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Midsommar)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공포(호러), 미스터리, 미국, 스웨덴,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2019.10.03 개봉
감독
아리 에스터
배우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윌 폴터
윌리엄 잭슨 하퍼
아치 매더퀴
빌헬름 브롬그렌
율리아 랑나르손
안나 아스트롬
이사벨 그릴
리브 미에네스
비요른 안데르센
군넬 프레드
시놉시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 친구들.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지옥길,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84.21%
3.43점
키노라이트 분포
15개
80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46

2019.07.12 01:20:31
오컬트 자체는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입증. 하지제, 지역 풍습 등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로웠겠지만 관객은 주인공들처럼 논문을 쓰는것도 아니고 암시조차 주지 않은 단서들을 파헤쳐가며 영화를 보지 않는다. <유전>에서의 적절한 완급 조절은 온데간데 없고 늘어지는 서사와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 찬 욕망의 결과물을 본 듯 하다. 이미지적으로 훌륭하고 뇌리에 남는 부분들은 분명히 존재하나, 두시간반을 채우기에는 흡입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 치디 아나곤예... 이쯤되면 논문은 그만써야...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07.07 23:54:44
'미드소마' 간단 리뷰
1. 영화가 낯선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굳이 CG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고전 판타지 영화 '네버 엔딩 스토리'도 CG가 없던 시절에 시각효과와 미니어처만으로 전에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만들어냈다. 낯선 세계는 상상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가장 편리한 방법이 CG긴 하다). 그렇다면 낯선 세계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해보자. 남자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겪는 군입대 상황. 가족의 보호, 친구와의 자유분방함을 떠나 통제된 공간에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게 된다. 그 낯선 공간에 처음 당도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자. 실감이 나지 않는 며칠(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나면 그제서야 엄습해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곳은 가족의 보호도 없고 자유분방함도 없다. 자신의 일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은 무한한 갈굼과 눈칫밥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때 찾아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2.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는 완벽하게 낯선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들어간 직후, 카메라는 절대 공간을 나가지 않는다. 관객조차 공간 안에 가둬버린 것이다. '미드소마' 속 공간은 대단히 묘하다. 언제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나갈 수 없다. 아무도 외지인을 위협하지 않지만 그들은 극한의 위협을 받는다. 대니(플로렌스 퓨)의 어두웠던 세계와 달리 이곳은 지나칠 정도로 밝고 환하다. 어둠은 없지만 외지인들은 누구보다 깊은 심연에 빠져있다. '미드소마' 속 인물들은 낯선 공간의 일상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일상이 외지인들에게는 공포가 된다. 그 경계는 그리 두껍지 않다. 이 사실만으로 '미드소마'의 공포는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 마을은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최근에 믿게 된 사실: 잘 만든 공포영화는 '공포'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다. 리메이크된 '그것'이나 아리 에스터의 '유전', '바바둑', '팔로우' 등 최근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공포영화들은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서 찾아오는지 탐구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아이콘처럼 상징성을 갖기도 하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찰나의 감정이 아닌 깊고 오랜 것이기도 하며 반대로 찰나에 찾아와 주저앉아 있기도 하다. '미드소마'의 공포는 '차이'로부터 찾아온다. 차이,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르다. 그게 대체 무슨 공포가 될까? '차이' 그 자체는 공포가 되지 못한다. '차이'가 성립하려면 나와 상대방이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차이의 양쪽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나와 상대방은 다르다. 그런데 상대방은 다수이며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간단해진다. 상대방의 다른 점을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나의 다른 점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힘이 없으니깐).

4. '미드소마'는 설득시킬 수 없는 차이를 마주한 순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우리 삶 속에서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앞서 언급한 군입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일,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일, 혹은 회사를 옮기는 일. 모든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두근거림, 설렘 등으로 포장됐지만 사실 그것은 '공포'다. 이 공포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질서에 적응하거나 도망치는 일이다. 그런데 '미드소마' 속 외지인들은 둘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의 질서에 녹아들려 하지 않았다(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 후자에 이른 사람도 있다). 그만큼 이 마을의 사람들은 위협적으로 굴지 않았다. 이것은 마을의 의식 중 등장한 첫 번째 죽음과도 연관이 있다.

5. 외지인들이 이 마을에서 '첫 번째 위협'이라고 느꼈을 장면은 절벽 장면이다. 여기서 외지인들은 노년의 남녀가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을의 장로는 놀란 젊은이들에게 "우리만의 풍습이다. 그 분들도 기쁜 마음으로 떠나셨다"고 설득한다. 만약 이들이 절벽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목을 메달거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등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방식의 죽음을 맞았다면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첫 번째 죽음의 의식'(여기서 실패하면 나무망치를 들고 '두 번째 죽음의 의식'을 행한다)이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것인 만큼 "원하지 않으면 죽을 일은 없다"고 설득시키기 좋다.

6. 여기까지 읽으면 혹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종교의식을 빌어 살의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마을 장로들은 펠레(빌헬름 브롬그렌)에게 외지인(=재물)을 데려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죽을 사람을 꼬셔온 사람에 대한 감사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에 그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닌, 신에게 바쳐지는 '숭고한 영혼들'이다. 애시당초 생명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살인이 나쁜 행동이라는 인식이 없다. 이것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 조(휴 키스-번)에게 기도하고 목숨을 던지는 워보이들과 같다. 생명에 대한 기준과 가치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해 "악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7. 그런데 여기서 대니의 마지막 표정이 재미있다. 5월의 여왕이 된 대니는 재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남자친구였던 크리스티안을 선택한다. 크리스티안은 그들의 의식에 의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대니는 이 모습을 목격하고 오열했다. 이후 상황은 대니가 재물로 크리스티안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의식을 위한 것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대니의 마지막 미소는 그게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그렇다면 이 마을의 구성원 중 처음으로 '살의를 품고 사람을 죽인 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악의가 없다'고 말한 내 주장에 균열을 낸 것이며 영화 내내 보여준 이 집단의 모습에도 반전을 준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의식에서 재물로 지목된 남자가 몸에 불이 붙자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다. 결국 의식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8. 가장 무서운 살인마는 어떤 녀석일까? 나는 '살의를 드러내지 않은 살인마'가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사람 죽일 것처럼 생긴 녀석과 바퀴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녀석 중 후자가 살인마라면 상대방은 대응도 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미드소마'의 사람들을 후자에 가깝다. 140분 넘게 꽁꽁 살의를 감춘 마을 사람들은 마지막 5분에 이르러 머리카락보다 얇은 틈으로 "널 죽일 생각이 있었어"라며 살의를 드러냈다. 이것은 대니의 미소와 마지막 사내의 비명에서 드러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홀로코스트'의 식인종 집단보다 '미드소마'의 마을 사람들이 더 무섭다.

9. 결론: 공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공포는 얼굴을 감추고 있다. '미드소마'는 얼굴을 감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 고문을 일삼는 수사집단의 고문방식 중 하나는 '악랄한 형사'와 '좋은 형사'가 교차로 등장하는 것이다. 악랄한 형사는 고문과 폭력으로 압박하고 좋은 형사는 회유와 설득을 진행한다. 이 경우 수사대상은 이들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느 쪽을 생각하건 배신당하기 마련이다. 이때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꽤 심각하다. 이것은 정신적 고문으로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드소마'는 이런 식으로 관객을 옥죄는 영화다. 영화 내내 낮이라고 속지 말자. 이곳의 낯은 도시의 밤보다 더 무섭다.


추신) 리뷰를 쓰면서 어느 순간 '과제'처럼 떠안게 된 것: 기호와 상징을 정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글 쓰는 것을 지양하자. 내 글이 어느 순간부터 기호와 상징에 전복돼 해석만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글쓰기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지만 자칫 편협한 글쓰기가 될 수 있다. 매번 이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 '미드소마'에 이르러서야 나는 기호와 상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흐름을 쫓고 분위기를 봐야 한다. 여기에 기호와 상징을 정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무한대로 불어날 것이다. 만약 어떤 리뷰어나 유튜버가 이 영화에 대해 '해석'이라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헛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애시당초 해석이 불가능하고 해석할 필요가 없는 영화가 있다. '미드소마'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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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 님의 리뷰
2019.07.26 11:35:23
애써 부정해온 욕망을 기어코 파헤쳐버리는 심리적 호러 영화
-엄습하는 운명-

대니는 두 가지 불안을 안고 있다. 첫째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대니는 조울증을 앓는 동생에게서 꾸준히 불길한 문자를 받는다. 대니는 문자를 보며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받지만, 별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애써 그 예감을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실현되고 만다. 대니의 동생은 곧 부모님도 자신과 함께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자를 보내고, 그 날 대니의 가족은 모두 죽어서 대니에게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둘째는 주변 인물의 시선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항상 동생을 의식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대니는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자주 의존했다. 크리스티안은 그런 대니를 부담스러워했고, 크리스티안의 친구들도 대니를 불편해했다. 대니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남자친구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불안하다고 토로한다. 크리스티안은 대니가 불안정한 상태일 때 마음 놓고 기댈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살아가던 대니는 스웨덴에 있는 펠레의 마을로 가는 크리스티안 일행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한다. 크리스티안의 친구들은 여행에 끼겠다며 나타난 대니를 피해 자리를 옮긴다. 대니도 그 사실을 알기에 여행길에 오르는 그녀의 마음 한편이 무겁다. 그런데 모두가 대니를 피할 때 유일하게 대니에게 공감해주고 대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여행의 주동자인 펠레다. 펠레는 대니에게 공감하고, 그녀를 초대할 수 있어 기쁜 기색을 대놓고 보인다. 그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뿐더러, 자신도 부모님을 잃어보았기에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둥 그녀의 심부를 자극하는 말까지 한다. 그 말은 부모님에 대한 대니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잔인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에게 공감해줄 사람을 갈구하던 대니의 욕망을 달콤하게 충족시켜준다.

<미드 소마>는 예상하기 쉬운 영화다. 이는 <미드 소마>의 서사가 클리셰로 들어차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본심을 꾸준히 암시하고 구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부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무력감을 선사한다. 마을의 문화를 조사해서 논문으로 쓰려던 조쉬는 마을 경전을 찍기 위해 규율을 어기고 죽는다. 전반부 내내 여자 이야기만 하던 경박한 친구 마크는 수상한 여자를 따라가 죽는다. 여자친구에게서 해방되고 싶어 했던 크리스티안은 마을 여인 마야와 성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을 원했던 대니는 자신을 불편해하던 모든 사람이 거세된 마을의 구성원이 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한참 이전부터 등장인물에겐 저마다의 끔찍한 운명이 주어져있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욕망을 향해 내달리지 않는 것은 자라오면서 배운 사회윤리적 통념 때문이다. 크리스티안은 여자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마야와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한다. 대니는 남자친구가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해도 남자친구를 저버리고 펠레와 마을을 선택하지 못한다. 윤리적 통념에 어긋나는 자신의 흉한 본심을 짐짓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드 소마>는 인물이 어떻게든 모른 척하던 본심을 긴 시간에 거쳐 기어코 파헤치고 만다. 실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가차 없이 실현되고 관객들은 그 과정을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때 아리 애스터가 관객의 무력감과 고통을 배가하기 위해 선택하는 연출적 수단은 다가오는 끔찍한 운명의 지연이다. 가령, 절벽에서 노인이 떨어지는 씬에서 관객들은 절벽을 비추는 롱숏과 손을 베는 선혈의 이미지, 절벽 위에서의 아득한 부감 숏을 통해 노인들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다. 한데 노인들은 바로 뛰어내리지 않고 지독하게 긴 의식의 과정을 밟는다. 한 명이 뛰어내려 죽고, 예감은 확신이 된다. 그런데 노인 한 명이 죽고도 씬은 끝나지 않고, 나머지 한 명이 또 절벽 위에 선다. 심지어 그는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죽지 못한다. 관객이 미리 보았던 망치를 든 사내가 죽지 못한 노인을 향해 걸어간다. 관객의 감정을 끝도 없이 배가하는 짓궂은 장난. 이때 떨어져 죽는 노인을 지켜보는 인물들은 사건에 개입할 수 없는 관객과 같은 처지에 있다. 끔찍한 사건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인물들의 표정이 스크린에 구현된다. <미드 소마>에는 이런 지독한 리액션 숏이 많이 있다. 곰이 불타는 그림을 두 눈으로 보았는데도 아무것도 못하고 곰 안에 들어가게 되는 크리스티안의 눈빛. 곰 탈을 쓰고 자신의 주변을 휘감아오는 불을 지켜보기만 하는 크리스티안의 눈동자. 제물이 된 크리스티안을 지켜보는 대니의 망연자실한 표정. 불타는 신전 안에서 불을 지켜보는 마을 주민.


-추레한 본심-

절벽에서 떨어지는 노인을 본 대니는 충격을 받고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그때 펠레가 짐을 싸는 그녀를 잡는다. 펠레는 대니에게 크리스티안은 좋은 녀석이지만, 그가 너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냐고 묻는다. 대니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펠레는 대니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부모님을 잃었다고, 그러나 자신은 상실감을 느낄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부모님이 죽자마자 마을에 들어와 모두를 가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드 소마>의 무대가 되는 마을은 극단적인 파시즘적 매혹을 품고 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가족이고 동질적 구성원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잠을 잘 때도 프라이버시가 없다. 섹스를 하면 옆에서 수많은 사람이 함께 신음소리를 내며 공명(共鳴)하고, 오열을 하면 마을 구성원이 함께 슬퍼한다. 한 사람이 운다고 해서 모두가 함께 땅이 꺼질 듯이 분노하고 오열하는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대니의 트라우마와 결핍을 해소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는 과장된 집단 감성으로 가득 차서 기괴하다. 예견된 일이 거의 다 일어난 후에 대니는 결국 크리스티안을 저버리고 펠레와 키스를 한다. 그녀는 그토록 원했던 가족을 얻었다. 미소를 짓는 그녀의 해괴한 모습. 저마다 내밀한 욕망을 품고 있는 관객들은 그런 부류의 욕망이 이미지로 생생하게 새겨지는 것을 보고 섬찟함을 느낀다. 그 순간 관객이 느끼는 것은 자신의 추레한 본심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듯한 공포스러운 감각이다. <미드 소마>가 우리에게 끔찍하게 와닿는 것은 말초적 공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부정해온 욕망이 끝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심리적 공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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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lue 님의 리뷰
2019.07.13 00:42:02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며칠 전 용기 내어 챙겨봤던 <유전>. 오히려 그게 독이었던 것일까. <유전>이 생각보다 깔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기에, <미드소마>가 담고 있는 게 다소 많아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영화의 중반부까지 가졌던 기대감과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잃어버렸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되고 나서부터 약간의 실소를 터뜨렸던 문제의 배드신까지, 너무 버겁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동공지진의 연속이었달까. 길을 잃은 채 영화 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묘하게 재밌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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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 영화’가 마음에 든다. 내가 생각보다 공포 영화를 잘 보는 사람이었던 건지 아니면 이 감독의 이런 색깔이 좋은 건지 구분할 능력은 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왠지 그냥,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유전>을 곱씹으며 그리고 <미드소마>의 초반 대니의 아픔을 가만히 지켜보며 확신을 가졌다. 그저 어떤 시각적 징그러움이나, 청각적 자극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생각이 아니라 그는 영화 속 인물의 트라우마를 통해 관객에게 진심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보호받지 못한 채, 어쩌면 안쓰럽게 방치된 채 또 다른 이름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의 ‘공포 영화’라면, 나는 세상의 어떤 영화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가 제일 무섭다고 확언하겠다. <유전>의 ‘애니’가 자신의 엄마에게 느꼈던 그 공포의 기억을 어느새 자신의 아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것은, 결국 그 트라우마조차 ‘유전’되었다는 것은 내게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했었고 <미드소마> 속 대니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역시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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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적인 공간의 구분이 없었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쉽게 이해가 되었고, 그에 따른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버겁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소마>는 대니의 개인사와 연인 사이의 감정싸움, 친구들끼리의 다툼, 새로운 문화와의 충돌 등 끊임없이 끼어드는 다양한 소재들이 영화의 커다란 중심을 조금씩 흔들어놓는 느낌이 들어서 정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꽤 많은 죽음을 듣고, 목격하는 대니가 끝없이 슬픔을 표현하다가 마지막엔 결국 웃음을 보인다던지, 그들 부족의 문화에서는 결국 ‘사람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순환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등 다양한 중심 주제를 흐트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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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감독님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것 역시 아주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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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23:34:42
때로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만이 상실의 감정을 잊게 한다. 버텨낼 수 없는 감정들 속에서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선 고통 속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안식처로 여기게 된다. 대니가 우는 시늉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의 실마리를 얻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혼돈 속에서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을 때 수 명의 여성들은 둘러싸고 함께 곡을 한다. 주변의 괴로운 죽음들과 그 상실의 감정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대니는 더 목청껏 서럽게 운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환히 웃는다. 지옥이라도 좋으니 마음의 안식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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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QLSIXNA 님의 리뷰
2019.10.16 22:10:50
세 시간을 긴장하면서 봤다. 세 시간을 긴장시키는 흡입력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유전도, 미드소마 원 개봉판도 보지 않았었는데, 이 영화가 끝나고 당장 유전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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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크 님의 리뷰
2019.10.09 16:06:35
겹겹이 쌓인 어둠이 광야의 빛을 마주할 때 터지는 최초의 웃음, 혹은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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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나오는 ‘순환’. 채우기 위해 비우는 사람들. 미드소마가 대니를 초대하며 시작한 축제는 대니가 미드소마를 초대하면서 끝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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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감들이 스크린을 뚫고 넘치는 것이 좋았다. 울렁울렁 아지랑이가 피어나면 미드소마의 하얀 열기가 느껴졌다. 전개가 빠르지도 않고 음악이 몰아치지도 않아서 더 미치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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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는 외부에서 미지인인 소녀가 들어와 모두를 물리치고 어머니의 자리를 꿰차는 구조를 지닌다. 캐릭터와 공간을 비롯한 설정, 전개가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 생각났다.(둘다 두 번은 못 볼 영화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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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봤던 영화 중에서 ‘철저히 남근의 역할로만 사용되는 도구적 남성 캐릭터’의 묘사가 제일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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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의 플로렌스 퓨가 아직도 선명하다.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찰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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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scott 님의 리뷰
2019.10.09 02:02:35
무섭게 황당하네요.!
와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중세시대에 있는 폐쇄적인 마을을 사람들 모르게 관찰한 느낌입니다.





72주기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이 드네요.

일단 너무 체계적이라 무섭네요.

아 후반의 엄마와 딸의 그 교감은 정말.......



잭 레이너의 용기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스포없이 쓰고 싶은데 말을 고를수가 없습니다.



유전 감독이기에 각오하고 봤는데 이제는 러닝타임으로 도망을 못가게 하네요.



암튼 플로렌스의 감정이 이해가 갈정도로 집요한 분위기의 영화였습니다



여담으로 축제에서 계속 연주하는 음악이 궁금하더군요.



게임음악중에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음악 같아서 문화적으로 공통적인 서사가 있나라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ㅎㅎ



밖으로 나왔는데 해가 안보여서 다행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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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17:12:28
계획적으로 잘 그리긴 했는데...
나름 기대했던 신선한 맛이 없네;;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함이 있어
그닥 영화가 좋았다는 느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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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 님의 리뷰
2019.09.29 01:57:56
[아흔한번째리뷰] 미드소마 감독판
안녕하세요 박군입니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보고 왔느냐, 28일에 드디어 공개된 <미드소마> 감독판 입니다. 사실 공개되기전, 사람들에게 많은 소문이 있었습니다. '고어씬이 추가 될 예정', '그래서 미국은 NC17등급', '나머지 4일의 축제가 더 보여진다'...등 있었지만 사실 '감독판'에선 그런게 없었습니다. 고어씬, 더 추가되는 내용이 아닌 이전 <미드소마>보다 확실히 내용이 부드럽고, 캐릭터를 더 집중적으로 알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아쉬운건 이 영화를 볼때, <미드소마: 감독판>이 일반버전이 되어야 했고, 거기서 내용이 더 추가되고 잔인한 장면이 더 추가 됐어야 했다.... 러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은 다르지 않지만 추가 된 영상은 좀 많았고, 보고 좀 놀란 장면도 또한 많았습니다. 147분 이라는 상영시간에서 170분으로 확장 되었습니다.

※ 이 리뷰는 이전 <미드소마> 리뷰에서 감독판리뷰를 추가했습니다.

<미드소마>는 '아리 에스터'감독의 두번째 작품으로 이전 <유전>을 보고 정말 충격과 소름, 제 BEST 공포영화로 꼽았던 작풉입니다. 그 뒤에는 <해피 데스데이>가 있었씁니다. 이번에는 정말 믿고 볼 수 있는 '윌 폴터', '플로렌스 퓨', '윌리엄 잭슨 하퍼', '잭 레이너'의 배우로 최고의 연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 비주얼

이번 영화도 역시 카메라 무빙, 분위기, 색감 모든게 미쳤습니다. CG도 <유전>보다 더더욱 훨씬 낫고 정말 대박이였습니다. 환각증세를 잘 표현하기위해 꿀렁꿀렁한 화면에서 어지러운 효과 하지만 화려하고, 밝고, 음산하고, 아름답고, 잔인하며, 행복하고, 분노에 가득찬 모습입니다. '하지축제'를 화려하지만 섬뜩하고 기괴하게 선보인 이 영화는 성공적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전>보다 저는 더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감독판

​감독판 인 만큼, 이 영화는 따로 그렇게 큰 변화가 없었던 비주얼입니다. 카메라무빙도 역시 그렇죠. 하지만, 이전 <미드소마>와는 다르게 대사가 좀 다른 영화였습니다. 다른 대사로 자연스럽게 추가장면으로 넘어가는게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잔인했던 장면, 선정적인 장면, 마약에 취한 장면...등 여러가지는 그대로 였다는게 아쉽긴 합니다.

​- 연기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정말 말도 못할만큼 연기를 잘했습니다. 감정변화와 겁에질린 모습, 행복과 눈물 모든걸 다 표현해버리는데 진짜 두말못합니다. 이 영화의 플로렌스 퓨는 진짜 최고의 연기천재입니다. 포스터에 나오는 그 표정도 정말 멋져요. '잭 레이너'는 이번에 파격적인 노출과 함께 두려운 연기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윌 폴터와 윌리엄 잭슨 하퍼의 분량은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사실 아쉽긴 했지만 친구영할로 잘 나왔고, 특히나 ​윌리엄 잭슨 하퍼​배우는 스크린에서 만나다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감독판

​감독판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더 돋보였습니다. 4명의 주인공 보다도, 하지축제에 있는 캐릭터들도 조금 더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의 연기도 추가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충격적이였다는 것... 배우의 연기와 달라진 대사로 조금 더 색다르고 이제서야 제대로 바늘구멍에 실을 넣은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깔끔한 진행을 보여줬습니다.

- 스토리

​'하지축제'를 떠나간 친구들은 섬뜩하고 기괴한 의식을 보고 섬뜩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종교적인 모습과 그 단체만의 문화를 이번에도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사실 <유전>도 그렇듯이 이 영화도 떡밥을 많이 찾을 수 있고, 한번만 보곤 바로 판단 할 수 없는 영화죠.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아리 에스터'감독은 변태다! 선정적인 장면이 불필요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너무 야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축제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표현 할 수 있었다는게 정말 신기하고 대단했습니다.

감독판

​'하지축제'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보단 '대니'와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과 '마크'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비중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두 남녀 주인공의 행동이 왜 그랬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만 추가된게 좀 아쉽다만 그래도 영화 내용은 상당히 깔끔해졌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더 부드럽게 알 수 있었다는 점.

- 결론

​<미드소마 감독판> 이라고 해서 더 잔인하고, 더 무섭고, 더 야한 그런 영화가 아니였습니다. 저도 몇몇 생각을 했었지만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그냥 <미드소마>의 틀을 깨지 않으려고 했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독판이라고 해서 굳이 영화관을 다시 찾아가서 볼 필요는 저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 깔끔해지고 더 알 수 있었던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이야기를 보고싶으시다면 보셔도 무방하다고 저는 생각이 드네요. 170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만큼, 왜 이 둘은 사랑했다가 결국 이렇게 완전히 갈라졌을까 하는 의문점을 이제 드디어 잡을 수 있었다는 것.

이전 영화보다 더 부드럽고 깔끔해진 스토리를 고려했을때, <미드소마>와 똑같이 <미드소마 감독판>도 초록색 신호등과 4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이 드는 부분은, <미드소마 감독판>이 일반판이고, <미드소마 확장판>이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영화도 더 길어지겠지만, 그 만큼 영화는 상당히 디테일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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