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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It Comes)

공포(호러) / 2018

개요
공포(호러), 일본, 134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0.03.26 개봉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배우
오카다 준이치
쿠로키 하루
고마츠 나나
마츠 다카코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키 무네타카
시바타 리에
니나가와 미호
시놉시스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인 한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미스터리한 ‘그것’의 전화를 받는다.

초현실적이고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결국 그의 아내와 딸도 표적이 된다.

보이지 않지만 도망칠 수도 없는 공포 속, ‘그것’이 부른 그들의 비밀도 서서히 드러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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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9%
3.27점
키노라이트 분포
7개
26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20

2020.03.31 14:17:47
장르적 재미와 이야기의 깊이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영화
"준비됐습니까? 맞이합시다!"

<온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그것'을 맞이하는 것. 영화 속 인물들은 준비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 '그것'을 맞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죽음을 맞이하고, 일부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는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그것'이 가지는 미스터리함을 풀어나가는 형식보다도 각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형식을 취해 영화를 찍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것'의 특성은 일부 밝혀질지언정 그 정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 없다. 극이 진행될수록 '그것'의 존재감은 점점 관객을 압도해가지만, 영화는 사실상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관심을 두고자 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인간이다.

극의 형식 자체를 의도적으로 나누어 놓지는 않았지만, <온다>는 각 인물의 시점에 따른 3부 구성의 형식을 취한다. 각 부분의 중심은 각각 '히데키', '카나', '노자키'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선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위선적인 면 또한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점은 '그것'이 그들에게 접근해 위협을 가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혀 영화의 후반부에 조명되는 인물, '츠사'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1부, 히데키

'히데키'는 '카나'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치사'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는 딸이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고, 단숨에 파워블로거가 된다. 육아 관련 서적을 사 읽고, 아빠 모임에 들어가 다른 아이 아빠들과 소통하는 등의 노력을 하며 회사 업무와 가사, 육아노동을 병행하는 그는 '모범적인 아빠'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그의 앞에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그의 주변을 다시 맴돌기 시작하고, 그의 가족 또한 위협한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친구인 민속학 교수 '츠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츠다'는 자신의 지인 '노자키'를 그에게 소개한다. 그는 '노자키'와 영매 '마코토'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그것'을 피하지 못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부, 카나

1부가 끝나고 2부인 '카나'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히데키'는 사실 좋은 남편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점은 중간중간 플래시 백으로 삽입되는 '히데키'의 어린 시절 장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장면에서 그는 숲 속에서 한 소녀와 함께 있는데, 그 소녀는 그에게 그가 "거짓말쟁이니까" '그것'이 그에게 올 것이라고 말한다. '히데키'는 성장한 후에도 여전히 거짓말쟁이다. 그는 그의 친구들이 묘사하는 것과 같이 '빈 깡통과도 같은 사람'이다. 외적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의 모습을 자처하던 그는 아내와 딸을 챙기기보다는 현실을 과장시킨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육아 블로그를 꾸미는 것에 더 열중했다. 2부는 그런 '히데키'의 이중적인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카나가 그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치사'를 키우게 된 그는 일과 가사, 육아를 병행하며 치사를 돌보려 노력하지만 주위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은 여의치 않다. 자신을 방치했던 엄마와 다르고자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엄마처럼 '치사'를 방치하며 기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그것'이 찾아오고야 만다. 카나는 '그것'에 죽임을 당하고, '치사'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3부, 노자키

'히데키'와 '카나'의 죽음 이후, 영화는 급작스럽게 사건의 주변 인물 혹은 조력자처럼 보이던 '노자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노자키'는 과거에 아이를 원치 않아 임신했던 전 연인에게 아이를 지우기를 강요했던 사람으로, 뒤늦게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겉으로만 모범적인 아빠이자 남편인 척하는 '히데키'를 보며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반면, 신체적 이유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현 연인 '마코토'와의 관계에 대해서 갈등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중, '그것'이 '치사'를 데리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마코토와 그의 언니이자 일본 최고의 무당 코토코와 함께 '그것'에 맞선다. '코토코'는 대규모의 굿을 치러 '그것'을 달래 떠나게 만들려고 한다.

영화의 끝에 다다를수록 관객은 '그것'의 몸집을 키운 것은 사실 '츠사'였음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의 외로움이 '그것'을 친구 삼아 놀게 만든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노자키'와 '마코토'는 '츠사'를 차마 '그것'에게 보낼 수 없어 아이를 데리고 가려는 '그것'에 대항해 아이를 되찾는다. '츠사'는 자신의 부모의 품은 아니지만 '노자키'와 '마코토'의 품 안에서 살게 되고, 영화는 나름의 해피엔딩에 다다른다.



<온다>는 '그것'이라는 존재를 내세운 공포, 오컬트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드라마 장르에 가까운 영화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자신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독특한 편집점을 통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중심이 되는 세 인물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극의 무게감을 잡는 데 힘썼다. 그런데 그의 이런 시도가 온전히 들어맞았는가 하는 것은 그 의도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장르적 재미와 주제의식,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는 주제와 장르적 재미 사이에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각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히데키'의 이야기에만 1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히데키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나'와 '노자키'의 경우, 인물 설정은 다소 매력적일지 모르나, 인물의 배경 이야기가 온전하게 구축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인물에게 들이는 시간부터 상당히 차이가 날뿐더러, 온전히 이입될만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의 시점이 계속 바뀌며 급변되는 전개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게 된다.

이것은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영화는 '그것'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보다 드라마적 서사에 힘을 실었다. 이러한 방식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드라마적인 서사가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그것'이 가지고 있던 미스터리함의 해소가 필요 없어질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나 '오므라이스 나라'에 대한 꿈을 꾸는 '치사'의 곁에 '노자키'와 '마코토'가 웃으며 앉아있는 영화의 마지막은 괜찮은 해피엔딩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전 장면들의 밀도를 생각한다면 다소 힘이 빠지는 결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며 장르적 재미와 드라마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만큼, 이 둘이 겉도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기행 님의 리뷰
2019.07.10 18:42:42
우선 저번 주에 영화 보면서 ‘곡성’과 ‘서스페리아’가 생각났었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곡성의 전개에 서스페리아 초반 충격적인 장면 그리고 후반 피칠갑을 떠올려보시라. 개봉한다면 관객의 평은 모 아니면 도일 것. ‘괜찮게 봤다’는 평은 나오기 힘들다. 호불호 심하게 갈릴 듯.

원작 ‘보기왕이 온다’를 다 읽고 난 후 6일 만에 2차관람한 평을 하자면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공포물을 기대하면 영화 분위기가 달라지는 기점을 시작으로 집중도가 떨어진다. 원작을 먼저 읽은 사람은 공포에 대한 기대는 안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상태로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소재, 연출 스타일 등을 타협하지 않으면 ‘온다’와 같이 폭주하는 영화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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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별 님의 리뷰
2020.03.30 22:50:06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과식감이 온다
넓어지면서 좁아지는 괴상한 영화다. ‘그것’이라는 존재의 뼈대는 초반부터 우뚝 서있지만, 점점 추가되는 시선들과 후반부 하나의 목표인 맞이 의식의 대응이 그러한 흐름의 비틀림을 부각시킨다. 제일 궁금한 ‘왜’의 질문엔 아주 올곧게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특유의 오컬트적 색채엔 진하게 힘을 들인다. 때문에 이유나 당위성을 갈구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난감하고 답답하게 와닿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관심사는 그 ‘왜’를 제외하고 상당히 많아 보인다. 주제 의식은 지난 2월 개봉한 <클로젯>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간 것처럼 느껴지고, 전개의 붓질은 호기심과 공포 그 두 진영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희망과 파국 모두를 그려내는 당돌함을 던진다. 무엇보다 즐겨 쓴다고 생각되는 핏빛 장치들은 <서스페리아>의 아우 대접을 받아도 손색없을 만큼 다부지다. 가장 당황스러운 묘미는 과식형 스택의 표본이라는 점이다. 마치 어린 시절 끊임없이 먹을 것을 내어주시던 우리네 할머니처럼, 배부름의 의사 표현은 결코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두 메뉴를 차례대로 먹고 일어서려는 찰나, 잔뜩 기대에 차 이것이 메인이라며 세번째 메뉴를 들고 오는 이 기막힌 상황엔 출구가 없다. 앞선 두개보다도 더욱 거대한 게 남아있어 놀란 이와, 메인이 남았는데 왜 벌써 일어서려 할까 놀란 이. 받는 이와 주는 이 모두의 머리 위 동시에 뜨는 두 물음표의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뜬다. 각기 다른 화자가 쑤셔 넣어주는 이야기들로 인한 배부름이 커질수록, ‘왜’의 결핍이 자아내는 갈증은 깊어만 갔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배부름과 갈증 이 빠꾸 없는 자강두천들의 치열한 혈투 끝엔, 곤히 잠든 노오란 꿈만이 밝게 반겨줄 뿐이다.
+
‘그것’ 감투는 역시 오직 페니와이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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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타 님의 리뷰
2020.03.29 20:07:18
정통 장르 영화를 기대했지만 이도저도 아닌 영화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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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님의 리뷰
2020.03.29 10:16:04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점점 총기가 떨어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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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네 님의 리뷰
2020.03.27 23:16:21
그 것(!)을 소환한 것은 누구일까? 원치 않은 소환에 타의인 것도 있겠지만 그 것을 부른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끄집어낸 또 다른 내면의 악마성일지도. 블로그 속 자상한 아버지는 거짓이고, 욕망의 몸부림도 결국 거짓을 숨김으로써 나타난 일인 것임을 이야기 합니다. 묘하게도 고급 음식인 스파게티가 집에서 외면받고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오무라이스를 사달라고 조르는 딸의 모습에서도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속에 피빛으로 가득한 장면도 아이러니... 결국 나카지마 테즈야 감독은 모든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함을 단란했던(?) 세 명의 가족을 통해 보여줍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보여준 쓸대없이 고퀄 CG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다른건 몰라도 저도 오무라이스 나라에서 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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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빈 님의 리뷰
2020.03.22 20:23:05
'온다'는 신혼 부부가 귀신에게 위협받으며 귀신을 물리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호러 영화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들은 언제나 무서운 면이 있었지만, 아예 장르 자체를 공포로 미는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일본판 '곡성'이라는 수식어도 붙어서 다소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민간 신앙 속 귀신의 표적이 되어 악몽이 시작되는 가족과 무속인들에게 손을 벌리며 시작되는 사투라는 점에서 분명 공통점은 꽤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곡성'과 다른 점도 많다. 우선 나카시마 테츠야는 한 영화 안에서도 화자를 여러 명 두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계속 바뀌며 인물들의 과거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새로 알게되고, 이미 만났던 인물들의 또 다른 면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기도 한다. 그렇게 감독은 이야기의 주제를 입체적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나카시마 테츠야는 사람이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느낄 수 있는 소외감과 단절에 대해 많이 흥미를 가진 모양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갈증' 모두 주요 인물들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물리적/감정적 단절을 마음 깊숙히 상처로 품게 되며 생기는 일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상처의 성장이 아니라 그 상처의 시작과 근원 자체에 집중을 하며, 이를 초자연 호러의 형식으로 표출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부모라는 어른들은 이중적이고 어둡고 오염된 존재들이라는 모순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영화는 아이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호러라는 장르 영화 자체로서는 충분한 공포감과 스릴은 있긴 했으나, 뒤로 갈수록 전개가 너무 급해지고 설명이 부족해서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면도 많았다.

나카시마 테츠야 영화치고는 시각적으로는 좀 평이한 영화였다. 일부 장면들은 화려한 색감과 조명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영상미보다는 유혈낭자한 연출로 승부를 본 느낌이 있었고, 음악과 몽타주에 많이 의존하는 뮤직비디오스러운 연출도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연출에 있어서는 더 무난해지며 감독의 개성이 좀 덜 느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 아쉽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훌륭했다. 이전 영화들은 좋은 연기들 사이에서 주인공 한 명이 특출난 연기력을 선보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비중이 많이 분산돼서 그런지 특출난 한 명은 없었고 출연진 모두가 좋은 연기를 펼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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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언 님의 리뷰
2020.03.21 17:26:42
온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영화관람을 피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 관람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CGV 용산에서 진행된 영화 '온다'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공포, 오컬트 장르의 작품이라는 것만 숙지한채 관람하러 갔는데 초중반은 생각했던거 보다 훨씬 괜찮게 봤습니다. 단순히 사운드를 때려박아 놀래키는 뻔한 작품이 아니고 차근차근 스토리를 쌓아나가 중반 이후에 변곡을 주는게 개인적으로 참 좋더군요! 여기에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오컬트 장르에 맞게 잘 풀어내서 보면서 카피캣 같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만큼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후반부가 급격하게 늘어져서 보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특히나 요즘 빠른 전개의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어 거기에 적응이 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작품의 후반부는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서 많이 아쉬웠네요.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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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님의 리뷰
2020.03.20 12:05:31
(...)

물론 영화에도 나오는 말이기는 하지만 '준비됐습니까? 맞이합시다!'라는 문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최근 한두 해 사이 개봉한 대부분의 오컬트 영화들은 그것을 '쫓는'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온다>는 '그것'을 정말로 '맞이'하는 영화라 해볼까. 그것의 실체를 추리해나가면서 퇴치법을 찾는 척하면서 <온다>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영화 안의 세계로 적극 끌어들인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흔히 서사를 분석할 때 '이 이야기의 종착지는 결국 어디인가' 같은 질문을 만들기 쉽지만 <온다>에 대해서라면 조금 다른 표현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그 자리에 계속 있고, 관객이 거기로 간다. 상영관 좌석에 앉은 이상 관객은 빠져나올 겨를 없이 거기 가야만 한다. 무엇이 올지 모르는 세계로. 그게 집중력을 흩트리는 요즘 시대의 콘텐츠 홍수 속에서 진짜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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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20.03.19 01:17:05
어정쩡한 '육아 익스플로테이션'
*스포일러 포함



이제 막 결혼한 히데키(츠마부키 사토시)와 카나(쿠로키 하루)는 딸 치사를 낳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히데키는 카나가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 블로그를 운영해왔고, 완벽한 아빠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은 그를 파워 블로거로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의 히데키를 쫓아왔던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다시 나타나 가족을 위협한다. 히데키는 친구이자 민속학과 교수 츠다(아오키 무네타카)와 그의 지인인 노자키(오카다 준이치)는 일본 제일의 무당 코토코(마츠 다카코)의 동생인 영매 마코토(코마츠 나나)를 소개해준다. 마코토는 히데키의 집에 강력한 무엇인가가 왔음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히데키와 카나의 일상은 파괴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갈증> 등을 통해 알려진 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는 일본 호러소설대상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오컬트 호러영화다. 영화는 히데키, 카나, 노자키 세 명의 시점의 (실제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3부 구성을 취하고 있다.


러닝타임 절반까지의 <온다>는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이나 바박 안바리의 <어둠의 여인>과 같은, 혹은 호러라는 장르 틀을 벗어난다면 <82년생 김지영> 같은 작품까지 엮을 수 있을, ‘육아 익스플로테이션’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작품들과 결을 같이한다. 히데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1부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샐러리맨 히데키가 아이와 아내를 위해 헌신하고, 보기왕(극 중에서 명확하게 지칭되진 않지만 편의상 쓰자면)이 다가오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종종 등장하는 히데키의 블로그는 그러한 히데키의 모습을 영화 안팎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카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2부에서 뒤집힌다. 히데키는 자기중심적 인물이며, 그의 고등학교 동창 츠다는 ‘빈 깡통 같은 사람’이라 히데키를 묘사한다. 블로그와 아빠 모임에 열중하는 그는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치중하지만, 실제 육아는 등한시한다. 가령 카나는 요리에 열중하고 있고 딸 치사는 기저귀를 갈아 달라며 울고 있는 상황에서, 히데키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블로그 조회수를 들여다보고 있고, 카나는 부엌과 치사 사이를 오가며 가사노동과 육아를 동시에 소화한다. 그런 와중에 히데키는 카나에게 아이에게 악영향이 갈 수 있으니 짜증 내지 말 것을 주문한다.


히데키는 그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 1부의 마지막에 죽는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히데키의 어린 시절은 그와 한 소녀가 숲 속에서 나비 등을 죽이는 모습과 함께, 소녀가 어린 히데키에게 “너는 거짓말쟁이니까 그것이 올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히데키는 거짓말쟁이다. 그는 빈 깡통 같은 사람이며, 가정 내의 일보단 겉에서 보이는 모습에 충실하다. 영화 초반부의 히데키 고향집 시퀀스나 결혼식 시퀀스부터 그 징조가 곳곳에 널려 있다. 소위 ‘인싸’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내팽개친 인물이 히데키인 셈이다. 그는 거짓으로 가꾸어진 자신의 외형 때문에 쫓아온 보기왕에 의해 죽는다. 히데키가 죽고 카나는 홀로 치사를 키운다. 그는 육아, 가사노동, 생계노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기는커녕, 자신의 껍데기처럼 다루던 히데키가 죽은 것을 반가워하는 카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는 자신을 홀로 키운 (사실 방치에 가까웠던) 엄마처럼 되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하지만, 자신을 도와줄 친구도, 가족도, 지인도 없는 상황에서 카나는 좌절한다. 결국 치사를 내버려 두고 내키는 대로 살려던 카나 앞에도 보기왕이 나타난다. 마코토의 도움으로 보기왕이 찾아온 집에선 도망치지만, 결국 카나 또한 보기왕에 의해 살해당하고 치사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리고 의문의 3부가 시작된다. 관객은 갑작스레 중심인물의 위치에 오른 노자키가 아기를 들고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암흑 같은 강물 밖에선 “네가 바라던 대로 아이를 버려”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노자키는 전 애인에게 낙태를 강요했던 사람이며, 현재 함께하는 마코토는 불임인 상태이다. 때문에 3부의 초반을 보고선 장재현의 <사바하>가 떠올랐다. 민간신앙을 중심으로 한 오컬트, 어린아이의 양육과 낙태라는 공통된 장르와 소재 때문이다. 하지만 <온다> 또한 <사바하>와 유사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사바하>의 경우 민간신앙과 천주교, 사이비 개신교, 불교, 도교가 뒤섞인 세계관 속에서 여아 낙태는 또 다른 영화 밖 사건을 매개하는 소재처럼 다뤄졌다. 그러니까, <사바하>의 주제와 여아 낙태라는 소재는 완전히 결합되진 못했다. <온다> 또한 유사하다. 육아와 낙태 등의 소재는 오롯이 소재로써만 기능한다. 치사의 내면이 보기왕과 결합했다는 영화의 결말부에 가서야 ‘어떠한 이유에서든 홀로 남겨지는 아이’라는 사회문제를 슬그머니 꺼낼 뿐이다. 게다가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 즉 아이를 갖지 못하는 마코토와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던 노자키가 치사와 함께하게 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노자키, 마코토, 치사가 함께하는 엔딩이 당혹스러운 것은 그 앞까지 진행된 코토코의 굿 장면 때문이다. 히데키와 카나가 죽은 이후 모습을 드러내고 보기왕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코토코는 히데키와 카나가 살던 아파트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보기왕에 대항하는 굿을 시작한다. 그것은 보기왕에게 잡혀간 것으로 간주되는 치사와 마코토를 다시 불러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코토코 한 사람만이 굿을 하는 게 아니다. 1부에 잠시 등장했던 할머니 무당을 비롯해 코토코의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올라온 노년의 무당들, 중국의 무당이나 여고생 무녀, 심지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궁서체로 적힌 현수막을 세워 두고 굿판을 벌이는 한국의 무당, 더 나아가 오컬트 현상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과학자 무리까지 동원된다. 각양각색의 무리들은 아파트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원에서 록 페스티벌에 버금가는 ‘굿 페스티벌’을 벌인다. 물론 그 중심에는 히데키의 집에서 굿을 하는 코토코와 이를 지켜보는 노자키가 있다. 준비과정까지 포함하면 20분이 넘어가는 이 거대한 굿 시퀀스는 관객들이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에서 기대했을 법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괴이한 굿판, 범람하는 피, 거대하게 확대된 보름달 등은 <하우스> 등의 컬트 영화를 연출한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의 이미지들이 나카시마 테츠야 답게 잘 만들어지긴 했으나 예상할 수 있는 그것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에 머물렀다면, 적어도 이 클라이맥스 굿판만큼은 그의 야심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 야심은 미봉책에 머무르는 결말로 인해 애매하고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하고 만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흘러가버리는 <사바하>의 맥 빠지는 엔딩과 <온다>의 엔딩은 그런 맥락에서 닮았다. 1부와 2부 중간까지 영화가 지적하고 있는 육아의 문제와 3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거대한 굿판의 힘은 134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지만, 애매한 엔딩은 그 과정을 무효화한다. 특유의 스타일을 끝까지 밀고 나간 <불량공주 모모코>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원작을 읽으며 상상했던 이미지를 적절하게 구현해준 <고백>에 비해 <온다>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3부 클라이맥스의 힘은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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