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빈 님의 영화 <조커> 리뷰 - 키노라이츠
범죄 / 2019

2019.10.03 00:17:20
'조커'는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빌런인 조커에 대한 오리진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DC의 캐릭터들과 세계관을 빌려 쓴 심리 스릴러라고 보는게 좀 더 맞는 것 같다. DCEU와는 동떨어진 영화로 제작되며 개봉 전 예고편부터 영화제에서의 반응들까지 여러모로 이슈가 된 이 영화에 대해 나름 기대는 컸다.

보통 오리진 스토리들은 주인공의 탄생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각 캐릭터의 오리진들은 약간의 변주는 있을지 언정, 대부분 흐름은 비슷하다. 하지만 조커의 오리진은 불명확하다. 그는 배트맨의 안티테제로서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사실 조커의 탄생이 아닌 그냥 한 살인마의 탄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DC의 세계관과 DC가 그동안 쌓은 대중문화에서의 업적을 맥락으로 삼았을 뿐이다. IP의 영화 외적인 요소들 덕에 이 영화는 완전히 미쳐버린 한 사람이 자신의 위험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주인공의 뒤틀린 시선으로 전개할 수 있는 상업적인 플랫폼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극 중 등장하는 '모던 타임즈'부터 '아메리칸 싸이코',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같은 작품들이 많이 떠오르는 영화였지만, 무엇보다 제일 많이 영향을 받은 듯한 영화는 아무래도 '코미디의 왕'이었던 것 같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의 캐스팅 자체 때문에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크 나이트' 삼부작은 번외로 치면, 이런 영화들의 공통점은 삭막해져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립되고, 버려지고, 외면당하여, 끝내 미쳐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대인의 외로움이나 고립보다는, 어쩌면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아웃사이더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이 영화 같은 경우는 불우한 환경과 정신질환, 그리고 이런 그를 철저히 파괴하려는 듯한 세상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주인공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고담시는 모든 것이 붕괴하고 있고, 악취가 풍기는 듯하면서, 약육강식의 야생과도 같은 도시다. 주인공의 집이나 일터 뿐만 아니라, 화장실, 지하철 역까지 모두 더럽고 어두침침하고 음산하다. 이는 실제 주인공이 살고 있는 환경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적대적이고, 어지럽고, 부도덕한 세기말 (아마 그래서 시대상도 80년대 부근으로 잡은 듯하다) 과도 같은,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 말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끔찍한 고담시의 풍경을 잔혹하게 그리며, 관객을 주인공의 클로즈업과 춤의 풀숏 안에 가두며 그와 함께 이 디스토피아에서 같이 미쳐가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전략이 통하려면 주연배우의 활약이 필수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영화판 조커들인 잭 니콜슨이나 히스 레져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전 조커들은 조커라는 완성된 빌런을 연기했기 때문에, 완전히 광기와 혼돈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정체불명의 괴물을 카리스마 넘치고 굉장히 위협적인 불꽃 같은 존재로 그렸다면, 호아킨 피닉스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인물을 표현했다. 아직 그는 전설적인 조커가 되진 않았으나 그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길로 인도하는 다양한 점화 장치들이 이야기 곳곳에 배치되고 소개되며, 관객은 언제 이 폭탄이 끝내 터질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게 된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은 이미 고통 속에 절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도움을 못 받고, 사랑도 못 받고, 관심도 못 받고, 그저 쓰레기와도 같은 존재처럼 취급받는 그가 결국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호아킨 피닉스는 관객의 손을 잡고 한발짝 한발짝 그 길을 인도한다. 눈빛, 표정 연기, 대사 전달 같은 섬세한 연기들부터, 어딘가 뒤틀린 듯하게 구부정한 앉은 자세, 이상한 걸음걸이와 뜀박질, 그리고 자신의 광기에 심취한 듯한 춤 동작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완벽하게 자신만의 조커가 됐음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다양한 웃음 소리를 통해 주인공의 오싹하고 불쾌한 심리 상태를 암시하기도 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웃음을 못 찾은 미성숙 조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결국 호아킨 피닉스의 웃음 소리가 조금씩 하나가 되가며, 결국 그가 그토록 원한, 하지만 너무나도 끔찍한 웃음 소리를 찾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 평론가들 위주로 이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논란이 베니스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나 게임의 폭력성이 실제 범죄를 부추긴다는 주장은 오랜기간 동안 있었으나, 결국에는 다소 과장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랜만에 그 논란을 재점화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폭력의 축제라서 논란이 된 것이 아니다 (이보다 폭력적인 영화는 넘치고 흐른다). 이 영화가 논란이 되는 지점은 관심을 받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저지르면 원하던 관심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행동이 옳다고 정당화하진 않지만, 온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폭력을 휘두르면 다시 자신에게 눈길을 돌릴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사점이 진심으로 불쾌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한달에 한번 꼴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것을 이슈화하는 것은 나름대로 정당한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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