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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Midsommar)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공포(호러), 미스터리, 미국, 스웨덴,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2019.07.11 개봉
감독
아리 에스터
배우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윌 폴터
윌리엄 잭슨 하퍼
아치 매더퀴
빌헬름 브롬그렌
율리아 랑나르손
안나 아스트롬
이사벨 그릴
리브 미에네스
비요른 안데르센
군넬 프레드
시놉시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 친구들.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지옥길,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85.71%
3.5점
키노라이트 분포
7개
42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31

2019.07.07 23:54:44
'미드소마' 간단 리뷰
1. 영화가 낯선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굳이 CG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고전 판타지 영화 '네버 엔딩 스토리'도 CG가 없던 시절에 시각효과와 미니어처만으로 전에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만들어냈다. 낯선 세계는 상상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가장 편리한 방법이 CG긴 하다). 그렇다면 낯선 세계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해보자. 남자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겪는 군입대 상황. 가족의 보호, 친구와의 자유분방함을 떠나 통제된 공간에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게 된다. 그 낯선 공간에 처음 당도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자. 실감이 나지 않는 며칠(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나면 그제서야 엄습해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곳은 가족의 보호도 없고 자유분방함도 없다. 자신의 일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은 무한한 갈굼과 눈칫밥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때 찾아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2.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는 완벽하게 낯선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들어간 직후, 카메라는 절대 공간을 나가지 않는다. 관객조차 공간 안에 가둬버린 것이다. '미드소마' 속 공간은 대단히 묘하다. 언제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나갈 수 없다. 아무도 외지인을 위협하지 않지만 그들은 극한의 위협을 받는다. 대니(플로렌스 퓨)의 어두웠던 세계와 달리 이곳은 지나칠 정도로 밝고 환하다. 어둠은 없지만 외지인들은 누구보다 깊은 심연에 빠져있다. '미드소마' 속 인물들은 낯선 공간의 일상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일상이 외지인들에게는 공포가 된다. 그 경계는 그리 두껍지 않다. 이 사실만으로 '미드소마'의 공포는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 마을은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최근에 믿게 된 사실: 잘 만든 공포영화는 '공포'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다. 리메이크된 '그것'이나 아리 에스터의 '유전', '바바둑', '팔로우' 등 최근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공포영화들은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서 찾아오는지 탐구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아이콘처럼 상징성을 갖기도 하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찰나의 감정이 아닌 깊고 오랜 것이기도 하며 반대로 찰나에 찾아와 주저앉아 있기도 하다. '미드소마'의 공포는 '차이'로부터 찾아온다. 차이,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르다. 그게 대체 무슨 공포가 될까? '차이' 그 자체는 공포가 되지 못한다. '차이'가 성립하려면 나와 상대방이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차이의 양쪽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나와 상대방은 다르다. 그런데 상대방은 다수이며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간단해진다. 상대방의 다른 점을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나의 다른 점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힘이 없으니깐).

4. '미드소마'는 설득시킬 수 없는 차이를 마주한 순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우리 삶 속에서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앞서 언급한 군입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일,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일, 혹은 회사를 옮기는 일. 모든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두근거림, 설렘 등으로 포장됐지만 사실 그것은 '공포'다. 이 공포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질서에 적응하거나 도망치는 일이다. 그런데 '미드소마' 속 외지인들은 둘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의 질서에 녹아들려 하지 않았다(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 후자에 이른 사람도 있다). 그만큼 이 마을의 사람들은 위협적으로 굴지 않았다. 이것은 마을의 의식 중 등장한 첫 번째 죽음과도 연관이 있다.

5. 외지인들이 이 마을에서 '첫 번째 위협'이라고 느꼈을 장면은 절벽 장면이다. 여기서 외지인들은 노년의 남녀가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을의 장로는 놀란 젊은이들에게 "우리만의 풍습이다. 그 분들도 기쁜 마음으로 떠나셨다"고 설득한다. 만약 이들이 절벽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목을 메달거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등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방식의 죽음을 맞았다면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첫 번째 죽음의 의식'(여기서 실패하면 나무망치를 들고 '두 번째 죽음의 의식'을 행한다)이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것인 만큼 "원하지 않으면 죽을 일은 없다"고 설득시키기 좋다.

6. 여기까지 읽으면 혹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종교의식을 빌어 살의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마을 장로들은 펠레(빌헬름 브롬그렌)에게 외지인(=재물)을 데려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죽을 사람을 꼬셔온 사람에 대한 감사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에 그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닌, 신에게 바쳐지는 '숭고한 영혼들'이다. 애시당초 생명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살인이 나쁜 행동이라는 인식이 없다. 이것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 조(휴 키스-번)에게 기도하고 목숨을 던지는 워보이들과 같다. 생명에 대한 기준과 가치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해 "악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7. 그런데 여기서 대니의 마지막 표정이 재미있다. 5월의 여왕이 된 대니는 재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남자친구였던 크리스티안을 선택한다. 크리스티안은 그들의 의식에 의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대니는 이 모습을 목격하고 오열했다. 이후 상황은 대니가 재물로 크리스티안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의식을 위한 것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대니의 마지막 미소는 그게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그렇다면 이 마을의 구성원 중 처음으로 '살의를 품고 사람을 죽인 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악의가 없다'고 말한 내 주장에 균열을 낸 것이며 영화 내내 보여준 이 집단의 모습에도 반전을 준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의식에서 재물로 지목된 남자가 몸에 불이 붙자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다. 결국 의식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8. 가장 무서운 살인마는 어떤 녀석일까? 나는 '살의를 드러내지 않은 살인마'가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사람 죽일 것처럼 생긴 녀석과 바퀴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녀석 중 후자가 살인마라면 상대방은 대응도 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미드소마'의 사람들을 후자에 가깝다. 140분 넘게 꽁꽁 살의를 감춘 마을 사람들은 마지막 5분에 이르러 머리카락보다 얇은 틈으로 "널 죽일 생각이 있었어"라며 살의를 드러냈다. 이것은 대니의 미소와 마지막 사내의 비명에서 드러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홀로코스트'의 식인종 집단보다 '미드소마'의 마을 사람들이 더 무섭다.

9. 결론: 공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공포는 얼굴을 감추고 있다. '미드소마'는 얼굴을 감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 고문을 일삼는 수사집단의 고문방식 중 하나는 '악랄한 형사'와 '좋은 형사'가 교차로 등장하는 것이다. 악랄한 형사는 고문과 폭력으로 압박하고 좋은 형사는 회유와 설득을 진행한다. 이 경우 수사대상은 이들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느 쪽을 생각하건 배신당하기 마련이다. 이때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꽤 심각하다. 이것은 정신적 고문으로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드소마'는 이런 식으로 관객을 옥죄는 영화다. 영화 내내 낮이라고 속지 말자. 이곳의 낯은 도시의 밤보다 더 무섭다.


추신) 리뷰를 쓰면서 어느 순간 '과제'처럼 떠안게 된 것: 기호와 상징을 정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글 쓰는 것을 지양하자. 내 글이 어느 순간부터 기호와 상징에 전복돼 해석만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글쓰기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지만 자칫 편협한 글쓰기가 될 수 있다. 매번 이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 '미드소마'에 이르러서야 나는 기호와 상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흐름을 쫓고 분위기를 봐야 한다. 여기에 기호와 상징을 정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무한대로 불어날 것이다. 만약 어떤 리뷰어나 유튜버가 이 영화에 대해 '해석'이라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헛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애시당초 해석이 불가능하고 해석할 필요가 없는 영화가 있다. '미드소마'는 그런 영화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blue 님의 리뷰
2019.07.13 00:42:02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며칠 전 용기 내어 챙겨봤던 <유전>. 오히려 그게 독이었던 것일까. <유전>이 생각보다 깔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기에, <미드소마>가 담고 있는 게 다소 많아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영화의 중반부까지 가졌던 기대감과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잃어버렸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되고 나서부터 약간의 실소를 터뜨렸던 문제의 배드신까지, 너무 버겁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동공지진의 연속이었달까. 길을 잃은 채 영화 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묘하게 재밌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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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 영화’가 마음에 든다. 내가 생각보다 공포 영화를 잘 보는 사람이었던 건지 아니면 이 감독의 이런 색깔이 좋은 건지 구분할 능력은 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왠지 그냥,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유전>을 곱씹으며 그리고 <미드소마>의 초반 대니의 아픔을 가만히 지켜보며 확신을 가졌다. 그저 어떤 시각적 징그러움이나, 청각적 자극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생각이 아니라 그는 영화 속 인물의 트라우마를 통해 관객에게 진심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보호받지 못한 채, 어쩌면 안쓰럽게 방치된 채 또 다른 이름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의 ‘공포 영화’라면, 나는 세상의 어떤 영화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가 제일 무섭다고 확언하겠다. <유전>의 ‘애니’가 자신의 엄마에게 느꼈던 그 공포의 기억을 어느새 자신의 아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것은, 결국 그 트라우마조차 ‘유전’되었다는 것은 내게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했었고 <미드소마> 속 대니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역시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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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적인 공간의 구분이 없었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쉽게 이해가 되었고, 그에 따른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버겁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소마>는 대니의 개인사와 연인 사이의 감정싸움, 친구들끼리의 다툼, 새로운 문화와의 충돌 등 끊임없이 끼어드는 다양한 소재들이 영화의 커다란 중심을 조금씩 흔들어놓는 느낌이 들어서 정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꽤 많은 죽음을 듣고, 목격하는 대니가 끝없이 슬픔을 표현하다가 마지막엔 결국 웃음을 보인다던지, 그들 부족의 문화에서는 결국 ‘사람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순환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등 다양한 중심 주제를 흐트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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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감독님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것 역시 아주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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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01:20:31
오컬트 자체는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입증. 하지제, 지역 풍습 등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로웠겠지만 관객은 주인공들처럼 논문을 쓰는것도 아니고 암시조차 주지 않은 단서들을 파헤쳐가며 영화를 보지 않는다. <유전>에서의 적절한 완급 조절은 온데간데 없고 늘어지는 서사와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 찬 욕망의 결과물을 본 듯 하다. 이미지적으로 훌륭하고 뇌리에 남는 부분들은 분명히 존재하나, 두시간반을 채우기에는 흡입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 치디 아나곤예... 이쯤되면 논문은 그만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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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19:17:36
감독이 약에 취해 아름답게 '보일' 거대한 '힌놈의 골짜기'의 종교적 의식을 파스텔 톤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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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0 19:03:18
무섭다는 이야기듣고 갔는데..
무서운거 언제 나오나 보다가 끝남..
.
2019 CGV CAV기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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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님의 리뷰
2019.07.18 15:55:21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이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색깔을 가진 감독의 작품이었다.

초중반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지나 결말에 가기까지 관객은 미쳐가지만 주인공 대니의 관점에선 힐링영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예상외로 친절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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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Vet 님의 리뷰
2019.07.17 21:04:32
불쾌와 불안으로 쌓아 올린 서사의 파괴력
<미드소마> 노스포 간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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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수위와 상관없이, 불쾌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영화가 있다. 먼저 전제 조건은 이런 영화가 던지는 화두가 '현실 감각'을 갖춰야힌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 바깥에서 '관람'중인 관객을 지속적으로 그 경계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영화 내의 불안을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현실 감각 없이 사람을 찢어발기는 영화를 즐기는건 불쾌 이전에 고통의 포르노적 소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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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미드소마>는 수난을 유흥으로 소비하지 않는, 불쾌감과 안도감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을 타며 관객을 기만하는, 동시에 천재적인 영화이다. 사실 여러모로 <유전>이 더 뛰어나다. 전반적인 완성도, 서사의 깔끔함, 그리고 대중성까지 전체적으로 <유전>이 낫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의 소재나 고유한 매력은 <미드소마>의 편을 들고 싶다(아담 맥케이의 <빅쇼트>와 <바이스>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근데 이건 매력도 <빅쇼트>가 우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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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에스터 감독은 탁월한 설계자이다. 서사를, 화면을, 음향을, 편집을 정말 영리하게 구성할 줄 아는 감독이다. <미드소마>는 '호르가'라는 토착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사이비라고 하기엔 원형이 될만한 종교가 없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모든 단계를 특수한 의식에 따라 계획하며, 공동체에 융화된 삶을 살아간다. 그 공동체에 주인공 '대니'를 비롯한 인물들이 방문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드소마>는 결국 대니의 힐링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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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치유 과정이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점, 동시에 관객에게 정신적인 핍박을 준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를 담아내는 형식(미장셴)이 온화하고 아름답다는 부조화를 품고있다는 점이다. 즉 주인공의 측면에선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일종의 반어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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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왜 이렇게 불쾌한, 피폐해지는 영화를 보는가"의 질문으로 회귀한다. 이런 '피폐한' 장르(?) 영화들의 공통점은, 인물들이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 내의 인물은,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발악을 하든, 체념한 채로 의지를 포기하든 결국 무기력한 존재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극한 속에서 인물들은 숭고한 얼굴을 드러내고, 그 모든 고난을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우리가 이런 피폐한 장르에 끌리는 것은 그 숭고함의 순수성 때문에, 나아가 그 고통의 상황에 우리가 이입하며 발생하는 동질감 때문이다. 특히 이 동질감은 이런 피폐함을 치유로, 불쾌감을 쾌감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드소마>는 결국 핍박을 주면서도 관객에게도 '힐링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앞에서와 말이 다르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원래 한국말은 뒤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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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최고의 힐링물은 역시 <미드소마>다. 대니의 그 미소를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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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훈 님의 리뷰
2019.07.17 12:42:54
빠져나갈 수 없는 늪지대같은 영화
미드소마(MIdsommar)
2019년 07월 11일 개봉
쿠키영상 : X

"빠져나갈 수 없는 늪지대같은 영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마음을 침식하는 영화"

"한 낮의 공포라는 클리셰 뒤집기 그리고 구원받은 영화"

제작년 영화 <유전>으로 새로운 공포영화의 시대를 열어버린 '아리 에스터'감독의 신작 <미드소마> 이번 영화도 확실하게 미쳤다.

영화 <미드소마>는 <유전>과는 '공동체'와 '가족' 이라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두 영화는 확실하게 다른 작품이다. <미드소마>의 분위기나 색감은 다소 밝고 부드러우며 따뜻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편안했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말이다. 이후에 벌어질 사건들은 언제 질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압박감을 친히 가슴위에 쌓아주신다.

언제부턴가 '잘 만든 공포영화'란?? "현실세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를 극한으로 이용한 영화"라고 대답하곤 한다. 사실 <미드소마>는 기존의 공포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공포'와는 이질적으로 다른 '공포'를 심어준다. 언어, 힘, 그 어떤 행동들로도 극복할 수 없는 단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무력함을 느끼며 '두려움' 그리고 '공포'를 느낀다. <미드소마>는 이런 부류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147분이라는 러닝타임속에 친절하게도 결말을 암시하는 여러 상징과 복선이란 복선은 다 보여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바쁘다. 마치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가도 숨이 점점 가빠지는것과 같이 이 영화는 주변의 산소를 없애기라도 하듯 가만히 앉아서 숨쉬는 것 조차 힘들게 만든다. 한 영화에 뭘 이렇게도 많이 담아내고 표현했는지 도저히 전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화가 주는 압박감의 또 다른 이유로는 공간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처음 여행계획을 짜고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 카메라는 '헬싱글란드'에 들어가는 차량을 간만과 함께 뒤집어서 보여준다. 그리고 입구는 점차 안개로 가려지는 모습을 연출 시키면서 대니일행과 관객들이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이후 카메라는 '헬싱글란드'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으며 계속해서 공간을 좁혀온다. 또 백야라는 특성 덕분에 계속되는 햇빛과 낮이라는 환경이 본래라면 편하게 봐야할 밝은 이미지의 요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도 준다. 일종에 클리셰비틀기로 봐야 할 것이다. 이로인해 관객들은 이미 공간적 시간적 특성에서 부터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받으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점점 숨을 조여오게 만드는 것이다.

'대니'일행이 함께 '약'을 하고 약기운에 취해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자연과 동화되는 CG연출이나 그들의 시야에 아지랑이 같이 울긋 불긋거리는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그것 역시 관객들까지도 이 축제에 빠져들게 하려는 속셈이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상영관에서 '헬링글란드'의 모습만 보고 있었으며 다른 바깥 세계와는 일체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드소마>는 힐링영화가 맞다. 기존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한명 없는 '대니'가 가족을 잃고 연인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 감정을 격렬하게 공감해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그들의 구성원이 되면서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이야기가 종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니'는 비로소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약에 취하거나 사고력이 흐트러졌을 때 나오는 실소와는 다른 웃음이였다. 그녀는 이미 '호르가'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oviemon 님의 리뷰
2019.07.17 00:44:45
영화 <유전> (2017)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 아리 에스터 감독은 다시 한번 공포 영화 <미드소마> (2019)를 내놨다. <유전>과 <미드소마> 모두 아리 에스터 감독이 공포 영화의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드소마>는 <유전>과 달리 명확한 결말을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종종 삽입된 삽화로 일찌감치 암시한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도 있다 (사실, <유전>도 ‘시학’의 기본적인 개념 및 특성을 알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결말이 예측 가능한 영화다). 또한, <미드소마>는 전작과 달리 굉장히 느린 템포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백야의 공포가 아니라 백야의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처럼 다른 차원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아리 에스터 감독이 관객이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게끔 작정하고 판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이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이어지는 한여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스웨덴에 위치한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갈 때 초입 길에 들어설 때 즈음 화면이 천천히 뒤틀리면서 상하가 완전히 반전된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구가 어그러지면서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도중에 도망칠 길이 사라졌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야가 지속되는 현상은 색다른 공포 영화를 위한 단순한 장치에 그치지 않고, 초대 받은 외부인을 감시하는 마을 사람의 눈을 대변하는 기능을 한다. 즉, 일종의 파놉티콘(Panopticon)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죽음의 윤무(Todesreigen)가 천천히 진행되면서 ‘대니(플로렌스 퓨)’처럼 관객 역시 서서히 현혹된다. 또한, 약물로 인한 신비주의를 시각화한 아지랑이는 몽타주 기법을 통해 ‘대니’의 표정과 함께 현실이 환각에 잠몰되는 연속적인 상징적 시퀀스를 완성하면서 관객을 혼란스러운 상태로 밀어 넣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송씨네 님의 리뷰
2019.07.16 22:14:20
극과 극을 하나의 축제로... 미드소마 축제로 놀러오세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도 재능일 수 있겠죠? 이런 영화는 처음이라는 부분에는 공감합니다. 대낮에 벌이는 축제 속에 공포를 넣었다는것도 인상적이지만 죽음과 성욕이라는 극과 극의 상황을 하나의 세트로 묶었다는 것도 기발하다고 봅니다. 주인공 대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태에서 남친과 친구들과 힐링의 목적과 더불어 논문 준비를 위해 외진 마을 방문하죠. 온갖 못볼 것을 본 상황에서 끊임없이 울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라 하긴 그렇지만) 근데 말미에는 미소를 짓고 있죠. 못볼 것 다 본 그에게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거나 실성한 상태로 보입니다. 결국 좌절의 끝은 무엇인가란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전작 ‘유전’ 때도 이랬다고 하니 아리 애스터 감독의 능력을 칭찬해줘야할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신인인데 벌써 고난전문 배우가 된 플로렌스 퓨가 다음 영화에서는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길 바래봅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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