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 키노라이츠
143
8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프랑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0.01.16 개봉
감독
셀린 시아마
배우
노에미 메를랑
아델 하에넬
루아나 바이라미
발레리아 골리노
크리스텔 바라스
시놉시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을 사랑의 기억을 마주하게 할 걸작을 만난다!
98.88%
4.11점
키노라이트 분포
1개
88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85

moviemon 님의 리뷰
2019.11.11 14:39:53
시선, 연대, 그리고 심리적 동화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은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것”이라는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아포리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성 간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177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선이 연대로, 연대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해 여성이라서 겪어야만 했던 억압과 차별의 세상을 어떻게 버텨내는지에 관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한,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해석되었던 오르페우스 신화를 여성 중심적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것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를 더욱더 뜨겁고 예술적으로 기록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수녀원에서 나와 마지못해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와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를 요청받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간의 시선 교환에서 출발한다. 두 인물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1955)에서 영감을 받은 듯해 보인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피카소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큐비즘적인 구도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루이(필립 느와레)’와 ‘엘르(실비아 몽포르)’가 서로를 쳐다보는 걸 포착한다. 즉,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에서 큐비즘적인 시선 구도는 감정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연인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와 같은 구도를 살짝 비튼다. 예를 들어, 오버 더 숄더 숏으로 ‘엘로이즈’를 보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큐비즘적 구성을 통해 파착할 때쯤 ‘엘로이즈’가 미세한 운동성으로 이 구성이 정착되는 걸 방해한다. 이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처럼 두 인물 사이의 감정 및 관계의 평행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두 인물이 비가시적으로 점점 부딪히면서 내면의 작은 불씨가 점차 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두 여성이 언어적인 방식보다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서서히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엘로이즈’ 집안의 하녀인 ‘소피(루아나 바이라미)’가 합류한다. 사실 ‘소피’는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한 인물이지만, 두 여성 간의 시선이 세 여성 간의 연대로 발전하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세 여성의 계급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해야 할 임무도 명백하게 나눠져 있다. ‘엘로이즈’는 결혼을 위해 이탈리아로 가는 날을 그저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몰래 초상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엘로이즈’를 은밀히 감시하고, ‘소피’는 자기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온갖 잡업을 한다. 그러나 세 여성 인물은 서로에게 서열 의식과 위계성을 부여하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생활하며 연대한다.

‘마리안느’는 여성에게 불리한 결혼 관습으로 인해 ‘엘로이즈’가 힘들어할 때 그런 고독 속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엘로이즈’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된 대상만을 갖고 그림 작업을 해야 하는 ‘마리안느’를 위해 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당시 여성이 맞이한 시대적 비극을 기록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소피’는 ‘마리안느’가 밤중에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그녀를 친절히 보살피고, ‘소피’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낙태하러 갈 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동행해 그녀가 겪는 괴로움을 함께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연대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탁자에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이들이 하는 카드게임이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지만, 버스트 숏으로 세 인물의 행복한 표정을 담아낸다. 아울러 오로지 수평 트래킹 숏만을 활용함으로써 이들의 계급적 차이를 소거하고, 세 인물의 동등한 관계와 연대감을 형상화하는데 몰두한다.

세 여성의 연대감이 무르익을 때쯤 ‘소피’가 살짝 한발 물러나고, 오르페우스 신화의 재해석과 함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형성된 심리적 동화에 집중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근데,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출구 문턱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몰라 조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래서 에우리디케는 비명을 치며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갔고,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소피’는 이에 대해 화를 내고, 세 여성은 열띤 토론을 하던 중 어차피 지상세계로 돌아가면 언젠가 사별의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하므로 주어진 운명을 수긍하고, 일부러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불러 남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어 지하세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한 에우리디케의 자발적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해석처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지금 당장의 사랑을 선택해 힘든 미래의 삶을 살아가며 후회하는 대신 서로의 손을 놓더라도 이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약속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심리적 동화가 완벽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심리적 동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신적인 표상의 형태로 내면에 담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두 인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관계에 쏟았던 순간과 그때 풍경을 감각 기관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기록했으므로 심리적 동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함께 보냈던 시간, 읽었던 책, 들었던 음악과 파도 소리, 그리고 느꼈던 불의 온도는 초감각적으로 기억되었으므로 두 인물이 물리적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 항상 이어져 있을뿐더러 갖은 고초에 무너질 위기를 버텨내며 극복할 힘을 지니게 된다. 특히, 시간이 흐른 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바로크 시대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작곡한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 Op.8’의 연주를 감상하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담아낸 장면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적 동화는 마침내 카메라에 체화된다.

카메라는 ‘마리안느’의 시선에서 연주를 들으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엘로이즈’의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 표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엘로이즈’의 표정이 일으키는 진동이 ‘마리안느’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카메라도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비록 스크린 안에서 직접적으로 ‘엘로이즈’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로 ‘마리안느’의 표정을 포착하지 않았지만, 스크린 밖의 카메라가 ‘엘로이즈’의 눈이 되어 마찬가지로 양가적인 표정을 짓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따라서 셀린 시아마 감독은 계급을 불문하고 억압 및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시선이 차례로 연대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세심하고 정열적으로 완성함으로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아포리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선우 님의 리뷰
2020.01.11 13:53:25
감탄스런 완성도, 이입하지 못한 로맨스
소재나 이야기부터가 그러하듯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잔뜩 안고 있으며 사운드나 음악의 강약조절이랄까, 쓰임이 훌륭한 작품이다. 어느 장면에서 멈추어도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을 만큼 촬영도 좋았다.

영화 속엔 여러 은유와 상징, 메시지들이 담겨있고 유명한 기성품들을 비틀거나, 새롭게 느껴지게 하거나, 도치시켜서 각본을 채웠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게 숨겨놓아 찾는 재미, 말하자면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만장일치로 이어지는 모두의 극찬에 비해 나는 좀 심심하게 보았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만족스러웠고, 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주로 완성되는 기가 막힌 특정 장면이나 비발디의 국민 클래식을 압도적인 연출과 연기로 잡아먹는 엔딩에서는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정작 아쉽게도 영화의 본질인 로맨스에 이입하지 못했다.

비슷한 작품으로 언급되는 <캐롤>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두 인물의 감정선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면서 따라갈 뿐 마음으로 설득당하기엔 다소 인공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후반부엔 그냥 서로 사랑한다니까 사랑하는가보다 하면서 보게 됐고 동화되어 공감한다기보다는 높은 완성도에 감탄하는 데 그쳤다.

물론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엔 이견이 없겠지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HLNL 님의 리뷰
2020.01.09 17:07:36
오르페우스를 소환하여 재현해내는 영화는 순리라는 금기의 영역을 깨어내기 위한 동적인 몸부림으로 정적인 규율을 벗어나려 한다. 세밀한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감독의 선택은 때로 과하게 다가온다 한들, 주체적 선택으로 다시 쓰는 오르페우스, 아니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유효해보인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19.10.07 00:30:49
신화와 신화화. 완벽하게 세팅된 시간과 지위, 관계를 바탕으로 두 인물은 스크린 위에 붓이 닿는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캔버스를 통하며 스크린을 통한다는 것은 대상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박세훈 님의 리뷰
2020.01.19 22:22:37
시종일관 크고 작은 시청각 이미지로 캔버스를 채워 타오른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제트별 님의 리뷰
2020.01.18 21:41:23
스며드는 영원의 소망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제나 그림을 그린다. 생각을 담아 머리로 구도를 잡고, 마주하는 눈으로 상(像)을 좇아서, 속삭임이 젖어드는 귀로 색을 골라, 향이 흘러드는 코로 물감을 찍고, 달콤함을 머금은 입술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두근거림을 느끼며 마음으로 붓을 잡고, 따스함이 닿는 손으로 첫 선을 긋는다. 그렇게 수많은 감정들을 쌓으며 붓질을 얹어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더불어 이 그리기는 결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내가 너를 보고 그림을 그리듯이, 너 역시 나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내가 너의 행동과 말투, 습관을 기록하며 뿌듯함에 잠겨 있을 때, 너 역시 나의 것들을 습득하며 흐뭇함에 깨어있다. 화폭과 화풍은 다를지언정, 한 명은 붓을 잡고 다른 한 명은 의자에 앉아있을지언정,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 명확하다. 우리는 서로의 주체다. 관습과 통념의 전복이라는 그 깨부숨의 희열을 덧칠하고,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게 너의 존재로 응수한다. 이러한 역습이 우리의 사랑이다. 단 하나의 의미로만 귀결될 수 없을 사랑의 갈래에 우리의 정의를 추가한다. 아울러 마지막의 짧은 포옹을 긴 시선으로 이어 붙이며, 소망한다. 음악이 끝나지 않기를. 당신이 뒤돌아보기를. 이 그리기가 멈추지 않기를.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마틴 님의 리뷰
2020.01.18 19:00:18
뿌린대로 거둬들이는 타오르는 사랑의 추억...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노군 님의 리뷰
2020.01.18 18:22:24
아름답고 아름답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인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를 의뢰받는다. 결혼이 하기 싫어서 자신의 초상화 역시 그려지는 걸 꺼려하는 엘로이즈 덕분에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 라는 개념으로 엘로이즈를 응시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여성은 어디에서도 발언권이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진작에 정략결혼이 결정됐던 엘로이즈의 언니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렸다. 엘로이즈의 엄마인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둘째 딸도 똑같은 결정을 할까 두려워 어두컴컴한 저택에 엘로이즈를 가둬버린다. 결혼은 시켜야하니 상대 남자에게 보낼 딸의 초상화를 그려야 되는데 어머니의 속셈을 뻔히 아는 엘로이즈는 기껏 화가들이 어렵게 그린 자신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도 거부한다. 여성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시대이기에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 써서 작품을 그리는 마리안느는 자신이 옆에서 보고 느낀 엘로이즈를 기억만으로 열심히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백작부인은 5일동안 집을 비우게 되고 그 사이 두 여인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어린 소녀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마리안느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들판위에서 불이 붙은 드레스를 입고있는 여인의 그림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는 소녀들. 마리안느가 산책을 도와주는 역할로 백작부인의 집에 갔을 때 노동자 계급의 여인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던 곳에서 엘로이즈에게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던 그 날을 떠올리며 그렸던 그림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아하고 세심하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눈빛 하나, 숨결 하나, 장작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하나마저 감독의 숨결을 불어넣은 듯, 어딘가 애틋하고 어딘지 모르게 뭉클하다. 여성이 지닌 모든게 부정되는 시대에 살면서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타인의 몸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게 되는 과정은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도발적이다.

백작부인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소피(루아나 바야미)'의 임신중절 과정은 18세기 프랑스 저변에 깔려있던 남성우월주의를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딸을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 댁의 안방마님으로 앉힐까 궁리만 하던 백작부인의 부재 덕분에 마리안느와 멜로이즈는 충동적이지만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휩쓸려 서로를 더욱 열렬히 탐닉하게 된다. 5일 동안 계급과 신분, 지위를 모두 벗어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상대에게 빨려들어가는 두 여인의 일탈은 한낱 열병같은 하룻밤 꿈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갈 사랑의 기억으로 남는다.

특히 엘로이즈가 밤에 읽었던 '오르페우스' 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꿰뚫는 주제로 사용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영화 말미에 오르페우스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라던 엘로이즈의 대사와 그 상황을 서로 인사하듯이 표현한 마리안느의 그림이 참 가슴아팠다.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를 슬프게 그린 옛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안느의 그림은 두 사람이 작별인사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결국 엘로이즈의 초상화가 완성되고 백작부인이 돌아오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환영을 본다.



시종일관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엔 떠나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주어진 시간에라도 상대방을 아낌없이 사랑해주려는 마리안느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평생 사람과의 왕래도 없이 음악하나 제대로 들어본 적 없다던 엘로이즈는 몇 년뒤에 마리안느도 참여했던 전시회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마리안느의 눈에만 두 번 보여지게 된다.

끝이 뻔히 보이는 시한부적인 연애라 더욱 깊게 가슴에 남았고 그 어떤 연애보다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추억된다. 마지막에 엘로이즈와 그녀의 딸의 초상화를 보면서 눈물짓는 마리안느와 그녀의 건너편에 홀로 앉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리며 눈물을 쏟아내는 엘로이즈의 감정연기가 유독 절절하게 와닿는 영화다.

-이하 블로그-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JE 님의 리뷰
2020.01.18 14:34:59
이상하게도 <현기증>이 떠올랐다. 드리운 죽음과 보이지 않는 억압, 그림과 뒤통수, 파도 치는 키스, 그리고 시선과 유령적인 문제. 감각되나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나 감각되지 않는 것. (카메라라는 존재도 그렇고) 곧잘 비유되듯 영화와 닮았는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걸 여성에게로, 특히 여성 예술가와 그녀들의 사랑으로 옮겨내는 것만 같다. 마치 존재와 부재를 모두 지닌 모순적인 운명. 신화의 재해석과 켜켜이 쌓인 시선과 정서가 깃드는 (그녀들의) 초상은 그 비운의 운명론을 딛고 서려는 예술일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1.17 23:19:44
강렬한 엔딩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
퀴어 영화라는 장르는 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유명한 영화들을 몇 차례 봤지만 이해는 가는데 공감이 안되는 경험을 몇 번 해보니 자연스레 안 보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패스하려다가 궁금한 마음도 있고 추천에 혹하는 부분도 있어서 봤는데 생각보다 좋더라.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게 이 영화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초반과 마지막 즈음에 두 번 등장하긴 하지만 단지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지 스토리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건 남자의 시선이다.

유명한 화가의 딸인 마리안느, 죽은 언니 대신 팔려가듯 결혼해야 하는 엘로이즈, 그리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하녀까지... 그녀들은 자유로워 보임과 동시에 남자들의 세상에서 그저 힘겹게 살아갈 뿐인 여자들이었다.



중반까지는 좀 지루했다. 포즈를 잡기 싫어하는 엘로이즈를 훔쳐보며 초상화를 완성시켜야 하는 마리안느.

그리고 조금씩 변해가는 그녀들의 관계는 아슬아슬하다기보단 '대체 언제쯤?'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질걸 알고서 보는 영화의 단점일지도...

그럼에도 그녀들의 감정에 불꽃이 튀는 순간부터 그을림을 남긴 채 은은하게 불씨를 남겨두는 마지막까지 모든 순간들은 숨죽여 지켜보게 만든다. '각본보다 촬영이나 음향상이 더 어울리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상과 음향이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엔딩의 5분여는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렬...



두 주연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내 기억에 남는 건 이름조차 기억에 나지 않는 하녀 역할의 루아나 바이라미.

아가씨는 멀리 시집가고, 화가는 다시 떠나가지만 그녀는 그것에 계속 남아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ㅠㅠ



활활 타오르던 중후반보다 은은하게 살아남은 불씨가 온기를 전해주던 후반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상 받을만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좋았던 작품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비밀번호 재설정
새로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재설정
개인정보 취급방침 에 동의합니다.

문의 및 제안
소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신고
편파적인 언행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정치, 종교 등
욕설 및 음란성
타인에게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언행
개인 안전 보호
개인의 사적인 정보, 특정 개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방, 혐오 발언
도배 및 광고
영화를 보지 않고 남긴 것이 분명한 리뷰
스포일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