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리뷰
액션 / 2019
30.19%
2.32점
DAY 님의 프로필 사진
DAY
2019-06-06 11:01:59
1. <엑스맨> 시리즈는 코믹스의 인물들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 위치에 놓으면서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차별점을 꾀한 시리즈였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연대해 나가기 위해 협력하고,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방식의 차이로 대립하고, 그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하나의 가족으로 다시 탄생하는지. 이러한 부분들에 많은 사람들이 <엑스맨> 시리즈에 빠져들곤 했다.

이러한 <엑스맨>만의 독특한 개성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공이 지대했다. 각 인물의 성장과 심리 변화를 세심하게 짚어내는 그의 연출력 덕분에 그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엑스맨>, <엑스맨 2>,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등의 작품들은 숱한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 이어 또 한 번 그가 떠나간 <엑스맨: 다크 피닉스>를 두고 많은 우려와 불안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마침내 공개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크 피닉스>는 전작의 무게감들에 눌려 본연의 임무를 미처 다하지 못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브라이언 싱어가 떠난 감독 자리는 엑스맨 시리즈에 제작자와 각본가로 참여해왔던 사이먼 킨버그의 몫이었다. 똑같이 '피닉스'를 소재로 한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각본을 쓰기도 했고, 브라이언 싱어와 작업을 해봐서인지 몰라도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지난 시리즈들의 실패와 성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잘 녹여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크 피닉스>를 보면 킨버그 감독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배운 걸 잘못 써먹었을 뿐이고, 고민이 너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을 뿐.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평이 안 좋기로 손꼽히는 <최후의 전쟁>과 <아포칼립스>는 메인 플롯이 부각되지 않고 여러 세부적인 플롯들이 혼란스럽게 섞이면서 영화가 리듬감을 잃고 난잡해졌던 케이스다. <최후의 전쟁>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야 할 피닉스가 또 다른 소재인 '큐어' 뒤섞이면서 그 비중과 분량이 부족해진 것이 문제였고, <아포칼립스>에서는 아포칼립스에 집중하지 않고 진, 싸이클롭스, 울버린 등 기타 캐릭터들을 위해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분량, 비중, 스토리 전개의 중심을 오롯이 '진 그레이/피닉스'에게 둔다. 따라서 피닉스의 흑화가 진행되고 진 그레이의 내적인 갈등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둔 초반부 1시간 가량의 스토리 전개는 상당한 흡입력을 지니며 <최후의 전쟁>을 아쉬워했던 팬들의 실망감을 다소 달래줄 수도 있다. 이는 진 그레이를 연기한 소피 터너의 역할도 크다. 사실상 원 톱 주인공으로서 극을 끌고 가야 했던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피닉스라는 다른 존재와 공존할 때 생기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 과거 기억에 의한 트라우마,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한스 짐머가 담당한 환상적인 음악도(근래 들어 가장 좋은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진의 내면을 잘 표현해준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문제로 지적받았던 액션 역시 진일보한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MCU 영화들을 보면서 뭔가 깨달은 점이 있는 듯,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빠른 숏 전환을 통한 박력적인 액션 씬과 피지컬적인 액션,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각 인물들의 능력이 서로 궁합을 이루면서 조화되는 장면들은 일품이다. 뉴욕에서의 시퀀스는 <시빌 워>를 연상시키고, 기차 시퀀스는 영화와 별개로 그 시퀀스 자체의 긴장감이나 절박함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영화 초중반부만 해도 전작들에서 지적받았던 단점들을 일부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전작들을 답습함과 동시에 엑스맨 시리즈 고유의 특징과 장점들까지 모두 잃어버리면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다시 한번 관객들의 탄식을 자아낸다.

3. 이는 사이먼 킨버그 감독이 <엑스맨: 다크 피닉스>로 처음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엑스맨처럼 존재감이 확실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인물들 간의 분량을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킨버그 감독의 부족한 연출력과 편집은 각 인물의 서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만다. 특히 배우의 좋은 연기력과 별개로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활용하는 방식에서 그 문제가 유독 드러난다. 쉽게 말해 대사를 통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과 영상, 셔레이드만으로 제시해도 되는 장면을 잘 구분하지 못한 연출에 재촬영에 재촬영을 거듭한 짜깁기 편집이 만들어낸 불상사인 것이다.

<다크 피닉스>가 진 그레이에 집중해서 그녀의 내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피닉스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고 그간 시리즈를 지탱해온 나머지 인물들의 분량을 급격히 줄일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에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중 찰스와 에릭의 대립과 화해, 행크와 레이븐의 심리 변화, 진과 싸이클롭스의 관계, 스톰과 나이트크롤러의 심리, 에릭과 퀵실버의 부자관계, 빌런들의 목적과 동기 등 진을 제외한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대사 한 두 마디로 설명되거나 짧 숏들로 암시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액션 시퀀스에서도 액션의 퀄리티와는 별도로 인물들의 감정선은 느끼기 힘들며 몇몇 캐릭터는 아예 활약할 기회마저 빼앗기기도 한다. 그 결과 <다크 피닉스>는 돌연변이들, 소수자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난다는 전체적인 스토리보다는 '진 그레이' 만의 스토리가 돋보일 뿐이고, 영화의 결말이 시리즈 전체의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며 그간 <엑스맨>을 지탱해온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마무리로도 부적합해 보인다. 이 영화가 레이븐(미스틱)을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물론 찰스와 에릭도 마찬가지다.

또한 영화 초반부와는 달리 후반부 들어서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진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다. 이는 빌런을 활용하는 방식과 맞물리는데, 다크 피닉스라는 힘을 빌런이 끌어내고 찰스가 이를 막으려는 대립적 구도의 연출이 엉성하기 때문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맡은 빌런은 관련된 설명도 부족하고 캐릭터 자체가 기계적이고 도구적이다 보니 그녀가 진을 이용하려는 상황이 와 닿지 않을뿐더러, 찰스가 진을 설득하기 위한 장면들도 맥락에 맞지 않다 보니 진의 변화가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진-찰스'와 '진-빌런'의 관계를 대비시키면서 기존 에릭과 찰스의 대립이 아니 새로운 구도를 보여주고 돌연변이의 리더로서 찰스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매그니토와도 다른 새로운 빌런의 매력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4. 사회 내에 존재하는 소수자 집단이 지배적인 사회에 맞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공존하고 서로 연대를 이루는 방식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개성과 주제의식이 사라진 것. 이것이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또한 결말 역시 <엑스맨: 데이즈 오프 퓨처 패스트>가 보여준 미래와 다르게 매듭지어지는 등 전작들의 단점을 없애기 위해 시리즈의 전통과 핵심마저 내팽개친 셈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다. 결국 <엑스맨>이라는 고유함은 다수 잃고, 화려한 액션과 훌륭한 음악(음악만큼은 시리즈 최고라 할 만큼)으로 범벅된 평범한 블록버스터가 된 피날레로 느껴지기에 <엑스맨>의 팬으로 더욱 안타깝기도 하다. 그저 지루하지 않고 2시간 내내 몰아붙여주기에 <아포칼립스>보다 낫다는 점을 위안 삼을 뿐.

A(Acceptable, 무난한)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웠네 리뷰 전문 보기
액션 / 2019
90.48%
3.38점
수위아저씨 님의 프로필 사진
2019-06-13 16:42:16
1. 우리가 마동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강력한데 귀엽기 때문이다. 대단히 안 맞는 두 개의 이미지가 이상하게 어울리는 시너지 효과는 '마동석'의 독보적인 고유영역이 돼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2편까지 그리 귀엽지 않았다. 다만 그는 겁나 세다. 이렇게 센 캐릭터는 저 옛날 척 노리스나 스티븐 시걸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강력한 존 윅은 3편에 이르러서 금강불괴 수준으로 강력해졌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귀여움까지 탑재했다. 이것은 마치 날으는 옵티머스 프라임이자 묠니르 든 캡틴 아메리카와 같다. 원래 센데 더 세졌다. 이토록 사기에 가까운 액션히어로의 탄생을 어찌 감당해야 할 지 모르겠다.

2. '존 윅'을 1편부터 대충 정리해봤다. '존윅'은 "존 윅은 이런 사람이다", '존윅-리로드'는 "존 윅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존윅3:파라벨룸'은 "존 윅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미리 언급하자면 아마도 2021년 나오게 될 '존 윅4'는 "존 윅이 이만큼 빡쳤다" 정도로 나올 듯하다. 그만큼 점점 재밌는데 앞으로 더 재밌어질 영화가 '존윅'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최고 매력은 멋 부리면서 액션을 하는 것이다. 레트로풍 색깔 아래 속도감있는 액션을 펼치면서 멋도 부리고 즐거움도 준다. 사실 이것은 '리로드'부터 이어온 정서다. '파라벨룸'은 앞서 언급한대로 여기에 더해 '귀여움'을 탑재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스포일러라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존 윅과 악당들 모두...귀엽다.

3. '파라벨룸'은 인간 존 윅에 대해 여러 정보를 준다. 그 여러 정보 중 꽤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싸움실력의 기원이다. '리로드'까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파라벨룸'에서는 유난히 잡아던지고 메치는 액션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구사하는 무술의 기원은 레슬링이다. 1편부터 꾸준히 느낀 것은 "존 윅은 사실 싸움을 잘하지 않는다. 그는 맷집이 겁나 좋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왜 맷집이 좋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3편에서도 존 윅은 훌륭한 맷집을 보여준다. 역대급으로 싸움 잘하는(귀여운) 악당들이 등장하지만 존 윅은 버티고 버티다가 이긴다. 역시 맷집에는 장사가 없다.

4. '파라벨룸'에서 이야기를 논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사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꾸준히 '존 윅은 겁나 세다'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매번 더 강력한 적을 등장시키고 존 윅을 더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파라벨룸'의 이야기에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존 윅이나 윈스턴(이안 맥쉐인)의 심경변화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존 윅의 가오가 떨어진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존 윅이 '더 빡쳐서' 더 강력한 적과 마주하기 위한 '밑밥'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이야기와 상황조차 액션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액션'을 향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 정말 좋아한다. 목적이 뚜렷하고 오직 그것만을 향해 뛰는 영화.

5. 결론: 혹자들은 존 윅이 타노스를 잡으러 가는 합성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 강력한 액션영웅이라면 타노스보다 척 노리스를 먼저 만나는게 급선무다. 정 안되면 '최고 회의'의 집행관으로 '익스펜더블'이 몽땅 출동하는 그림도 보고 싶다. 어쨌든 존 윅하고 게임이 되려면 척 노리스가 출동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핵폭탄이라도 쏴야 존 윅이 죽을 것 같다. 리뷰 전문 보기
애니메이션 / 1988
98.53%
3.92점
여주찬 님의 프로필 사진
2018-06-19 14:01:54
1.

"바람이 되고 싶어"
 
살면서 본 영화 대사 중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뭔지 물어보는 문장을 읽고 나는 곧바로 <이웃집 토토로> 속의 이 대사를 떠올렸었다. 몇 년 전 토토로를 본 뒤로 마음 속에서 항상 메아리치던 말. 어제는 그 말이 처음 불어오던 순간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몇 년 만에 다시 영화를 틀었다. 영화는 흘렀고 어느새 팽이를 타고 바람을 따라 유영하는 토토로의 배에 찰싹 붙어 있는 사츠키가 메이에게 그 말을 던진다.

"메이, 우리가 바람이 됐어!"

응? 뭐야 이거 내 기억과 다르잖아! '바람이 되고 싶어'가 아니라 '바람이 됐어'였다고? 따져보면 바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아직 바람이 되지 못한 상황에 어울린다. 이미 아이들이 바람이 되어 날고 있던 극 중 상황과 다르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대사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기대했던 대사가 나오지 않자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만약 원래 대사가 내가 기억하던 대사보다 좋았다면 실망스런 마음은 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곧 나는 바람이 됐다는 말보다 바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더 바란 거였구나. 그런 마음이 들자 어쩐지 서글퍼졌다. '바람이 되고 싶어'와 '바람이 됐어' 간의 차이는 어쩌면 나와 이 아이들 사이의 간격은 아니었을까. 더 이상 토토로를 볼 수 없는 나, 고양이 버스에 탈 수 없는 나, 그래서 바람이 될 수 없는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영화를 추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내 상상 속 대사를 버리고 싶지 않다. 그냥 가지고 갈래. 앞으로도 그 '바람'을 가지고 토토로를 추억하고 싶다 나는. 바람이 됐던 아이들을 보면서 바람이 되고 싶다고 갈망했던 내 모습으로, 토토로를 남겨두고 싶다. 그런 내 모습을 잃고 싶지 않다.


2.

"할머니 정원은 보물 언덕 같아"

콩, 가지, 오이, 토마토, 옥수수를 잔뜩 수확한 사츠키는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나 천진한 표현이라니. 내게 <이웃집 토토로>는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보물 마을 같았다. 처음 이사 온 메이와 사츠키는 집과 집 주변을 신나게 뛰어논다. 동구리(도토리지만 동구리라 부를래) 하나하나를 신기해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찾기를 그렇게나 재밌어하고 까망이(스스와타리지만 까망이라 부를래)를 검뎅이 귀신이라 부르며 찾아다니고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걸 재밌어하는 아이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매순간순간이 얼마나 멋있고 흥미로운 그림일까. 새의 날갯짓에 감탄하고 꽃의 개화에 탄성 지르고 지는 노을에 감동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메이와 사츠키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나 풍성한 영화가 있을까. 흐르는 냇물 소리, 문이 드드륵 열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자전거의 따르릉 소리, 아빠를 기다릴 때 빗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들이 일깨워주는 감각. 때때로 흐르는 음악 역시 눈물나게 감동적이다. 토토로는 또 어떤가. 물방울 하나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나 좋은지 눈을 크게 뜨며 활짝 웃는 토토로에게도 마을은 매순간이 보석 같은 곳이지 않을까. 역시 바람이 되는 특권은 매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존재에게만 허락되는 걸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적인 속도 역시 그 순간순간을 더 살펴보게 만든다. 달팽이가 줄기를 오르는 모습을 느긋하게 보여주고, 호수에 동심원이 퍼지는 시간을 끝까지 따라간다. 토토로와 메이의 만남을 그 세계만이 유일하다는 듯 천천히 꽉 차게 담아낸다. 먹구름부터 똑 하고 떨어지는 한방울을 보여준 뒤에야 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자매, 갑자기 등장한 토토로 역시 차분하게 비 아래서 한참을 서있는다. 또 그들 옆에 무심하게 걷는 두꺼비를 관조한다. 달보다 높은 곳,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꼭데기에서 오카리나를 부는 토토로네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영화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꿋꿋함이 참 좋다. 물리적으로 같은 속도의 시간을 살면서도 더욱 의미없이 흘러가버리는 내 시간도 더 꽉 붙잡아 두고 싶어지는 영화다.

메이가 처음 대왕 토토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지개 너머 꿈의 세계로 가는 도로시가 떠오르기도,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도토리 덕후 토토로의 도토리 길을 따라 도착한 입구를 지나면 신비로운 작은 통로가 나온다. 열심히 형 토토로와 동생 토토로를 따라가면 등장하는 기세 좋은 대왕 토토로(잠만보가 생각난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신비로운 풀과 꽃이 가득한 토토로 아지트에서 누리는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낮잠. 정녕 나는 토토로 배에서 잠에 들 수 없는건가. 바람이 되는 새벽도 황홀하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있을까. 어쩌면 오늘 나를 스치고 갔던 바람도 다른 토토로나 고양이 버스가 지나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토토로는 자꾸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3.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

환상적인 새벽이 지나 도착한 아침에, 사츠키와 메이가 깨어난다. 곧바로 마당을 바라보지만 토토로와 함께 키워낸 나무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실망감은 이내 환희로 바뀌는데 그건 바로 그곳에 심었던 도토리에서 싹이 난 것이다! 그러면서 메이와 사츠키는 바로 이 대사를 외친다.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새싹이 난 것만으로도 토토로를 상상하며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겨우 새싹이 난 것 뿐인데 저렇게나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토토로가 준 선물은 아닐까. 새싹을, 올챙이를, 구멍 뚫린 양동이를, 별 것 아닌 자연의 순간을, 일상의 스침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토토로는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토토로 역시 그런 존재고. 메이와 사츠키가 더 자라서 토토로가 단지 꿈이 되어버리더라도, 그래서 더 이상 토토로가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지라도, 그건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다며 봄의 새순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녀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싶다.


4.

<이웃집 토토로>는 토토로와 애기 토토로들, 메이와 사츠키 말고도 참 따뜻한 어른들이 있다. 까망이를 본 메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스스와타리를 봤나보구나. 착한 사람들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지"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토토로를 봤다며 거짓말이 아니라는 메이에게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아. 너는 숲의 정령을 만났던 모양이구나. 행운이 따른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라고 말해주는 아빠. 이제 나는 토토로와 만날 수 없다. 까망이를 만질 수 없다. 고양이 버스에 탈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믿고 얘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그래도 꽤 괜찮지 않을까. 여전히 귀신이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어하고, 허리를 한껏 숙여야하는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두 딸을 따라 나뭇가지 통로 속을 엉금엉금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5.

메이와 함께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는 정류장 앞의 사츠키.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가 온 동네를 적시고, 해가 떨어져 저녁이 찾아온 길가는 불현듯 외로워진다. 이웃 할머니네에 가있으래도 말을 안 듣는 어린 동생은 편하게도 꾸벅꾸벅 존다. 그런 메이를 챙기며 사츠키는 무서웠다. 엄마는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할까, 아빠는 왜 이렇게나 늦는걸까. 혹시나, 혹시라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메이를 책임져야할텐데. 무겁게 내리는 빗방울이 사츠키의 마음을 짓누른다.

나도 어린데, 나도 토토로가 보고싶은 어린 아인데, 가족의 도시락을 챙겨야 하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하는 사츠키는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메이만큼 순수한 아이인데 사츠키는. 첫째라는 이유로 그녀는 메이 앞에선 아이가 아닌 언니가 되어야 했다. 아빠가 뒤늦게 도착하자 토토로를 봤다며 방방 뛰는 사츠키, 할머니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사츠키, 엄마 앞에서 귀신이 나오는 집을 자랑하는 사츠키에게 참 마음이 쓰였다. 사츠키는 빗 속에선 아빠의, 주말에 오지 못한다는 엄마의 소식 앞에선 엄마의, 갑자기 없어진 메이를 찾으면서는 메이의 부재를 사무치게 걱정했다.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며, 하지만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 하에 나오려는 눈물을 뒤로 미루고 미루는 그녀였을 것이다. 토토로는 이 세번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다. 게다가 토토로는 사츠키가 여전히 아이일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너무 고마웠다. 토토로가 지켜준 건 메이일 뿐 아니라 사츠키였다. 리뷰 전문 보기
현재상영작 10
상영예정작 10
토이스토리 4
애니메이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100%
별점 지수 4.13점
알라딘
어드벤처(모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80.3%
별점 지수 3.18점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액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53.85%
별점 지수 2.77점
기생충
드라마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99.18%
별점 지수 4.46점
사탄의 인형
공포(호러)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액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23.68%
별점 지수 2.11점
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
애니메이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세상을 바꾼 변호인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78.95%
별점 지수 3.05점
엑스맨: 다크 피닉스
액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30.19%
별점 지수 2.32점
이웃집 토토로
애니메이션 / 1988
키노라이츠 지수 98.53%
별점 지수 3.92점
마담 싸이코
스릴러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66.67%
별점 지수 2.94점
마녀배달부 키키
애니메이션 / 1989
키노라이츠 지수 98.18%
별점 지수 3.52점
존 윅 3: 파라벨룸
액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90.48%
별점 지수 3.38점
애나벨 집으로
공포(호러)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비스트
범죄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2.5점
스트롱거
드라마 / 2017
키노라이츠 지수 100%
별점 지수 0점
쁘띠 아만다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100%
별점 지수 3.1점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2.8점
사범
다큐멘터리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액션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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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축제의 열기를 함께 하실 키노라이터를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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