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이 싫다 (Jesus)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일본, 76분, 전체 관람가, 2019.08.08 개봉
감독
오쿠야마 히로시
배우
사토 유라
오오쿠마 리키
채드 멀레인
사에키 히나코
키타야마 마사야스
시놉시스
도쿄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전학 오게 된 소년 '유라'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어느 날, '유라' 앞에 작은 예수님이 나타난다.

“이 학교에서 친구가 생기게 해주세요”

'유라'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예수님과 하루하루 아주 특별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라'의 일상을 뒤흔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91.3%
3.2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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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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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리뷰
15

정재혁 님의 리뷰
2019.08.02 12:17:03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I HATE JESUS'가 아니다
'I HATE JESUS'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를 영어로 옮기면 당연히 이렇다. 지난 5월 일본에서 개봉해 세계 몇 곳의 영화제를 돌고 작은 화제를 모았던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어김없이 'I HATE JESUS'가 될 꼴이다. 별 다른 수사도 없는 이 문장에서 번역은 사실 망설일 이유가 별로 없다. 하지만 영화의 원제는 'I'가 아닌 '僕', 'JESUS'가 아닌 '神様'로 채워져있고, 단 두 단어의 차이로 문장은 전혀 다른 뉘앙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화에서 초등학생 주인공 유라가 내뱉는 대사는 아니지만, 이 영화 제목엔 어린 아이의 심통 어린 투정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실제로 감독인 오쿠다 히로시는 영화제 출품을 코앞에 두고 제목을 두고 꽤나 고심을 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가 강한 유럽, 미국 등의 나라에서 자칫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고작 23살 감독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완성해낸 76분의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왜인지 'I HATE JESUS'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영화의 포인트가, 힘이 자리한다.

영화는 도쿄를 떠난 소년의 눈속 마을에서의 며칠을 그린다. '친구가 생기게 해주세요', '별장에 놀러가게 해주세요'같은 초등학생의 유치하지만 절대적인 기도로 채워진다. 매일같이 예배를 드리는 학교, 성당에 모여 두 손을 모으는 게 조례가 되어있는 학교, 전교생 다 모아봐야 서른 명 안짝이지만, 빈틈 하나 없는 눈으로 덮혀있는 시골 학교. 그렇게 완벽한 순백의 세계에서, 주인공 유라는 생각 외로 학교에 쉽게 적응하고, 식탁에서의 몇 마디를 제외하면 영화에 들려오는 어른의 낯선 발걸음은 별로 없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힌 산속에서 그네를 타고, 뛰고 넘어지고, 뒹구는 유라와 카즈마(오오쿠마 리키)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세계는, 왜인지 어쩌면 완벽하다. 오쿠다 감독은 부러 고전 영화에나 쓰였던 1.33:1의 스탠다드 화면을 골랐는데, 그만큼 영화는 도쿄에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인다. 이 비율의 화면은 최근 '고스트 스토리'의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쓰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나는 이 제목의 의미를, 어느새, 이미 잊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라의 예수님은 작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 호시노 유라(사토 유라)의 예수님은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다. 유라가 작은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으면 마치 피터팬의 팅커벨이 날아드는 것처럼 나타나 유라 앞을 맴돈다. 이 예수님은 우리가 알던 십자가 속 비애의 초상이 아니고, 정해진 틀 속 성스러운 모습의 상징도 아니다. 오쿠다 감독은 예수님을 두꺼운 성서책이 아닌 유라의 작은 일상 안에 그려낸다. 1000엔짜리 지폐로 접은 스모 선수와 대결하는 모래밭(물론 유라가 장난스럽게 마련한 책상 위의 작은 무대)에 올려두기도 하고, 신사에서 합장을 하며 소원을 비는 유라 곁에 질투를 하는 장난감처럼 서성이게도 한다. 예수님이 강림하는 보통의 영화라면, 신비롭고 성스러고 장엄할 이 장면이 '나는 예수님이 싪다'에선 유독 코믹하다. 실제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응은 일본 내외를 망라해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묘사'였다고 한다. 그저 어린 아이 눈에 비친 예수님이라 할 수 있겠지만, 믿음은 대체 무엇일까. 이 영화는 결코 코미디가 아니다.

유라의 단짝 친구 카즈마(오오쿠마 리키)의 엄마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정치가가 되고, 300만엔의 월급을 받고, 30만엔의 건물을 사는 인생 게임은 왜인지 항상 골에 이르지 못한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함께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은 조금 과장해 성서 속 최후의 만찬처럼도 보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기시며...아멘.' 온통 성가만이 흘러나오는 영화에서, '아멘'으로 마침표를 찍는 문장에 밖을 내다볼 틈은 어디에도 없다. 창 안쪽 세상 만으로 완전하다. 하지만 곧 끝나버릴 계절, 자꾸만 늘어나는 창의 작은 구멍들. 영화는 어느 노인의 알 수 없는 흥얼거림으로 시작했다. 삶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이미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듯한 노인은 유라의 할아버지였고, 할아버지는 장면이 지나간 뒤, 컷 이후 이곳에 자리하지 않는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살며시 창에 구멍을 내는 순간 이후. 영화의 마지막, 유라는 이른 새벽 새로 곱게 바른 창에 살며시 구멍을 내고, 나는 유라의 웃음에서 드디어 한 세상이 문을 닫고 문을 여는 기분을 느꼈다. 무엇에 눈을 뜨고, 무엇에 눈을 감을것인가. 삶이란, 그리고 믿음이란.

영화엔 어쩌면 일찍 세상을 든 오랜 친구와의 재회를 바라는, 기도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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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QLSIXNA 님의 리뷰
2019.08.22 22:44:14
감독의 자전적인 얘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촬영 기법이나 연출, 그리고 배우의 연기 등 영화 전반적으로 감독이 되게 신경 쓴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영화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중간 중간에 이 흐름을 흔드는 장면들은 소름이 돋았다. 감정의 과잉이 오려는 상황에서 단호하게 절제하는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담담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감정이 들끓고 있었을지가 보이는 것 같아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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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네 님의 리뷰
2019.08.14 14:59:5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 인 1 예수 보급...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응답하는 나만의 전용 신을 바라는 것은 모두에게 같은 마음일 듯 싶네요. 할아버지의 죽음과 갑작스러운 이사, 그리고 외톨이라는 삼중고 속에 자신만의 미니 예수님과 새친구가 생기면서 벌어진 일을 다룬 영화입니다. 기존 종교 영화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영화서 보여지는 성령의 힘을 만능으로 표현하는 부분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예수(신)를 친근한 존재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먼 존재로 보여주고 있죠. 마치 헐리웃의 '올마이티' 시리즈처럼 모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지만 믿음과 사랑만이 해답이라 보여주는데 정반대로 이 작품은 의외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죠. 저는 이 파격적인 결말이 소년의 믿음이 사라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뚫어놓은 창호지를 본인 역시 되풀이 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가갈 준비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짧지만 전달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아이의 관점으로 바라본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미니미 예수로 등장한 채드 멀레인은 일본의 대형기획사인 요시모토 소속의 개그맨으로 대사가 없음에도 진중함과 유머를 적절히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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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님의 리뷰
2019.08.14 11:53:47
우리들
어쩔 수 없이 윤가은의 '우리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비슷한 듯 다르다.
윤가은은 때때로 클로즈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오쿠야마 히로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지켜보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윤가은은 결국 아이들의 모습에서 세상의 (잔인한) 질서를 보지만, 오쿠야마 히로시는 온전히 아이들(의 마음)을 보(이)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이와이 슌지 월드의 일부(예를 들면 '하나와 앨리스')와 더 가깝게 보이기도 하다.
특히 아련한 화면과 '감각적'으로 서정적인 배경음악에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CF스럽다면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독립영화 특유의 투박하지만 퓨어한, 그러니까 긍정적인 의미로 아마추어스럽다.


관조와 생략이라는 이 영화의 일관된 태도를 고려하면, 갑작스런 그 사건의 연출은 너무도 직접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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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님의 리뷰
2019.08.11 22:01:45
영화를 포장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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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JINU 님의 리뷰
2019.08.10 16:19:16
이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의 시작점 / 나는 예수님이 싫다 / 僕はイエス様が嫌い / Jesus (2018)
이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의 시작점 / 나는 예수님이 싫다 / 僕はイエス様が嫌い / Jesus (2018)

제목이 너무 직관적인가 싶을 정도로 종교성이 표현되어 있어 내심 걱정이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기독교'와 '일본'이라는 키워드가 이렇게나 눈총을 받는 때라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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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여러부분에서 흥미롭다.

카메라는 '유라'라는 아이의 시선을 열심히 좇는다.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모든것을 바라보고 편집하고 설정해놓았다.

어린시절 기도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누구나 했을법한 기도를 주인공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그 모든 것이 기도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른의 시선은 그 모든것은 인과관계에 의한 결과로 여겨진다.

'유라'는 몇번의 기도가 이뤄지는 것을 직접경험하며 기독신앙이 생기는 듯 해보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어린시절의 기적이란 것은 '유라'가 경험해본 소소한 것들부터이지 않을까
기도의 모든 내용은 사실 그다지 큰 것도 아니고,
거대한 기적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인류사학에서의 종교란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모종의 신앙이 형성되고, 종교가 만들어 졌으며
그것들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집단들이 발생한 것이 지금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마지막에 창호에 구멍을 뚫는 모습으로

어린아에게는 도저히 가능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그 신앙을 통해
혹시라도, 어쩌면, 그럼에도불구하고, 라는 단어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순간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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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Si 님의 리뷰
2019.08.09 16:14:29
종교보다는 순수함 그리고 추억
제목만 들었을 때는 종교를 완강히 거부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시노 유라라는 아이가 왜 예수님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적은 변화의 결과
일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한 편입니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듯한 영화의 톤이 일본 영화의 특징이고, 이를 좋아하는 마니아분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적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물의 변화 혹은 공간이나 앵글 등이 있겠죠. 한 영화 안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도전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는 횟수가 비교적 적습니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이렇게 적은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얻는 효과는 변화를 더 돋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앵글과 비슷한 장소들이 쭉 보여주다가, 조금의 변화만 주어도 관객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같은 장소를 찍는 카메라 앵글의 변화입니다. 영화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유라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기존에 보이던 카메라 앵글과 다른 위치에서 가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교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는 앵글로 촬영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화려한 영화에서 나왔다면,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화려하고, 과감한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어떤 변화에서 대해서 강조할 때는 더욱 과감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클로즈업을 주로 보여주던 영화는 더욱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클로즈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 또한 변화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유라의 모습이 담긴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인물의 표정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라와 마찬가지로 표정 변화가 없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카즈마의 엄마입니다. 유라는 카즈마의 엄마를 보면서,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주던 유라와는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카즈마의 엄마는 영화 후반부에 상당히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서 그녀의 감정에 대해서 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관찰자의 시점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주인공인 유라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관객들은 유라의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표정 변화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감정이나 기분에 대한 표현도 적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유라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라가 소원을 빌 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감독의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창호지로 되어 있는 문에 구멍을 내는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는 유라의 할아버지 생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가족들이 혼자 계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곳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유라는 학교의 일정에 따라 기도를 하는 법에 대해 알게 됩니다.
유라가 기도했던 것들이 몇 가지 이뤄지면서, 유라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 신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카즈마의 죽음 이후 유라는 많은 기도를 했지만, 카즈마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추도사를 읽고 기도 중 나타난 예수를 책으로 눌러버립니다. 이때의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창호지에 구멍을 내는 유라가 구멍을 통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감독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과거 자신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나름의 추측을 해보자면, 카즈마에 대한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유라가 빈 소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 소원의 내용이 없다면 영화 속 유라가 카즈마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카즈마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고 있던 유라가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고, 그것을 예수가 이뤄주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사고에 무표정으로 보였던 것도 이런 이야기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감독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은 감독 본인이 투영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라의 기도 혹은 행동에 의해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예수가 카즈마의 병실로 안내할 때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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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 영화는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7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깊이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추억으로 생각하며 지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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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19.08.08 19:51:58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전학을 오게 된 주인공이 상상 속의 작은 예수님과 한 친구를 만나는 이야기다. 감독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듯한 이 드라마는 마치 하나의 편지처럼 느껴지며, 그저 즐겁기만 했고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과 그 행복을 깬 불행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담백한 영화다.

4:3 비율과 한 두 씬 정도를 제외하고는 카메라워크가 일체 없는 고정된 시선으로 각 씬을 깊은 초점으로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연출이 우선 눈에 띈다. 음향과 녹음 상태 또한 실내 공간의 울림이 있다거나 외부의 소리와 자연스럽게 섞인 등, 감독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려고 한다. 또한, 주인공을 가운데 정면에 자주 넣으며, 관객과 마주보는 듯한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연출들은 감독이 본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생각을 관객들이 직설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표출되는 듯하다.

전반적인 이야기에서는 '우리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최근에 봐서 그런지 '사자'가 아주 약간 떠오르기도 했다. 전학 후에 찾은 우정에서 작은 예수라는 순수한 희망과 꿈의 상징과 동행하는 주인공의 일상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인생의 고통을 배우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고 하지만, 주인공이 겪은 고통과 성장은 안타까울 뿐이다. 아역 배우들의 수줍은 연기는 다소 어색할 때도 있어도, 자연스러운 맛은 확실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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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님의 리뷰
2019.07.30 21:55:55
저는 당신의 때와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당신의 뜻과 제 뜻이 같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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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mon 님의 리뷰
2019.07.30 21:13:58
종교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자 찾아온 성장에 관하여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과 제16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특별프로그램 상영작 중 하나였던 컷 아웃 애니메이션 <10월 21일 도쿄> (2018)를 관람했던 관객이라면 24세의 젊은 감독 오쿠야마 히로시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편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개봉하는 장편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 (2018)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은 익숙한 소재라도 촬영 및 각본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10월 21일 도쿄>는 가족, 특히 모자 관계를 기술이 발전하며 사용하는 빈도가 떨어지는 컷 아웃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풀어내며 낯섦과 친숙함 간의 절묘한 결합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이와 달리,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한정된 화면 구도와 소재의 조합으로 관객에게 뭉클함을 안긴다.

우선, 화면 구도에 관해 말하자면,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은 대부분 장면을 정적인 장면으로 구성했는데 최대한 대칭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스크린 중심에 놓은 다음 여기서 파생된 가상의 선은 on-screen의 공간을 일정한 크기로 나눈다. 대화 장면의 경우 인물을 각각 좌우에 배치함으로써 시선의 균형을 유지했으며, 주인공 ‘유라(사토 유라)’가 진심으로 필요할 시기에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작은 예수(채드 멀레인)’에게 점차 실망하게 되었을 때는 주인공이 정확히 화면 중앙에 배치된다. 또한, 끝내 작은 예수가 나타나지 않고 어떤 상황이든 기도를 부탁하는 교사 때문에 분노하게 되었을 때는 의도적으로 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었던 가상의 선을 왼쪽으로 틀어 주인공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제, 소재로 넘어가자면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종교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일과 유년기의 성장, 총 두 가지 소재를 다룬다. ‘유라’는 특정 종교를 믿는 학교로 전학 오게 되면서 기도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도만 하면 소원이 이뤄지자 그저 순수한 ‘유라’는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소원이 이뤄진다는 인과 관계를 스스로 세운다. 하지만, 막상 진정으로 예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예수가 등장하지 않자 실망하게 되며 ‘유라’는 기도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속으로 되묻는 동시에 성경을 손으로 내려치는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유라’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음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깨달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유라’가 낸 문지방에 구멍을 통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대화와 버즈 아이 뷰 숏(신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추억이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막상 관람하고 나면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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