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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The Journalist)

서스펜스 / 2019

개요
서스펜스, 드라마, 일본, 113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10.17 개봉
감독
후지이 미치히토
배우
심은경
마츠자카 토리
타나카 테츠지
다카하시 카즈야
키타무라 유키야
혼다 츠바사
오카야마 아마네
카쿠 토모히로
오사다 세이야
타카하시 츠토무
니시다 나오미
시놉시스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충격적인 익명의 제보

고위 관료의 석연치 않은 자살과 이를 둘러싼 가짜 뉴스

쏟아지는 가짜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한 취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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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리뷰
26

용크 님의 리뷰
2019.10.09 14:57:52
시의적절한 문제의식, 그에 비해 아쉬운 영화 자신만의 힘
<신문기자>는 동명의 저서와 실제 사학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이다.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점에서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정치 드라마의 등장은 꽤 인상 깊었다. SNS(특히 일본에서 활발한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댓글 조작, 가짜 뉴스, 옐로저널리즘,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미투 운동까지 영화는 시의적인 사건들을 전면에 내보인다.

영화의 뼈대는 내각을 중심으로 한 의과대학 신설을 둘러싼 대립이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기자 요시오카는 이 제보가 단순히 넘길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의 한쪽 공간이 요시오카의 신문사라면 대척점에는 내각정보조사실이 있다. 이곳에서 공무원 스기하라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SNS 댓글 조작과 민간인 개인정보 유포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스기하라가 존경하는 선배인 칸자키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던 스기하라는 요시오카를 만나고 그는 크고 위험한 진실의 벽 앞에서 가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된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할 때 <신문기자>의 장점(이자 단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신문사에서 거의 없는 여성 (그것도 직급이 높아 보이지 않는) 신문기자이면서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요시오카의 배경이 인물을 공격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외롭고 고독한 요시오카에게 불필요한 견제가 달라붙어 일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심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바쳐주는 것은 요시오카를 맡은 심은경의 힘이다. 요시오카라는 인물은 감정분출이 거의 없다. 정치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게 차분하고 혼자 감내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심은경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단함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한다.

영화의 제목은 <신문기자>이지만 (포스터 또한 심은경으로 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를 전면에 내세웠겠지만) 신문기자인 요시오카와 공무원인 스기하라는 거의 같은 비중으로 비친다. 이것을 매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도 영화가 두 명의 주인공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다. 정치 드라마, 특히 저널리즘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내부의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신문기자>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이다. 오히려 굳건해야 할 지점이 약해져 영화 중후반이 흔들려버린다. 요시오카는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늘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결단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안정적인 설정과 다소 개인적인 동기들만 보여준다. 요시오카가 고뇌하는 부분을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언론인 요시오카에 대해서 좀 더 풀어나갔으면 더 단단하고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다른 인물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진실을 좇아야만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그저 캐릭터가 되어 다급하게 달려야 할 뿐이다.)

스기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요시오카보다 설득이 필요한 인물이다. 스기하라는 외부(상사)의 압박과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전면적으로 배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평소 자기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각성의 계기는 매번 외부의 사건들이다. 선배인 칸자키의 죽음, 아이의 탄생 등의 사건에 인물이 크게 동요한다. 엄청난 책임이 필요한 스기하라의 선택은 주체적인 고민의 결과이기보다는 ‘당연’해 보인다. 전반부에서 스기하라가 품고 있었던 국민을 위한 일과 국가를 위한 일에 대한 차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후반부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스기하라라는 인물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또 다시 그를 뒤흔들만한 큰 사건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흔들리는 그대로 멈춘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재 상황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다.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멈췄다기보다는 이 이상 진전하기 힘들어 넘겨버린 느낌이 든다.

두 인물이 서로를 깊게 신뢰하지도 않고 큰 힘이 있거나 영웅적이지 않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들은 꽤 소시민적인 반면, 영화에서 대중의 존재는 아예 지워졌다. 오로지 트위터 상에만 존재하며 대중-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오카의 아내와 칸자키의 아내는 자발적으로 “정치적인 일은 너희가 잘하겠지”라는 태도로 영화의 중심사건에 일찌감치 떨어진다.
앞서 말했던 시의성 짙은 소재들을 단순하게 이용한 것도 아쉬웠다. SNS 댓글 조작, 미투 운동, 가짜뉴스 등이 언급만 되는 수준이다. 결국엔 관객이 함께 움직이고 고민해야 할 운동성이 부족했다. 동명 원작과 실제 모티브를 넘어서 영화 자신만의 목소리 내기엔 어려웠을까 싶다.

그렇지만 영화의 소재와 시기 자체로 주목할만하다. <신문기자>를 통해, 일본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정치 영화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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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윽 님의 리뷰
2019.10.09 01:28:21
근래 개봉된 일본영화중 가장 도발적이네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런 대사가 나올줄이야...



일본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지배층의 수용도가 높은데

이런 대사를 가진 영화가 흥행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답답할 정도로 폐쇄적인 분위기입니다.

팀을 이뤄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것이 아닌 심은경과 마츠자카 토리만이 이 질식할민한 거짓의 세상을 아주 힘겹게 견디면서 진실을 찾아갑니다..



영화에서도 계속 진행형인 현재 일본의 모습을 외부자적인 시각으로 봐도 무겁네요.



댓글조작, 기래기, 정보조직 개입.... 참 기시감과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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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Job 님의 리뷰
2019.12.30 16:44:19
17.03.10 이후 대한민국에도 이런 영화가 발에 채일 정도다.
#신문기자 #新聞記者 #The_Journalist #팝Ent_더쿱_배급 #후지이_미치히토_연출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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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예찬 님의 리뷰
2019.10.28 01:10:19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회고발.

작년 한국영화에 안 좋은 의미의 충격을 안겨준 <염력>이후로 일본영화로 돌아온 심은경 배우의 작품. (어째서인지 나는 심은경 배우를 이 영화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안 그래도 일본 영화인데 무려 사회고발 영화를 왜 한국인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 의아했는데, 현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다보니 제안받은 일본인 여배우들은 전부 다 캐스팅을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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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보진 못했지만) 지난 작품들의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많아서인지, 칼을 갈고 연기를 한 듯한 심은경의 연기가 정말 인상 깊다. 일본배우들과 일본어로 연기를 하는데도 크게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으며, 소명의식이 투철한 여기자의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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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저널리즘 관련 영화다 보니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 나는 아직 보진 못했지만, 씨네필에게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까지도 해당될 듯)
위 영화들이 너무나도 훌륭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신문기자>와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연출부분에서도 나는 크게 느끼진 못했는데 촌스럽고 부족하다는 평이 다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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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사건들을 다루었던 기존의 저널리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현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일본 영화에서 이렇게 사회비판을 하는 영화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더 깊다.
아베 및 극우세력의 장기 집권 속에서 일본 언론의 자유는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깨어있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 젊은 층들이 오히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어서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체를 통해서 현 일본 언론 탄압을 고발하는 영화는 더 알려져야 하고, 눈 여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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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우리나라 또한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언론의 자유가 많이 탄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돈과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저널리즘의 모습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뉴스들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며 소명 있는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을 지켜주는 것이 일본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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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혁 님의 리뷰
2019.10.25 08:57:11
(논)픽션의 리얼리티.
정치가 시대를 잠식하는 시절에, '신문기자'가 개봉했다. 사지 말고, 가지 말고, 일상이 정치가 되어버리는 판국에 이 영화를 본다는 건 어쩌면 싸움판에 뛰어드는 꼴인지도 모른다. 아베 정권의 스캔들을 바탕으로 2017년 신문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가 써내려간 동명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신문기자'는 태생만큼 묵직하다. 개봉 당시 수 차례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사이버 공격을 당했고, 국내에선 인기 여배우들이 역할을 마다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감독을 맡은 후지이 미치히토는 기자, 관료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각정보조사실에선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우리의 안기부, 공안같은 곳이다. 영화는 정부가 언론을 조작하고, 세상을 주무르는 일련의 악행에 관한 이야기이고, 영화가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이 시절의 극장 풍경이 무색하다. 우리가 그들을 모르는 것만큼 그들도 우리를 모르고, 그래도 영화는 픽션이라 가끔은 그곳이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신문기자'는 애초 픽션으로 봉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후지이 감독은 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과감하게 옮겨냈다. 이 작품이 영화인 게 다행이고, 씁쓸하다.

영화는 제목답게 저널리즘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정색을 하는 영화가 아니다. 초반부터 신문 기자 요시오카(심은경) 방에 켜진 TV 속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저널리즘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지만, 도쿄 전체를 내려보는 부감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 모든 일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일상의 껍데기에 불과함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건 기자란 직업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에 사람이 지켜나가야 하는 긍지에 관한 영화'라고 얘기했듯, 영화는 조직이 아닌 개인, 디테일한 생활과 고민, 갈등을 축으로 움직인다. 정부를 중심으로 관료, 그리고 언론이 커다란 세 축으로 보여도, 영화는 한 발 물러나 현실에 가려진 현실을 살펴본다. 올곶은 기자였지만 너무나 올곶아 내몰린 기자, 외교관이었지만 자의와 상관없이 정부의 음모에 동참하고 있는 공무원, 100여년에 이르는 저널리즘의 두터운 벽과 더불어 SNS로 불거진 타인에 의한 시대의 조작은 개인의 의지를 시험한다. 영화는 그 위험한 마지노선을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고, 그렇게 영화이기를 포기하려 한다. 마츠자카 토오리의 지극히 인간적인 애씀의 얼굴은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의 카세 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울림이 크다. '신문기자'는 일본에서 현재 33만의 관객을 동원했고, 1만부 제작됐던 영화 팜플렛은 품절되어 증쇄에 들어갔다고 한다. 픽션은 어쩌면 현실을 움직인다.

영화의 화살은 여지없이 정치의 남용을 향하고 있다. 충분한 근거가 모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구도를 만들어가는 부분은 다소 극으로서 아쉽기도 하지만, 근래 일본에서 이렇게나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영화는 아마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엔 정치를 삶과 분리하려는 진중함이 있고, 조직의 움직임이 아닌 개인의 움직임을 드려다보려는 애씀이 있다. 갓 태어난 딸과 아내, 단란한 세 가족의 내일과, 침묵을 깨고 진실에 다가가는 위험한 내일 사이에서 스기하라(마츠자카 토오리)는 무력하고, 영화는 보채지 않고, 아빠를 위한 어쩌면 복수일지 모를 길을, 요시오카는 감히 강요하지 않는다. 웬만한 대중영화라면 또 한 번의 타격을 가하며 호쾌롭게 마무리를 지었을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신문기자'는 저널리즘의 시선에서, 예고된 객관의 자리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현실'을 선택한다. 고작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남녀의 거리는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고, 도시를 관망하는 듯한 부감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스기하라와 요시오카, 이곳과 저곳의 나와 너의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마침표를 찍는다. 수없이 많은 일이 벌어졌지만, 다시 그 자리. 또 그런 현실. 논픽션과 픽션. 현실이란, 그 단 한 자를 덜어내기가 이렇게나 힘든 시절에, 그 무력한 엔딩의 메시지는 묵직하다. 우리는 최소한 '나', '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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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14:23:29
'신문기자' 간단 리뷰
1. 일본에 대해 최근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이것은 지극히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난할 수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주요 국가(한국, 중국, 대만, 일본) 중 정치적으로 가장 미개한 나라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집단적 저항'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찾는 방법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순종적인 것을 미덕으로 삼는 민족이다". 그들은 전쟁 직후 왜곡된 역사를 배우며 지속적으로 선동 당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도 '일부 사람들'은 현 정권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힘을 얻기에 일본인들은 '문제의식'에 대해 너무 둔감하다. 어릴때부터 왜곡된 역사로 선동 당한 국민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인 우리나라나 중국이 밀어붙이고 비난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때문에 이 글도 큰 의미는 없다). 그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2. '신문기자'는 부정한 비리를 일삼는 내각과 이를 막으려는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지난 정권 때 한국에서 제작된 일부 극영화들과 닮은 꼴이다. 때문에 한국 관객이라면 이런 영화가 낯설거나 새롭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관객이건 영화의 디테일에 이의를 제기하긴 좋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각정보실'이라는 기관은 "옛날 국정원과 닮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급 인력들이 모여서 트위터에 거짓선동하고 가짜뉴스 배포하는 꼴이 대충 그렇다. 그런데 '정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기관은 생각보다 별로 똑똑해 보이진 않는다. 언론의 취재활동과 기사 배포에 대해 '사전통제'가 아닌 '사후공작'을 진행한다.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이라면 우리나라 군사정권 때처럼 윤전기 옆에 서서 검열을 진행하면 될 일인데 그걸 안 한다. 혹시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안 한다고 이해해볼까 했지만 이미 '바보가 아니면 다 알아볼 정도의 노골적인 조작'을 일삼는데 뭐 겁나서 숨겠는가.

3. 그 밖에 내각정보실은 겨우 한다는 게 신상정보 유출하고 트위터에 거짓정보 쓰고 가짜뉴스 배포하는 수준이다. 공작활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어설프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도 제대로 못해서 그걸 경찰에 의뢰한다. (저 옛날 국정원도 어설픈 짓 많이 했지만) 영화 속 내각정보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혹시 국정원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가상의 기관일까. 여기에 심각한 문제는 영화 중반까지 트위터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점이다. 일본사람들이 실제로 트위터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모르겠다. SNS는 여론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거르는 장치 또한 없기 때문에 거짓선동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트위터리안과 대중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트위터상의 정보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하진 않는다(일부 사람들 제외하고). 그런데 이 영화에서 트위터의 영향력은 너무 막강하다. 실제로 일본사람들이 SNS나 커뮤니티상의 정보에 대해 이토록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는지 궁금하다.

4. 트위터에 대해 궁금한 이유는 주인공 요시오카(심은경)에 대한 영향도 크다. 사실 영화 중반까지 보면서 "쟤 기자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뭔가 인상은 쓰고 심각하게 고민은 하는데 중반까지 대세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 그저 기사는 킬 당하고 트위터에 끄적이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트윗에 달리는 답글 반응을 보고 괴로워한다. 나는 SNS 플랫폼 시장에서 트위터는 '한 물 간 SNS'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트위터보다는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 등 사진 중심의 SNS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트위터가 대세구나"라고 생각하다가도 중반까지 지나칠 정도로 트위터에 의존해서 의아하게 봤다(그러고 보니 '날씨의 아이'에서는 야후에서 만든 '듣도 보도 못한 SNS'가 등장했던 것 같다).

5.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대세를 이룬다는 시대지만 정작 '언론'은 지나칠 정도로 퇴보해있다. 정부의 비리를 까발리는 기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심야시간에 기사를 마감하고 윤전기 돌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새벽시간에 신문배달부가 서점과 가판대에 신문을 깔아두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 장면만 그대로 떼어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나 한국영화 '1987'과 편집해도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이 대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저 장면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가는 포털사이트나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시민들, 학생들의 모습이 등장하는게 더 그럴싸했다. 영화가 내내 가져온 무게감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해봐도 저 장면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내 언론만 해도 종이신문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다. 대형 메이저 언론마저 광고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종이신문을 내며 대부분 언론사는 온라인과 SNS로 뉴스를 배포한다.

6. 요시오카가 근무하는 언론사의 시스템은 꽤 그럴싸했다. 특히 진노 부장(키타무라 유키야)으로 대표되는 데스크의 시스템은 한국의 기자들도 꽤 공감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빨간펜도 꽤 오래된 방식이다). 모든 언론사의 기사는 기자의 이름을 달고 나간다. 그러나 그 기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기자 위에 부장과 편집국장이다(물론 나중에 기자도 책임을 진다). 그러니 이상한 기사가 등장했을 때는 기자를 욕할 것이 아니라 데스크를 욕해야 한다. '언론사 데스크'로서 진노 부장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균형을 지킬 줄 알고 때로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요시오카가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꽤 전형적인 구조('스포트라이트'에도 등장했다). 다만 '신문기자'의 경우에는 이 구조가 앞뒤 맥락도 없고 너무 전형적으로 묘사돼 재미가 없다.

7. '신문기자'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요시오카의 아버지는 '오보'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오보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면 꽤 복잡한 전제가 따른다. 사회부 기사의 경우 가능한 일인데 오보 때문에 누군가 재산상의 피해를 입거나 무고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다. 자신의 오보 때문에 파장이 생길 경우 어떤 기자들은 죄책감에 목숨을 끊기도 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요시오카의 아버지가 쓴 기사는 말 그대로 '오보가 된 기사'에 불과하다. 대중들의 비난이 있었겠지만 그 또한 잠깐이다(인터넷 보급률도 낮은 나라인데).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모 언론사의 경우 '오보' 때문에 인지도를 얻고 지금은 메이저 언론사로 성장했다.

8. '신문기자'는 극적 전개로는 꽤 뛰어나다. 영화를 보면서도 "대학을 짓는 게 왜? 총리가 뒷돈 챙겨먹었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음모에 더 엄청난 것을 심어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충격을 줄만한 사건'을 찾아서 그려낸다. 이건 일본 관객뿐 아니라 한국 관객도 충격을 받을 일이다(아마 한국 관객이 더 충격을 받을지도). 때문에 중반까지 심심하던 전개는 뒤로 갈수록 격해진다. '신문기자'는 계속 봐야 재미있는 영화다. 여기에 '정의의 편이 패배했다'는 식의 결론도 흥미롭다. 아마 한국영화였다면 어떤 피해를 보고서라도 정의가 승리하는 전개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아마 감독이 생각한 일본의 미래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9. 결론: '신문기자'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영화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인다. 분명 동종업계 종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딴 세상 기자의 이야기'같다. 윤전기 돌아가는 현장에도 직접 가봤고 일간지 마감도 해봤는데 이 영화는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같다. '인터넷 시대에 기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정말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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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님의 리뷰
2019.10.21 17:56:41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비슷한 씁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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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19.10.21 12:29:10
<신문기자> 일본 사회에 기시감 느끼는 이유는?
인터넷 신문이 태동했을 때 종이신문의 시대는 갔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가. 아직 종이신문은 미비하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지면 신문을 발생하던 신문사도 인터넷이란 괴물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모색했다. 인터넷으로 위기를 맞을 거라 예측했던 것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신문기자>는 언론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상한 기시감,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진실을 추적하려는 믿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인의 본질은 진실을 알리려는 저널리즘의 정신이다. 그러나 권력의 감시견에서 경호견이 되고 있는 요즘 언론은 점점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진실에 눈 감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언론의 역할이 희석되고 있는 요즘, 영화 <신문기자>는 경종을 울리는 영화다. 이는 얼마 전 한 연예인의 죽음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자세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화는 가짜 뉴스, 여론 조작, 댓글 부대, 민간 사찰, 신상털기 등 국가라는 큰 골리앗과 진실을 밝히려는 작은 다윗의 싸움이다. 아베 정부가 세계를 겨냥해 작업해 온 역사왜곡의 물밑작업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서서히 슬며시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되 들켰을 경구 돈, 두려움을 건드려 기필코 막아야 하는 무엇. 그들은 정권 유지가 곧 이 나라 평화의 유지라고 말한다. 가족의 안위와 미래를 거들먹거리며,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된다고 돌려 말한다.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와 가족,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

영화 <신문기자>는 '모치즈키 이소코'기자가 쓴 동명의 책을 모티브로 한다. 일본 사회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 사회 또한 이상하리만큼 기시감이 크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현 일본 사회를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여러 장면에서 강한 리얼리즘이 담겨 있다. 예로 들면 내각정보자료실은 무미건조하고 푸른 무채색의 콘트라스트를 주었고, 토우토 신문은 투박하지만 옅은 색감을 이용한다. 모티브가 된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실제로 등장하는 장면은 픽션과 논픽션의 간극을 허물었다.

메타포로 들여다보는 일본 사회

영화 <신문기자>는 팩트를 생명으로 하는 신문에서 다양한 메타포를 활용한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될 만큼 경계가 열려있다. 일단 '양'이다. 양은 순종적인 일본 국민을 빗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1968년 미국에서 벌어진 '더그웨이 양 사건'을 상징한다. 더그웨이 양 사건은 정부의 군 연구소에 신경가스가 유출돼 대량의 양이 죽은 사건을 말한다.

이는 은폐되고 정부의 이슈를 고발하는 시작이면서도 영화의 가장 큰 메타포로 쓰였다. 검은 눈을 가진 양은 흡사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블라인드에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하는 국민을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선글라스를 씌우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것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목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유추할 수 있는 말은 모두를 향한 미안함이라고 봐도 좋다.



배경이 가을이기 때문에 간과할 수 있는 메타포도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많다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붙어있지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일본 시민의 목소리에 빗댄다고 말했다. 시민이 연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저 강한 바람에 힘 없이 떨어지는 낙엽일 뿐이다. 거대한 무언가에 대응하기 위해 서는 여럿이 의기투합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녀관계를 빗대 국가와 언론을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유독 부녀관계가 강조된다. 요시오카(심은경)와 아버지는 세대를 이은 기자 출신이다. 공무원 스기하라(마츠자카 토리)는 곧 딸 출산이 예정되어 있다. 모든 짐을 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칸자키(다카하시 카즈야)도 딸이 있다. 일본은 남성의 권력이 강하다. 권력에 쉽게 대응하지 못하고,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버린 언론은 흡사 부모와 자식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시오카는 좀 다르다. 기자에게 치명적인 오보를 냈다는 이유로 자살했던 아버지는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기자였다. 일본인기자지만 미국 뉴욕 출생으로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버리고 일본 신문사에 입사했다. 사회부 4년 차 기자지만 매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양 그림이 그려진 한 문건을 받고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뭔가 있다는 직감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한 이끌림으로 요시오카를 내몰고 있다.

요시오카는 국가와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정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때문에 작은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임에도 총리 직속 내각정보관의 행태와 내각정보실이 만드는 대학의 이면을 파헤치기 위해 집요한 취재를 강행한다. 요시오카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뜻을 이어가려는 명분, 순수한 기자로서의 피 끓는 사명감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마 요시오카는 가시밭을 걸어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는 다수가 바라는 안정성을 뒤흔드는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생각보다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한걸음 진보했을 때는 희생으로 다수의 혜택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매달려 있기조차 벅차 떨어진 낙엽(시민)이 수북이 쌓였지만 언젠가 불쏘시개로 쓸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꿈꾸고 싶다.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는 언젠가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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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곤 님의 리뷰
2019.10.21 03:01:49
어느 나라든 정권을 잡으려고 뭐든 마다하지 않는다.
<신문기자>에서 '요시오카 에리카'라는 캐릭터는 실존인물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모티브이며, 그녀가 쓴 동명의 저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일본(아베)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내용을 서슴없이 비판 했으며, 일본 언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우리나라 심은경 배우가 맡았기에 더욱 궁금했었던 영화였다.
심은경 배우는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 소화해냈고, 연기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들었던 바로는 일본 배우들이 심은경 배우가 맡은 캐릭터를 꺼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반일본, 반정부에 대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공감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댓글조작, 가짜뉴스, 신상털기까지 어느 나라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신문기자>를 보면서 "어떤 언론에서 정부의 잘못된 행동에 대히여 감히 말하고, 꼬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이렇게까지 해서 정권을 잡아야할까?",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답답하고 안타까움에 화가 났다.
내가 정치를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치도 보면 물고, 뜯고 많이 뒤숭숭하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관람한다면, 우리나라에 정치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언론에 대해서도 무엇을 믿어야하는지 의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 시원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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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님의 리뷰
2019.10.20 23:32:42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잘 산다는 사실엔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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