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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한국, 110분, 전체 관람가, 2019.07.24 개봉
감독
조철현
배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김준한
차래형
윤정일
탕준상
금새록
최덕문
남문철
정해균
박동혁
정인겸
오현경
임성재
송상은
시놉시스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65.71%
2.96점
키노라이트 분포
12개
23개
별점 분포
리뷰
26

조항빈 님의 리뷰
2019.07.22 23:04:07
한국 역사상 가장 감명 깊은 사건 중 하나를 가장 지루하게 풀어낸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를 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한글의 태생과 관련하여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다가 송강호와 박해일의 투톱 연기가 기대됐고, 지난 몇년 간 나온 사극 중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인 '사도'의 각본가였던 조철현 감독의 활약도 기대됐다. 하지만 '사도'의 장점은 완전히 사라지고 공허한 구멍만 남은 이 영화는 너무나도 밋밋했다.

가장 믿었던 부분인 연기는 역시나 가장 탄탄했던 부분이었다. 국민 배우 송강호가 연기를 잘한 점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묘사한 세종의 캐릭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늙고 노쇠하여, 이젠 몸이 열정을 못 감당하는 나이가 된 세종의 강단있는 추진력과 동시에 불안함도 많은 모습은 고뇌하는 리더상에서 '사도'에서도 보여준 송강호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감독도 송강호에 많이 의존하고 신뢰했는지, 송강호이 열연할 때에는 리버스 숏으로 컷을 안 하고 그대로 감정을 살리는 인상적인 원테이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전미선 배우와 함께 보여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묘사였다. 한 나라의 왕과 왕비가 아닌, 정말 오랜 세월동안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해온 두 부부처럼 묘사한 점은 굉장히 신선했으며, 아마 전미선 배우의 소헌왕후는 한국 사극의 중전 역할들 중 가장 인간미가 넘치는 캐릭터로 남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 못지 않게 활약이 돋보이며 가장 감정적인 순간들을 주도한 배우는 전미선이었고, 이 작품이 유작이 된 것은 그렇기에 더욱이 안타까웠다. 반면에 일부 조연들, 특히 스님들의 연기들이 전반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어린 스님인 학조 역을 맡은 탕준상 배우의 발성과 발음은 너무 또박또박해서 어색했고, 궁녀 중 한 명인 금새록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는 내가 정말 안 좋아하는 전기 영화의 흔한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영화를 중심 인물이 아닌 업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한글 창제가 어떤 과정과 원리로 이뤄졌냐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히 묘사를 한다. 하지만 그 창제의 인간적 동력, 즉 인물들의 동기들에 대해서는 알맹이가 별로 없다. 세종대왕은 애민 정신으로, 신미 스님은 불교 정신으로 무장한 투사들로만 묘사되고, 인간미와 드라마가 거의 없다. 하나의 정치적, 역사적 상징으로만 존재할 뿐, 한 때 살아 숨쉬고 이 땅을 거닐던 한 명의 인간이자 인격체로서의 묘사는 거의 없다. 그나마 세종은 소헌왕후가 있어서 한 명의 남편으로서의 면모가 보였지, 그것마저 없었으면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신미 스님은 결국 영화 내내 한글 창제를 위해 돌진하는 기계에 불과하며, 그의 갈등은 오로지 지적인 고뇌와 세종과 가끔 있는 의견 충돌 외에는 거의 없다. 이 마네킹 같은 캐릭터 앞에서는 박해일도 배우로서 인상적인 연기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영화에는 흥미진진한 상황은 존재하지만, 그 상황의 흐름에 따라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나 관계는, 세종대왕-소헌왕후 외에는 없다. 요컨대, 영화는 한글 창제라는 대업적을 세운 인물들을 해석함으로써 그 업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업적을 통해 인물들을 설명하며 이들을 명석한 기계 부품으로 정도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사극답게 의상와 분장과 미술은 역시나 탁월했다. 특히나 미술과 소품을 통해 한글을 만들기 위해 씨름을 했던 고민의 흔적과 결과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달파란 음악감독의 스코어도 상당히 좋았으며, 훈민정음을 조금씩 지어올리는 영화의 상승적 분위기를 굉장히 잘 살려줬다고 생각한다. 무용과 노래 등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우리나라의 문화와의 조화를 표현한 점도 나름대로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전반적으로 '나랏말싸미'는 소재와 주연 배우의 힘으로 볼만한 수준은 된다. 송강호와 전미선 배우의 활약이 이 극 영화에 그나마의 "극"을 부여했고, 한글 창제와 신미 스님에 대한 내용도 이런 내용을 처음 들은 사람들에게는 "아 이런 해석도 있구나"하는 정도의 교육적인 면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캐릭터와 갈등의 부재는 결국 몰입감이 없는 밋밋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결과를 나으며, 한국 역사상 가장 감명 깊은 사건 중 하나를 가장 지루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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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 님의 리뷰
2019.07.22 22:09:25
나랏말싸미 역사에 달아 코드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위대한 업적을 소재 삼다가 어느 순간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방향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영화 스스로 갈피를 못잡는다.

대중문화 속 세종대왕 이야기는 이미 레드오션이며,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세종시절 이야기는 웬만큼 알게 된다. 시작부터 ‘한 가지 설에 근거해서 만들었다’고 명시해 창작물임을 강조하지만, 도를 지나치는 왜곡요소가 많다. 이때부터 ‘나랏말싸미’의 장점은 점점 사라진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은 것인지, 인물간 서사와 감정에 초점을 둔 것인지 혼탁해져간다.

그래서일까, 송강호가 분한 세종은 세종이 아니라 송강호가 연기하는 늙고 병약한 왕으로 보이게 된다. 송강호의 호연만 강조될 뿐, 세종에게서 느낄 수 있거나 와닿는 무언가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신미대사와 소헌왕후를 연기한 박해일, 故 전미선 또한 ‘연기 잘한다’만 느껴질 뿐.

결국 배우들의 재능과 위대한 소재만 낭비된 범작이 되었다.

-2019년 7월 22일 ‘나랏말싸미’ 일반 시사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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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님의 리뷰
2019.07.22 23:45:22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E. H. 카는 말했다. 사극은 비록 겉으로는 과거의 사건을 다루고 있을지언정 속은 현대의 갈등구조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남한산성은 생존 혹은 자주라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두 굵직한 논리를 파고들었고 광해는 노무현을 빼다박은 영화였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많은 영화들이 민초, 민중과 그에 반하는 사대부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으로 엮여들어가는 것은 지금과 다른 사회를 다루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나랏말싸미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기득권 사대부와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드는 세종, 그리고 세종을 비밀리에 보좌하는 승려들. 나쁜 성리학자들과 착한 개혁가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자를 통해 제왕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세종의 야심이나 왕조 초기 왕권을 위해 역적으로 몰려 죽은 소헌왕후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했다면 당시 시대상과 권력에 대한 담론을 넓게 펼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곁가지에 불과하다.

연출은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한 수준을 유지하며,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은 채로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로 달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배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입체적일 수 있었지만 입체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묶여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장점은 언문,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있다고 느껴진다. 한글은 소리 글자. 초성/중성/종성이 나눠지고 자음과 모음이 따로 있는 글자다. 그렇다면 글자의 모양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글자의 개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소리 나는 방식에 따라 글자를 나누고 소리의 세기에 따라 표시를 다르게 한다. 직선과 점과 원만을 이용해 글자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게 한다.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지만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운데, 초성/중성/종성을 합자하여 쓴다면 더 간략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글자 창제 과정이 상세하고도 재밌게 등장한다. 몇 년은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필수 시청 영화가 되지 않을까?

고 전미선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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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 님의 리뷰
2019.07.23 18:16:19
한글 창제의 막전막후
세종(송강호)은 말을 담아낼 수 있는 우리글을 만들고자 중국의 언어학 관련 서적들을 모두 탐독하는 등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진전이 없자 조바심이 나는 듯싶었다. 급기야 그동안 애써 만들어 온 책들마저 모두 빗속에 내던진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백성들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쓰라린 탄식과 함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 일군의 승려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팔만대장경 원판을 줄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궁궐에서 시위를 벌인다. 선왕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해 온 것이다. 이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 전면에 나선 건 해인사 스님 신미(박해일)였다. 신미 덕분에 일본 승려들은 결국 발길을 돌리게 된다.

팔만대장경에 소리글자의 원리가 담겨있다고 주장하던 신미는 산스크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소리글자의 이치를 비로소 깨달은 세종은 신미의 놀라운 능력을 간파하고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글자를 함께 만들자며 그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관련하여 알려진 여러 종류의 설 가운데 신미 스님과 손을 잡고 함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으로 꼽힌다. 그가 이끌던 당시 사회는 숭유억불정책이 기조를 이루던 때다.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글자는 일종의 권력이었다. 글자를 아는 소수 무리만이 지식과 부를 움켜쥐었고, 글자를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세종은 백성들이 겪는 이러한 고통을 일찌감치 헤아리고 우리만의 글자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억불정책을 펼치던 조선은 불교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고 여기는 유자의 나라로, 자신들만이 글자를 독식한 뒤 새로운 글자 도입을 탐탁지 않게 여겨 온 신하들이 이에 협조할 리 만무했다. 더구나 갖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자에 대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이 세종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만다.

이런 가운데 세종의 눈에 문득 신미가 들어오게 된 것이니, 당시에는 그가 천한 신분인 불자였음에도 임금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세종의 고민을 곁에서 지켜 보다 못한 소헌왕후(전미선)가 직접 수소문하여 신미 스님을 궁궐로 불러들이는 등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 덕분이지만 말이다.

소헌왕후는 한글을 널리 퍼뜨린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그녀는 힘겹게 탄생한 한글이 유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궁녀들을 통해 그 식솔들에게까지 글자가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막후에서 힘을 보탠다.

소헌왕후로부터는 세종과 애틋함을 주고받던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왕비 신분으로서의 단아한 심성과 기품,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골고루 느껴진다. 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전미선의 마지막 배역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소리를 채집하여 이를 분류하고, 발성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점과 선, 그리고 면의 형태로 점차 글자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스크린 위에 차례차례 그려나간다. 처음에는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던 글자가 임금인 세종을 비롯하여 왕자와 스님 등 신분이나 종교의 차이마저도 가볍게 뛰어넘어선 이들의 지난한 노력으로 서서히 형태를 갖춰나간다.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유자들의 반대에 맞서 모든 백성이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기를 바랐던 세종의 이상. 숭유억불이라는 기조 속에서도 오로지 백성을 위한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과감히 서로의 차이마저도 품었던 그의 놀라운 포용력은 마침내 온 백성이 함께 읽고 쓸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을 창조하는 기적을 일궈낸다.

여기에 공자를 타고 온 임금 세종과 부처를 타고 온 스님 신미 사이를 파고들며 둘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소헌왕후, 그리고 새로 탄생한 문자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던 궁녀들의 노고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기득권 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대중화의 길로 좀 더 깊숙이 접어들게 된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우리가 평소 공기나 물처럼 여겼던 탓에 고마움을 모르고 사용해 온 한글에 이렇듯 한 위정자의 놀라운 이상과 실천력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까지, 수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깃들어있음을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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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19.07.23 18:00:36
한글, 비밀스러운 문자의 시초
여름 극장가는 성수기를 맞아 관객 끌어모으기 전쟁에 돌입했다. 총성 없는 전쟁의 첫 번째 주자 <나랏말싸미>의 신호탄이 울렸다. 훈민정음은 완성 시점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비밀에 쌓여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인물의 충분한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 한글 창제 가설, 드라마틱 한 인물과의 만남

문자는 권력이다. 백성이 언어를 안다는 것은 지배층의 권력을 흔드는 어떤 무기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당시 조선은 유교 숭상, 불교 배척의 나라였다.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당연히 먹고살기 바쁜 백성의 편의를 생각한 쉬운 문자를 만들려는 왕이 탐탁지 않았을거다. 누구나 읽고 쓰며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 상상조차 안될 일이다.

밖으로는 명의 눈치를 보고 안으로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세종은 새 언어를 만들어 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중전에게서 신미 스님을 소개받고 그와 뜻을 같이 하려 한다. 산스크리티어(범어), 티벳어, 파스파 문자를 연구한 끝에 한글을 만들어간다. 시대의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의 만남, 가장 높은 자와 가장 천한 자의 협업이다. 실존 인물이던 신미 스님을 지배층의 역사는 그동안 가려왔다.


# 새 언어의 시발점은 어땠을까?

첫째, 명의 속국이 아닌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임금을 등판했다. 임금은 백성을 위한 책을 만들어도 서가에 쌓여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이 어려운 한자를 쓰는한 조선은 반쪽짜리라 생각했다. 둘째, 우리가 생각하는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를 재해석했다. 세종과 유신들이 집현전에서 만들었다던 한글에 중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한글 창제 가설 중 참신한 시도다. 현대적 메시지와 가치를 가미해 후반부로 가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셋째, 중전의 역할도 있었다. 훗날 여자들이나 쓰는 천한 글자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해도 그들이 있어 나라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새 문자 창제라는 세종의 뜻을 이해하고 널리 배포하는 일에 중전의 힘이 컸을거다. 태어나면 모두가 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는 가장 천한 사람들과의 화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진행된다.

문자란 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어느 한 사람의 독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표준을 만든다는 이유로 일상성을 파괴하면 폭력이다. 만든 이의 표준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리성, 두루 쓰임에 맞춘 한글의 원리가 그것이다. 타협과 원칙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야 한다. 유교의 나라 임금이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

억불정책을 강하게 펼치던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자'란 법호를 내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훈민정음의 서문이 108자인 이유가 불교의 108번뇌를 뜻하는 성불을 의미하는 이유도 된다.


# 점선면을 잇는 협업의 시너지

작은 불씨가 모여 횃불이 되듯. 문자를 만드는 것보다 지키고 퍼트리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로를 이단이라 생각하고 제 밥그릇만 탐하면 곧 망한다. 다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 목표를 향한 의견 수립은 현대에도 요구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지역 간, 세대 간, 성별 간 싸움이 계속되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미래 모습을 한글을 통해 제시하는 듯하다.

오프닝에서 일본 중이 찾아와 팔만대장경을 달라 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이에 신미 스님은 "100년이 걸려도 직접 만들지 않으면 한낱 나무 조작에 불과하다. 스스로 만들어라 거지처럼 구걸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이는 세종과 여러 인물이 한글을 직접 만들고자 했던 자주적 명분과 맞닿아 있다. 한글 창제의 비밀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재미와 감동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 선, 면 연결의 힘'과도 통하는 협업의 시너지다.

적절한 웃음 코드와 후반부 묵직한 울림, 분배와 균형이 영화의 장점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세종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세종과는 다른, 송강호 표 세종이었다. 절대 물러나지 않는 기싸움의 상대로 박해일이 연기한 신미 스님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 올곧은 사람이다. 자신이 세운 뜻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배우 전미선을 모습은 아스라이 기억된다. 그리고 백성을 사랑한 세종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7.23 14:40:17
'나랏말싸미' 초간단 리뷰
1. 워낙 멀어서 자주 가진 못하지만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영릉(세종대왕릉)을 좋아한다. 왕릉 특유의 정돈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가장 잘 살아있는 곳이 영릉이 아닌가 싶다. 영릉의 입구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그 입구에는 혼천의와 자격루, 양부일구 등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을 엿볼 수 있는 발명품들이 전시돼있다. 그 업적들을 지나 왕릉 입구에 들어서면 무덤이라기 보다 공원에 가까운 넓은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그 공간을 한참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무덤이 위용을 드러낸다. 영릉은 '무덤'에 어울리진 않지만 맑은 날 나들이 가기 정말 좋은 곳이다. (당연히 후손들이 가꾼 것이겠지만) 영릉은 죽어서도 백성들을 마주하고 싶은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긴 '공원'이 아닌가 싶었다.

2. 어린 시절 위인전 등을 통해 세종대왕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聖君)'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어른이 되고 조금 깊게 그에 대해 알아보면 다소 히스테릭하기도 하고 집착도 심했으며 스트레스도 많고 연약한 '인간 이도'였다. 최근들어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책이 나오고 있다.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는 한글창제에 대한 여러 가설 중 하나를 재구성한 '팩션'이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고뇌와 불안은 꽤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관객들은 위인전에서 보던 어진 임금이 아닌 세종이 꽤 낯설게 다가온다. 히스테릭하고 불안하며 나약한 임금은, 30여년동안 고집해오던 것들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원래 높은 자리는 스트레스가 많은 법이다.

3. 그렇다면 세종이 임금으로 지내던 내내 해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글창제뿐 아니라 과학분야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앞서 언급한 혼천의나 자격루, 양부일구 등 천문과 역법, 기상관측 등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이것들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별을 관측해 시간을 깨우치고 날짜를 계산해 자연의 흐름을 알고 기상을 관측해 비의 양을 계산한다. 이것은 자연에 기대서 사는 인간, 농사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즉 세종의 과학적 업적들은 백성들이 풍요롭게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고 살게 하기 위한 것들이다. 한글 역시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영화에서 세종(송강호)이 내내 말하는 대로 한글은 백성들에게 지식을 나눠주기 위한 문자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과학을 익히고 뜻을 깨치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4.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랏말싸미'에서는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의도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영화는 세종을 중심으로 한 왕실과 신미(박해일)를 중심으로 한 승려들이 주를 이루는 만큼 '백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한글창제'라는 키워드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며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된 축은 세종과 신미의 갈등과 협업이다. 세종은 공자의 나라에 사는 왕이며 신미는 부처의 제자(승려)다. 초기 조선시대를 감안한다면 이들은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다. 그리고 협업을 위해 누구 하나가 양보하지도 않는다. 신미는 "나는 부처를 등에 업을테니 주상은 공자를 등에 업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나중에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너희의 일을 하거라, 나는 나의 일을 할테니"라는 말과 통한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이자 정치적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5. 나는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등장해도 야당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는 권력의 달콤한은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볼 수 있는 영역만 보게 된다. 여기서 야당의 역할은 대통령이 보지 못하는 지점을 보고 거기에 대해 직언을 하며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정치사(史)에서는 그런 야당을 본 적이 없다(이 말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여당도 야당 시절에 역할을 잘 했는지 돌이켜보면 "글쎄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랏말싸미'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야당(보수층)이 제 할말을 한다. 왕이 그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여느 사극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권력을 가진 신하들이 뒤에서 음모를 꾸며서 중전을 독살하는 등의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싸움은 기이할 정도로 편전 안에서만 이뤄진다. 심지어 승려들이 사대문 안에서 행진할 때 개인 군대라도 동원해 막을 법 하지만 내버려두고 편전 안에서만 뭐라 한다. 이상할 정도로 모범적이다.

6. 이 모범적인 태도는 정치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갖춰야 할 덕목을 보여준다. 흔히 '혐오'라고 불리는 것,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경계하고 어떻게 해야 모범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영화의 상당 부분을 할해하고 있다. 심지어 세종과 신미가 나란히 선 마지막 장면은 이게 사극인가 싶을 정도지만 두 사람이 계속 자기 할 일만 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함께 해야 할 부분은 함께 하지만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는 정인지(최덕문)와 세종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세종을 도와 '칠정산내편'을 만든 정인지는 승려들을 끌어들여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의도에 격분하면서도 그를 돕는다. 다름을 인정하는 협업은 영화 속 곳곳에서 드러난다. 관객들은 이게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가장 당연한 형태이며 이상적인 모습이다.

7. '나랏말싸미'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진취적인 메시지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좋은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이 메시지(혹은 그 이상의 것)를 영화에 녹여내려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놓쳤다. '나랏말싸미'의 최고 단점은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것이다. 큰 갈등도 없고 큰 감정변화도 없다. 이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닮은 꼴이다. 다른 점이라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명곡들이 수를 놓는 반면 '나랏말싸미'는 메시지가 수를 놓는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간간히 개그를 치는 걸 보니 흥행 욕심은 있는 모양이다(감독의 의도인지 투자자의 강요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개그조차도 마음에 안든다. 개그를 드러내고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더 힘을 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8. 결론: 요즘 국제정세는 차라리 '국뽕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나랏말싸미'는 좋은 국뽕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좋은 국뽕영화'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안 좋은 국뽕영화가 되느니 국뽕을 빼겠다"며 힘을 뺀 눈치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다. 훌륭한 메시지를 끄집어내기 위해 1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지루한 110분을 견뎌야 할 이유를 쉽게 찾기가 어렵다.


추신) 영화 속 안평대군(윤정일)과 수양대군(차래형)은 케미가 아주 좋다. 이 영화만 봐서는 나중에 수양이 안평을 죽인다는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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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11:17:41
세상에 다시없을 위대한 글자의 탄생
여러 한글 창제설 중에 하나인 신미 스님과의 일화를 선택한 건 영화를 조금 더 드라마틱 하게 끌고 가기 위함이었다. 유교의 나라에서 개 취급을 받는 스님이 가장 높은 임금의 뜻을 받들어 글자를 만드는 것부터가 후에 어떤 사건을 야기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소헌왕후의 아버지에게 천도재를 올리는 불경 소리 역시 그 사건에 보탬이 됐다. 세종과 신미, 그리고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의 이념과 신념이 부딪치는 장면도 있었다.

모든 것이 말끔하게 해결된 결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세종은 왕으로서, 신미는 한 발자국 물러나서, 소헌왕후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한글을 쉽게 배워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사의 가설 중 하나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100% 사실이라고 믿으면 안 되겠지만, 한글 자체의 위대함과 뜻깊은 창제 의도에 대해서는 100% 믿고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다. 세종대왕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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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10:25:45
신미 스님 말씀이 에피소드에 닿아
https://blog.naver.com/renorous/22159266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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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곰 님의 리뷰
2019.07.23 08:59:04
훌륭한 연기와 의도 아쉬운 서사와 갈등
훌륭한 연기와 의도 아쉬운 서사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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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00:59:59
한글의 의미나 고뇌보다는 현대식 웃음과 드라마에 집중을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훈민정음의 시작을 알리는 익숙한 소리의 시작은 반갑다. 그러나 <나랏말싸미>에서 느껴지는 이 이야기의 시작은 반가우면서도 전개는 무언가 이상하다.

기본적으로 훈민정음을 만들고 우리 한글을 만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나랏말싸미>는 당연하게 반가워야 하지만, 너무나 현대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에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하고 의식할 것이 많았는지, 모든 장르를 다 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의미보다는 '재미'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보다 재미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나랏말싸미>는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즉, 사극보다는 현대판 한글 창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듯한 분위기와 유머 코드 그리고 내용 전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랏말싸미>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유교와 불교의 대립 사이에 있는 세종이 아닌 그저 한글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 세종이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존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을지는 몰라도, 그 성공이 극적이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세종의 존재 자체에서 의구심이 들고 있다.

과연 세종은 한글을 누구와 만들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나랏말싸미>는 너무나 픽션적인 이야기를 픽션으로 풀고 있기에 사실적이지 못하다. 이렇게 사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스스로 아는 듯 어느 순간 현대화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되고 이 현대화는 한글이라는 요소에 거리가 생김과 동시에 스스로 이해를 갈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유머 코드를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유머 코드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지해야 할 한글 창제의 이야기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2019.07.22 메가박스 코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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