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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Border)

판타지 / 2018

개요
판타지, 멜로/로맨스, 스릴러, 스웨덴, 덴마크, 108분, 청소년 관람불가, 2019.10.24 개봉
감독
알리 아바시
배우
에바 멜란데르
에로 밀로노프
요르겐 토르손
앤 페트렌
스텐 륜그렌
시놉시스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후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기묘한 능력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로 세상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수상한 짐을 가득 든 남자 ‘보레’가 나타나고, 그는 ‘티나’ 자신도 몰랐던 그녀의 특별한 모습을 일깨워주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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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1%
3.7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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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리뷰
59

moviemon 님의 리뷰
2019.10.23 18:35:43
수많은 논쟁점을 늘어뜨려 놓고 스크린 안팎을 세차게 뒤흔드는 수작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영화 <경계선> (2018)은 외관상 오드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 <논-픽션> (2018)처럼 수많은 논쟁점을 관객에게 제시할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토론의 장과 같은 작품이다. <경계선>은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영화 <렛 미 인> (2008)으로 유명한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해 만들어졌지만, 알리 아바시 감독이 원작의 기본 설정에 본인의 상황과 연관 있는 사회문제, 미래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등을 더하며 심오해진 작품이다. 다만, 디지털화, 오늘날 출판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 정보 자정 능력의 결여 문제 등을 리얼리즘 영화의 계열로 풀어낸 <논-픽션>과 달리, <경계선>은 난민 문제를 포함한 각종 사회문제에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란 태생의 영화감독으로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던 건 아니다. 감독은 유년시절을 이란에서 보낸 후 20세가 되던 해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고, 스웨덴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전까지 전공을 여러 번 바꾸면서 유럽 내 많은 국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란, 덴마크, 스웨덴 등 어느 국가에서든 외부자의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따라서 감독의 삶 자체가 어느 한쪽에 소속되지 못한 채 경계선 위에 표류했으며, 감독은 그런 외부자의 시선에서 정상성과 비정상성 간의 충돌 문제를 <경계선>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우선적으로 다룬다. 영화는 벌레를 만지작거리는 ‘티나(에바 멜란데르)’를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내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만 놓고 보면 이와 같은 ‘티나’의 행동을 분석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레(에로 말로노프)’를 만난 후 벌레를 잡아먹는 ‘티나’의 모습을 연결해서 본다면, 벌레를 만지작만지작하는 ‘티나’의 행위는 지배적인 사회규범을 의식하며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임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티나’가 자신을 염색체 결함을 가진 인간이라고 소개한다는 점은 지배문화가 설정한 정상성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외부인의 의식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첫 번째 문제를 심화하며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난민 문제를 꺼내 든다. 북유럽 신화 속 트롤을 모티프로 삼은 ‘티나’와 ‘보레’의 종족이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묘사되었을뿐더러, 그들의 조상이 1970년대에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난민이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인간 비슷한 존재로 취급받는 현실을 암묵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티나’가 상당히 먼 거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일 직장과 거주지를 오가는데, 이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더 스퀘어> (2017)처럼 난민을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사회 변두리로 밀어내는 공동체의 모순과 폐쇄성을 스크린에 재구성한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인의 위치에서 윤리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과거에 자기 종족이 당한 고통과 수모를 그대로 되갚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새로 정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는 ‘보레’의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현대사회의 파괴적인 경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데, <경계선>은 단순히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범죄를 고발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후각과 관련해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나오는 첫 번째 검문 장면에서 후각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듯한 ‘티나’의 모습을 미디엄 숏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런 추론은 두 번째 검문 장면에 의해 반박된다. 두 번째 검문 장면에서 ‘티나’는 후각만으로 스마트폰 케이스 뒤에 아동 포르노 영상물이 담긴 USB를 숨겨서 입국하려는 한 남성을 적발한다. 이를 통해 ‘티나’가 후각으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내면을 감지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지닌 윤리성 및 도덕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하여 '티나'의 능력과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드러나는 아동 포르노 제작 및 유포 관련 범죄에 관한 사실을 엮어 고려한다면, ‘티나’와 ‘보레’의 첫 만남이 사랑의 출발선이 아니라,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비윤리적이고 추악한 사회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시발점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젠더 이슈의 측면에서 <경계선>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미래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를 위해 알리 아바시 감독은 우선 ‘티나’와 ‘보레’의 종족에 특이한 설정을 부여한다. 두 사람이 속한 종족의 여성은 남성의 성기를 갖고 있는 반면, 남성은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다. 성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이므로 감독은 숲 속에서 성관계를 갖는 두 사람의 장면을 상당 시간 노출함으로써 이와 같은 가정법적인 상황이 미래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한다면, 인간은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관객에게 묻는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면, 이때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질의한다. 게다가, 밤에 숲 속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보레’의 모습을 담아낸 시퀀스와 아이를 품은 ‘티나’가 느끼는 감정이 부성애인지 모성애인지 알 수 없는 시퀀스를 활용해 감독은 만약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기를 낳는다면, 현재 알려진 인간에 관한 정의와 젠더 관련 이슈가 유지될 수 있겠냐고 굉장히 도발적인 자세를 취한다.

따라서 <경계선>이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을 당시 평가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시각적인 요소만 놓고 봐도 <경계선>은 대단히 낯선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한 논쟁점 때문에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거로 다가온다. 특히, 알리 아바시 감독이 젠더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를 도발적으로 건드리다 보니 <경계선>은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화들 중 한 편일 테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drhj 님의 리뷰
2020.03.31 16:47:24
경계와 위치에 관한 단상들: <경계선>
<경계선>은 영화 바깥을 끊임없이 지시하고 있다. 미리 고백하건데,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상찬을 ‘영화적’(cinematic)인 데서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내가 소위 ‘시네필’이라는 범주로 경계 지워지는 상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선 내부에 있지 않기에, 즉 영화라는 것에 대해 (슬프게도 여전히) 과문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의 ‘위치’에서 바라보기에 이처럼 문제적인 텍스트는 없지 않을까에 대한 (이미 답은 정해져있는) 자문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단상은 아마 내가 영화와 영화글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 대해 가졌던 어떤 경계(境界) 혹은 선에 대한 접점과도 무관하지 않고, 설령 단상을 진전시키더라도 시네필과 영화에 대한 전문 평자들이 경계(儆戒)하는 ‘영화를 가지고 하는 다른 이야기’가 될 가능성의 농후함도 피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문제적인 텍스트로서 <경계선>은 꽤 두꺼운 층을 갖고 있다. 우선 이 영화는 자신을 어떤 장르 속에 명확히 편입시키기를 유보하면서 경계에 위치하기를 자처한다(송경원 평론가의 지적처럼 “동화, 판타지, 신화, 설화, 호러, 멜로 등 어떤 이름을 붙일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기묘한 체험”이다). 이 영화에 대한 독해를 보다 지근거리에서 출발하고자 한다면, 상상적인 생물체로서 트롤이 가진 ‘벌레를 좋아한다는 것’, ‘번개를 두려워한다는 것(과 더불어 토르와의 일화)’, ‘꼬리를 가졌다는 것’, ‘추위를 타지 않는다는 것’, ‘인간의 아이를 바꿔치기한다는 것’ 등의 습성에 친숙해야할 것이다. 선이해가 전제된 관객이라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벌레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있는 티나가 낯설진 않을 테다. 영화 초반부에 잠자리에 누운 티나의 머리맡 창문으로 찾아오는 여우가, 후에 카메라의 같은 구도 하에서 보레로 치환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발적인 <경계선>의 서사를 손쉽게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은 ‘티나의 정체성 찾기’라는 모티브로 읽는 것이다. 이 역시 중층적이다. 몰랐던 나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이래 변형된 무수한 텍스트들의 유구함이 이를 방증한다. 이에 대한 더욱 현대적인 판본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는 인종적 위치에 대한 사례들에서다. 가령 오늘날 이주한 비미국인 흑인이 노예제 이후 정착한 선대를 가진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통해’ 자신들의 경계와 위치에 대해 번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역시 유럽 기독교식의 성배 서사(grail narrative)를 위시해 길 위에서 무언가(그러니까 주로 ‘나’라는 주체)를 찾고자 했던 계보 하에서 현대판 판본으로 위치된다. 그 옛날 선인들처럼 흙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비포장 길 대신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두 발 대신 잘 달리는 차로 대체되어도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물며 티나가 운전을 하는 거의 모든 신은 숲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노골적이라면 노골적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도 그러하고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공항과 그녀가 행하는 업무(경계를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사람들 탐색)마저 경계와 본능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내가 다르다는 운명을 타고난 걸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자각을 통해선 더딜 수 있지만, 대상이나 촉매제가 있다면 급물살을 타기 마련이다. 보레에 관한 이야기다. 타자(성)에 대한 담지자로서 보레. 그는 벌레가 징그럽다는 티나에게 “누가 그래요?”, “먹고 싶잖아요”라고 말하며, 그녀를 아름답다고 칭찬할 줄 안다. 그를 통해 티나는 자신 안의 ‘타자성’을 받아들인다. 엄밀하게는 ‘인간성’이라는 외피를 입음으로써 상상적으로 거세되었던 나의 본래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레를 만나기 전에도 숲 속을 거닐고, 호수에서 맨 몸으로 수영을 하던 티나의 본래성은 사후적으로 다시 기입된다.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던 보레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종국적으로는 그 모든 인간적인 외투들을 벗어던진 채 자신의 아이에게 벌레를 먹이는 것을 보라.

나는 영화 글쓰기 수업에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배웠던 걸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때 그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쳤지만, 나는 내 개인에게 이보다 더 ‘영화적’인 생각이 있을지 고민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영화를 마주한 나는 경계에 서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영화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영화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수 없다. 나는 영(화)알못이면서 영잘알이다. 보레와 함께 있지 않을 때의 티나처럼 혹은 보레와 함께 있을 때의 티나처럼(그러나 나는 티나와 달리 그 경계를 편히 유랑하고 쉬이 월경하긴 한다). 티나가 핀란드로 갈까? 나는 내가 가지는 영화적 위치에 명확히 선을 그을까? (아니, 선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건 이미 상상적이다!) 선생님들이 그토록 경계(儆戒)하며 하지 마라던 영화 바깥의 얘기는 이렇게나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이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 그 위치에 대한 거리가 꼭 영화일 필요는 없고요, 여러분은 어떤 경계에 있습니까?

추신: <경계선>의 원제인 Border는 엄밀하게 ‘선’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는 우리를 가르는 그 모든 경계들에 대해 선을 긋지 않았다. 알리 아바시 마저 ‘이란’ 출신이지만 ‘스웨덴’에서 활동한다, 그 자신의 위치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언제나 난민 문제로 들썩이는 구대륙이 떠오르는 건 당연지사다. 상상적 공동체로서 민족국가라는 논의가 이제 당연시되는 마당에 현실은 퍽이나 팍팍하다. 우리가 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경계에다 선을 그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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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19.11.28 02:02:42
'알리아바시' 감독의 적절한 경계선
영화는 창작의 공간이고 그 창작의 예술이다. 그래서 상상만 하던 모든 것들을 만들 수 있고, 그 창작의 힘은 그러한 상상에서 부터 시작한다. 세익스피어 이후로, 히치콕 이후로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여전히 영화라는 창작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거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에 실망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경계선>은 우리에게는 낯선 동유럽의 영화다. 그나마 낯설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원작이 <렛미인>의 원작자라는 것. 그래서 어렴풋이 <렛미인>의 차갑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경계선>은 그러한 차갑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동유럽의 신화인 '트롤'의 존재를 가져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세익스피어도 히치콕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이야기다.


기존의 익숙했던 '편견'이나 '선입견' 또는 '믿음'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규범의 의식속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다른 이야기에 환호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상상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에 쉽게 반응하고 환호하기도 한다. 어떤이들에게는 독특함이라고 하겠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규정해 놓은 규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편견의 벽을 부수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마치 거대한 벽을 부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그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경계선>은 그러한 두가지의 시선들 중에서도 어느 한쪽에 얶매이지 않고 다양한 영화 대신에 적극적이고 날 선 시선들과 자신만의 '다른'시선에 영화라는 창작의 공간으로 그대로 표현한다. 누구도 표현한 적 없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표현들이다. 특히 '트롤'의 신화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접했고, 자세히 알고 있을 동유럽의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써 트롤이라는 개념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 와는 많은 차이가 있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창조의 예술의 영화로 볼때 지금껏 보지 못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정의 하고 싶다. 이야기는 그 어떤 상상으로도 예측하기 힘들고, 처음 접하는 그들의 행동과 생각들까지 같이 영화적인 서사로 표현하는 것을 볼때 '알리아바시' 감독이 이야기에 참 능숙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야기를 이렇게 거침없이 표현하는 방식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러한 다양한 방식과 방법들은 하나의 꺼리낌이 느껴질 틈 없이 흥분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오롯하게 <경계선>에 빠진 채 영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수 많은 영화광들이 흥분할 영화이고 더 많은 창조적인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같은 동유럽 감독인 '라스폰트리에' 영화들이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불거지는 '과유불급' 같은 불편한 강렬함 같은 것'만' 제외한 '라스폰트리에 영화'라고 표현한다면 <경계선>을 어느정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라스폰트리에' 영화에서 좋은 것만 뽑아 놓은 것 보다는 '라스폰트리에' 영화에서 나쁜것만 뺀 영화 같다.


<경계선>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과유불급적인 불편함보다는 영화적인 경험으로 할 수 있는 딱 최대치의 경험정도 까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경계선을 무시 한채 더 기괴하고 더 낯설었다면, 그래서 더 '라스폰트리에' 영화같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영화적인 체험을 느끼기 전에 그 과유불급의 표현들로 얼굴을 찌푸렸을지도 모르겠다.


'알리아바시' 감독의 영화적인 적절한 경계선에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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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님의 리뷰
2019.10.27 23:40:49
경계선
01.

영화 <경계선>을 봤다.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수있는 매력적이 영화었다.

영화를 끝까지 바라보며 인물들이 남겨진 방식과 줄곧 어둡고 창백한 톤을 유지하는 극 덕분에 차갑고 슬프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더 신비롭다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는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모든 결말이 행복하고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는 동화. 흔히 알고있는 동화와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다르다’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감정을 선사하는 것일까. 타성에 젖어 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정말 기존의 동화와 다른 이야기, 인물, 결말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그러다 영화가 북유럽 신화를 가져와서 감정이 파생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한 몫을 했지만 말이다. 관객은 티나와 비밀을 공유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비밀을 간직한 그녀가 트롤 아기를 키우며 어떤 결정을 할지 관객은 모른채 말이다.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과 비밀의 공유는 북유럽 신화와 만나 기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02.

<경계선>에서 인물들은 사람이 아니지만, 인간들의 사회에 나름(?)잘 섞여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속에서 주인공 티나(레나)는 사람들에게 못생긴 사람으로 남는다. 하지만, 관객 혹은 티나(레나)는 못생긴 사람이었다가 인간과 다른 종족으로 변화하는 것을 함께 겪는다. 감독은 인물을 클로즈업을 자주 하는데 이 지점에서 관객과 티나는 정서적으로 몰입했을것이라 추측한다.

감독은 그들이 생김새와 수치심의 냄새로 범인을 잡는등의 특이한 행동등을 통해 다름을 보여주기도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여기서 영화속 사회의 인간과 티나(레나)와 관객의 경계가 생기는 것이다.

‘티나’라는 인물이 인간과 트롤 사이에서 갈등하기 때문에 영화 제목이 선택됐을 것이라는 간단한 해답되신 필자는 경계선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건인간과 트롤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사회가됐기 때문이다.



03.

감독은 인간과 트롤의 사이에 티나를 세워두려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계선’이라는 지점에 서 있는 인물도 중요하겠으나, 여기서 인물 만큼이나 중요한 지점은 경계선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것인가, 혹은 공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경계선 너머를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에서는 티나의 살아가는 사회와 트롤의 사회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티나’라는 인간이며 트롤의 중간에 있는 그녀의 삶을 보여준다. 친구를 찾아가 아기를 안아보고, 경찰, 보안검색대 직원으로서의 살아가는 인간과 보레를 만나 트롤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 지점을 배치한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영화는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타인에게 경계를 할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동시에 자신을 어떻게 하면 지킬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려고한다. 티나는 인간과 트롤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만, 이 고민의 근본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수 있는가’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결국 극의 결말은 정의에 어긋나면 참지 않고, 트롤종족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모든 면모를 갖게 되며 끝이 난다. 이처럼 감독은 티나를 어느 한쪽에 귀속된 존재가 아닌 그녀자신 스스로 보려고 노력했다.





04.

티나, 관객, 티나가 살아가는 세계는 서로 경계가 그어지고, 시간이 지나며 편견이 생긴다. ‘다르다’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는 인간이 트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기 때문에 티나는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으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날수 있다. 이것은 북유럽 신화에 기반한 이 영화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시대에 대한 북유럽신화의 탈을 쓴 우화라고 해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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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님의 리뷰
2019.09.22 20:35:18
정직한 제목. 로맨스라기보단 티나의 휴먼 드라마, 또는 성장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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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15:10:40
경계선 : 평범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사랑들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상대방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우리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목적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사랑을 잊기 위해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사랑을 한다. 사랑에 굶주려 외로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에 지쳐 떨쳐 버리고픈 이들이 있기도 하다. 무수한 삶의 권태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바라며 사랑을 하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떠밀려 억지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 인간군상이 여러 가지 인 것처럼 우리들 누구나 사랑의 목적과 이유가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토록 큰 고통과 미련을 남기는 사랑, 너무나도 큰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사랑. 사랑의 특성은 고통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영위하며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를 다룬 수 많은 영화 들 중 특히 더 주목해 볼 만한 두 작품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고 내 머리 속에는 항상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사람이 떠나간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이 내 삶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와중 다른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과 너무나도 닮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한치의 불안함 없이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아사코’속 주인공 아사코가 처한 상황이다. 이 작품은 사랑을 함으로써 생기는 미련과 이로 인한 불안함을 심리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아사코에게 벌여지는 사랑의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아사코의 심리적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직접적이기 보다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영화에서는 항상 인물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특정 인물의 시점에서 다루기 보다,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내비친다. 아사코가 료헤이를 만나 사랑을 하고 동거를 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덤덤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초반부의 내용을 통해 아사코가 바쿠를 그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료헤이의 다정이 아사코에게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결국 덤덤히 진행되는 두 사람의 사랑의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불안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그 동안 잊고 지내려던 바쿠가 나타나 그녀를 점점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영화는 아사코의 불안함을 직접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하는 데, 그녀의 표정에 대한 잦은 클로즈업, 그리고 바쿠가 집을 찾아오는 환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감정은 이사 가기 전 날 바쿠가 직접 아사코를 찾아오며 절정을 맞이 하게 된다. 그동안 아사코가 쌓아왔던 불안감이 폭발하면서 료헤이를 버리고 바쿠의 차에 올라타는 비현실적 선택을 하게 되는 데 이 역시 새로운 불안으로 다가와 아사코를 괴롭힐 뿐이다. 결국 아사코는 어떤 사랑을 하던 어떤 선택을 하던 불안함 속에서 떨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자체가 원래 불완전하고 완벽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에 이유없는 미련과 무의미한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결론을 이 영화를 통해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사코’가 불완전함, 불안함이라는 사랑의 성질을 다루었다면 영화 ‘경계선’은 사랑의 목적에 관해 다루는 영화 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에 관하여 고민하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들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이 되어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에는 한계점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사랑을 하는 또 하나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경계선’은 지금껏 자신을 이상하고 특이한 존재라고 여겼던 주인공 티나를 통해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 속 티나는 남들과는 다른 외모와 냄새로 타인의 감정을 엿보는 특성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보레를 만나 진짜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티나는 보레를 사랑하게 되고 둘의 사랑의 행위는 더욱더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역할로 티나에게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티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갈수록 지금껏 세상이 티나에게 그어놓았던 경계선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깨뜨리는 존재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여성이지만 인간이 아닌 티나는 남자의 성기를 가지고 있고, 인간으로써 먹어야 하는 음식들 보단 자연의 벌레들을 찾아 먹는 것이 티나의 식성이다. 결정적으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인 보레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티나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보레의 말대로 인간의 경계선을 깨고 살아갈 것인지, 인간답게 살아갈 것 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사랑을 계속하여 짚어지고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경계선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사랑의 목적을 달성한 티나는 사랑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티나의 모습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하나의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껏 많은 사랑 영화들이 만들어져 왔지만 사랑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다룬 영화들은 드물다. 사랑영화들은 멜로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얼마나 간절하게 그리고 힘겹게 하는 가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해 왔다. 물론 이것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다보고 나면 금새 잊혀지는 것이 사실이다. 위 두 영화들 처럼 사랑의 특성과 성질을 통해 사랑 그 자체에 관한 끊임없는 사유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계속하여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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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 11:14:41
모든 것에 대한 경계를 묻고 있는 영화...강렬한 섹스신과 마지막 엔딩까지. 그동안 우리는 너무 인간이라는 종의 위주로 살아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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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님의 리뷰
2020.02.15 23:02:00
평범한 상상 그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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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님의 리뷰
2020.02.07 16:37:45
경계는 누가 규정하는가.
경계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스웨덴에서 날아온 이 영화가 말하는 경계는 좀처럼 상상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뻗어 나간다.
표현 역시 상상의 문턱을 쉽게 넘나들며 불편한 마음이 일 것 같은 순간에 의미를 선사하며 그것이 불필요한 자극이 아니라 발화를 위해 필요한 단계임을 주창한다.
무엇보다도 멜로이자 성장 드라마이며 그렇기 때문에 티나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영화의 중요한 시선이 될 것 같다.
움츠리고 있던 그녀의 포효만큼 짜릿한 성장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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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님의 리뷰
2020.02.01 01:24:58
이 영화가 두루뭉술한 ‘경계선’에 서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링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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