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님의 영화 <조커> 리뷰 - 키노라이츠
범죄 / 2019

2019.10.10 12:11:32
보통 사람의 공포
살면서 공포를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가장 무서웠던 건, 강시도 좀비도 유령도 아닌 보통 사람이었다.



자췻방이 도둑을 맞았을 때, 낯선 취객이 밤에 현관문을 두드릴 때, 헤어진 전 남친이 만나자고 동네를 기웃거릴 때, 데이트 중이었던 남자가 화가났다고 욕지거리를 할 때,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난데없이 감정이 격해져 폭력을 휘두르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도, 여학교 주위에 숨어서 튀어나오곤 하던 바바리맨도, 심야버스에서 성추행하던 멀쩡한 남자도 무서웠다. 대부분 그들은 위협적인 체격도 아니었다. 보통 얼굴을 한 보통 사람이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뭘 그런걸 신고하냐는 태도를 보이거나, 스토킹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복잡한 조건이 있었다. 스토킹으로 신고 접수가 된다해도 벌금이 그렇게 가볍다는 걸 알고 허탈하기도 했다.



나는 조커를 보는 내내 너무나너무나 무서웠다. 이렇게 무서운 영화관람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도 본 사람이다.)

친구랑 같이 봤으니 망정이지, 정말 이빨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처음엔 슬펐다. 슬플 새도 없이 얼굴을 정면으로 후려맞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의 폭력씬은 타이밍도 거의 공포영화 수준이고, 잔인함의 강도 또한 슬래쉬 무비 뺨친다.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영화 등급자체가 더, 더한 공포다.

우는 듯 웃는, 폭소를 터뜨리며 울상인 아서 펠릭은 정말 안쓰러웠다. 안아주고 싶었다. 역시 두려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간적인 슬픔이었다. 아마도, 웃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반응에 저항하는 아서 펠릭의 모습에 인간적인 부분을 느껴서 슬픔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분노에 활활 타오르다가 마음을 하얗게 태웠던, 그 어두운 시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세상을 대립구조에 놓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등분 하여 증오하던 그때, 나는 정말 진심이었고 심각했다. 화가 난 채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인파를 가르고 돌진하듯 걷기도 했다. 그때 내가 누군가와 어깨라도 부딪혔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누구나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상처 받을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연민에 흠뻑 빠졌을 때 하는 행동들은 어떠한가.



나는 이 영화에서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펠릭에 집중한 반면, 고담시, 현대 사회(특히 미국)를 설득력있게 그리는 데에 허술했다고 생각한다. 부자는 나쁜 사람 가난한 사람은 착한 사람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조다. 지하철 살인사건이 그렇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모두 광대 가면을 쓰고 살인자를 지지하기까지의 사회적 불만이 쌓인 과정이나 상황묘사는 대부분 생략되었다. 그것은 아서 펠릭의 불행하고 부당한 개인사로 대체된 듯 그려진다. 그래서 영화의 시선은 곧 아서 펠릭의 것과 다르지 않다.



호아킨 피닉스는 너무나 대단한 연기로 (그는 갈비뼈, 어깨죽지 뼈로도 연기한다. 살다살다...) 인간 조커를 보여준다. 그의 연기를 보자면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가 힘들다. 나는 여기서 감독 토드 필립스가 좀 과했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온전히 그 인물을 그려내고 이해하고자 열정을 다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 모든 것, 전체적인 영화의 요소들을 조율하고 선택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 세계는 감독의 의견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렇게 거장 감독일수록 더 그럴 기회가 많다.



난 계단씬도 너무 무서웠다. 염색하면서 춤추는 장면도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음악들. 어쩜 오리지널 스코어도 무척 멋지고 선곡도 훌륭하다. (같이 본 친구는 영화가 끝나자마자'음악이 열일했네.'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중요한 장면에서 선곡되어 더 소름이었는데, 이건 영화가 조커에게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조커가 연출한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영웅시하는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자기를 무시하냐고 자주 묻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한 후 내게 그 흔적을 보여주며 나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다고 했다. 날 너무 사랑하고, 나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는 그런 폭력은 처음이었다. 너무 무서웠는데 다 내 잘못같아서 내가 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후로 시간이 흘러 나에겐 슬픔과 똑같은 크기의 분노가 남았다. 나는 이것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영화를 보며 그가 생각났다. 그에게 총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어찌보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악은 총기소지법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미국이라면, 총기소지가 가능하다면. 그 파괴적인 행동은 나에게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않냐며, 내가 얼마나 엄마때문에 힘들고 돈 버느라 힘들고 한국 사회의 소시민이라 힘든지 아냐며 또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보통 사람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를, 정신이 아픈 아서 펠릭을 보통 사람으로 그려냈다. 호아킨 피닉스는 너무나 훌륭히 연기했다. 가면 뒤에 숨은 정말 무서운 보통 사람을. 어쩌다 살인을 한 후 비로소 삶의 희열을 느낀 남자를 영웅으로 만들어버렸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연 탐미 말고 사유는 존재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총이 나오는 장면들만 생각해도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에 산다면 정말 너무 무서울 것 같다고 이제야, 총기소지에 대한 공포를 실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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