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 2018

2019.08.01 07:24:46
작정하고, 욕심 부리지 않고!
영화라는 장르는, 아니 예술이라는 장르는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정해 놓은 룰 같은 것은 없다. 무형의 공간에서 유형의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그래서 창작, 상상, 호기심, 같은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의 기술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라이언킹>같은 말도 안되는 영화들도 만들어 지고 있는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영화라는 장르는 그야말로 더 많은 창작과 새로운 기술력으로 더 깊고 충만한 무한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들은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성과 예술이라는 멀티장르인 영화라는 작품성까지 두루 갖추고 싶은 욕망은 영화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민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여러가지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들은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고 어느순간 그 영화라는 공간에서 관객들의 눈높이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엑시트>는 그러한 멀티적인 예술공간인 영화에서 대부분의 영화들이 반복하듯이 이어졌던 욕심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작정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오락' 이라는 한가지만으로 밀어붙인다. 두시간 가까운 시간에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 흔하게 '킬링타임'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텐트폴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오랜만에 만나보는 오락영화의 만족감으로 이어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한국영화에서 재난영화라는 장르는 쉬운 작업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재난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포멧과 이야기다. 갑자기 불어닥친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에 반응하며 대응해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내용이였고,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상업영화의 한계 인양 억지 감동 코드로 대부분의 영화들을 망쳐 놓았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감동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재난 영화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엑시트>는 더 반갑다. 그 어떤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놓고 노골적으로 피력해서 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학원의 학생들이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나왔던 재난 영화속 감동코드와는 사뭇 다르다. 그냥 에피소드로 꾸며졌고, 그 아이들을 직접 주인공이 영웅적으로 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엑시트>는 즐겁자고, 행복하자고, 그래서 웃어야 한다는 흥행 영화 공식을 하나의 변주도 없이 영화속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뜀박질 처럼 오직 앞만 보고 질주 한다. 특별할 것 하나 없지만 어느순간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영화속에 특별하고 '싶은' 많은 장면들을 '어쩔 수 없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반전에, 선 웃음 후 감동의 억지, 말도 안되는 설정을 어깃장 부리듯이 우기는 모습들은 <엑시트>에는 없다. 가스테러가 일어났지만, 영화는 그 가스테러의 원인이나 분석, 범인의 인물, 사건의 동기등, 수시로 반전을 꾀하고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수있는 가지들을 모두 무시한 채, 오직 한가지, 두 남녀의 어드벤처에만 집중 한다.


산악부라는 그럴싸한 장치를 등에 없고 두 남녀는 도심의 이곳 저곳을 잘도 달린다. 에피소드는 특별하지 않지만, 상업영화의 틀에서 좋은 것만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영화는 전혀 복잡할 것 없는 시놉으로 시작해서 간단하고 명료한 서사,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의 개인기에서 오는 자연스러움과 코믹함까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것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물론 군데 군데 억지스러운 설정들과 무리한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이 즐겁고 기분좋은 기운들에 어렵지 않게 상쇄된다.


그동안 우리는 이 전형적인 것들을 얼마나 꼬고 꼬고 꼬와서 새롭고 '싶은' 욕망만 봐왔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래서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관객들의 눈높이에 이러한 <엑시트>속의 '오리지날' 같은 전형성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 시작 20분만에 바로 재난상황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한번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용남과 의주는 재난에 갖혀 있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살기 위해 뛰고 뛰고 또 뛴다. 당연히 그래서 살아남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아슬아슬한 뜀박질은 충분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긴장감은 '팽팽하다' 라고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긴장감과는 다른, 그냥 결론은 충분히 알고 있고, 즐겁게 가볍게 오는 기분좋은 긴장감이다.


103분이라는 런닝타임도 아주 탁월한 선택이였지만, <엑시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의주가 부모를 기다리고 그 부모가 오기 전에 이승환의 노래가 나오면서 타이틀이 올라가는 엔딩이다. 다른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부모가 찾아와서 꾸역꾸역 울면서 다독이고, 경찰 싸이렌속에서 두 사람은 은근한 눈빛을 교환하거나 키스 정도로 마무리 하는 억지스러움을 벗어 던진 것만 해도 오랜만에 보는 깔끔한 엔딩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조정석 이야기를 해야겠다. 영화속에서 주연배우의 힘은 특별하다. 어느때는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고, 그 배우들에 따라서 영화의 전체적인 평가도 움직일 수 있다. <엑시트>속에서 조정석은 탁월하다. 텐트폴 영화다운 컨셉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영화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파워풀한 캐릭터도 거의 완벽한 조화로 이끌어 나간다. 덕분에 처음 주연을 맡은 상대역 임윤아의 역할 까지도 시너지를 창출 한다. 그래서 임윤아는 아주 운이 좋은 배우가 됐다. <완득이>속의 김윤석을 만나 더욱 빛났던 유아인 처럼 말이다.


이미 완전한 배우의 모습인 조정석 이지만, 그가 보여줄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것은 늘 그의 영화를 보고 느껴지는 것이다. <엑시트>속의 용남을 보고 있어도 그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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