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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미국, 135분, 전체 관람가, 2020.02.12 개봉
감독
그레타 거윅
배우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
로라 던
밥 오덴커크
루이 가렐
제임스 노턴
트레이시 레츠
크리스 쿠퍼
시놉시스
Dear women

그해 겨울,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만났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베스 스켈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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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2%
4.0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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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85

DAY 님의 리뷰
2020.02.14 09:06:14
<작은 아씨들>, 불행 옆에 있을 때 행복은 더 뜻깊다
1.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 제각기 다른 꿈을 꾸는 네 자매가 살아간다. 배우가 되고 싶은 '메그(엠마 왓슨)', 작가를 꿈꾸는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의 길을 가려는 '베스(엘리자 스캔런)', 그리고 화가 지망생 '에이미(플로렌스 퓨)'. 네 자매는 서로 다투고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로라 던)'를 도우며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한 연회에서 우연히 이웃집에 사는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그는 곧 네 자매 모두의 친구가 된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거운 유년시절은 곧 끝나고, 7년이 지난 후 어른이 된 그들은 사랑과 꿈을 둘러싼 현실의 벽을 마주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7번째 영화 <작은 아씨들>은 인상적인 문장을 하나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이 남긴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 구성과 연출 등 영화의 모든 부분에는 이 문장이 스며들어있다.

2. <작은 아씨들>은 서로 다른 꿈을 지니고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네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여성을 제약하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조'가 어떻게 시련을 밑거름으로 삼아 당당히 작가로 거듭나는지가 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시점만 교차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주로 행복하고 희망찬 순간을 중심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반대로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 불행하고 어두운 순간만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불행과 행복을 극적으로 대조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행복은 더 아름답고, 현실의 불행은 더 날카롭고 고통스럽게 묘사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오프닝에 등장한 루이자의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은 곧 '불행했기에 행복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바꿔 말해 '불행했기에 행복할 수 있었고, 불행을 경험할 때 행복이 더 뜻깊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즉 불행과 행복을 오가는 전개 방식은 원작자가 남긴 메시지를 고스란히 품어낸 모범적인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3. 이러한 대조와 대비의 스토리 텔링은 영화 속 조명을 통해 더 확실히 전달된다. 작중 조명은 과거와 현재, 행복과 불행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과거의 사건들은 오렌지 느낌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묘사되어 밝고 따뜻하며 훈훈한 이미지로 포장된다. 반면에 현재 시점에서 네 자매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푸른빛의 조명이 비추며, 이러한 조명은 건조하고 차가우며 꾸밈없는 이미지를 만든다.

시각적 이미지의 대립은 각 에피소드마다 미처 사건의 전말이 다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또 벌어질지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과거의 네 자매, 현재의 조와 베스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장면들 속 조명은 같은 해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해주며, 이후 전개를 암시한다.

영리한 편집도 도움을 준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담긴 구도가 혹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가장 비슷한 순간을 기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괴리감과 비극성을 가장 강렬하게 제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같아 보이는 한 에피소드의 시작이 전혀 다른 결말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곧바로 대조시키면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가 베스 병간호를 하던 중 잠깐 잠에 들었다가 깨는 순간은 영화의 스토리텔링, 조명, 그리고 편집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베스의 침대 옆에서 잠깐 잠에 든 조가 일어나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 시점 모두 동일한 구도로 카메라에 담기고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펼쳐진 후 바로 이어서 현재의 이야기가 제시된다. 이때 상반된 조명이 만들어 낸 이미지는 조가 잠에서 깬 이후 전개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장면은 조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작가가 되려고, 또한 진짜 자신만의 글을 쓰기로 결심하며 성장하게 되는 계기로써 스토리 전개 상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의 역할도 한다.

4.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를 활용해 의미를 만들어내려면 행복과 불행의 기준점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영화가 의도하는 불행과 행복의 대조가 명확해진다. 또한 인물들이 겪는 불행과 행복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것도 되어야 한다. 그때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을 제약하는 시대적 현실과 네 자매가 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위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작은 아씨들>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로, 여성들의 이상적인 삶이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시기다. 여성이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거나 사창가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대고모(메릴 스트립)'의 말은 당시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에 반해 네 자매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각자가 꿈꾸는 방식으로 여성의 한계를 깰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7년이 흐른 후 그들은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가정교사 존과 결혼을 선택한 메그는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글은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유학을 떠나는 에이미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조와 에이미는 본인이 선택한 사랑과 결혼이 옳은 선택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더라도 모두 응원을 보낸다. 결혼을 말리는 조에게 너의 꿈이 나의 꿈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메그의 대사처럼, 서로 다른 선택 안에서 각각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모두 보여주며 모든 여성들의 선택 그 자체를 존중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여성들이 네 자매처럼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불행, 좌절, 시련, 극복, 선택은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의 모습과도 쉽게 동일시된다

5. <작은 아씨들>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각색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서 의상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숱한 시상식들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직접 만난 <작은 아씨들>은 자신에게 쏟아진 호평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조의 스토리텔링과 편집, 그리고 시각적인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조명을 활용한 연출은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문장에 담긴 원작자의 메시지를 적절히 작품 내에서 환기시켜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150여 년 전 네 자매의 이야기에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일치시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더해 당당한 표정과 주관이 매력적인 시얼샤 로넌, 시간에 따라 변화한 인물에 완전히 녹아든 플로렌스 퓨, 그리고 능청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티모시 샬라메 등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겸비한 영화, <작은 아씨들>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고전 소설 영화화의 모범답안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박성현 님의 리뷰
2020.02.13 02:52:25
[작은 아씨들]은 [작은 아씨들]을 완성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주인공 조 마치가 남성 중심 문학계의 벽에 부딪히지만 네 자매와 함께한 소년기와 청년기의 추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여성을 하나의 주체로 표현하는 이야기고, 자매들의 상실, 베스의 죽음과 메그, 에이미의 결혼으로 인한 소년기의 끝을 돌아보며 그 슬픔과 행복, 변화와 성장이 잊히지 않게 노력한 이야기며, 네 자매를 비롯한 로렌스 일가와 다른 여러 주변인들이 남북전쟁 직후의 북부에서 살아가던 이야기다.

1부와 2부의 시간적 단절이 각각의 내러티브를 나눠놓은 원작 소설과 다르게 그레타 거윅은 2부 시점의 조 마치가 1부의 사건들을 회상하는 형태를 취하며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작가의 꿈을 키우며 다락방에서 밤새 소설을 쓰던 어린 조 마치의 모습이 바로 뉴욕 하숙집에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신문사가 원하는 자극적 소설을 집필하는 청년 조 마치의 모습으로 넘어가는 구성이 대표적인데, 이런 구성을 통해 마치 일가의 일대기는 가정적 사건의 시간적 나열이 아닌 성장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레타 거윅의 각색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연출 또한 각 순간에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이 갖는 의미와 캐릭터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택한다. 19세기의 시대상을 재현해낸 미술과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서로 다른 색감으로 나타내어지는 것도 아름답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해야 한다면 바뀐 결말부 정도가 있을까? 원작자 루이자 메리 알콧이 소설의 주인공 조 마치와 다르게 평생 결혼하지 않은걸 이용한 트릭이 있는데 조와 로리의 관계, 조와 프리드리히의 관계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데 있어 조금 혼란이 생겼다.

정리하면, 작은 아씨들은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고, 고전의 훌륭한 각색과 빼어난 연출, 음악, 촬영, 의상, 미술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의 진가를 알아보는데는 성공했으되 그레타 거윅의 성취를 인정하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쉬운 일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리디 님의 리뷰
2020.02.12 11:17:40
새삼 자라난 내가 보여 어쩐지 아득한 감정들이 올라왔던 작은아씨들
먼저 칭찬부터 하자면 가난하지만 고풍적인 그 시대 집과 의상, 소품들의 조화가 아름답게 스크린을 채운다. 디테일한 소품까지 세심한 디렉팅으로 특히 여성관객이 많은 그레타거윅 다웠다.
출연진들로 인해 먼저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엠마왓슨, 시얼사 로넌, 엘리자 스캔런, 플로렌스퓨, 티모시살라메, 루이가렐, 로라던 등이 출연하며 이 시대 핫한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점이 있다면 인물에 대한 포커스이다. 책을 써내려가는 조마치가 화자이므로
비중이 많은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로리와 에이미의 비중이 원작에 비해서는 투머치라는 것이 주관적인 느낌. 사실 자매들의 러브스토리보다 그들의 관계, 꿈에 대한 노력과 좌절등에 대해서는 책보다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영화로 만난 네 자매를 이제는 어른의 시점으로 보자니 어쩐지 소녀 때
그녀들을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조의 글을 무시하고 결혼만을 이야기하는 사회, 죽은 가족의 빈 침대를 보는 조의 감정,
가족을 위해 좋아하는 물건을 사고 후회하는 메기의 마음 등은 내가 커버렸기도 하고, 책을 읽은 그 때의
내 인생 이후에 겪은 일이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되는 감정들이다.
영화를 보며 소녀와 어른 사이의 틈을 느낀다. 새삼 자라난 내가 보여 어쩐지 아득한 감정들이 올라왔던 작은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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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20.02.13 01:06:16
현재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지금의 나
*스포일러 포함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아버지(밥 오덴커크)는 남북전쟁에 자원해 전장으로 떠났고, 네 자매는 엄마(로라 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한 파티에 참석한 조는 우연히 옆집에 사는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네 자매와 로리는 유년시절을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꿈과 감정이 교차하는 유년시절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성인기를 향해 나아가는 토대가 된다.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단독 연출작 <작은 아씨들>은 너무나도 유명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17년 영국에서 처음 제작된 이래 이번이 일곱 번째 영화화이다.


그레타 거윅은 원작의 2부의 해당하는 성년기의 이야기와 1부에 해당하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화는 조를 비롯한 자매들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7년부터 시작되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한다.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네 자매(와 로리)의 유년시절이 어떻게 이들의 현재를 구성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네 자매는 자신의 현재를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한다.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은 각자, 그리고 함께 살아온 시간, 남북전쟁을 통과한 시대적 상황, 배우/작가/음악가/화가라는 꿈과 그것의 변화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두 타임라인을 잇는 것은 네 자매의 형상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 그 기호들은 마치 과거의 데자뷔처럼 찾아온다. 처음 파티에서 춤을 춘 순간과 앞으로 계속 기억하게 될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같은 해변을 다시 찾아 보내는 시간, 뉴욕으로 떠나는 기차와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집의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그 순간들은 갑작스레 현재에 끼어들거나 대신하고, 심지어 사운드를 통해 중첩되기도 한다.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인 기억,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된 과거는 그렇게 현재를 구성한다. 이러한 구성의 백미는 조가 출판사 대표를 만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 조가 단편 소설을 팔기 위해 잠시 만났던 그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엔딩에서 죽거나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 자매에게 그대로 일어난다. 메그와 에이미는 결혼했고, 베스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는 뉴욕에서 만난 이민자 프리드리히(루이 가렐)와 애매한 관계에 놓여 있다. 자신의 고향집을 방문한 프리드리히를 붙잡기 위해 메그와 에이미, 로리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기차역으로 떠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로맨틱한 장면은 직접 쓴 ‘작은 아씨들’의 출판 계약을 위해 출판사 대표와 대화하는 조의 모습과 교차 편집된다. 조는 영화 초반부에도 언급됐던 “소설의 여성 캐릭터들은 결말에서 결혼하거나 죽어야 책이 팔린다”라는 대표의 말을 수용한다. 현재와 조금 더 현재 시점인 장면이 교차되는 이 장면은 19세기 말에 출간된 작품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는 연출임과 동시에, 영화의 앞선 장면들 모두가 교차하는 현재들이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조가 쓴 소설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네 자매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현재는 과거를 기록함과 동시에 그것을 현재화한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을 대신하는 ‘작은 아씨들’의 표지와 책이 제본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조의 표정이 담긴 마지막 장면은 7년의 시간을 포괄하는 영화 전체가 언제나 현재였음을 확신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행위, 특히 그것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들과 연관되었을 때의 상기는 과거에서 떠오른 기억을 현재에 전면화한다. 때문에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수없이 오감에도 산만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전작 <레이디버드>에서 9.11 테러와 뉴욕에서의 동양인 소년을 끌어오며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의 안전한 성장 서사라는 맹점이 <작은 아씨들>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소거되었기에 더욱 안정적으로 이들의 교차되는 현재를 그려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이 현재를 교차시키는 방식, 과거들을 현재로 만들어 그것이 지금의 자신임을 명명하는 조의 모습이 내게 더욱 흥미롭고 필요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수키 님의 리뷰
2020.02.12 19:02:23
다양한 가치관과 삶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타협점이 필요하다.
예전에 학원 다닐때 선생님이 고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면서 고전은 현재에도 통한다고 하셨는데 그말이 맞는 것 같다. 메그, 조, 에이미, 베스 4자매는 각자 다른 재능이 있었지만 당시 남북전쟁 시대의 여성으로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대부분 조를 통해서 시제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순하게 조의 성격을 통해 여성의 자립이 필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시대와 타협점을 찾아가며 존중을 통해 얻어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 조는 자신의 원고료를 일방적으로 통보 받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책에 대한 판권과 인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타협점을 찾아서 협상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메그의 결혼전에 결혼하지말라는 조에게 메그는 서로의 꿈이 다르다고해서 자신의 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한다. 조 같이 자립을 통해 독신으로 살아가겠다는 삶만이 여성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메그처럼 평범하게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나 에이미처럼 부자와 결혼하기위해 노력하는 삶 또한 존중 받아야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모든 대립과 의견차이로 생겨나는 사회문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받아야하며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르다면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2.07 13:38:49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과 여성들의 이름 찾기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감독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단독 연출작이며, 시얼샤 로넌을 또 한 번 페르소나로 내세운 영화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이은 출연, 아카데미의 높은 주목, 여성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 전작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레타 거윅의 영화 세계가 반복되고 확장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작은 아씨들>은 원작이 있는 작품임에도 그레타 거윅만의 색을 입히는 데 성공했고, <레이디 버드>의 훌륭한 변주였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이 본명을 되찾는 여정을 담았다. 새크라멘토라는 땅을 답답하게 느끼고, 고향에서 물려받은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는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칭했다. ‘레이디’(숙녀)라는 이름처럼 여성으로 성숙하고 싶었고, ‘버드’(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소녀. 그녀는 결국 뉴욕으로 떠나며 자신이 원하던 삶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정작 그 땅에서 그녀는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버리고 ‘크리스틴’이라는 본명을 선택한다.

<작은 아씨들>도 조 마치(시얼샤 로넌)의 이름 찾기가 중심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싶었지만, 시대적 한계로 여러 가지 벽에 가로막힌다. 출판할 수 없던 그녀는 자신이 원치 않던 이야기를 무명의 이름으로 출판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는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없었고, 자신의 본질과도 점점 멀어진다. 그리던 조는 자신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로 걸작을 쓰고, 마침내 ‘조 마치’라는 이름으로 출판에 성공한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가 이름을 찾는 서사였고, <작은 아씨들>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던 작가가 이름을 되찾는 서사였다. 이들의 이름 찾기에는 유년기의 기억과 그 시절을 소환하는 과정이 있다. 그레타 거윅은 두 작품에서 ‘이름 찾기’라는 걸 반복하면서 유년기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고, 동시에 거기에 인물을 정의하는 정체성이 있다고 봤다.

자신의 기원을 찾는 신화 속 인물들처럼 그레타 거윅은 이름과 고향에서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계속 발견하려 했다. 그녀는 이 유년기의 기억에서 무엇을 더 발견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이 유년기의 울타리 밖에선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세 번째 영화로 그레타 거윅을 더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이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P.S 두 작품 모두 뉴욕이라는 도시가 유년기의 반대항으로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더불어 최근 개봉한 <결혼 이야기>에서도 뉴욕은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반대 지점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었다. 세 여성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미국인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1.26 14:09:32
삶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별것 아닌 이야기, 그래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조가 끝내 넘겨주지 않은 것은 그의 유년기와 추억이다. 과거에 그저 묻어두는 추억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는 추억. 재능,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랑, 그게 전부라는 것.

+) 94년도 작품을 보고 재관람하니,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은 굉장히 미래지향적이고 시대에 맞는 대사들로 뛰어나게 각색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적인 편집과 전환이 잦아도 난해하지 않은 플롯구성까지, 앞으로 이 감독의 행보가 너무 기대된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노군 님의 리뷰
2020.02.19 17:17:49
고전이 가져다주는 마스터 피스의 향연.
작은 아씨들 원작 소설을 집필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에 본작의 감독이자 시나리오까지 써낸 '그레타 거윅' 의 현대 시대에 맞게 각색한 눈부신 스토리텔링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영화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시시각각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며 네 자매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흡입력이 어마무시하다.



배우가 되고싶은 첫째 '메그 마치(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 마치(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 마치(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싶은 막내 '에이미 마치(플로렌스 퓨)'. 평범한 중산층 집에서 태어난 네 소녀는 남북전쟁에 참전중인 '아버지(밥 오덴커크)'와 자신보다 더 궁핍한 이웃을 돌보는 '어머니(로라 던)' 아래에서 각자의 꿈을 막연하게나마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에 살고 있던 '로리 로렌스(티모시 샬라메)'를 우연히 알게되고 서로 얽히고 설켜가며 성인이 되기까지의 삶을 그려낸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은 조의 시점을 주로 영화에 사용했다. 작가가 되고팠던 조는 로리와의 사랑도 우정으로 치환한 채, 여성은 이름도 내 걸 수 없었던 19세기의 미국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열렬하게 내고싶어 무던히 노력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시종일관 그녀의 글이 자극적이지 않다며 퇴짜놓는 출판사 사장이나 가세가 기울어져가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려 길었던 머리를 잘라서 팔거나 며칠밤을 새워 글을 쓰는 등 요즘시대에 딱 어울리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원작의 작가 본인의 인생을 소설에 녹여냈고 결국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첫째인 메그는 배우가 되려 했으나 로리의 가난한 가정교사인 '존 브룩(제임스 노턴)'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주 현실성있는 유부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입만 열면 가난이 지겹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는 그녀는 자신의 드레스에 쓰일 고급 원단마저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면서도 그런 것 조차 해주지 못하는 남편을 위로하며 못이룬 꿈과 자신의 상황을 곱씹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셋째인 베스는 피아노를 잘치고 네 자매중에 손재주가 가장 좋은 여성이다. 떠들썩한 집에서 언제나 혼자 조용히 있을때가 많으며 자신의 집보다 더 어려운 집을 도우러 갔다가 성홍열에 걸려 죽게된다. 막내인 에이미는 둘째 언니 조에게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소녀다. 메그나 베스는 몰라도 조에게 지는 건 죽는 것 보다 더 싫어하는 캐릭터. 화가가 꿈이라서 '대고모(메릴 스트립)'를 따라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상당히 세속적인 면모를 풍기게 된다. 결국 막판에 로리가 조 대신 아내로 에이미를 간택하여, 승리자가 되는 인물.



'작은 아씨들'이라는 고전 소설을 전혀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봐도 배우들의 무서운 호연과 과거-현재를 잇는 훌륭한 교차편집으로 인해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세상에 여성들이 맞설 수 있는 방법과 자신의 꿈-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방법, 기회가 왔을 때 낚아 챌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지, 가족과 우정의 접합점 등 인생의 거의 모든 걸 압축해 놓은 듯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웃사촌으로 나온 로리가 영화가 밍밍해져 갈 때쯤 한 방씩 꼭 터뜨려준다. 부모를 모두 여의고 큰 저택에서 부자인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있는 그는 이탈리아계 핏줄이 섞여 있는 통에 한량같은 분위기를 왕왕 뽐낼때가 있는데 티모시 샬라메가 아니면 아무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능글맞은 연기를 보여준다. 진짜 티모시의 캐스팅은 본작의 신의 한수였달까.


조와는 우정으로 시작하여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이 돼버리고 말지만 현실에 등떠밀려 로리를 밀쳐내는 조의 상황과 연기가 작은 아씨들의 클라이막스라서 별거 아닌데도 손에 땀을 쥐고 봤다.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샬레메 모두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터라, 두 배우의 앞날이 엄청 기대가 된다.

베스의 죽음 역시 억지스러운 신파극으로 치닫지 않은게 영화 작은 아씨들이 빛나는 이유다. 네 자매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언제나 엄마를 도와, 똘똘 뭉치는게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지만 자매 셋이 남게 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녀들의 의지가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1868년에 나온 고전문학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현실감 있는 전개와 스토리, 편집,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훌륭한 고증 덕분에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듯 네 여인의 인생을 슬몃 훔쳐볼 수 있는 영화다. 원작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완성한 그레타 거윅 감독. '페미니스트 영화', '여성성을 강조한 영화' 는 바로 이런 작품을 빗대는 수식어다. 대놓고 '우리 영화는 페미니스트 영화야!!' 라고 굳이 알아달라며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한심한 영화들이 아니라. 전작인 '레이디 버드(2018)'가 상당한 망작이라 쳐다도 안 볼 심산이었는데 작은 아씨들로 거의 마스터 피스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내서 앞으로 계속 그녀의 연출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당연히 영화를 보고 나와서 원작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작은 아씨들의 원작 소설을 구입하러 교보문고에 가게됐다. 이런 영화를 만나게 되면 정말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정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이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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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님의 리뷰
2020.02.19 00:44:02
그렇게 현실은 소설이 된다...
그렇게 현실은 소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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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님의 리뷰
2020.02.17 19:38:11
주도적인 여성들이 그린 단순한 로맨스
1868~1869년에 쓰인 『작은 아씨들』은 당시 여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언급했듯 1866년 이래 영국에는 여성을 위한 대학이라고는 고작 두 곳뿐이었고, 1880년대 이후에나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영화에서도 말했듯이 대고모는 자연스레 물려받은 재산 덕분에 혼자 살 수 있었다. 당시 여성은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돈을 버는 행위가 가능했다 하더라도 번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19년이며 이때 대부분의 전문직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1928년에는 여성이 도서관에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물론 이는 영국에 한한 것이며 미국은 당시에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조 마치(시얼샤 로넌)는 뉴욕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잉글랜드가 배경이며 뉴잉글랜드의 특성상 영국계 이민자들이 살았던 탓인지 아니면 미국 역시 어떤 면에서는 혹은 어떤 지역은 잉글랜드와 다를 바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대고모의 말처럼 여성으로서 불운한 삶을 벗어나는 방법은 결혼뿐이었다. 하지만 첫째인 멕 마치(엠마 왓슨)는 결혼했음에도 가난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가난한 선생과 결혼한 탓이다. 다만 멕 마치의 불운한 삶은 누군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삶이다. 배우를 꿈꿨던 그녀에게 존 브룩(제임스 노턴)이라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난 것뿐이다. 둘째인 조 마치는 앞서 말했듯이 작가를 꿈꾸며 뉴욕으로 떠나고 셋째인 에이미 마치(플로렌스 퓨) 역시 화가를 꿈꾸며 유럽으로 떠난다. 오직 넷째만이 타고난 허약함 때문인지 오로지 집과 로렌스 댁을 오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넷째가 순응한 삶을 보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 역시 피아니스트라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네 딸의 어머니(로라 던)는 딸들의 결정을 얼마든지 지지해 줬을 것이다.


모든 여성 인물이 그 누구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본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흥미롭다. 당시 관습을 어느 정도 무너트린 이야기였을 테니까. 하지만 (소설을 읽어 봐야 알겠지만) 영화는 이 주도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로맨스로 만들어 버린다. 단순한 로맨스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남자들이다. 분명 매력적일 수 있는 인물들인데도 (심지어 티모시 샬라메, 루이 가렐이 연기하는데도) 그들에게 어떠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 남자들은 돈이 많든 적든 딸들에게 집착하며 그 주위를 맴돈다.


감독의 노고는 충분히 알 만하다. 968쪽의 방대한 분량을 2시간 내외로 맞추려면 많은 부분을 잘라 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거라면 편집이라도 깔끔히 했어야 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편집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고, 멕 마치가 일주일간 파티에 가는 장면이나 남북전쟁을 스치듯 보여 주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느니만 못했다. 이 소소한 장면들이 캐릭터들의 개성을 보여 주는 데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감독은 그렇게 캐릭터들을 포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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