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호러) / 2018

2019.05.08 17:33:53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라" <서스페리아>
<아이 엠 러브> (2009), <비거 스플래쉬> (2015) 그리고 작년 봄에 개봉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을 미루어 볼 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무엇보다 인간의 육체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육체에 대한 관심만 유지한 채 이전 세 편의 영화와 결이 전혀 다른 영화를 내놨는데, 그 작품이 바로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던 <서스페리아> (2018)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는 이탈리안 지알로 필름의 거장으로 유명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 1977> (1977)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런데,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Un Giorno da Pecora'와의 매체 인터뷰에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리메이크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원작이 추구했던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즉,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는 원작의 소재와 세계관만 공유하고 있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철저히 원색적인 이미지, 자극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극단의 공포로 몰아넣는 사운드에 집중했다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1970년대 유럽 상황, 특히 독일 전후 사회 및 문화적인 이슈를 조명하며 원작의 치명적인 단점인 빈약한 스토리텔링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성에는 차지 않더라도, 리메이크된 <서스페리아>는 발레에서 현대 무용으로 소재에 변화를 주며 보다 더 거친 움직임을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을 경악스러운 30분가량의 엔딩에 끌어들임으로써 원작이 보여줬던 공포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가 대단한 이유는 따로 있다. 원작의 핵심 서사를 리메이크판에서는 표층적 서사에 배치하고, 1970년대 독일 사회의 이야기를 심층적 서사에 배치함으로써 이중 구조의 서사를 완성했다. 게다가, 이러한 이중 구조의 서사는 표면적으로는 원작의 장르를 그대로 껴안아 보이지만, 실은 전혀 다른 영화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한다. 다시 말하자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말한 바와 같이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는 대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든다. 이는 사회에서 필수적인 담론을 소모하지 않을뿐더러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고찰하도록 유도한다.

1. 무용 아카데미 'Tanz': 68 혁명 이후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여전히 외면하는 서독 정부

<서스페리아>는 '블랑(틸다 스윈튼)'이 지도하는 무용이 흑마술과 관련 있다는 원작의 표층적 장치를 공유한다. 원작의 소재와 세계관을 공유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지만, 무엇보다 주인공 '수지(다코타 존슨)'가 들어간 무용 아카데미가 마녀의 소굴이라는 콘셉트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도 눈여겨봐야 한다. 원작의 경우 발레 아카데미가 그저 성공적인 '지알로 필름'을 위해 만들어진 마녀의 소굴일 뿐 특별한 기능을 해내지 못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68 혁명' 이후의 독일 역사를 영화의 심층에 녹여내 이와 같은 단점을 보완했다.

'68 혁명'은 독일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이 아니라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났지만,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운동의 성격이 확산되면서 독일, 미국 등에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68 혁명' 이후 서독에서는 여성의 목소리와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부흥하기도 했지만, <서스페리아>가 주목하는 것은 서독뿐만 아니라 유럽을 흔들었던 테러의 물결이다. 독일은 '68 혁명' 이후 서독에 결성된 '극좌 테러리스트 단체(Rote Armee Fraktion, RAF)에 의해 '독일의 가을(Deutscher Herbst)'의 시대를 맞이하기도 했다. 'RAF'가 연속적인 테러로 유럽 사회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간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로 합리화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단체가 서독에 등장한 배경이 동독 정부와 달리 나치 정권의 산물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서독 정부를 향한 환멸과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 부모 세대를 향한 경멸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적인 배경을 숙지한 채 영화로 다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무용 아카데미 'Tanz'는 나치 정권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은 서독 정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무용 선생님들은 나치 당원 및 은밀한 곳에서 여전히 나치즘을 따르는 세력을, 무용 선생님들이 숭배하는 '마르코스'는 나치 정권을, 흑마술을 부리는 듯한 무용은 나치 정권이 '민족(Das Volk)'이라는 이름하에 평범한 시민에게 가한 폭력이나 비윤리적인 실험을, 그리고 춤을 배우려고 아카데미에 오디션을 보고 무용단원이 된 학생은 나치 정권이 자행했던 실험의 대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무용 아카데미는 서독 정부에 환멸을 느낀 전후 세대가 무엇을 하든, 이를 외면하는 나치즘 옹호 집단이자 나치 일당 독재 체제의 잔재다.

2. 다코타 존슨이 연기한 '수지': 전후 세대의 환멸이자 파괴적 행위

반면, '수지(다코타 존슨)'는 나치의 잔재를 처리하지 않은 서독 정부와 여전히 나치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전후 세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악마의 씨앗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끌렸던 독일 베를린으로 넘어왔다. 악마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녀가 나치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씨앗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반부 시퀀스에서 'I am she'라고 말하며 본인이 '한숨의 마녀(Mother Suspiriorum)'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수지'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인 마녀들의 자리에서 'RAF'와 같은 파괴적 행위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게다가, 그녀는 마녀들의 쇠꼬챙이에 끌려 다니고 나체인 상태로 조롱받고 고문당하는 '클렘페러 박사(틸다 스윈튼)'를 나중에 풀어주며 용서를 구한다. 따라서, '수지'는 전후 세대가 느낀 감정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RAF'처럼 나치 정권 시대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부모 세대에 행동으로 맞선 '68 혁명'의 분파 중 하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3. '클렘페러 박사'와 '블랑': 나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죄책감에 대하여

<서스페리아>에서 틸다 스윈튼은 '클렘페러 박사'와 '블랑', 두 인물을 연기했는데, 두 인물 모두 나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죄책감을 보여준다. '클렘페러 박사'는 극 중에서 칼 구스타브 융의 저서를 읽는데, 칼 구스타브 융은 집단 무의식의 개념으로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웠던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극 중 그의 저서를 배치한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클렘페러 박사'는 자신의 아내였던 '앙케(제시카 하퍼)'를 떠오르게 하는 사물을 볼 때마다, 계속 무언가를 잊으려고 하거나 내면이 불투명해지는 상태에 빠진다. 이는 전후 세대가 느낀 죄의식이 구체적인 상태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집단 무의식의 개념에 의거하여 볼 때, 아내 '앙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면서 느낀 그의 자책감과 죄의식은 집단에게 침투했고, 나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이와 같은 죄책감은 1970년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독일 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블랑'의 경우 '클렘페러 박사'와 다른 방식으로 나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블랑'은 나치 시대의 개별적인 피해자였던 '클렘페러 박사'와 달리 나치 일당 독재 체제에 동조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전체주의적 계획과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늦게라도 자각한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블랑'을 제외한 교사들은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으로 힘이 약해진 '마르코스'를 위한 새로운 숙주를 찾자마자 계획을 곧장 실행하려는 반면, '블랑'은 말을 둘러대며 계획 실행을 지연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4. 이탈리아 감독이 독일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이유는?

총 6막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서스페리아>의 이야기가 끝나면, 관객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임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원작처럼 여전히 독일을 배경으로 한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일 뿐만 아니라, 이전 세 작품 모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근데, 이번 영화만큼은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단언컨대 여기에는 확고하고 분명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전체주의 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패전국이 되었다. 다만, 차이점은 독일은 1949년 '서독(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과 '동독(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으로 분단된 반면, 이탈리아는 분단의 역사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두 국가의 전후 세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여전히 교점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독일과 이탈리아의 국가적 상황 사이에도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13년에 창립된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이 2017년 제3당으로 의회에 입성하고, 독일의 극우단체 '페기다(Patriotische Europä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 PEGIDA)'의 시위 빈도가 점차 증가하는 등 '신나치주의(Neo-nazismus)'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탈리아 또한 베로나가 네오파시즘의 온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사례로 지난달에는 로마 외곽에서 '카사파운드', '포르차누오바' 등 파시즘을 따르는 극우정당의 혐오 시위가 일어나는 등' 신파시즘(Neo-faschismus)'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결국,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후 역사의 접점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전후 세대의 감정과 입장을 상기시킬뿐더러,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분열을 영화라는 매체로 전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과 분단의 피해자인 '클렘페러 박사'를 풀어주고 악몽을 지워주는 '수지'의 행위를 묘사함으로써 오늘날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어떤 역할을 행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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