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7

2018.06.24 23:52:17
<모든 것을 잃기 전에> (2012)라는 단편영화로 제39회 세자르영화제를 포함한 유수 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선보였고, 이 작품은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미래의 사자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처음으로 장편 영화를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의 시선과 서스펜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뛰어난 강약 조절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클로즈업 쇼트, 시점 쇼트, 그리고 롱 쇼트를 중심으로 한 장면 편집은 한 사람의 거짓말로 인해 드러난 법체계의 무능력에 관한 분노와 손 쓸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무력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정들은 93분 동안 축적되어 결국 강렬한 여운으로 전환되고, 이는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함으로써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기 어렵게 만든다. 이 영화에 삽입된 곡 'Proud Mary'의 가사와 그 노래를 부르던 조세핀(마틸드 오느뵈)의 무대 위 표정을 곱씹어 본다면 영화 제목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더 극심한 무력감 혹은 심리적 공포를 느낄 것이다.

1. 제3자의 시선

영화에서 제3자의 시선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오프닝 시퀀스, 공포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 그리고 엔딩, 이렇게 총 세 번이 나온다. 오프닝 시퀀스는 판사의 사무실을 비춰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간 자체가 평정심을 갖고 마리암(레아 드루케)과 앙투안(드니 메노셰)의 대립하는 주장의 진위를 따져 양육권 문제를 판결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양육권 조정판결이 시작되자 클로즈업과 쇼트의 빠른 전환으로 그려낸 마리암과 앙투안의 법률대리인이 양육권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 사이에도 판사는 중간에서 객관적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마리암은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에게 협박한다고 주장했지만 증거의 실효성이 없으므로 판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심리 끝에 앙투안이 격주로 주말에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허가한다. 하지만, 영화는 얼마 안 있어 누가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했는지 알려준다. 그 순간, 법체계의 허점이 드러나는 동시에 제3자의 관점이 누군가에게는 심리적인 공포감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제3자의 시선은 다름 아닌 마리암과 줄리앙을 계속 전화로 안심시키려는 경찰관이다. 경찰관은 수렵 엽총으로 협박하는 앙투안을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현장 경찰관이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는 마리암과 줄리앙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현장에 있지 않은 경찰관의 장면과 현장에서 살해당할 위기에 놓인 모녀의 장면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긴박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제3자의 시선은 마리암의 이웃집 할머니의 시선이다. 이웃집 할머니는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채고 빨리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마리암과 줄리앙을 구출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준 인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웃집 할머니의 걱정되는 눈빛은 오히려 무언가를 주시하는 눈빛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나타난 제3자의 시선은 되레 아직 가시지 않은 불안과 공포를 자극할 뿐이다.

2. 장면 편집이 만들어낸 손 쓸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한 무력감, 불안, 공포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관객들이 느낄 전반적인 무력감과 불안, 그리고 후반부에 터질 공포를 위한 작업을 하는데, 이를 위해 클로즈업된 인물의 반응이 아닌 시점만 드러나는 쇼트를 롱 테이크 기법으로 찍고, 인물을 화면의 중앙에 위치시킨 다음 최대한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여주는 쇼트를 활용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앙투안이 비로소 마리암이 자신을 피해 살고 있는 거주지를 알게 되자 줄리앙을 위협하며 길을 안내하라고 하는 장면은 전자의 방식을 사용하고, 앙투안으로부터 도망쳤다가 먼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는 줄리앙의 모습을 후자의 방식을 통해 앙투안의 어깨너머로 비춰준다. 두 가지 방식의 효율적인 활용은 영화에서 그나마 볼륨이 큰 음악이 흘러나오는 파티 장면마저도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력감, 불안, 그리고 공포를 인물의 연기보다 철저한 장면 편집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3.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우선 확실한 것은 마리암과 줄리앙, 그리고 조세핀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화에서 조세핀의 생일 축하 파티 장면을 주목해야 한다. 조세핀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와준 손님들을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Proud Mary'라는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흥을 돋우는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며 파티를 즐기지만, 조세핀은 언제 어디서 공포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포감 때문에 굳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Proud Mary'라는 가사에는 '커다란 수레바퀴는 계속 돌고'라는 구절이 몇 번 반복되어 나온다. 가사의 맥락과 상관없이 이 구절에 마리암, 줄리앙, 그리고 조세핀이 느꼈을 불안, 공포, 그리고 스트레스를 대입해본다면 걱정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주시하는 눈빛으로 전환된 이웃집 할머니의 시선과 교차하면서 아직 그들의 심리적 고통이 끝나지 않았음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혹은 폭력성이 대물림되어 가정 폭력이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장면은 앙투안이 줄리앙을 데리고 친정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손자에게는 친근해 보이는 앙투안의 아버지는 앙투안의 태도에 불만을 보이는데, 불만을 드러낼 때 이 집에서 자신이 왕이라고 고함치는 그의 태도는 앙투안도 유년 시절 폭력적이고 지나치게 남성 권력적인 집안 영향 아래 성장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Proud Mary' 노래의 가사를 다시 한번 고려해본다면, 폭력성이 계속 돌면서 11세 소년 줄리앙이 무의식적으로 앙투안의 폭력성을 학습해 성인이 되었을 때 이를 드러낼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모든 프랑스 예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1959), 장 뤽 고다르의 <주말> (1967), 올해 3월에 개봉했던 로빈 캉필로의 <120BPM> (2017), 현재 상영 중인 세르쥬 보종 감독의 <미세스 하이드> (2017) 등을 고려해보면 프랑스 예술 영화는 '교육 영화'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교과서 공부로만 알 수 없는 법체계의 무능력함이 실제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줄뿐더러, 앙투안과 그의 아버지를 통해 폭력성은 단순히 매체의 노출로 인한 결과물이 아닌 사회화를 담당하는 가정이 인지 및 정서 발달에 절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때 형성되고 드러나는 성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정폭력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향한 분노를 느끼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교육적인 깨달음까지 얻어가는 감상까지 확장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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