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스토리 속 결말은 수잔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같은 내 흔들리는 눈동자" 영화를 본 직후 어떠한 첨가물도 더하지 않은 그런 감상평이었다. 크레딧이 나오는 그 순간, 바로 잊어버리고 싶은, 머리가 아픈 영화였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자꾸만 영화 속 장면장면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오프닝 장면, 개성이 독특한 주인공 수잔의 메이크업, 전시회의 색깔들, 심지어는 약간 어두운 색감들까지 이상하게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굉장한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해석이 난해한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에 좋은 영화임과 동시에 리뷰를 쓰기가 두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현재, 과거, 소설 속 장면이 뒤섞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다면 무리없이 세 구성을 구분할 수 있기에, 영화를 보면서 느낀 현기증 중에는 이 부분의 지분은 거의 없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 속에서, 알 수 없는 스릴러의 분위기가 풍긴다. 자주 깜짝 놀래킨다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는 식의 스릴러는 아니지만, 인간 내면의 심리를, 복수와 나약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데에서 잔잔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오히려 그런 잔잔한 공포감이 현기증에 대한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는 정말 조용하게 어지러움을 불러냈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책을 받아 포장을 풀다가 손가락을 벤다. 다가올 복수에 대한 복선이었을까. 그녀는 에드워드의 책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하고, 에드워드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의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많은 리뷰에서 에드워드가 성공적으로 복수를 했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상징들의 해석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가 정말 복수를 꿈꿨고, 그것을 이행했다는 생각에 미치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수잔의 과거 기억 속 에드워드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수잔은 소설가를 꿈꾸는 에드워드에게 ‘나약하다’고 하였고, 에드워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신은 있었지만, 복수를 할 만한 상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소설 속 토니를 도와준 바비처럼 누군가 혹은 변한 에드워드가 자신을 부추겨 변하게한 걸까. 영화의 원작 책은 『Tony and Susan』이다. ‘에드워드와 수잔’도 ‘토니와 로라’도 아닌 ‘토니와 수잔’이다. 토니는 소설 속 주인공이고 수잔은 현실에서의 인물인데, 왜 원작에서는 토니와 수잔을 만나게 했을까. 수잔이 에드워드의 책을 읽으며 토니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원작의 이름이 ‘토니와 수잔’이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 원작을 읽고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많은 리뷰들을 보았지만, <녹터널 애니멀스>에 대한 나 자신의 해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인 것 같다. 이번 리뷰를 쓰면서 영화 속 상징에 대한 해석을 써보고 싶었지만, 『Tony and Susan』을 읽은 뒤로 미뤄야할 것 같다. 비록 톰 포드 감독은 ‘원작보다 더 보여주고 싶다’며 배우가 원작을 다 읽기도 전에 작품을 찍었다고 했지만, 원작소설을 읽은 뒤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이 더 풍부해질 것이다. 참고로 현재까지 공개되었다고 볼 수 있는 상징은 ‘붉은 소파’와 ‘녹색 자동차’다. 과거 붉은 소파에 누워 자신의 소설을 지루하게 읽던 수잔과, 소설 속 로라가 싸늘한 시체로 버려져 있는 붉은 소파. 과거 수잔이 에드워드와 작별하는 장면에서 나온 녹색 자동차와 소설 속 토니가 가족들과 함께 탄 녹색 자동차가 그것이다. (사실 과거의 녹색 자동차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를 본 직후 재평가를 하기 전에는 굉장히 실망한 영화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는 영화였다. 불친절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아주 좋아할 영화다. 아주 섬세하고 매혹적인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