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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1917)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전쟁, 미국,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0.02.19 개봉
감독
샘 멘데스
배우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에드리언 스카보로
다니엘 메이스
리처드 맥케이브
마이클 집슨
저스틴 에드워즈
제이미 파커
다니엘 애트웰
리처드 뎀시
시놉시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하나의 미션이 주어졌다.

함정에 빠진 영국군 부대의 수장 ‘매켄지 중령’에게 ‘에린무어 장군’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하는 것!

둘은 1600명의 아군과 ‘블레이크’의 형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사투를 이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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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147

Pauline 님의 리뷰
2020.02.19 22:38:01
요란한 빈수레
영화라기 보단 비디오게임 같다. 원씬 원테이크처럼 보이려는 눈속임이 한정된 조건에서 영화를 진행시키려는 순진한 의도처럼 보이지만, 카메라를 이리저리 활강 하며 시선의 권위를 획득하려는 일종의 쇼같았다. 소품처럼 마침 그자리에 있는 시체와 아군, 혹은 마주치는 적군이 오히려 리얼리티를 과장하는 요소같아 내내 심드렁하게 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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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서 1917에 관해 생각해봤는데 이 영화는 롱테이크의 영화라기 보단 패닝으로 만들어내는 가상의 숏에 관한 영화인 것 같다.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없다고 느껴진 숏도 패닝에 의해 등장하는데, 독일군과 맞닥뜨린 스코필드가 목을 조르는 상황에 카메라가 패닝하며 미학적 구도를 완성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를 설명하는 최적의 숏인 것 같아서. 이 구도를 보면서 느껴진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퍽 난감함. (바로 뒤에 등장하는 꽃잎이 휘날리는 장면과도 이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장이라는 장소와 살육의 행위에 낭만을 부여할 때 벌어지는 논쟁을 피하지 않고서라도 이 형식을 고집해야했는가 라는 답을 영화가 내려주는가 라고 했을때 그닥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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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복 님의 리뷰
2020.01.27 02:12:06
Tree to tree
나무 아래서 쉬고있던 윌리엄 스코필드 일병이 다시 나무 아래 쉴 수 있기까지의 과정 속에 관객을 참여시키면서 전쟁의 허상과 무목적성, 참혹성을 경험하도록 한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3.31 15:43:05
한 인간의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1917>은 전쟁 속의 한 개인을 주목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은연 중에 '대단한 것'이나 '특별한 것'만을 추구하게끔 하는 세상의 표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집단이 유지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의 우월성과 존엄성을 내세워 우선 순위를 부여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바라본다면 심심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 삶의 기록에서는 꽤나 가치있는 것일 수 있다.

극중 연대의 공격작전은 큰 전쟁에서 본다면 무수히 발생하는 한 작전에 불과하지만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에게는 형의 죽음이 걸린 문제, 나아가 인생의 행복과 직결되는 가족의 안위가 걸린 문제다. 같은 이치로 스코필드(조지 맥케이)가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이유도 상부의 명령을 넘어 소중한 벗의 소망과 의지를 전달하려는데 있다. 사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움직이는 이유는 너무도 뻔하고 진부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일상적인 이유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여도 우리 스스로에겐 중요한 일이며, 대단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코 폄훼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과 우리의 인생 모두는 작은 순간 하나까지 가치있게 되는 것이며, <1917>은 대단한 것만이 대우받는 집단의 요구 속에서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별 것 아닌 사소함이 무가치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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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님의 리뷰
2020.02.21 01:04:00
데칼코마니의 전장을 달리는 애매한 이유
*스포일러 포함



세계 1차 대전이 한창인 1917년, 벨기에 전선에서 전투 중인 영국군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와 스코필드(조지 맥케이)는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으로부터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2대대 멕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할 것을 명령받는다. 두 사람은 무인지대(No Man’s Land)를 비롯한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샘 멘데스의 <1917> 그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H. 멘데스가 1차 대전 당시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물론 알프레드는 자신의 키보단 높은 안개 덕분에 영화 속의 전장보단 조금은 안전하게 명령을 전달했다고 한다. <1917>은 단 두 개의 테이크(물론 여러 테이크를 이어 붙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편집점들이 눈에 띄지만)를 통해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여정을 담아낸다. 마치 전장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가로지른 페이디피데스의 이야기를 리얼타임으로 관람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1917>은 선사하려 한다.


물론 <1917> 이전에도 영화 전체를 하나 혹은 소수의 테이크로 구성한 작품은 있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로프>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영화의 거의 전체를 한 숏처럼 연출한 작품이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이나 장 뤽 고다르의 <주말> 같은 작품은 7~20여분의 시간을 한 테이크로 선보이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17>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품을 꼽자면 역시 1차 대전을 다룬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의 참호 롱테이크 장면이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에린무어 장군을 만나고 여정을 시작하는 초반부의 기나긴 참호 장면은 <영광의 길>에 바치는 오마주나 다름없다. 큐브릭이 참호에서 돌아다니는 병사의 앞과 뒤를 각각 스테디캠으로 촬영한 두 개의 롱테이크를 교차 편집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1917>의 카메라는 참호의 꺾이는 길이나 다른 병사와의 충돌 등을 사용해 두 주인공의 앞과 뒤를 오간다.


대부분의 영화는 시간을 압축하여 전달한다. 그것은 러닝타임을 조금 초과하는 몇 시간 정도부터, 수백, 수만 년의 시간까지 다양한 길이를 갖는다. 반면 <1917>과 같은 시도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극 중 시간과 동일하게 가져간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약 16km의 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은 약간의 점프를 제외하면 러닝타임과 동일하다. 어쨌거나 이들이 이동하는 시간만큼 카메라와 공간도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러닝타임의 일부를 롱테이크를 채우는 것과는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비티>의 롱테이크는 단순히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한 도입부의 장치였고, <악의 손길>의 롱테이크는 영화를 미리 요약하는 오프닝 시퀀스였으며, <영광의 길>의 롱테이크는 법정영화로 변모하는 극의 후반부를 위한 알리바이와 같다. 반면 영화 전체를 한 테이크처럼 연출한 작품들은 현장성 또는 연극성을 갖는다. 히치콕의 <로프>는 두 주인공이 느끼는 압박감을 끝없는 재프레임화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배우인 주인공의 상황 자체를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1917>의 롱테이크 전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1917>의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의 롱테이크 전략은 영화와 명확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배틀필드]와 같은 게임을 연상시키는 현장성을 위해? 페이디피데스처럼 전장을 가로질러 소식을 전달하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용기, 책임감, 집념, 애국심 등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시체를 지나치고 밟아가며 명령을 전달하는 두 병사가 느낄 참혹함과 허망함을 위해? 그 속에서도 존재하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혹은 단순히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가 직접 겪었던 치열한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이것은 모두 맞을 수도 있고 이 중 몇 가지만 맞을 수도 있다. 무엇이 <1917>의 주제인지 선별하고, 그것과 롱테이크 전략 사이의 연관성을 따지는 일은 크게 의미 없다. 앞서 언급한 문장들은 영화 내에서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17>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관객 개개인에게 달린 몫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샘 멘데스와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전략은 애매하다. 어쩌면 이들은 롱테이크로 전장을 담기 위해 1차 대전을 배경으로 삼은 것일지도 모른다. 통상적인 상업영화의 러닝타임(100~120분)을 한 두 개의 테이크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전쟁이 바로 1차 대전이다. 2차 대전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무전기와 폭격기, 수송기는 전쟁의 성격을 시간적 파편으로 만들었다. 2차 대전부터 베트남전이나 걸프전 등 1차 대전 이후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들은 군인들의 이송, 폭격, 무선통신을 통해 전쟁을 수많은 숏으로 쪼개어 진행한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2차 대전을 통해 도입되고 발명된 기술은 <1917>의 서사가 성립하는 조건들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샘 맨데스가 어떻게 <1917>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완성된 영화가 주는 인상은 기술적으로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는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는 애매하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형(리처드 매든)이 나누는 악수다. 나무에 기대 쉬고 있는 스코필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무에 기대 휴식을 취한다. 그는 참호에서 참호로, 진창에서 진창으로, 누군가의 시체 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시체 위로 이동한다. 유사한 공간과 상황의 조응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후반부의 악수는 죽어가는 블레이크의 손을 잡는 장면과 조응한다. 손에서 손으로,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손에 있던 반지를 그의 형에게 전달하고 그와 악수를 나눈다. 따지고 보면 <1917>은 데칼코마니다. 스코필드가 잠시 기절하고 등장하는 암전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암전 전에 벌어진 사건의 역순이다. 페이디페데스는 전장 밖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렸다면, 스코필드는 전장에서 전장으로 달린다. 죽어가는 전우와 붙잡은 손에서 그의 형제와 나누는 악수로,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유사지만 조금은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1917>의 양면은 전쟁보단 그것을 통과하는 개인을 비춘다. <1917>의 애매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두 개의 롱테이크라는 거대한 형식은 개인을 향할 뿐, 개인을 둘러싼 상황을 비추지 못한다. 개인을 향해 조직된 상황만을 목격하는 카메라는 시선을 확대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스코필드뿐이다. 우리는 스코필드가 장군의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 수많은 불확정적인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것은 그가 달려야 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 즉 생존을 슬그머니 영화 바깥으로 미뤄둔다. 스코필드는 왜 전장에서 생존을 위해 달리는가? <1917>은 불확실한 답변을 흩뿌리며 그것을 애매하게 회피하는 작품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김병언 님의 리뷰
2020.02.18 12:15:50
1917 IMAX
CGV 용산에서 진행된 영화 '1917' IMAX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했던 파스샹달 전투를 배경으로 1600명의 아군을 살리기 위한 두 전령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2시간이라는 런닝타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만큼 엄청나게 몰입감이 넘치더군요.

사실 전체적인 플롯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두 전령이 목숨을 걸고 에린무어 장군의 명령서를 전달한다는 내용인지라 자칫 스토리적인 재미가 좀 떨어져보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실감 넘치는 배경들(엄청난 스케일과 디테일의 참호, 건물과 지형)과 CFC(Continuous Follow Camera)라고 불리우는 카메라 워크로 캐릭터들을 끊임없이 쫓아 관객들로 하여금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노맨스 랜드에 직접 들어가 있는 듯한 착시가 들게 할정도로 몰입감을 높여서 스토리의 부족한 점들을 모두 상쇄시키더군요.

여기에 IMAX 스크린이 주는 압도적인 화면과 전쟁영화에서 극대화 되는 사운드의 강렬함까지 더해져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미나게 잘봤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관객들이 이 작품을 100% 이상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유럽문화권이 아니라서 겪을 수 밖에 없는 1차세계대전에 대한 사전지식, 특히 파스샹달 전투에 대한 사전 공부를 조금하시고 관람하신다면 훨씬 더 몰입해서 관람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관람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1917 추천합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Greentea 님의 리뷰
2020.02.09 00:42:51
영화의 서사가 비로소 관객의 서사가 될 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더불어 2020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의 가장 유력한 수상 작품으로 화제가 된 작품 <1917>을 개봉 전 아카데미 기획전으로 미리 만나고 왔다. 미리 만나본 관객들의 평들이 정말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이미 관람 전부터 <1917>은 기대 그 자체였다.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는 자연스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가 떠올랐는데 <1917>은 어떤 느낌일지, 대중들에게 익숙한 기존 전쟁영화 형식과는 또 어떻게 다를지 등 많은 궁금증을 가지면서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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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1917>은 전쟁 영화 장르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모두 다 담으려고 욕심 부리지 않았다. 오롯이 깔끔한 서사, 즉 한 인물만을 따라가면서 진하고 쓰린 잔상들을 담아내는 데에 주력했다. 이 리뷰에서 개인적으로 적어보고 싶은 <1917>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롱테이크, 미시적 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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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리뷰 타이틀에서 언급했듯이, <1917>은 영화의 서사가 비로소 관객의 서사가 되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내가 1차 세계 대전 현장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소 형식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1917>은 진짜 본질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와 그 잔상들을 담아내는 롱테이크 원샷.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편집점이라고는 찾기 어렵고, 끊기지 않는 호흡에 관객들은 완전히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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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17>은 전쟁의 총성과 잔혹한 현장의 잔상을 비추는 것이 아닌 한 인물만을 따라가는 미시적 서사를 지니고 있다.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기 쉽고 롱테이크 원샷으로 완전히 인물에게 몰입된 관객들의 본능을 자극한다. 생존이라는 몸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필사적인 본능을 꼭 극장에서 '체험'해보라.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3.04 01:02:35
<1917>, 샘 멘더스가 되찾아려는 로즈버드
감히 영화의 한계를 시네마토그라프의 한계라 말할 수 있을까. 필름을 기반으로 한 카메라는 필름의 길이만큼만 숏을 유지하기가 가능했다. 즉, 필름 한 롤이 롱테이크의 최대 길이였던 셈이다. 몽타주와 데꾸빠주가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영화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던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가 “사전 속에 배열된 단어들처럼 이미지들은 그들 각자 위치와 주변 이미지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힘을 뿜어내고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라 언급한 적 있다. 이 배열은 영화가 현실의 시간과 동치될 수 없는 기술적 한계에서 나왔다. (<카메라를 든 사람>같은 시도가 있기는 했다.) 이 필름으로부터의 해방이 있기까지 영화는 숏의 행간에 의미를 두었다. 영화라는 매체가 그 한계를 갖고 발명되었기에 영화도 그 한계에 따라 폼이 바뀐다. <1917>은 디지털 영화의 힘을 등에 업고 인물을 프레임 밖으로 이탈시키지 않으려 한다. 숏의 행간을 삭제하고 하나의 시공간를 찍도록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오로지 관객이 스코필드의 육체에 집중하도록 카메라는 따라 움직인다. 이같은 선택은 양날의 검처럼 날서있다.

양날의 검을 다루기 전, 전제로 두어야할 것이 있다. 관객의 지각능력은 한정되어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그것을 전부 인지하지 못하며, 그 지각을 수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사건을 보더라도 각 개인이 그 사건을 기억하는 범위와 디테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이 보려했던 것만 볼 수 있고, 그 순간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무의식의 잔영이 끼어들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장면을 관객이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는 발상은 불가능하다.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본인이 그 사건에서 본 것들을 파편화된 조각들을 조립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파편으로 흩어진 이미지들의 나열일 뿐인 영화가 하나의 서사이고, 스토리가 되는 것은 감독의 내러티브 배치 덕이 아니다. 그 내러티브 배치를 인식하고 재배열하는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한 사건을 보되, 우리는 각자 다른 내러티브를 조립할 수 있다. 그러나 <1917>은 오직 하나의 서사를, 하나의 시공간만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모든 숏을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히 한 시공간을 복원할 수 있다는 체험을 마련하려했으나 그 시도는 원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기계는 모든 것을 촬영하고 지각할 수 있으나, 인간은 그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차이만 확실하게 할 뿐이다. <1917>은 그 실패를 알듯이 중간 중간에 편집점을 배치하고 관객의 시선을 돌린다. 특히 중간에 휴식점을 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숨을 돌릴 타이밍까지 부여한다. <1917>은 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다룬 영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영화다. 이 점이 이 영화를 찬반으로 나눈다.

<1917>의 어법은 스탠리 큐브릭이 <영광의 길>에서 시도하려했던 것들의 연장선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어올려 끝까지 참호를 훑는 큐브릭의 집념은 전쟁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낸다. 그가 집중하려 했던 것은 아군이 죽어나가는데도, 그들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협잡이다. <영광의 길>과 똑같은 촬영기법으로 <1917>은 그 현장에 있던 군인을 따라간다. <영광의 길>처럼 <1917>은 끝내 군인 그 개인이 아니라 상관들이 전쟁을 끝낸다는 결론으로 직결된다. 블레이크에게 우연히 끌려나온 스코필드는 장군에게서 제 2중대로 가서 “명령서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블레이크가 “길을 잘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지에서 나와 적군이 철수해있는 전선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쥐가 부비트랩을 밟아 그들은 죽을 위기에 처한다. 블레이크는 그를 구하고, 형에게 안부를 전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에쿠스트 숲으로 가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쥐에게 귀가 갉아먹힌 전사의 스토리를 건네고, 마을로 간다. 마을에서 그들은 추락한 비행기에 있던 독일군을 구해주려했지만 그 독일군은 블레이크를 죽인다.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자신이 맡은 임무를 전달해주고 죽는다. 스코필드는 그 뒤 에쿠스트 마을에서 잠입한 독일군에 의해 죽을뻔했으나, 그곳을 탈출해 겨우 제 2중대에 도착한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후였고, 스코필드는 더 큰 피해를 막으려 달려간다. 대대장은 전투를 멈추나, “어차피 며칠 뒤면 다른 명령이 내려올 것”이라 말한다. 그는 막사에 돌아와 귀를 다친 블레이크의 형에게 블레이크의 안부를 전한다. 그 뒤 그는 나무에 앉아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사진을 본다. 그 뒤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자막이 나온다. 이런 플롯 구조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을 마주하면서 느낀 <영광의 길>과 비슷하다. 왕좌로 가지 못한 채, 스코필드는 지옥에 도착하고 홀로 남아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절망을 샘 맨데스는 안에서부터 뒤집는다. <영광의 길>에서 참호를 이동하는 카메라는 양옆으로 퍼진 군인들을 훑는 듯한 시선을 보인다. <1917>의 샘 멘데스는 그 참호씬에서 수많은 병사가 아니라 단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춘다. 대신 <1917>이 택하는 방식은 길이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분투하면서 군인들과 함께 카메라가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참호를 지나가는 병사들, 참호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것들의 질감과 마주함으로써 <1917>은 <영광의 길>에서 양 옆으로 밀어버린 인간을 실체로서 다룬다. 카메라는 몸이 되어 스코필드를 따라가며, 그가 부딪힌 것들을 한 순간도 빠짐 없이 체감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필름의 육체를 이기고 계속해 육체의 움직임을 밀어붙인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의 질감을 체감하는 것이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로 직접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전해준 모든 순간을 체험하고, 블레이크가 스코필드에게 임무를 계승했듯 관객에게 그 할아버지의 순간들을 계승시킨다. 이는 <로드 투 퍼디션>에서 아버지가 “너희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라 고백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하지만 <1917>은 한 개인을 비춰, 그 외적인 것들을 배경으로 만든다. 이때 카메라는 언제나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앞에 선행하고, 그들이 예측할 수 없는 동선으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이 지나가는 동선에는 매순간 철조망에 걸려 죽은 인간의 시체, 학살당한 소, 심지어 독일군 등 죽음의 요소가 나온다. 그러나 이 죽음들은 명령서를 전달하러 가는 스코필드를 수식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이는 카메라의 어법에서 온다. 카메라는 대상을 찍을 때 표준렌즈를 써 무언가를 왜곡하지 않고 심도를 깊거나 얕게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는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비추지만 이런 미장센은 전쟁의 참상을 소비하고 눈요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죽음을 무덤덤하게 비추는 듯 하다가 단 하나의 씬에서 문제를 드러내보인다. 바로 독일군을 다룰 때다. 스코필드가 독일군에게 들켰을 때, 스스럼없이 독일군을 목졸라 죽인다. 그때 카메라는 독일군이 죽은 모습을 패닝 숏으로 비춘다. 이런 씬들에서 카메라의 윤리를 언급할 수 있으나, 이 씬들이 옳냐 그르냐를 떠나 이 씬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봐야한다. 죽음은 자기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로 그 삶의 의의를 되찾는다. 하지만 스코필드에게 삶은 죽음을 외면하고 끝까지 달려야하는 것이었다. 솜 전투에서 살아남아, “땅 1cm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현장을 목격한 스코필드는 전쟁을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그는 와인과 훈장을 바꾸고,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려한다. 희망도, 의미도 없다는 상태에 자신을 유예하면서 그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영화는 이 스코필드가 벚꽃과 시체가 대비되는 세계, 나무가 죽고 살아나는 아름다운 세계를 체험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루지만 그 과정은 도식적이다. 영화는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이 에피소드는 각각 하나의 의미를 쌓아나간다. 이는 게임에서의 레벨업 과정으로 보인다. 첫 번째 목표지에 다다르기까지는 스코필드는 화면에 나온 죽음을 “불쾌한 것” 정도로만 여긴다. 벙커에 도착해 그는 첫 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는다. 그 뒤 블레이크가 죽고, 다시 한 번 죽을 뻔한다. 그리고 살아남으려 다시 한 번 사람을 죽인다. 이처럼 몇 차례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이 각성하는 스토리 구조는 죽음을 외화면으로 두려는 카메라와 충돌한다. 그리고 독일군을 죽일 때 스코필드가 각성이라도 하는 듯 숏을 완성시킨다. (<사울의 아들>이 죽음을 포커싱 아웃시키고 바깥으로 밀어내 상상으로만 그것을 상상하게 만들게 했던 것과 반대다.) 이 영화가 게임적이라는 비판은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가 지닌 게임적 구도와 맞닿는다.지옥의 목시록>을 연상시키는 에퀴스트에서의 장면들이 언뜻 1인칭 FPS 게임처럼 느껴진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7>이 주는 체험의 매혹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이 영화가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모든 지각은 파편화되어있고, 한 사건에서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샘 멘데스는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파편화된 이야기를 억지로 하나의 이야기로서 만든다. 중간에 편집점을 고의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그는 카메라가 그 대상을 완벽히 복원하고 있다는 기교를 과시하지 않는다. 이야기란 시간을 억지로 봉합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매 순간이 개연성 없이 닥쳐오는, 실존에 대한 우화라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인물을 앞서지만 그들이 무슨 일을 겪을 지 예언해주지는 못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그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 쥐와 독일군 등으로 인해 매 순간 죽을 위기를 겪는다. 어쩌면 개연성이 없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게임이자 로드무비를 카메라로 헐겁게라도 이어붙인 것은 이 카메라가 우리에게 무엇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첫 번째 장소, 독일군이 철수한 벙커로 들어갈 때 카메라는 주인공의 발걸음보다 조금 앞서서 벙커로 들어간다. 그때 어두운 입구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각도는 호러영화의 구도에 가깝다. 그 뒤, 쥐가 폭탄을 밟을 때의 순간은 히치콕식 서스펜스다. 스코필드가 에퀴스트에서 튀어나가는 장면은 스릴러의 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1917>은 이처럼 하나의 카메라가 수많은 장르를 뒤바꾸며 연출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개연성이 없이 마구 쏟아지는 장르의 기원은 결국 마지막 크레딧에 나온 “할아버지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왕을 즐겁게 하려 1001가지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천일야화의 공주처럼, 이야기의 선행조건은 변박이자 불균질함이다. 사소할 지도 모르는 무용담을 마구 부풀려 이야기했던 할아버지의 “구전동화”는 샘 멘데스에게 영웅담이자, 스릴러이자 호러영화였을 것이다. 그 원체험이 샘 맨데스를 영화로 이끌었다면 <1917>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매 순간 예측할 수 없이 흥미진진했던 할아버지의 무용담이었을 것이다. 카메라가 비윤리적일지라도, 이 영화가 그것을 무릅쓰고 체현하려는 것은 그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샘 맨뎃그가 그간의 영화에서 복원하려 했던 것은 아버지-나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는 일이었다. 그 원체험은 아버지-나가 오롯이 서있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일 것이다. <1917>은 그래서 나에게는 샘 멘데스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방식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박군 님의 리뷰
2020.03.01 17:06:16
[백열] 1917
안녕하세요 박군입니다. 드디어 3회차를 찍었습니다. 일반 2D, 4DX2D, Superplex G 까지 보고왔는데, 와.. 저는 정말 원테이크 체질이 맞나봐요... 2018년 <클라이맥스, 2019년 <새터데이 애프터눈>, 2020년 <1917>... 정말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끊지않고 촬영을 한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눈에서는 한번만에 촬영을 한 것처럼 아주 편집도 촬영도 잘한 작품입니다. 정말 저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좀 많이 갈리는 듯 합니다. 저는 좋았습니다. 일단 그 이유를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게임을 하듯이 이 영화에서 몰입을 할 수가 있었을 뿐더러 전쟁의 현장에 마치 제가 간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이 영화는 내용이 좀 단순하죠. 명령장을 매켄지 중령에게 전달을 해야한다는거죠. 이 작은 목표를 보여주기위해 잔혹하지만 무섭고, 스릴넘치는 전쟁터로 우리들을 초대한 <1917>영화를 리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샘 멘데스'감독의 작품으로 <007 스펙터>, <007 스카이폴>, <아메리칸 뷰티>...등 수많은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 연출을 맡았습니다. '샘 멘데스'감독의 작품은 <1917>이 처음인데 이번 영화는 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지 맥케이 배우와 딘-찰스 채프먼 배우가 주연으로 나옵니다. 거의 단독주연은 바로 '조지 맥케이' 이죠. '조지 맥케이'는 이전 <캠틴 판타스틱>, <선샤인 온 리스>, <디파이언스>, <런던 프라이드>...등 많은 작품에 나왔고, '딘-찰스 채프먼' 배우는 <더 킹: 헨리 5세>,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커뮤터>, <내가 잠들기 전에> 작품에서 나온 배우들입니다. 그 이외에도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리차드 매든'...등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비주얼

​원테이크 처럼 영상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죠. 그것을 바로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고 합니다. <버드맨> 영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방법이 나왔죠.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촬영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럽게 영상이 이어지면서 이렇게 여러장면들을 정말 올입할 수 있게 만든건 물론, 전쟁의 무서움과 스릴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스케일이 큰 영화인 만큼 사운드와 분위기도 형성을 잘 해줬으며, OST가 이 영화에서 한 몫을 해 주었습니다.

연기

​이 영화가 무려 4개월 동안 리허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배우들의 부담도 가장 컸을거라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 '조지 맥케이'배우가 더더욱 많이 부담이 컸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조지 맥케이'배우의 연기는 진짜 대박이였습니다. 카메라에서 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열심히 연기를 하면서 불안과 분노, 슬픔과 안도 이 모든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거기에서 처음에 같이 등장하는 '딘-찰스 패프먼'배우의 연기도 좋았고, 뭔가 겁이 많은 듯 하면서 착하고 순진한 캐릭터를 잘 보여준 배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 외에도 짧지만 굵게 나온 '마크 스트롱'배우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배우도 모두 좋았습니다.

스토리

​단순한 스토리지만 이 영화속에서 가족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영화입니다.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것도 아니고 이해가 잘 되기때문에 이 영화는 남녀노소가 다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00명의 목숨을 구하기위해 먼 거리를 걸어가서 목숨을 바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이 영화는 당황하지 않고 잘 보여주고, 처음과 마지막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을 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다보면 정말 많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볼 수가 있는데 이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2D, 4DX, Superplex G 까지 모든걸 다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큰 화면으로 보기에 최고인 영화이면서 저는 이 영화를 볼때 집중을 하면서 더 몰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이런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원테이크 처럼 관객들에게 몰입을 시켜줘서 마치 게임을 하는 느낌을 들게 해 주고 가볍게 보이지만 상당히 무겁고 어두운 영화라는것을. 그리고 정말 촬영과 비주얼이 최고로 좋았다는 것을.

게임을 하듯 저한테는 엄청난 몰입감과 스릴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보는내내 상당히 짜릿하고 스릴넘치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이 들어 별점 4점과 초록색 신호등을 드렸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doona09 님의 리뷰
2020.02.14 14:16:49
시체를 넘고 넘어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
영화 <1917>는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은 1인칭 시점의 영화다. 롱테이크와 핸드헬드로 담아내는 시각은 시종일관 스코필드를 쫓아다닌다. 이런 장치에서 느낄 수 있는 긴 호흡과 현장감은 물먹은 신발처럼 무겁기만 하다.

스코필드와 같은 시점은 오로지 전쟁을 체험하게 만든다. 무작정 관객을 참호 속에 밀어 넣고 캐릭터와 동행을 종용한다. 같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두려웠으며, 벅찬 안도까지 느낄 수 있다. 생생한 카메라는 추위와 배고픔, 피로와 고통에 지친 병사들을 훑으며 전장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담는다.

이야기의 출발은 이렇다.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을 통해 구상하기 시작했고 실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메시지를 전했던 경험담에 살을 붙여 드라마틱 하게 완성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4월.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는 함정에 빠진 데번셔 2대대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전달할 임무를 맡는다. 임무는 오랫동안 공들인 독일군의 함정에서 빼내야 한다는 것. 작전 중지라는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의 명령을 전하고, 블레이크의 형(리차드 매든)과 아군 1600명을 구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빨리 걸어가야만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도 연료도 아니었다.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이 먼저였다. 24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내가 멈추면 1600명의 목숨도 멈춘다.

동전의 이면 같은 생사(生死)

전쟁 중이지만 세상은 막 피어난 삶과 죽음의 순환은 계속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여정을 떠나는 순간 마다 죽음과 삶이 혼재되어 있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둘을 따르며 죽어 있는 시체, 허리 잘린 나무, 죽은 말과 소, 개를 훑는다. 파괴된 마을과 부서진 건물 사이에 아이러니하게도 잔인한 4월은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과는 다르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은 파릇한 생명이 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번씩이나 등장하는 하얀 체리나무는 아름다운 풍경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죽은 나무도 자주 등장한다.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순간에는 항상 나무가 있었다.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허리를 자른 나무들이 길을 막아서기도 하지만, 소중한 땔감으로 쓰이며 따스한 불길이 되어준다. 떠내려 온 나뭇가지를 부목 삼아 위험천만한 계곡에서 살아남고, 쓰러져 있는 나무더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항상 스코필드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생명의 존재 중 하나다.

역설적이게도 폐허에 피어난 체리나무 꽃, 푸른 나무들, 숲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그리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한 병사의 노랫소리는 마치 이상 세계 같다. 어느새 목표도 잃어버린 채 경쟁이 된 무기력한 전쟁 속 자연은 언제나 생동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쓰인 장치가 없다. 여정을 떠나던 중 발견한 우유를 수통에 넣어둔 사소함도 훗날 쓰임새 요긴한 생명수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연한 희망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을 가졌다가도 시시각각 전술과 명령이 바뀌는 전쟁터에서는 말이다. '요단강을 건너 사랑하는 이를 보러 집에 가네'라는 구슬픈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희망고문은 안타깝게도 모두가 괴멸해야만 끝난다.

세상의 모든 명암(明暗)

영화는 한 번에 촬영하는 '원 테이크(one take)', '롱 테이크(long take)'가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느낌을 위해 장면을 나누어 찍은 후 장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는 기법인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배우 연기와 동선, 촬영 세트 등을 완벽히 통제해야 했고, 오차 없이 진행되는 촬영과 편집을 통해 의미를 격상 시켰다.

<블레이드 러너 2049>로 15번의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끝에 촬영상 트로피를 거머쥔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는 <1917>을 통해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빛의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전쟁터의 무채색과 봄의 싱그러움이 대비되며 영화의 비주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는 병사 스코필드가 당도한 마을에서 또 한 번 기지를 발휘하는 데 조명탄을 쏘아 생긴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그래픽 노블이란 착각마저 든다. 선명한 명암대비는 망가진 마을을 감히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음악도 경이로움에 힘을 보탠다. <덩케르크>의 한스 짐머가 있다면 <1917>에는 마이크 뉴먼이 있다. 감정의 강약 조절을 취한 탓에 전쟁의 잔혹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돕는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기술의 성취에 매료되어 밭은 숨을 몰아쉴 것이다.

다만 영화 <1917>은 호불호가 가릴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 하는 전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작은 화면에서 본다면 지루함에 몸서리칠 것이다. 때문에 단연코 IMAX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그 효과를 톡톡히 받을 수 있겠다. 사람의 시각의 한계치를 경험하는 넓은 화각의 웅장함이 1인칭 슈팅게임같이 당신에게 움직이라고 동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SW 님의 리뷰
2020.02.12 01:19:18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단순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마법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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