 수작. 앞으로 공포영화팬들 사이에 두고 두고 언급될 것 같다. 서예지의 발견은 또다른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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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tea 님의 리뷰
2019.08.17 00:19:23
클리셰적 호러 속에 갇혀버린 신선함
<암전>은 사실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제작될 지 매우 궁금한 영화였다. 공포 영화를 만드는 공포 영화라.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전개였고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호기심이 많이 생긴 영화이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런 신선한 전개가 클리셰적 호러에 갇혔다. 즉, 한국 호러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따라간다. 놀래키는 방식이나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이 그저 여느 호러 영화와 같았다.
물론 '호러'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장면들도 몇 가지 있었겠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좋은 설정을 계속 영화 내내 유지하기에는 다소 힘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호러'라는 장르가 많이 보편화되면서관객들은 이제 색다른 방식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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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느 호러 작품과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공포영화를 만든다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설정 그리고 감독의 창작 고통을 호러적인 분위기로 승화시킨다는 점 등 기존의 소재와는 확연히 달라서 영화 내내 예상이 되는 뻔한 클리셰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손익분기점이 35만명이라 다소 저예산의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저예산 호러 중에서는 정말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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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해줘>를 통해서 서예지 배우가 호러 장르에 아주 적합한 배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암전>은 그 생각에 쐐기를 박게 해준 작품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어둡고 암울한 감독 연기도 정말정말 찰떡이였다.
장르를 넘나드는 진선규 배우 또한 변신의 귀재인만큼 어두운 역할도 잘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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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메시지가 있었다면,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 아무리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라도 사람보다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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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20:18:53
영화 암전 후기
먼저 영화의 시나리오 시작 부분은 나름 신선하고 좋았어요.
서예지 배우를 다시 한번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구요.
진짜 영화에서 보여지는 기럭지와
민낯(?)의 매력과 털털함까지 캐릭터와 연기 자체가 좋았구요.
진선규 배우님 역시 워낙에 탄탄한 연기력으로 좋은 건 인정하구요.

하지만 시나리오의 신선함과 시작이
끝까지 연출되지 못한 부분이 너무 아쉬움만 가득했습니다.

주관적이지만 제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갑툭튀 이런 부분으로는 공포영화가 웰메이드라고 하기는
어렵더라구요. 고어물로 잔인하게 보여준다고도 공포영화가
아니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인데

개연성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납득할만한게 필요한데
아쉽게도 공포영화의 묘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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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 님의 리뷰
2019.08.16 10:59:14
익숙한 공포영화 패턴을 깨부수려는 몸부림, 이해시키기보단 알아서 받아들이라는 도발.
극 중 언급된 ‘블레어 위치’처럼 파운드 풋티지 형식으로 접근하되, 미정의 트라우마와 재현이 겪은 사건을 교묘하게 섞으면서 색다른 미스터리 공포로 변주한다.

그러나 저예산 영화의 한계인지, 김진원 감독의 연출력이 힘에 다다른 것인지 후반부로 갈 수록 극대화해야할 공포나 광기, 몰입도가 힘을 잃는다. 그래서 ‘난해하다’로 결론이 도달하는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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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19.08.16 00:39:56
애정의 호러 혹은 집착의 호러
단편영화로 이름을 알린 미정(서예지)은 상업영화 입봉을 위한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영화제작사로부터 극장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를 주문받았지만, 생각보다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영화과 졸업 상영회에서 귀신이 찍은 영화가 상영됐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던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수소문 끝에 미정은 그 영화의 감독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재현(진선규)을 찾아내지만, 재현은 자신의 영화 <암전>을 잊어버리라는 말만 계속한다. 하지만 미정은 점점 그 영화에 집착하게 된다. 공포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암전>은 장편 데뷔작인 <도살자>를 통해 본격적인 고어-슬래셔 영화를 만들었었던 김진원 감독의 11년 만의 신작이다. 존 카펜터의 <매드니스>와 <담배 자국>의 영향이 영화 곳곳에 보이는 이번 영화 또한 여러 호러 영화(특히 슬래셔 장르)에 대한 김진원 감독의 애정고백이나 다름없다.


사실 <암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미정이 소문 속의 영화 <암전>을 찾아가는 초반부였다. <암전>이 상영됐었던 대학을 찾아가고, 그곳의 학생들에게 영화의 존재를 물어보고, 국내 최대의 장르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아카이브를 찾아가는 장면은 한국의 씨네필들이 간절히 보고 싶었던 영화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경로와 유사하다. 어쩌면 김진원 감독 본인이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던 경험을 고스란히 영화에 녹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별개로 술자리에서 크리스토퍼 놀란과 드니 빌뇌브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는 연출전공 남학생들의 모습은 갑작스럽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암전>은 이렇게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갓 영화과를 졸업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음을 꽤나 공들여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미정이 재현을 만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영화 속 영화 <암전>에 대한 공포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도록 유도한다. 재현이 연출한 <암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영화가 촬영된 폐극장은 어떤 공간인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라는,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의 형식을 빌려와 그 상황을 보여주고, 단숨에 그 상황 안으로 미정을 밀어 넣는다. <암전>을 추적하던 미정을 쫓아가던 관객들은 미정과 함께 곧바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영화에 대한, 극 중 “공포영화가 나를 구원했어요”라는 재현의 대사로도 드러나는, 애정을 넘어선 시네’필리아’적 집착의 한 복판으로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플래시백으로 삽입되는 미정의 트라우마는 관객의 동참을 매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여러모로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각본 속에서 ‘한’을 품은 귀신, 파운드 푸티지 호러, 슬래셔 등 다양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된다.


<암전> 속에는 두 편의 <암전>이 더 있다. 하나는 재현이 연출한 ‘귀신이 만든’ <암전>이고, 다른 하나는 미정이 연출하게 된 <암전>이다. 결국 관객들은 세 편의 <암전>을 보게 되는 셈이다.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은 꽤나 흔하게 등장한다. <암전>은 이 설정을 영리하게 활용한 예시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 영화와 영화라는 다층적인 레이어는 귀신, 슬래셔, 파운드 푸티지 등의 요소들이 각각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미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와 영화와 영화 사이를 오가게 되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의 다다라서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그 상황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미정이 느끼는 공포, 그리고 재현에서 미정으로 옮겨온 집착이 <암전>을 완성한다. 이 과정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기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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