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레이 베이 (Hanalei Bay)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일본, 97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6.06 개봉
감독
마츠나가 다이시
배우
요시다 요
사노 레오
무라카미 니지로
쿠리하라 루이
시놉시스
‘사치’는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으로 떠난 아들이 서핑 중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후 십 년 동안 그녀는 매년 같은 날, 하나레이 해변을 찾아와 홀로 조용한 휴가를 보낸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홀로 조용히 책을 읽는 것뿐.
어느 날 ‘사치’는 일본에서 서핑 여행을 온 두 소년과 마주치고, 소년들은 그녀에게 외다리 일본인 서퍼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고요해 보였던 ‘사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일렁이기 시작하는데.

슬픔이 빚어낸 눈부신 환상과 마주하다
사랑을 삼켜버린 바다, 하나레이 해변에서…
83.33%
3.25점
키노라이트 분포
3개
15개
별점 분포
리뷰
10

he**** 님의 리뷰
2019.08.07 14:38:49
이토록 먹먹한 하와이의 푸른바다
피아노 바를 경영하는 여성 '사치'는 열아홉살 된 아들이 하와이의 '하나레이 베이'에 서핑여행을 떠났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하와이로 간다.

아들은 이른 새벽에 서핑을 하다, 상어에 한 쪽 다리를 물려 죽었다.

아들의 시신에는 오른쪽 무릎 아래가 없다.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사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하와이에 일주일을 더 머무르고,

그 이후 10년 간, 여름의 어느 시점에는 늘 하와이로 간다.

그 곳에 머물며, 같은 곳에서 비치의자를 꺼내놓고

물 한병과 함께 책을 읽는 사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몇 년이 지나자 하나레이 비치에 사는 사람들도 사치가 여름 한 철 그곳에서 머무는 풍경에 익숙해진다.
[출처] 하나레이 베이, 도쿄기담집|작성자 늘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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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22:18:43
의외의 톤으로 전개된 영화다. 요시다 요의 연기가 워낙 좋았고, 호흡이 좋았다. 원작에서 뺄만한 요소들은 깔끔히 버리고 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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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님의 리뷰
2019.06.10 11:35:42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가 그리는 해변의 풍경.
음악 소리로 시작한 영화는 시종일관 고요하다. 아들을 잃은 사치는 해마다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간이용 의자에 앉는다. 그 자리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아들에 대한 미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고 나무를 때려봐도 현실은 그대로다. 10년이 지나도 말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상실감이 오롯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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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19.06.09 13:51:41
'하나레이 베이'는 하와이에서 서핑하다가 죽은 아들을 찾으러 간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하와이의 하나레이 베이라는 휴양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굉장히 천천하고 잔잔하게 전개하는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한 여인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연인 요시다 요의 차분하지만 어딘가 억눌려져 있는 고통이 가득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며, 반복되는 일상과 행동 속에서 플래시백과 감정 연기의 형태로 조금씩 튀어나오는 내면 속의 흉터를 훌륭하게 표현하며 주인공이 왜 하나레이 베이에 계속 찾아오는지에 대해 궁금하게 하면서도 뭔가 알듯말듯한 느낌을 관객에게 계속 준다. 외국인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적으로 조금 불안했지만, 결국에는 일본인 조연들과 요시다 요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 영화는 어찌보면 상당히 많은 영화들이 다뤘던 주제를 좀 너무 느리고 차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하나레이 주민들과 아들을 연상케하는 젊은 일본인 서퍼들을 만나며 조금씩 아들과의 추억과 아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모습은 주연배우의 연기와 영리한 플래시백을 통해 전달하는 이 영화는 단순히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인생과 과거의 상처와 행복을 되돌아보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주제의 영화들이 뻔하게 가는 전개와 결론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린 페이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상당한 울림이 있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에 큰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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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님의 리뷰
2019.06.08 17:56:40
공감하기 힘든 감정에 묻혀버린 하와이의 청량한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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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네 님의 리뷰
2019.06.06 17:22:33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고 괜찮을꺼라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으로 그리움에 대한 얘길 들려줍니다. 요시다 요의 연기에 같이 공감하게 되는데 그가 맡은 사치는 마약중독에 빠진 남편에서 벗어나 행복을 맛보는 것도 잠시... 아들을 잃은 여성으로 등장하죠. 일본인 서퍼 타카하시 & 료에게 관심을 갖는데 자신이 오던 자리에 그들이 텐트를 치고 있어서가 이유지만 ‘아들 같아서’ 그들을 도와줬을 확률이 높죠. 그들은 사치에게 외다리 서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들 모습을 진짜 봤을 수도 있고 영혼이 되어서도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말라는 위로의 의미로 말했는지도 모르죠. 사진 역시 중요한 소품인데 납골당 직원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얘기하며 그래도 아들 흔적은 남겨놔야하지 않냐며 사치에게 말하고있고 단골 호텔주인은 파병으로 잃은 형제를 그나마 기억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얘기합니다. 기억할 수 있다는게 있다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를 들려주죠. 슬픔이란게 하루 아침에 풀릴 수 없기에 이 영화는 위로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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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19.06.01 19:04:41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원작, 상실을 극복한 환상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 단편 '하나레이 해변'을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안 프리미어로 상영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챙겨 보았던 작품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겁니다. 언제나 그랬듯, 상실을 주제로 청춘, 음악, 그리고 환상이 등장하니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루키를 영화로 옮겼을 때 만족스러운 작품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 중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하나베이 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들을 잃은 무심한 엄마의 슬픔을, 그것도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 모르는 슬픔을 지긋이, 천천히 담아내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배우 '요시다 요'를 발견하기도 했고, 영화대사와 피아노 연주가 영화의 또 다른 이미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슬픔은 영화가 끝나도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동심원을 그립니다.
하나레이는 일본인 서퍼들이 많은 곳입니다. 그날도 아들 또래의 남자아이 둘이서 해변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관경을 지켜봤죠. 하와이는 노상 여름일 거라 착각하지만 밖에서 잤다가는 큰일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를 발견한 사치는 잘 아는 호텔로 인도하고 거기서 저렴한 숙박을 도와줍니다.


아들 또래 소년이 걱정돼서였을까, 막연히 서핑이 좋아 떠나온 치기 어린 청춘들을 위한 혼자만의 의식이었을까,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이후 사치는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받죠.


어느 날 소년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외다리 서퍼가 며칠 전부터 자신들을 지켜봤고, 따라가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아줌마도 쳐다보고 있었다고 혹시 보지 못했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를 듣는 순간 사치는 미친 듯이 해변을 내달립니다. 혹시 내가 보내주지 못해 주변을 맴도는 것일까. 한 마디라도 좋으니 말하고 싶었고, 어떤 말이든 듣고 싶었을 겁니다.

해변의 서퍼들과 대조되는 사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땡볕에서 해변을 따라 이잡듯 뒤지고 다니는 사치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동수가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새벽녘 홀린 듯 파주를 헤집고 다니던 장면과 닮았습니다. 그리고 <밀양>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을 연기한 전도연이 생각나는 명장면이었죠. 정말 그 압도감이란..

사치는 기구한 운명의 여자입니다. 아이가 생겨 꿈도 포기했지만, 마약에 빠진 남편은 다른 여자와 일을 벌이다 죽었고 홀로 아이를 키워냈죠. 하지만 아들을 보면 남편이 생각나기도, 잃어버린 젊은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을 겁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을 겁니다.

영화는 적재적소에 직언하는 사치의 사연을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잃었을 때도 심각하리만큼 담담했죠. 영화만 봐서는 쉽게 캐릭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작소설에는 사치의 심정과 과거( 피아노와 영어 실력의 이유, 타카시와의 관계 등)가 등장하니까요. 십 대 소년 둘을 만나는 시점도 약간 다르고, 소년들과 서핑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부분도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원작 소설에서 풀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끝날 때가 되면 조금은 사치와 관객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울지 않던 사치는 드디어 아들의 손도장을 받아 들고 오열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때론 거칠고 무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 이중성은 아들 그 자체였고, 비로소 아들과 화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독한 말로 상처 주던 모자(母子) 관계의 엉킴이 조금은 해소되는 장면입니다.


사치는 소년들과 소통하며 아들을 이해했고, 소년은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을 얻습니다.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 줄 것, 둘째, 옷차림을 칭찬해줄 것. 셋째, 맛있는 걸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라고 말이죠. 이는 사치가 아들과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할 겁니다.

섬은 10년 동안 사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사치는 받아들이려 했지만 섬은 밀어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들을 싫어했지만 사랑했다는 모순입니다.

10년 전 아들의 시체를 내어주던 하와이 경관은 이런 말을 전합니다. "이곳은 때론 자연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여기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속성을 알면서도 공존하고 있죠. 부디 아들의 일로 이 섬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란 당부의 말이었습니다. 결국 자연의 순환 속으로 일찍 돌아간 것뿐이며 누구라도 자연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천천히 상실을 이겨내는 시선 뿐만 아니라, 빠르고 역동적인 해변의 서퍼들을 쫓습니다. 최근 <레토>에서도 쓰였던 이기 팝의 'The Passenger'는 오프닝과 클로징에 쓰였습니다. '제너레이션 프롬 에그자일 트라이브'의 멤버 '사노 레오' 아들 타카시를 맡았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무라카미 니지로'가 소년으로 등장해 '요시다 요'와의 캐릭터 완성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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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5 16:24:45
상실도 치유도 아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에는 어느 여인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해변 의자를 끼고 앉은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다. 이때 카메라가 포착하는 풍경은 정확하게도 해변을 등진 그녀의 후방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이미지는 액자 속에 담긴 한 편의 순간처럼 보인다. 요컨대 이 쇼트에서 다음 쇼트로 넘어가기 전에 느낄 만한 하나의 심상은, 이것이 한 편의 그림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그 여인이 그때 느끼는 심정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해변의 여인이라는 이 이미지가 <하나레이 베이>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는 영화의 시작 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에서 묘사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 반복되는 10년의 시간에는 그녀가 10번의 해당 장면을 거쳤다는 사실이 담겨있는데,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 한 번에만 불과하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의 도입부로부터 떠나온 ‘10년 후’라는 자막, 그리고 그중의 한 편인 셈이다. 따라서 이것이 순방향으로 정렬된 시간의 단편이라는 점에 빗대어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시간의 편린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테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시간의 편린



시간을 잘게 썰어서 영화관으로 옮겨 놓으면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한다는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기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멈춰버린 여인의 모습은 영화의 중간 지점에서 처음으로 드러나는데, 정작 그녀의 시간은 아들을 잃고 난 10년이라는 세월의 중간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는 시간의 편린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수복하려는 이의 움직임에 가까워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의 안팎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시간이 자리하는 곳은 명백하게도 십 년 후라는 세월의 한 지점이다. 이 사실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 사치(요시다 요)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여 분 간의 짧은 사연을 소개하고 나면 영화는 갑작스레 시간을 달려서 10년 후의 한 지점에 안착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그런 상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우리는 자연스레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러한 추측이 단지 우리의 착각일뿐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이 10년 후의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이고, 그런 순간이다



어긋난 추측은 우리가 카메라에 동일시하기에 벌어지는 오류이다. 그녀 시간의 후반부를 포착하는 이 카메라에는 이 영화가 마치 회복과 치유의 영화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이 영화의 주된 무대인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녀의 감정은 밀물과 썰물이라는 조수간만의 차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사건이 벌어진 후에, 그러니까 큰 파도가 밀려온 후에 다시금 돌아가 버린 파도는 그러한 사건을 겪고 난 뒤에 벌어지는 상실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이게 바로 썰물이다. 따라서 영화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썰물의 광경에서 우리가 발을 내디디는 곳은 감정이 빠져나가고 축축하게 젖은 모래밭인 셈이다.



그러나 영화를 이해함에 있어 스크린 안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자 한다면, 요시다 요의 해변 위로 빠져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사치가 스스로 말하는 10년의 세월을 전제로 여겨야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시간은 10년 동안 반복되었던 것이고, 그런 장면이고, 그런 순간이다. 영화라는 게 시간의 편린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을 반복해서 관람하는 행위가 사치의 그런 행동에 비유될 수도 있을 테다. 사치가 10년 동안 하나레이 베이의 같은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시간의 편린들이 그곳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의 조수간만에 동화하면서 다가오는 기시감의 습격은 마치, 영화가 끝나가기에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언제나 그곳 스크린 안에 있을 테니 여유 있게 와서 보라는 식의 안도감일 테다. 따라서 이 영화는 상실도 치유도 아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의 영화이다.



밀려오는 기억과 떠나가는 기억 사이에서



반복된 순간, 이른바 영원회귀하는 시간에서 갑자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은 카메라가 해변에 앉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와중이다. 아들 또래의 어느 아이를 마주한 그녀에게, 밀물과 썰물이 조화를 이루던 마음의 해변에서 얻은 균형이 깨어지고야 만다. 말하자면, 마음의 해변에서 아들의 기억을 불러내던 그녀에게는 아들의 기억을 몸에 입은 표상적인 존재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이것이 그녀에게 치유라던가 회복이라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는 파도가 자아내던 시간의 주름 속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오류의 형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만약 당신이 놀란의 <인셉션>을 보았다면, 림보의 끝자락에 자리한 해변에서는 그보다 윗 단계의 무의식에서 목격되던 무의식의 공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프로이트의 충동이론을 옮겨놓은 듯한 이 해변에는, 무의식에 투입된 ‘이질적인’ 존재를 목격하는 자아의 복제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무의식의 심층에는 자아가 인격이 아니라 공간 자체로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해변의 모습이 아마도 <하나레이 베이> 속에서도 비슷하게 목격된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을 테다. 밀려오는 기억과 떠나가는 기억 사이에서 부유하는 시간의 한 지점을 줄곧 탐사하던 그녀에게 그곳은 사실 그녀의 의식 속이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다가온 의식 밖의 존재를 통해서 이곳이 다름 아닌 림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의 안과 밖, 사치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



어쩌면 이것이 편한 이분법으로 나뉠 수도 있다. 물론 방법론으로 그렇다. 일상과 비일상이라는 경계의 지점은 마치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불분명하다. 우리는 파도가 칠 때 그것이 썰물인지 밀물인지를 대략 알 수는 있어도 그것이 갈라지는 지점이 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사치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아들이 떠난 이후도 아니고 아들이 살아있는 시간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밀려오는 순간일 뿐이다. 그런 식의 과거를 보여주는 인서트가 삽입되는 것 또한 타임라인의 어느 지점을 회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흐릿해지는 경계가 영화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는 편집의 표식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이 영화의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음을 알고, 카메라가 목격하고 편집이 이루어지는 게 다름 아닌 영화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편집점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기술을 두고 불가시편집이라고 말한다. 편집점이 튀면 그 전후의 쇼트가 몹시 이질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은 영화라고 말하는 어느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영화의 편집방법론은 마치 기억의 순간을 잊으라고 말하는 잔인한 목소리일 수도 있다. 스크린 안에 갇혀버린 반복되는 영화의 시간이 하나레이 베이에 담긴 사치의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영화가 불가시편집을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아주 보드랍게 잊어가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기억의 방법론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를 고를 수도 있다. 영화의 안과 밖, 사치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이곳 해변에서는 시간의 주름이 짙은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이 파도의 주름(해변)에서 나무의 주름(나이테)으로 이어지는 순간에서는 그 두 가지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몸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 테다.



바로 그렇게, 영화는 아들의 손바닥 주름에서 시작해서 손바닥 주름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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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없 님의 리뷰
2019.08.06 22:13:50
자식의 실존과 그의 본질 사이에는 매울 수 없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많은 부모가 본질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자식의 도리 따위를 연기할 수 있는 산 사람과 달리 죽은 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선택의 흔적, 즉 본질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 이르러서야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들과 마주본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19:10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김기영관 [ART 1관] 10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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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님의 리뷰
2019.06.17 12:26:27
하와이의 풍광이 인상적인 영화
하와이 바닷바람이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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