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きみの鳥はうたえる)> (미야케 쇼, 2018)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덧붙일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으니 원활한 감상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가 뿜어내는 활기에 완전히 매료됐기 때문에 그저 떠오른 생각의 편린들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뿐이다. 얼핏 보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정말 특별할 것 하나 없고 어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영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품은 활력 요소들이 참 특별해지는 것 같다. 영화 자체가 과도한 욕심이 아예 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이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고, 그걸 관객들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느낌이다. 사치코가 슬쩍 꼬집고 난 뒤, '나'를 감싸던 주변 소음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 클럽 특유의 무드와 음악을 통해 생성되는 정서의 교류나 자유로운 움직임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나 가로등, 각종 조명들로 둘러싸였던 인물들의 얼굴이 말갛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낼 때 벌어지는 일들. 마지막으로 각자 자신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사람들까지. 이 영화가 감정을 잡아내는 방식들은 뭐라 형언할 길이 없이 매력이 넘친다.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던 '나'의 독백이 과연 유효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시절 그때의 그 여름의 어느 한자락이었기에 생생하게 스며들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진심을 전달하고 난 '나'의 내면에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균열이 생겨났을 테고,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어느샌가 자취를 감춰버릴지도 모른다. 이 순간 미야케 쇼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함께 담지 않고 각자에게 숏을 할애한다. 그가 담아내는 인물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동시대 청춘들이 지나온 궤적을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한 희미한 기대감이나 걱정들 같은 것들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부유하는 청춘들을 잠시나마 붙잡고 관객과 만나게 하려던 이 영화는 알맞은 강도와 밀도로 관객과 호흡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딱 여기까지라며 쿨하게 털어버린 뒤 관객과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