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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리뷰
애니메이션 / 2019
59.38%
3.03점
동구리 님의 프로필 사진
2019-10-11 17:44:48
섬마을에서 살던 호다카(다이고 코타로)는 가출해 홀로 도쿄에 도착한다. 그는 도쿄로 오는 배에서 우연히 만난 스가(오구리 슌)의 오컬트 잡지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스가와 회사 직원인 나츠미(혼다 츠바사)와 일하던 호다카는 유흥업소 직원들에게 붙잡혀가는 듯한 히나(모리 나나)를 구해주게 된다. 여름 내내 비만 쏟아지던 도쿄에서 히나가 하늘에 기도를 하면 날씨가 잠시 맑아진다. 우연으로 시작된 둘의 인연은 히나가 ‘맑음 소녀’라는 것이 밝혀지며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던 중 호다카는 ‘맑음 소녀’에 얽힌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이다. 전작을 통해 흥행은 물론,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일본 서브컬처를 지배해온 ‘세카이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끌어왔던 그는 <날씨의 아이>를 통해 세카이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온다.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과 상당히 유사하다. 청소년인 소년과 소녀의 로맨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하는 듯한 쇼트(전작보다 이번 영화에 배로 많이 등장한다), 거대한 자연재해(혜성 추락과 끝나지 않는 폭우), 두 주인공이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아이디어 등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소녀를 상실한 소년이 소녀를 찾아 모험을 강행한다는 플롯 구조마저 전작과 유사하다. 특히 세카이계에 속하는 작품들에서 반복되어 온 멸망이나 종말의 테마가 두 영화에선 자연재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게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를 반영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에서부터 이 테마를 자신의 중심점으로 잡으려는 모양이다. 때문에 <날씨의 아이>는 나쁘게 말하면 전작의 반복이며, 좋게 말하면 전작의 변주이자 변화이다.


전작 <너의 이름은.>은 분리된 두 평행우주의 접촉이라는 테마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차원에 속해 있던 소년과 소녀는 머리끈이나 쿠치카미자케 같은 소재를 통해 연결되었다. 반면 <날씨의 아이>는 평행우주를 연상케 하는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비’라는 소재를 통해 단일 우주 안에서 퇴적되고 있는 듯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히나의 지표로써 등장하는 맑아진 하늘 아래 남은 물웅덩이나, 후반부 거대한 재해의 묘사는 접촉으로 인한 연결과 구원이라는 전작의 테마와 구별된다. 도리어 <날씨의 아이>의 테마는 하나의 공간 위에 퇴적된 것들, 그리고 그 위에 최종적으로 올라서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일본(특히 도쿄)의 역사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꺼내려한다. 영화 내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기도의 시점 숏들과 끝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신카이 마코토가 <날씨의 아이>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명확해진다. 이 지점에서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이 <신 고지라>와 유사한 전략을 택한 것과는 반대로, 3.11 이후의 일본 영화 중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나 구로사와 기요시의 <산책하는 침략자>, 혹은 소노 시온의 <두더지>와 같은 전략을 꾀하고 있다. 이미 등장한 재난을 취소하거나 피해자를 구원하려 하기보단, 이미 벌어진 재난, 퇴적되어 세계가 되어버린 재난 위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물론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날씨의 아이> 또한 <너의 이름은.>을 비롯한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 혹은 현재 일본 서브컬처계 전반에 걸쳐 있는 불편한 지점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 제물, 구원 대상으로써의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고, 동시에 일본의 무속신앙이나 신화 등을 차용하여 여성의 신체를 신화화한다. 여성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여성의 몸을 훑는 호다카의 시점 쇼트-그놈의 가슴 집착-들을 통해 드러난다. 머리끈과 같은 전작의 모티프가 이번 작품에 와서 반지와 수갑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퇴행을 보여준다. 두 요소가 상대방을 구속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지점과는 별개로 말이다. 또한 일본 수사극의 클리셰를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은 일본 경찰의 묘사, 갑작스레 등장하는 추격전이나 불법 총기, 미성년자 성매매, 소녀가장과 아동보호소와 같은 요소는 꽤나 당황스럽다. 어쩌면 <날씨의 아이>가 신카이 마코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상한 영화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리뷰 전문 보기
서스펜스 / 2019
100%
3점
용크 님의 프로필 사진
2019-10-09 14:57:52
<신문기자>는 동명의 저서와 실제 사학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이다.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점에서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정치 드라마의 등장은 꽤 인상 깊었다. SNS(특히 일본에서 활발한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댓글 조작, 가짜 뉴스, 옐로저널리즘,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미투 운동까지 영화는 시의적인 사건들을 전면에 내보인다.

영화의 뼈대는 내각을 중심으로 한 의과대학 신설을 둘러싼 대립이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기자 요시오카는 이 제보가 단순히 넘길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의 한쪽 공간이 요시오카의 신문사라면 대척점에는 내각정보조사실이 있다. 이곳에서 공무원 스기하라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SNS 댓글 조작과 민간인 개인정보 유포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스기하라가 존경하는 선배인 칸자키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던 스기하라는 요시오카를 만나고 그는 크고 위험한 진실의 벽 앞에서 가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된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할 때 <신문기자>의 장점(이자 단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신문사에서 거의 없는 여성 (그것도 직급이 높아 보이지 않는) 신문기자이면서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요시오카의 배경이 인물을 공격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외롭고 고독한 요시오카에게 불필요한 견제가 달라붙어 일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심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바쳐주는 것은 요시오카를 맡은 심은경의 힘이다. 요시오카라는 인물은 감정분출이 거의 없다. 정치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게 차분하고 혼자 감내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심은경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단함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한다.

영화의 제목은 <신문기자>이지만 (포스터 또한 심은경으로 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를 전면에 내세웠겠지만) 신문기자인 요시오카와 공무원인 스기하라는 거의 같은 비중으로 비친다. 이것을 매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도 영화가 두 명의 주인공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다. 정치 드라마, 특히 저널리즘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내부의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신문기자>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이다. 오히려 굳건해야 할 지점이 약해져 영화 중후반이 흔들려버린다. 요시오카는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늘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결단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안정적인 설정과 다소 개인적인 동기들만 보여준다. 요시오카가 고뇌하는 부분을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언론인 요시오카에 대해서 좀 더 풀어나갔으면 더 단단하고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다른 인물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진실을 좇아야만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그저 캐릭터가 되어 다급하게 달려야 할 뿐이다.)

스기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요시오카보다 설득이 필요한 인물이다. 스기하라는 외부(상사)의 압박과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전면적으로 배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평소 자기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각성의 계기는 매번 외부의 사건들이다. 선배인 칸자키의 죽음, 아이의 탄생 등의 사건에 인물이 크게 동요한다. 엄청난 책임이 필요한 스기하라의 선택은 주체적인 고민의 결과이기보다는 ‘당연’해 보인다. 전반부에서 스기하라가 품고 있었던 국민을 위한 일과 국가를 위한 일에 대한 차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후반부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스기하라라는 인물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또 다시 그를 뒤흔들만한 큰 사건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흔들리는 그대로 멈춘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재 상황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다.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멈췄다기보다는 이 이상 진전하기 힘들어 넘겨버린 느낌이 든다.

두 인물이 서로를 깊게 신뢰하지도 않고 큰 힘이 있거나 영웅적이지 않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들은 꽤 소시민적인 반면, 영화에서 대중의 존재는 아예 지워졌다. 오로지 트위터 상에만 존재하며 대중-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오카의 아내와 칸자키의 아내는 자발적으로 “정치적인 일은 너희가 잘하겠지”라는 태도로 영화의 중심사건에 일찌감치 떨어진다.
앞서 말했던 시의성 짙은 소재들을 단순하게 이용한 것도 아쉬웠다. SNS 댓글 조작, 미투 운동, 가짜뉴스 등이 언급만 되는 수준이다. 결국엔 관객이 함께 움직이고 고민해야 할 운동성이 부족했다. 동명 원작과 실제 모티브를 넘어서 영화 자신만의 목소리 내기엔 어려웠을까 싶다.

그렇지만 영화의 소재와 시기 자체로 주목할만하다. <신문기자>를 통해, 일본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정치 영화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리뷰 전문 보기
드라마 / 2019
0%
0점
moviemon 님의 프로필 사진
2019-10-11 17:46:41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 상영작인 마리 크류처 감독의 영화 <내 발 아래> (2019)는 개인적인 상황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식 체계와 부딪히면서 당사자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사회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자기 욕망과 비밀을 숨길 수밖에 없게 되면서 들어서게 된 불안정성의 단계와 그 후 단계를 특징적인 장면 배열, 숏의 지속시간에 변화를 주는 편집, 그리고 일부 인물과 관련된 설정을 활용해 감독이 목격한 여성이자 성 소수자로서의 삶을 영화적으로 이야기한다.

‘롤라(발레리 파흐너)’는 본인 발 아래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인물로, 자기 자신을 대면하지도 못하는 시간의 연속을 살아간다. 외부인의 시선, 특히 구걸했지만 거절을 당하자 욕설을 퍼붓는 노숙인의 시선에서 롤라는 남성들이 판치는 경쟁 사회에서 밀리지 않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롤라는 사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숨겨야 하는 비밀이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충돌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으며 작은 외력에 의해 쉽게 평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롤라는 성 소수자이며, 언니 ‘코니(피아 하이어제거)’는 편집적 조현병 환자다. 지배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성 소수자는 혐오와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대상이고, 편집적 조현병과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성장배경을 무시당한 채 정상성의 원리에 따라 비정상성으로 분류된다. 본인이 레즈비언이고 언니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남성 중심 경쟁사회와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배척되므로 롤라는 두 사실을 은폐하는 동시에 들킬까 봐 불안해한다. 마리 크류처 감독은 이와 같은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거친 화면 질감과 헤드룸 및 아이룸이 적은 숏을 활용한다. 또한, 롤라가 회사 밖에 있을 경우 정적인 이미지를 철저히 배제하고 도로 위를 달리거나 쉴 새 없이 스핀 바이크를 타는 등 흔들리는 이미지만 고수함으로써 불안 심리가 직장 내에서 일상생활로 전이되었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인에게 불리한 요소들을 숨기는데 애를 쓰던 롤라에게서 점차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언니 코니가 병원에 입원한 후 롤라에게 전화가 지속해서 걸려온다. 언니의 목소리였기에 롤라는 언니가 병원에 요청해서 한 전화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순식간에 롤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정체불명의 전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걸려와 롤라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읊으며 그녀를 구석에 몬다. 이 순간부터 어디까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인지, 그리고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언니 코니가 아니라 롤라가 아니냐는 혼란을 야기하며 이전까지 축적한 숏의 층위를 한 번에 무너뜨린다. 더 나아가, 그 후에 갑자기 놀라며 잠에서 깨는 롤라의 모습을 담아낸 숏을 중간중간 삽입해 숏의 연결성을 거부하며 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이와 동시에 이런 현상이 펼쳐지는 게 무언가를 계속 숨겨야 한다는 불안과 압박감에서 기인한 게 아니냐는 가설을 형성하게 만든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중반부부터 지속시간이 짧은 숏의 활용 빈도가 증가했다는 점과 후반부에서 애인 ‘엘리즈(마비 회르비거)’로부터 성관계를 거부당하는 상황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 지속시간이 짧은 숏을 더 많이 배치함으로써 롤라의 위치 전환을 빠르게 가져갔으며, 후자의 경우 언니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롤라와의 성관계를 거부한 애인과 분노감을 느끼는 롤라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 아래 소수자 겪는 고통을 묘사한다. 따라서 제시한 가설과 두 가지 특성을 결합해 본다면, 롤라가 지금까지 억눌렀던 욕구와 본능이 극한점에 점점 더 가까이 도달하면서 결국 폭발이 임박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결말은 롤라의 두 가지 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버즈 아이 뷰와 클로즈업이 혼합된 숏에 담긴 피폐하고 흐리멍덩한 표정, 또 다른 하나는 피폐한 모습에서 회복한 평범한 표정이다. 두 표정만 놓고 보면 맥락상 롤라가 한계점에 도달해 폭발한 후 쇠해졌다가 외부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신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에서 벗어나 영혼을 치유한 듯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 인용된 구절처럼 롤라는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 즉 새벽의 시간을 맞이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물론, 영화는 열린 결말 형식을 갖췄지만, 병상에 누웠던 롤라가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 숏에 사용된 빛에 초점을 둔다면 적어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기 어려울 테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과도하게 휘황찬란한 수많은 빛은 외부적으로는 빛이 롤라를 에워싸는 듯해 보이고, 내부적으로는 롤라가 신체에서 뿜어내는 빛처럼 보인다.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살펴볼 수 있지만, 양자 모두 부정적인 해석으로 귀결된다. 전자에서 보면 과도하게 휘황찬란한 빛이 롤라를 둘러싸며 그녀가 침착해질 수 있는 시간으로 가는 길을 봉쇄한 것으로, 후자에서 보면 억압되었던 욕구와 본능이 한계점을 뚫고 터지면서 나온 에너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빛으로 발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로 결말에서 롤라의 외관상 표정은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쓴 또 다른 가면일 가능성이 있다. 리뷰 전문 보기
현재상영작 10
상영예정작 10
조커
범죄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91.54%
별점 지수 4.23점
가장 보통의 연애
멜로/로맨스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89.74%
별점 지수 3.32점
퍼펙트맨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35.71%
별점 지수 2.39점
제미니 맨
드라마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24.14%
별점 지수 2.59점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전쟁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30%
별점 지수 2.36점
판소리 복서
코미디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70%
별점 지수 3.05점
디어 마이 프렌드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70%
별점 지수 3점
벌새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84.21%
별점 지수 3.8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드라마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90.91%
별점 지수 3.82점
메기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79.63%
별점 지수 3.44점
와일드 로즈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95%
별점 지수 3.43점
신문기자
서스펜스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100%
별점 지수 3점
토막살인범의 고백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너를 만난 여름
멜로/로맨스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재혼의 기술
멜로/로맨스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80%
별점 지수 0점
말레피센트 2
판타지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두번할까요
멜로/로맨스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오늘도 위위
드라마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꼬마 자전거 타요
애니메이션 / 2018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북간도의 십자가
다큐멘터리 / 2019
키노라이츠 지수 0%
별점 지수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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