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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코미디, 미국,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11.27 개봉
감독
노아 바움백
배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로라 던
알란 알다
레이 리오타
아지 로버트슨
줄리 하거티
월리스 쇼운
마크 오브라이언
카일 본하이머
믹키 섬너
로슬린 러프
매튜 쉐어
메릿 웨버
시놉시스
결혼의 끝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감독 노아 바움백이 파경 후에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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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리뷰
71

조항빈 님의 리뷰
2019.11.28 02:46:10
'결혼 이야기'는 결혼 생활을 정리하기로 한 두 부부의 이별 과정을 다룬 노아 바움백의 영화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뭔가 특이한 대사들과 절제된 연출을 통해 배우들과 각본의 에너지를 그대로 전달하려는 그의 스타일은 확실히 진화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유망주에서 아예 차세대 스타 감독으로 거듭난 노아 바움백은 이번에도 부부와 사랑에 대한 굉장히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 영화는 주인공 부부의 이혼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여기에는 이혼을 둘러싼 법적 공방, 자식과의 관계, 경제적 문제 같은 상당히 현실적인 내용들이 들어있으며, 이런 내용들이 이야기의 신뢰성과 몰입감에 상당히 기여를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내용들은 두 주인공이 이 과정을 통해 거칠 개인과 관계의 성장을 위한 촉매제다. 영화는 한때 서로 깊게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헤어지기로 결심한 부부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의 생활을 통해 쌓인 정과 습관들에서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음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왜 서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지를 두 주인공들의 입장차와 갈등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르고, 그리고 그 다름에서 나오는 서로에 대한 생각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가 쌓이고 쌓이기만 하면 결국 둘을 갈라놓게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 관계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부부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만큼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의 드라마가 나온다. 특히 양육권과 관련돼서 말이다.

이혼이라는 감정과 물량의 소모가 큰 싸움을 통해 영화는 두 주인공의 피치 못할 대립으로 이야기를 쌓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자극적이고 요란한 방향이 아닌, 애와 증이 정말 매순간 공존하고 있고, 진심 어린 절제와 참을 수 없는 폭발이 섞여있고, 부부처럼 대하지만 더 이상 부부일 수 없는 사람들의 솔직한 대사들에서 노아 바움백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돋보인다. 그의 각본은 더 이상 인생을 함께 할 수 없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과연 정말 함께할 수 없을까와 왜 함께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며, 결국 자기 자신들에 대해 더 알게되고, 자신들이 원하는 행복과 삶에도 더 가까워지는 성장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낸다. 영화는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지 않다. 나는 영화를 보며 한 쪽을 응원하다가, 또 다른 쪽을 응원하다가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핵심은 결국,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 두 캐릭터가 각자에 대해 깨닫고, 동시에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며, 각자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아가야할지에 대한 현명하고 성숙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35 mm의 질감은 아련하고 연민 어린 느낌을 주며, 마치 묘한 가족 사진을 찍는 듯했다. 광각으로 구도를 넉넉히 잡으며 솔직하고 꾸밈없는 분위기를 베이스로 삼지만, 중요한 순간들에는 망원 클로즈업으로 당기고 편집도 날카롭게 하는 바움백의 스타일은 날이 갈수록 세련돼가고 있는 것 같다. 랜디 뉴먼의 스코어는 영화와 어울리게 미니멀한 느낌이 있으며, 아주 튀지는 않았지만, 적재적소에 일종의 막내림이 돼줬다. 마크 브리지스의 의상 또한 캐릭터들의 상황과 욕망을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잘 담았다. 점점 배우이자 커리어 우먼으로서 단정해지는 스칼렛 요한슨의 옷들은 마치 화려한 LA를 대표하는 로라 던의 드레스의 영향을 받아가는 듯 했으며, 언제나 셔츠로 사무적인 분위기를 내는 아담 드라이버는 뉴욕에 남아있는 그의 미련과 그로 인한 LA에서의 소외감, 그리고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을 잘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호아킨 피닉스를 2019년 최고의 남우주연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TIFF 이후 쯤부터 아담 드라이버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문대로,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그냥 최고였다. 매 영화마다 새로운 연기를 하는 듯한 그는 '패터슨' 쪽에 가까운 절제되고, 평범하고, 가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하지만, 이혼이 진행되며 조금씩 스며드는 두려움, 불안감과 불확실성부터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며 초조해지는 심리와 어쩌면 아담 드라이버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씬까지 이어지는 감정적 스트레스의 여정은 정말 경이로웠다. 스칼렛 요한슨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소규모인 영화에서 주연 역할을 맡은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동안 드라마 연기의 한이라도 쌓였는지, 정말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다. 아담 드라이버와 반대로 오히려 이혼을 결정하며 자신감이 더 생기고 더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여정은 초반부의 드라마를 담당했으며, 로라 던과의 씬에서 제일 빛을 발했다. 이 둘이 보여주는 호흡도 완벽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정말 이들이 오랜 기간 결혼했던 부부라고 믿겨지며 그냥 영화 내내 그렇게 보여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깊은 호흡을 보여준 두 배우는 각자의 연기에서도 훌륭했지만, 같이 있을 때도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DAY 님의 리뷰
2019.12.18 08:39:51
꼬인 매듭을 한 자리에서 차분히 풀다
1. 떠오르는 신예 배우였던 '니콜(스칼렛 요한슨)'. 그녀는 뉴욕에서 우연히 만난 연극 작가 겸 제작자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처럼 낭만적인 사랑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던 니콜과 찰리. 그러나 어느 날 니콜은 그들의 결혼생활에 '자신의 삶'이 빠졌음을 깨달은 후 이혼을 결심하고, 니콜과 찰리는 길고 긴 이혼 소송의 늪에 빠진다.

<결혼 이야기>는 끈적한 영화다. 영화는 이혼과 별거를 결심한 니콜과 찰리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비추고, 그러니 이혼을 결심한 이유와 부부간의 애증이 뒤섞인 심경변화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를 쉽게 묘사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묘사하지도 않는다. 대신 어떤 상황도, 감정도 쉽사리 결론을 내지 않고, 보는 이를 꿀처럼 짙은 감정의 늪에 끌어들인다.

2. <결혼 이야기>는 니콜과 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특정한 상황이나 설명을 반복한다. 나콜은 그녀가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거듭 이야기한다. 찰리는 니콜이 이혼을 하자고 한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도 자신이 뉴욕에 사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거듭 반복해서 말한다. 동시에 영화는 조금씩 변주된다.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찰리가 이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 이유 등이 살짝살짝 첨가되는 식이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에게 폭언을 쏟아내면서 대판 싸우는 장면은 이러한 연출이 절정에 다다른 대목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한 공간에서 남김없이 쏟아내면서 쌓아 올리고 거르고 걸러서 만들어낸 가장 짙은 농도의 감정, 사랑, 증오, 연민, 자기 비하, 환멸 등을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자칫 작위적이거나 혹은 지루하게 느껴질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럴 여지를 주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는 데 성공하며, 심지어는 어떤 모습으로 둘이 결국 어떻게 이혼을 하고, 어떤 관계로 지내게 될 지에 대한 호기심까지 자아낸다. 이혼 소송은 길고 지난하기 마련이며, 니콜과 찰리의 이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혼 소송을 치르면서 둘의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짙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영화의 끝에서 니콜과 찰리가 흘리는 눈물은, 영화 시작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복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진심으로 느껴진다.

3. 이처럼 깊고 농축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결혼 이야기>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느리다. 한 쇼트마다 그 길이가 길고, 빠른 화면 전환이나 편집을 보이지 않는다. 둘째, 정적이다. <결혼 이야기>에서는 카메라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이러한 두 방식은 특히 니콜과 찰리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함께 활용되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팬쇼)'를 찾아가서 니콜이 그녀의 삶, 감정, 그녀가 이혼을 결심한 계기 등을 털어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씬의 시작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노라와 니콜을 한 화면에 담는다. 그러나 이내 노라는 어느새 카메라 앵글 밖으로 사라지고, 카메라 앞에는 니콜만이 남는다. 그녀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데, 그녀의 얼굴에는 첫 만남의 호기심, 떨림, 사랑의 황홀함, 기쁨, 좌절과 실망, 이혼을 결심한 결연함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를 클로즈 업 상태로, 몇 분간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마치 관객들이 그녀와 직접 대화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결과 영화를 보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작중 인물들의 직접적인 청자가 되고, 그들의 감정을 최소한의 잡음 가운데 수용할 수 있다.

이처럼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히 전달하는 것은 사실 배우들의 역량에 많은 것을 맡겨야 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은 정말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 두 배우가 남여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4. 느리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결혼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가 일반적인 이야기에 접근한 방식 또한 이 작품을 독특하게 만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과 찰리가 실제 부부인 상태로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가 시작할 때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푸티지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결혼 이야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결혼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의 삶에 남긴 깊은 자국은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이혼을 통해 강조한다. 니콜은 이혼 소송 합의점을 찾기 위한 자리에서도 찰리의 점심 메뉴를 골라주고, 둘은 재판장에서 자신들만이 아는 서로에 대한 약점을 들이민다. 갈라서기로 한 상황에서도 무의식, 혹은 의식 중에 남아 있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본인들도 모르게 확인한다. 이처럼 <결혼 이야기>는 낭만적인 사랑과 사랑의 현실을 한 장면 안에 동시에 담아내면서 결혼의 양면적인 이야기를 영리하게 풀어낸다.

5. 이혼이라는 소재 자체가 싫거나, 혹은 배우들이 싫거나, 또 느린 호흡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결혼 이야기>는 쥐약이나 다름없을 영화다. 그러나 깊고 짙은 사랑, 애틋함, 회한, 아쉬움 등의 감정에 2시간 동안 원 없이 빠져보고 싶다면,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면, 두 주연배우의 뛰어나고도 세심한 표정 연기의 매력에 온전히 빠져보고 싶다면, <결혼 이야기>는 결코 거를 수 없는 영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영화답게 차분히 풀어낸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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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10:01:28
제52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부부 간의 이혼 재판을 통해 가족 사이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자면 테드가 정글짐에서 떨어져 다친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장면이다. 이혼 재판에서 상대편 변호사는 이 문제로 직장에 제대로 가지 못한 테드를 직장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아버지로 몰아간다.

테드는 아이가 다쳤다는 사실을 열변하고 이런 테드의 모습에 아내 조안나는 눈물을 보인다. 그녀는 테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아이로 인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이 진행될수록 더 진해지는 건 가족 사이의 끈끈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이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이 명작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결혼 이야기>는 노아 바움백 감독을 평단에게 인식시킨 그의 초기작 <오징어와 고래>의 확장판이라 볼 수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양쪽을 오가며 생활하는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부부의 싸움을 오징어와 고래에 비유하며 그 사이에서 방치된 형제의 모습을 그려냈다. 창작에 있어 감독의 자유를 폭 넓게 인정해 주는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노아 바움백은 초기작의 주제를 가져왔다. 대신 그 시점은 아이들이 아닌 부부를 향한다.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 부부는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를 위해 친구 같은 부부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합의 이혼을 하고자 한다. 찰리는 니콜이 LA로 헨리와 함께 떠날 수 있게 허락해 주고, 니콜은 날을 정해 찰리가 헨리와 만나는 걸 허락한다. 부부 간의 합의로 끝날 것만 같았던 이혼은 니콜이 변호사 노라 팬쇼(로라 던)를 찾아가면서 복잡해진다. 조언이나 받아볼 겸 찾아갔던 노라 팬쇼는 니콜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니콜은 이혼 합의서를 찰리에게 준다.

노라 팬쇼의 개입이 큰 문제가 아니라 여겼던 찰리는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으면 양육권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는 노라의 전화에 기겁한다. 그는 변호사 제이(레이 리오타)에게 헨리가 뉴욕을 떠나 LA로 간 것부터가 재판이 불리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찰리는 점점 니콜에게 저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점점 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작품은 세 개의 관계를 통해 이혼을 앞둔 부부 그리고 가정의 문제를 예리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첫 번째는 찰리와 헨리의 관계이다. 연극 감독 찰리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면서 바빠진다. 자연스레 헨리에게 신경 쓸 시간이 줄어든 그는 이혼소송까지 겹치면서 헨리와의 시간을 헨리를 위한 시간이 아닌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바꾸어 버린다. 변호사들을 만나는 데 헨리를 동행시키는가 하면 할로윈 때 쉬고 싶어 하는 헨리를 늦은 시간에 데리고 나간다.



헨리는 자연스럽게 찰리와의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찰리의 말에 곧장 반응하려 들지 않는다. 이혼소송으로 마음이 급해진 찰리는 점점 헨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헨리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게 된다. 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를 좋아했던 헨리는 찰리의 말 하나하나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점점 거리감을 느낀다.

두 번째는 니콜과 노라, 찰리와 제이의 관계다. 변호사인 노라와 제이는 니콜과 찰리는 두 사람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부부의 이혼이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사건이 되길 바라며, 오직 고객의 승리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부부의 문제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두 사람이 살아온 세월 동안 다양한 감정과 사고가 얽매이는 순간들이 존재하며 모든 선택은 이성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법은 오직 사실만을 바탕으로 문제를 판단한다. 그래서 양측의 변호사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깎아내릴 수 있는지, 자신의 의뢰인은 문제가 없게 만들 수 있는지를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 문제는 이런 노라와 제이의 존재가 니콜과 찰리의 분신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부부는 서로의 변호사를 바라보며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떠올린다. 그 순간 사랑이라 여겼던 순간은 참고 살아온 지옥의 나날로 변모한다.


세 번째는 니콜과 찰리의 관계이다. 첫 만남 때 니콜은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신인 여배우였고 찰리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연극 감독이었다. 니콜은 찰리에게 반했고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겼다. 세월이 지나면서 찰리는 명성을 얻고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감독이 된 반면 니콜은 극단의 여배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이에 니콜은 LA를 향하고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이런 결혼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품었던 불만을 부부는 밑도 끝도 없이 서로에게 폭언으로 내뱉는다. 이 순간이 가슴 아픈 이유는 노아 바움백 감독이 설정한 영리한 도입부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찰리와 니콜은 상담에 앞서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적어온다. 이 내용은 서로가 함께해서 좋았던 추억들을 장면과 내레이션으로 보여주며 행복했던 나날들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나열한다. 그래서 부부는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는지 괴로워한다.

결혼생활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랑과 애정, 즐거움이 있지만 희생과 인내, 고통의 순간도 존재한다. <결혼 이야기>는 한 부부의 파경을 통한 붕괴와 회복의 과정을 통해 완전한 행복도, 불행도 없다는 다소 냉소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따스하게 그려낸다. 드라마적인 격렬함이나 감정의 과잉보다는 부부가 함께 즐거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깊은 공감을 유도한다.

<오징어와 고래>가 아이의 '성장'을 통해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암시를 주었다면 <결혼 이야기>는 확실한 마침표 대신 쉼표를 통해 고통과 상흔을 이겨내는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니콜과 찰리 부부에게 이혼의 순간은 두 사람의 삶에 쉼표이며 그들 사이의 관계가 끝이 났다는 마침표가 아님을 암시하며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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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QLSIXNA 님의 리뷰
2019.12.10 18:29:51
공교롭게도 올해 최고의 영화 두 편이 모두 넷플릭스 작품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이다.

<프란시스 하>와 <위아영>을 보고 노아 바움백이랑은 잘 안 맞나 싶었는데 극장에서 너무 울어버릴 정도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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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텔 님의 리뷰
2020.02.16 19:32:04
결혼을 바라보는 새로운 정의
영화의 시작과 끝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정의 여운이다. 묘하게도 내레이션과 화면이 반어적인 것이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칭찬 같기도 하고 흉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속마음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웃음을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화면에서 비치는 그들의 결혼 생활은 너무나 가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작품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작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상황이 잿빛 어둠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내레이션과 화면이 따로 놀 때부터 뭔가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이 영화는 ‘결혼’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지만 사실 이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과정들을 보다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보다 재미를 더하고 말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하지만 슬픈 이야기, 영화 <결혼이야기>(2019)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섬세한 감정 처리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무용수를 꿈꾸는 평범한 여성의 독립 성장기를 그려낸 <프란시스 하>(2014)는 물론, 뉴욕에서 홀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또한 한 여성의 감정선을 날카롭고 세세하게 읽어낸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감독은 ‘뉴욕’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앞서의 두 작품이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 <결혼이야기> 또한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뉴욕을 벗어나 서부 반대편의 LA를 주 무대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찾아가려는 주인공의 속내를 읽고자 노력한다. 뉴욕에서 나름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 아닌 극단 대표이자 제작자인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의 성공이었다. 아내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은 이렇게 남편의 성공과 자신의 입장을 연신 비교하며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변호사 노라(로라 던 분)와 이혼 소송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내 일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어요.”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그녀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읽어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 그녀에게 노라가 “당신은 훌륭한 배우”라고 치켜 세워주는 건 그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라는 영화 내내 노련한 변호사로 그녀를 안팎으로 감싸 안아 그녀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소송을 이기기 위한 철저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빨간색 구두를 벗고 맨발로 쇼파 위에 올라가 그녀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안아주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게 일하는지 그녀의 세밀한 작업 능력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노라의 말은 니콜의 속마음을 감성적으로 건드렸고 결국 니콜이 자리에서 일어나 찰리와의 만남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눈물과 함께 뱉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결혼 생활과 이혼 사유는 제각각이다. 노라를 만나 찰리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고 현재에 이르게 되기까지를 나열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보다 그 감정을 적절히 억누르면서 과정을 전달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 동안 쌓아온 연기력의 노하우를 발휘하는 것도 같다. 노라 또한 아무런 말없이 듣고만 있는 모습을 비추는데 이 또한 대사 하나 없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장면 곳곳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이 씬은 작품의 전체에서 꽤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감정의 표현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결혼 생활과 이혼 과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족의 중요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과정을 통해 이에 대한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고자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언제나 그대로였고 찰리의 한 순간의 잠자리 실수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결국 그와 그녀의 속마음에는 결혼 생활이 가져온 무언의 부족함, 현재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분명 전제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부부가 이혼으로 치닫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신파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에 치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결혼’이라는 단어가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 지, 그리고 그 무게를 깨뜨리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떠한 책임을 지니는 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가 이 작품의 제목을 ‘이혼이야기’가 아닌 ‘결혼이야기’로 정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갑작스레 니콜의 이혼 소송 서류를 받아들게 된 찰리는 어안이 벙벙하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그 동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는데 대한 반성이다. 한바탕 정신적 소동을 겪은 후 두 사람이 아이를 가운데 두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가족으로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그때 니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결말을 잊어버렸어.”라고 얘기하는 건 그 동안 지속되어 온 결혼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대사이다. 결국 이 상황은 두 사람의 말과 행동, 서로에 대한 감정과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힘든 상황을 연출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속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감정선을 최대한 읽기 위해 세밀한 면까지 드러내려 애를 쓰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까지 말이다.

​정리하면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찰리는 일방적으로 당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쓴다. 극단을 우수한 방향으로 이끌어 낸 자신의 연출력과 장악력도 하나의 가정을 지켜내는 데는 한 없이 부족할 뿐이다.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 아들을 받아들이는데도 모자라 온통 실수 연발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돌려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영화의 종착역은 결국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혼’은 그 겉치레에 불과할 뿐 그들의 마음 속 세밀한 구석은 서로에게 늘 향해있다. 그게 물론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핑계 삼아 변호사를 빌어 감정을 마구 퍼부을 만큼의 화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배우 로라 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아주 잘 이끌어낸 배우로 아담 드라이버에게 한 표를 던진다. 쟁쟁한 남우주연상 경쟁자들이 워낙 많아 그의 연기력이 빛을 받지 못했을 뿐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때로는 속 시원한 폭발력으로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잘 드러냈다. 솔직히 이 작품을 통해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을 정도로 이번 영화가 필자에게 미친 연기력의 포스는 컸다. 결혼은 단순히 생활을 달리했던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생활을 함께 하는 단순한 문장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서로 생활을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한편으로 서로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그런 세심한 부분이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이 비친 영화, <결혼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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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주 님의 리뷰
2020.02.15 14:48:30
외국영화를 볼때 외국배우의 연기에 대해 감명깊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본다.

영원히 내 모국어는 한국어이고 그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만큼 깊이있게 알진 못할테니까.

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의 케이시에플렉
<결혼이야기>에서의 아담 드라이버는
여기서 철저하게 제외된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2.12 14:10:19
그런 광활함 안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노아 바움백이 어떤 감독인지 모른다 하여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대략 느낌이 올 것이다. 노아 바움백은 인생을 희극이거나 비극, 둘 중 하나로 그리지 않고 중간에 서서 인생을 멍하니 관조한다. 그러니까 나쁘게 말하면 삶을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애매한데,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간에 영화를 보는 우리가 그만큼 작품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적극적으로 이입하지도 않고, 너무 거리를 두는 것도 아니니 적당한 정도의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라는 매체가 일종의 ‘적당한 거리’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미묘함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볼 때,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영화와 현실을 구분해서 생각한다. 이유를 물어보아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가운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영화를 볼 때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기본적으로 영화가 스크린 ‘위’에서 흘러나오는 영상 매체라고 생각해서다. 현대에 들어 스크린이 어디에 자리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말인즉슨 스마트폰이든 티브이든 간에 저것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감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대두된 풍경이기에 디지털이 그런 감각을 만들어내었다고도 말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굳이 디지털을 범인으로 지목할 이유는 없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는 남남’이라고 말하던 것은 인류사의 아주 오래된 인간관계의 법칙이니 말이다.



예컨대 나는 영화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다. 영화를 ‘인간’처럼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은 영화를 보는 방법과 유사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섣부르게 접근하기 어려운 생각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틀린 것 같지도 않은 생각이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는 우리에게는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인터넷이라는 요인이 면밀하게 결합해 있다. 여기서, 이전 시대의 메시지와 통화는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송신과 수신 사이의 거리감을 필요로 했고, 그러나 우리 시대의 메시지와 통화는 그런 거리감이 인터넷이라는 유동형의 물질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수많은 인공위성으로 뒤덮여 있다. 그런 인공위성의 헌신으로 우리에게 데이터 통신이라는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인공위성만이 할 수 있는 데이터 서비스는 바로 GPS이다. 인터넷 서비스는 바다에 깔린 해저 케이블도 사용하지만 GPS만큼은 지구를 에워싼 인공위성을 이용해야만 정확한 좌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데이터 서비스 중에 ‘좌표’ 값은 항상 공기 중으로부터 내려온다고 할 수 있다.



조금은 감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시대가 인류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좌표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게 다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이라는 데이터는 안테나 망으로부터 출발해 공기 중을 떠다니는데,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GPS를 켜고 서로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서로의 좌푯값을 명확히 해야 우리는 서로에게 보다 더 잘 다가설 수 있다.



서로에게 연락하기는 쉬워졌지만 그런 만큼 가까워지지는 않았다는 점이 좌표라는 개념에 담겨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추상을 떠올린 것은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가 그런 것을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결혼 이야기>에서는 이제 막 이혼하려는 두 명의 부부가 나온다. 그들은 각각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애덤 드라이버)로 처음에는 서로를 신사적으로 대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이 심각해지고,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쏟아내면서 끝내는 화해에 다다른다.



어쩌면 평범한 이혼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어느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원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라 니콜과 찰리라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을 하면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부모의 역할을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 개인의 삶이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나는 지금 뻔한 이야기를 조금 색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제공한 정보 접근의 평등함, 지구촌이라는 거리감의 삭제가 직시하는 바는 우리네 가정 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부부는 평등해졌으며, 어디를 가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끈끈하게 붙어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부부 사이를 좋게 해주는 건 아니다. 연락이 잘 된다고 해서 사랑이 깊어진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출정하는 남편과 그를 마중 나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연락이 일시적으로 끊기고 돌아올 때까지 응답이 닿지 않기에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욱 애타게 된다.



이혼을 위한 준비 기간 동안 니콜과 찰리는 떨어져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부부라는 규율에서 벗어나 솔로라는 자유를 되찾지만 그동안 가까이 있었기에 눈여겨보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다. 이는 소위 말하는 부재의 신호, 있다가 사라진 것이라는 주제로 표현되면서 ‘마치’ 그들이 재결합할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니콜과 찰리는 그대로 헤어진다. 반전은 없다. 허나 참된 의미의 반전은 그들이 헤어지고 나서도 앙숙이 아니라 친구 사이로 남는다는 점이다.



딱히 한국이 아니더라도, 헤어진 후에 친구 사이로 남는 건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 속에서 니콜과 찰리는 이혼 과정에서 서로 대판 싸우기도 했으니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남았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니콜과 찰리는 자신은 좋은 엄마/아빠가 아니라면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상대에게서 떠올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대에게 떠올리는 것들은 부모로서의 능력이라기보다 개인으로서의 능력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물론 개인의 능력이 곧 부모의 능력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혼 이야기>는 좋은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은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개인의 능력과 성숙함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들이 서로에게서 떠올리는 부재의 신호는 결혼 생활의 종말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결여된 것들에 대한 빈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부부의 아들이 부부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노아 바움백이 가족을 대하는 시선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와 같은 전통적 문제보다 부부 개인의 자아실현과 가정 운영에 대한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테다. 예컨대 노아 바움백이 그려내는 가정 문제는 인간 사이의 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직장생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감독의 이전 작품 <프란시스하>가 풍기는 자유분방함에서도 우리가 보았던 것이다. 크게 상관은 없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라는 문장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보고 싶은데, 니콜과 찰리는 결혼 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으레 결혼생활을 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불꽃 같은 감정은 현실의 담론 아래로 침전되어버리기 마련이지만, 두 사람의 직업이 연극단의 감독과 배우라는 점에서 이 둘은 서로 상충해야 마땅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게 어쩌면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찰리의 직업인 감독을 위해 젊은 날의 꿈인 배우를 포기했던 니콜은 이혼을 계기로 자신의 꿈을 되찾으려 한다. 여기서 니콜이 배우가 되려고 이혼을 결심한 것인지, 아니면 가정 밖으로 나가기에 가정을 위해 억눌러 놓았던 자신의 옛꿈을 수면으로 올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간에 니콜이 자신의 꿈을 위하면서도 자녀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걸 보면, 자녀가 포함된 ‘가정’이라는 개념보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게 더 맞을 테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부연설명을 하자면 니콜이 자신을 위해 자식을 홀대했다는 게 아니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게 그들의 ‘가정’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이혼을 다루는 영화라면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별의 아픔, 자녀는 엄마와 아빠 둘 중 어디로 보낼 것인지와 같은 문제를 다룰 텐데, 영화가 진행하는 사건은 그것이지만 바라보는 장소는 두 사람의 내면 속이다. 예컨대 가정의 붕괴가 아닌 가족이란 무엇인가의 문제, 가족을 구성하는 요인에서 중요한 건 부부를 잇는 자녀라는 존재가 아니라 부부 개인의 인간적 면모임을 노아 바움백은 역설한다.



이러한 대목이 시사하는 바는 가정을 지키려고 개인을 희생하는 부부가 있는 반면, 가족을 이루는 게 바로 개인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부부도 있다는 것이다. 서양은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국한하면 아직은 유교의 영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자녀보다 자신을 중시하는 부모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평가받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부모라는 칭호 이전에 개인으로서, 아직 성장을 다 하지 못한 청춘임을 말해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되면 자신의 이전 삶은 모두 지워지는 듯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어쩌면 생물학적인 무언가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다소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추상적인 생각을 이것과 결부 지어보려 한다. 결혼이라는 게 개인의 선택에 따른 행위라는 점을 제쳐두면, 나이를 어떻게 먹든 간에 그것이 인생계획의 다음 단계에 자리하는 듯 여겨지는 현재 상황에서, 그것은 마치 위에서 말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리는 듯 느껴진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이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공감각적 인식이 있다. 자신이 세운 계획과 떠나온 길 사이에서 무엇을, 이 사회와 단체 안에서 어느 지위를 갖는지 잘 알지 못하면 인생을 계획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꽃피기 마련이다. 그런데 니콜과 찰리의 직업은 각각 배우와 감독으로서, 연극 안에서 자신이 자리한 곳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하는 배우, 연극 전체에서 배우와 스태프를 어떻게 지정하고 운용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하는 감독이다. (극단은 유사가족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들에게는 좌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들의 직업은 개인으로서의 삶에서 중요한 지위이고, 여기서 가정은 별개의 것으로 취급된다. 개인의 삶에서 공과 사가 분리되어야 하는 건 양쪽을 양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판단이지만, 인터넷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연결성은 오히려 그 둘을 융합해버렸다. 그러니까,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연결이라는 편리함이 오히려 우리 사이에 적절히 단절되었어야 할 무언가를 이어놓아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감독이라는 찰리가 있고 어머니와 배우라는 니콜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는 서로의 장점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노아 바움백의 재치로 이루어진다. 시퀀스가 진행됨으로써 우리는 이것이 이혼 솔루션의 일부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는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점을 말해봄으로써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녀에게 반했는지를 상기해보고, 점진적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은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연결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진다. 찰리가 알던 니콜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니콜은 날카로울 정도로 괴리가 있었고, 이러한 괴리는 이 영화의 시선은 기본적으로는 찰리의 그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의 문제로 보면 이 설정을 우리가 슬기롭게 파헤쳐 나갈 수 있을 듯하다. 감독이 바라보는 배우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었을지를 찰리는 되묻는다. 같은 맥락으로, 찰리는 자신이 알던 니콜이라는 한 명의 여성이 사실은 연기하는 개인에 불과했던 건 아닐지를 고민한다.



그런 와중에 아이는 아빠도 엄마도, 감독으로서의 아빠도 배우로서의 엄마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모두를 포용하는 다소 아이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라는 말이 의젓하다거나, 영화적 연출로 인해 각색된 아역 배우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만한 마땅한 좌표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이 없다는 쪽으로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는 아이 다운 것 같으면서도 아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말에 따르면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이건 아빠도 마찬가지여서 아빠는 자신이 최대한 잘해준다고 잘해주었지만 그럼에도 한없이 모자란 듯하다며 양육권을 엄마에게 양도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가 이따금 그런 주관에서 객관으로 시선을 바꾸는 순간에는 그들은 그저 한 명의 개인이라는 점만이 밝혀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마치 거대한 사회 안에서 명확한 개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들의 자아실현이 GPS라는 기술, 모두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 실현되는 좌표 지정의 삶처럼 보인다. 인터넷이 개인에게 주어진 도상, 지표, 상징을 지우고 ‘나’라는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GPS라는 기술은 그런 광활함 안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고정하는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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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 님의 리뷰
2020.02.11 00:46:21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관계가 또 있을까
처음엔 누구편을 들어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였다.
특별히 뛰어나지도 특별히 특출나지도 않았지만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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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01:18:32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불편하다. 어찌보면 가장 알맞는 것일 수 있다. 이혼을 통해 이들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행복한 이별은 없다. 슬픈 이별이 있기에 현재가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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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00:47:03
말을 듣지 않는 남성들

0.
<결혼 이야기>을 보면서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대변하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남성들’이 떠올랐다. 이는 <결혼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특별한 캐릭터는 아니다. 수없이 많은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했노라 말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성들은 관계 속에서 여성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들이 바라보기에 여성들은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본다. 이렇듯 영화는 어느 쪽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마치 게임의 N회차 플레이처럼, 완전히 달라지는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안에서 일반화된 남성성을 규정하고 까내리려고 꺼내는 글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 맺는 방식과 그것을 둘러싼 결혼이라는 존재에 대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로 돌아가 보자. <결혼 이야기>은 표면적으로는 찰리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이혼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결혼과 이혼이라는 단어의 뒷면엔 맥락과 맥락의 싸움, 언어와 비언어의 싸움이 치열하게 펼치는 전장이다.

1.
<결혼 이야기>는 인물의 맥락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알려주다가도, 어떤 때는 마지막에서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니콜의 관점으로 영화를 따라가다 그녀가 찰리의 바람을 고백하는 순간,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찰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영화의 리듬 또한 절묘하다. 장르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치고 빠지는 동안에, 우리는 두 인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고, 마주 보고 웃으며, 각자의 맥락을 이해할 것만 같이 느낀다. 심지어 아직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아무런 예고 없이 돌출된 행동들, 법정과 변호사들 사이에 앉아있는 그들의 긴장감은 여지없이 그들이 이혼 조정 중인 상태라는 걸 주지 시킨다. 이해할 수 있다가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행동의 완급 조절은, 이해와 오해의 잔혹한 차이가 공존하는 삶의 속성과 닮아있다.

감독은 이러한 속성을 영화 안에 펼쳐놓고는,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찰리를 데려온다. 찰리는 끝내 니콜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그것은 정말로 니콜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일 수도, 표정일 수도, 언어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찰리는 연극의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이고, 니콜은 영화의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연극의 장소는 유한에 가깝지만, 영화의 장소는 무한에 가깝다. 찰리는 뉴욕을 떠나려 하지 않지만, 니콜은 뉴욕을 떠나고 싶어 한다. 니콜은 이미 그녀가 속한 세계만으로도 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2.
영화는 끊임없이 니콜이 보내는 신호를 주지 시킨다. 그러나 찰리에게 ‘대화’란 언어화된 언어들 간의 교환일 뿐이다.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LA에서 살겠다’는 말이 없었으니, 당연히 뉴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는 헨리(야지 로버트슨)를 대하는 태도에도 드러난다. 아직 어려 말을 잘하지 못하는 헨리의 심정을, 찰리는 알지 못한다. 이혼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전사(前史)에는 니콜의 수많은 신호와 제스처가 겹쳐져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 이는 이혼을 조율하는 과정인 영화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니콜은 영화 내내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찰리의 영역인 말로도 얘기해본다. 중후반 나오는 둘의 싸움 시퀀스를 보자. 찰리가 그토록 원했던 말의 향연 안에서도, 진심과 거짓은 섞인다.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던 싸움 후 찰리는 허망함에 무릎을 꿇는다. 감정과 진심을 다 쏟고 난 후, 그 자리에서마저도 거짓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그들은 굳게 닫힌 자신의 문을 연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남성은 그제야 자신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극적으로 둘은 재결합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했을 뿐이다. 이제 다시 시작할 뿐이다. 그리고 영화도, 다시 시작된다.

3.
영화의 시작, 각자의 장점을 말하는 자리에서 니콜은 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미 기록된 말의 끝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원래의 운명처럼 이어진 상태로 존재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결말처럼 서로의 끊어진 실을 간직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무엇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결혼’은 비록 제도이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체념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란 걸, 그것이 관계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음을 감독은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그런 상태야말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키려 했던 가치와 맞닿아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가 이혼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임에도 ‘결혼 이야기’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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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및 음란성
타인에게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언행
개인 안전 보호
개인의 사적인 정보, 특정 개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방, 혐오 발언
도배 및 광고
영화를 보지 않고 남긴 것이 분명한 리뷰
스포일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