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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The Truth)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일본, 프랑스, 106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12.05 개봉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클레망틴 그르니에
마농 끌라벨
알랑 리볼트
크리스티안 크라에
로저 반 훌
루디빈 사니에
잭키 베로어
로랑 카펠루토
시놉시스
자신의 회고록 발간을 앞둔 전설적인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이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남편 행크(에단 호크), 어린 딸 샤를로트와 함께 오랜만에 파비안느의 집을 찾는다.

반가운 재회도 잠시,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뤼미르는 책 속 내용이 거짓으로 가득 찼음을 알게 되는데…
91.67%
3.61점
키노라이트 분포
4개
44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25

2019.12.13 17:45:59
고레다 감독의 프랑스버젼
이라는 수식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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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01:40:40
한 여배우(카트린 드뇌브)에 관한 빼어난 초상이자 연기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관계를 탐구하는 탁월한 메타 영화이자 결국은 관계에 관한 성찰을 녹여낸 고레에다표 가족 영화. 일본인이 프랑스에서 찍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수준의 연출력을 선보인 고레에다에게 찬사를 보낸다. 노년의 카트린 드뇌브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드물다. 고레에다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쾌한 톤의 필치로 극을 전개하면서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했던 <사랑을 카피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의 극적인 설정, <보이후드>에서의 에단 호크의 캐릭터,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에서의 알랭 리볼트의 캐릭터,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 <페르소나>, 존 카사베츠의 <오프닝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의 관계 설정과 극적인 구조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면서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그 모두를 아우르며 또 하나의 우아한 픽션을 완성한다. 영화 속에서 히치콕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흥미롭게도 죽은 사라에 대한 기억 속에 갇혀 있는 파비안느와 뤼미르가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유머를 유발시키는 <싸이코>나 <레베카>가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 사라의 시점에서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쇼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면 신기한 우연이라고 봐야할 듯싶다. 가벼움 속에 사실은 가볍지 않은 삶과 예술(영화)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다. (2019.12.12, 12.13 재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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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누키 님의 리뷰
2019.12.12 21:52:08
천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 가서 찍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봤는데 원제가 진실이기도 하고 뭔가 불안한 느낌이었습니다만 역시나 감독다운 영화였네요. 프랑스 배우들을 주로 써서 좀더 강렬한 터치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의 천성은 오래 볼 수록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인데 그러한 점을 잘 그려내주고 있네요. 그리고 그 또한 상호관계라는 것을~

감독의 팬이라면 당연히 추천드리며 프랑스 배우들 특유의 톡톡 튀는 맛이 가미된 작품이라 더욱더 좋았습니다.

배우의 본성이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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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Si 님의 리뷰
2019.12.12 18:14:32
배우와 가족 그리고 진실의 의미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1년에 한 작품씩 열심히 영화를 만드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죠. 고레에다 감독이 과거에 연극을 위한 쓴 각본을 토대로,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가 각본 작업에 직접 참여하여서 함께 작업했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둘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의 어느 지점까지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코드가 가지고 있는 틀은 같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이 있었죠. 물론, 이런 아쉬움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상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물론, 기존 그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유머의 빈도가 높아서 꽤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배우의 캐스팅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에서 찍었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라는 배경이 주는 메리트가 크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죠. 특히나 한국 관객에게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만드나, 일본에서 만드나 큰 차이가 없죠. 프랑스 영화의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일이거니와 일본 배우가 아닌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배우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은 고레에다를 좋아하시는 관객분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 관객층인 프랑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상당히 좋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유달리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예술 영화가 프랑스에 흥행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예술 영화들이 상을 많이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 인기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감명 깊었습니다. 저는 감독에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는데, 매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의 퀄리티가 크게 요동치는 것도 아니죠. 모르긴 몰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코드보다는 인물들의 직업이 배우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극 중 대배우인 파비안느가 자서전을 발간하게 되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뤼미르가 그녀의 자서전을 보고 한 말이 영화의 시작이 됩니다. 그녀의 책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죠.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파비안느의 캐릭터는 상당히 사고뭉치 같은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지멋대로 사는 사람이죠. 배우인 자신의 사위에게 서슴없이 연기지적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거나, 그 자리를 피해버리죠. 그리고 그 뒷수습은 언제나 뤼미르의 몫입니다.

영화는 크게 두 명의 인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파비안느와 그녀의 딸인 뤼미르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파비안느와 그녀의 손녀인 샤를로트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파비안느는 영화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줍니다.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확신보다는 불안함이 있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대게 자신의 상태가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자기 방어 기제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공격성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단점을 들추기 전에 타인을 공격해서, 그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녀가 한 이야기처럼 좋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엄마와 나쁜 아내를 감수할 수 있다고 하죠. 이는 그녀가 배우라는 타이틀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샤를로트입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 샤를로트라는 인물이 없더라도 이야기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전개에 꼭 필요한 인물과는 조금 동떨어진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샤를로트가 영화에서 하는 역할은 인물들은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는 파비안느 마당에 있는 거북이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거북이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은 없어졌다가, 갑자가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북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물은 오로지 샤를로트입니다.
거북이와 샤를로트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샤를로트는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이 펼쳐질 때,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소리를 통해 상황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장면 중에서 행크가 기타를 치는 소리가 파비안느의 침실에서도 살짝 들리는 것과 같다 볼 수 있지요. 이는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윤희에게]에서 등장한 윤희와 새봄의 사이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두 모녀는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서로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새봄은 윤희에게 쥰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윤희는 새봄이 담배를 피우고,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족은 서로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의외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치를 채는 경우가 많죠. 이는 아이가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죠.
이와 더불어 거북이를 피에르라고 부르며, 파비안느를 마녀라 칭하는 것 또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샤를로트는 그런 파비안느가 진짜 마녀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파비안느가 해왔던 일입니다. 배우라는 직업과 관련이 되어 있죠.

배우라는 직업은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연기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느껴지게 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상황은 연출이더라도 배우가 보여주는 감정은 진실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샤를로트가 영화의 관객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비안느라는 배우가 진짜라고 마녀라고 믿는 것이죠. 그리고 파비안느는 그것을 믿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장황한 설명없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합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들어가는 영상이 그렇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의 영화를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그의 영화에 쿠키 영상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굳이 넣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영상이 연기인지, 진짜인지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죠. 이는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설 때부터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 쿠키영상으로 정리하는 것이죠.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것을 사실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배우의 힘이고, 배우의 연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 된다는 것이지요.


영화의 중반부까지 그의 개성보다는 프랑스 영화의 개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후에는 그의 개성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항상 비슷한 가족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결과로 더 좋은 연기, 성장을 하게 되는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파비안느와 뤼미르 모녀는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부분의 가족은 샤를로트가 아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해주고 감싸줄 것입니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신뢰합니다. 그렇다면, 샤를로트가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면 이런 이해와 믿음은 사라지는 것일까요? 이해와 신뢰. 그것이 가족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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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별 님의 리뷰
2019.12.11 22:21:02
어쩌면 배우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본심을 드러내는 때도 물론 많지만, 거의 대부분은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마음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을 덧칠하여 주어진 현실 앞에 내보인다. 그렇게 쌓여 흘러온 ‘나’라는 매개체는, 다부짐과 위태로움의 시소에 앉아 이리저리 널을 뛰면서도, ‘진정한 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름 묵직한 생각거리 안에 쑥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개봉했던 <완벽한 타인>을 보면서도 느꼈듯 ‘진정한 나’라는 게 꼭 거짓 하나 없이 솔직한, 투명한 날 것의 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통상 비밀이 없는 온전한 내가 진정한 나라고들 하지만, 수많은 상황,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각자 저마다의 본심을 지니고 감추고 변형하며 타인 앞에 서는 내가 사실은 오히려 더욱 진정한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그러한 판 안에서 마음의 고삐는 마음대로만 부려지지 않는 법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렇게 구축된 말과 행동 때문에 종종 후회를 하기도 하고, 남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비극의 선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갈등을 꼭 좋고 나쁨의 잣대로만 가리킬 수 없는 이유는 살면서 봉합과 화합의 맛이 때때로 우리를 적시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과 관계의 삶이라는 판, 갈대 이상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마음, 게다가 언제나 제멋대로인 기억까지 합세하는 이 기막힌 콤비네이션을 대하고 있노라면, 우리는 꽤 대단하고 기특한 선방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엄마, 남편, 장모, 할머니, 친구, 그리고 배우로 살아가는 파비안느를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가면을 체화하여, 그러니까 각각의 꽤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는 옹골찬 배우일 수도 있다. 거기에 바로 머리를 이어 붙이고 마농의 말을 생각한다. 그러한 삶 안에서도, 그저 그 순간을 음미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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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황 님의 리뷰
2019.12.10 22:13:54
그 진실이라는게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어떡하죠?
엄마의 기억으로 써내려간 "회고록"에 딸은 "진실은 하나도 없네요"라는 말을 꺼냅니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회고록"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결과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펐던 기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변화한 것처럼 기억이라는 자기가 편한대로 변하는 "왜곡"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속성을 아는지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도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로 이를 못박아둡니다.

결국, 영화는 기억을 하나의 장면으로 풀어서 말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손녀 "샤를로트"가 "파비안느"에게 달려가 "우주선"을 언급하며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전합니다.
이에 대하여 "파비안느"는 뿌듯함을 느끼지만 사실 이는 딸 "뤼미르"가 꾸민일이죠.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우주선"이 대견스러움을,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하여 각자의 진실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를 통해서, 감독은 관객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기억이란, 다양한 곳에서 각자가 바라보는 진실이라는 다면화스럽다고 말이죠.
그리고, 이를 "가족"이라는 자신의 주특기로 재밌게 풀어나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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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xixi 님의 리뷰
2019.12.10 15:31:20
회고록 발간을 앞둔 전설적인 배우 파비안느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가 남편 행크와 어린 딸 샤를로트와 함께 오랜만에 파비안느의 집을 찾으면서 일어나는 가족 이야기로,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입니다. 특별한 반전이 있지는 않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이야기의 국제판이라 칭하면 좋을, 가족 간 모녀간의 애증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굳이 말하자면 해피엔딩의 이야기입니다. ^^


자식은 부모가 쌓아놓은 테두리 안팎에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뤼미르의 남편 행크가 말합니다. "장모님에게 나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거 보여주려고 나랑 샤를로트랑 데려온 거 아냐?"
비록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행크이지만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유명하진 않아도 엄마 파비안느처럼 배우 생활을 하는 행크는 엄마 파비안느와는 다르게 딸 샤를로트에게는 매우 다정다감한 아빠입니다.
뤼미르의 가정은 화려한 배우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엄마이길 바랐던 뤼미르의 사무쳤던 염원을 바탕으로 뤼미르 자신의 행복을 다져가고 있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품고 가는 가족 간에 좋은 감정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화가 나고 서운하고 짜증 나고 이해할 수 없어도 바꿀 수가 없는 가족이기에,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처가 조금씩 있을 테지요. ​

그렇지만 파비안느는 손녀 샤를로트에게 뤼미르의 아버지이자 전 남편인 피에르를 거북이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마술을 보여주면서,
ㅋㅋㅋㅋ
뤼미르는 상대를 배려해본 말을 해 본 적 없는 엄마를 위해 매니저 뤼크의 마음을 돌려 다시 데려올 만한 대사를 적어주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가족 안에는 항상 불행의 새싹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불행하고 싶은 만큼 불행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동시에 행복의 씨앗 또한 숨어 있습니다.
불행의 새싹을 햇볕에 내놓기보다는
흙 아래 숨어 있는 행복의 씨앗을 찾아 가꿔준다면,
오늘 불행하다고 느끼는 당신도 행복의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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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님의 리뷰
2019.12.10 14:41:03
보는 내내 행복했다.
차가운 느낌이 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가을을 배경으로 영화 전체에 흐르는 따스함에 마음이 따뜻해졌고, 그냥 행복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딱 맞았던것 같다.


세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까뜨린느 드뇌브.
프랑스 스타면서 대배우이고 유명하면서도 대표적인 이 배우를 최근 ‘쉘부르의 우산’을 보고나서야 알게되었는데, 그녀에 대한 사실이나 필모를 알지 못한채, 젊은 시절의 그녀에서 78세의 나이인 지금의 그녀로 한순간 옮겨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하나만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을 있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이미지와 연기력, 카리스마 등을 느끼며 멋지다는 생각했다. 영화 속 파비안느라는이캐릭터와 얼만큼 비슷한지도.
다음 작품을 찍던 중 쓰러져, 현재 뇌졸중 치료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얼른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유작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줄리엣 비노쉬.
최근 이 배우의 영화를 연달아 참 많이 보는 것 같은데, 볼 때마다 반하고만다. 좋아하는 여배우중 손에 꼽게 되었다.

에단 호크.
아니, 내가 에단을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을 줄이야. 원래 좋아했었지만, 화면에 에단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능력은 부족한 듯 보이나 능글거리며 장난기 섞은 애정표현을 하는 남편과 친구같은 아빠의 역할을 이렇게나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그냥 에단 호크라 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보는 내내 행복했다.


‘비포 선셋’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라는 설정도 그렇고, 장난치는 듯 말하는 남편과 시크한 부인의 모습도, 문득 스치는 줄리엣 비노쉬의 옆모습에서 겹쳐지는 줄리 델피의 모습이 보이면서, 이 영화가 참 많이 떠올랐다.

‘보이후드’
아빠로서 에단 호크의 모습은 ‘보이후드’에서 그의 모습과 똑같았다. 사랑스러운 아빠와 딸의 모습은 나까지 즐겁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배우에 관한 영화이자 가족에 관한 이야기.
흔히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고 하면 ‘가족 영화’라 단정지으며 그런쪽의 기대를 하는 것 같다. 홍보 또한 가족영화로 하고 있다. 물론 가족을 중심으로 또 소재로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온 것은 알지만, 꼭 가족이 그의 영화 중심에 서야만 관객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영화는 한 대배우와 배우인 혹은 배우를 꿈꿨던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녀의 배우로서의 삶, 인간관계, 성격 등과 함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준다. 이것을 단순히 가족영화라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배우들에 관한 영화라는 쪽에 더 기운다.
따라서 그의 전작을 다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고감독이 가족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며 기대보다 못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배경과 인물은 외국인데, 음악과 카메라 앵글은 너무나도 일본스러운 즉 고레에다 감독스러운 느낌이 물씬 느껴졌고, 나는 이마저도 재밌고 웃겼다. 정말 자신의 색채가 드러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일이구나.
음악이 흐를 때마다 ‘태풍이 지나가고’와 ‘걸어도 걸어도’가 자꾸만 떠올랐고, 특히 마지막에 인물들이 삼각형 구도로 서서 뒤돌아 하늘을 바라보는 그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나 일본 영화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언제나 고감독 영화는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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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님의 리뷰
2019.12.10 00:33:45
배경과 언어의 변화에도 느껴지는 반복의 피로감...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recréer 님의 리뷰
2019.12.09 08:46:30
삶이란 무대에,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삶이란 무대에…”

삶이란 무대에 우리의 배역은 다양하다.
부모와 자식으로 가족과 친구로 선배나 동료로…
순환하는 역할에 주목과 사랑을 받는 시간은 순간.
조연과 단역이 되었다, 소품이 돼보고…
무대 밖 작가와 조연출 감독을 오간다.

이 평범한 일상으로 채운 어느 가족의 이야기로
사생활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소소한 순간을 낚아채 마음을 흔드는 그의 영화는
“일상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이다.”란 카프카의 말처럼,
일상을 재발견하는 창조적 역행의 경험을 준다.
Ce film aussi…
-
만약 제 영화에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386p, 고레에다 히로카즈>
-

S#1. ‘연기’와 ‘삶’이 포개진 파비안느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연기하는 것’과 ‘사는 것’이 포개진 프랑스의 대배우 파비안느와 딸의 이야기다. 파비안느의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딸 뤼미르는 가족과 함께 엄마(파비안느)의 집을 찾는다. 오랜만에 모인 이 가족은 흥미롭게도 전부 영화인이다. 뤼미르는 시나리오 작가, 그녀의 미국인 남편 행크는 덜 알려진 TV 드라마 배우다. 어린 딸 샤를로트는 할머니의 연기를 보며 배우의 꿈을 몽실몽실 꿔본다. 어릴 적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S#2. 그래서 가족이며, 그렇게 가족이 된다
영화인이라 설까? 프랑스인이라 설까? 가족들의 대화는 통통 튀는 위트로 격정 앙상블을 이룬다. 파비안느의 전남편 피에르까지 모인 저녁,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위 몰래 파비안느는 그의 연기력을 차갑게 평한다. 발끈한 뤼미르가 날 서게 대꾸를 하다… 그만, 둘 사이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가족과 다름없던 ‘사라’의 지난 죽음에… 여전히 떳떳하기만 한 파비안느를 보며 뤼미르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기적인 엄마의 태도에 더 아픈 뤼미르의 상처는, 또 다른 가족 -매니저 뤼크와 남편 행크의 도움으로 화해의 실마리를 얻는다. 파비안느와 동행하며 차츰 지난날의 진심을 알게 되고, 이해와 용서에 이른다. -그래서 가족이며, 그렇게 가족이 된다-는 고레에다의 반복된 시선이 보인다.

S#2. 파비안느와 료타 그리고 고레에다
영화에 가장 다면적인 인물은 파비안느다. 오로지 연기를 위해 삶을 내려놓은 그녀는, 일찍이 아내나 어머니의 헌신보단 일(연기)에만 집중해왔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며 혀를 차게 되지만, 어리숙한 내면과 숨은 따뜻함을 발견하며 서서히 인정 -당한다. 마치 고레에다 영화 속,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료타’들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TV 다큐멘터리스트로 시작해 전 세계 주목받는 감독이 된 고레에다의 모습도 겹친다. 자기 안의 추억과 밖의 일들로 빚는 그의 영화가, 파비안느의 예술적 내면과 닮아 보여서다. 예민한 안테나로 일상을 음미하듯 살아가는 그와 그녀를 상상해본다.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도 가족 위에 놓여있다. 하지만 복제가 아닌 반 발짝 나아감의 변주로 읽힌다. 지역과 언어를 넘은 고레에다 시도에 새로운 인물과 관계의 산뜻함이 녹아있어서다.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되고, 기다림도 흐뭇한 -내겐 참 고마운 창작자다. 끝으로 인상 깊게 읽은 그의 에세이집 일부를 남기며 감상 글을 맺는다.

S#. 에필로그
‘천지유정(만물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이라는 말이 있다. (중략) 내가 작품을 낳는 것이 아니다. 작품도 감정도 일단은 세계에 내재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주워 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자, 이것 봐” 하며 보여줄 뿐이다. 작품은 세계와의 대화다. <걷는 듯 천천히, 25-26>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한 노력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일까? (중략)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59-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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