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blue
2021.10.05
이미 수몰된 시간, 이미 죽어버린 행복
눈을 뜨길 바랐다. 옐라가 눈을 감을 때마다. 깜빡이는 것조차 두려운 순간도 있었다. 이제 막 햇빛이 들어 젖은 몸을 말릴 수 있게 되었는데, 또다시 흠뻑 젖게 될까 봐. ‘그가 망한 이후에 더는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던 옐라의 고백에, 속물적이라는 생각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간절함을 보고 말았다. 그래서 이미 사라진 다리의 흔적, 자꾸만 옐라를 따라다니는 스산한 바람과 소리가 무섭고 싫었다. 운명을 바꿔보려고, 남들이 걷는 길을 자신도 걸어보려고 (비록 그것이 사기라 할지라도) 이렇게나 아등바등 사는데, 한순간에 그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아서 그가 가엾게만 보였다. 잔혹한 영화다. 이미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 올릴 순 없다고, 못 박아버린다.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시선이 옐라를 내내 짓누르는데, 벤이 옐라를 스토킹하던 모습이 마치 영화 전체의 시선으로 옮겨간 듯했다. ‘네가 그곳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볼 거야’하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쫓으며, 이미 수몰된 시간, 이미 죽어버린 행복은 다시 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을 짓밟는(짓밟힌) 비극적인 이야기다. 옐라를 둘러싼 두 남자 벤과 필립은 다른 듯 닮았다. 문이 열려있다는 이유로 옐라의 공간에 자꾸만 발을 들이던 모습에서 그들의 폭력성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결말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오히려 감은 눈에 안도하게 되었다는 씁쓸한 사실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되돌아가도 그렇다면, 어쩌면 이것은 다행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