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PROSS
2022.01.18
신화의 시대에 안녕을 고하고 인간의 시대를 맞이할 때
의미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뜻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넓은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지옥은 이 의미의 상실로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졌던 시대에 나름의 노력으로 다시 의미를 되찾으려 했던 시도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지옥은 얼핏보면 '정의'나 '사법체계의 불완전성', '사이비'와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같은 시사를 다룬 것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는 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분명 설정상의 디테일이 아쉬운 부분이나 장면장면을 완전히 낭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려는 내용은 시사보다는 그 근원이다. 지옥이라는 작품이 정말로 다루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선징악'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 신화가 뭐가 특별한 걸까? 마냥 상투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는 사자성어이지만 이 신화는 문명의 시작부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때로는 종교로, 때로는 윤리와 사회규범으로써 작동하며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안내해주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천벌'이나 '천생연분' 등 하늘에 관련된 많은 표현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신화는 현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모습을 띄게 된다. 바로 '능력주의'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성공의 방정식을 믿었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좋은 신화가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다.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노력한 사람은 성공하고 게으른 사람은 실패한다."는 어찌보면 자명한 이치가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화가 문제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신화는 신화일뿐 현실이 아니다.' 아무리 착해도 알아주는 사람 없으며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들키지 않으면 모르고, 게으른 부자는 죽어라 노력한 사람들을 부려 더 성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의 냉정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죽음'이다. 착하다고 오래 살지 못하고 악하다고 단명하지 않는다. 성실하다고 건강하지 않으며 게으르다고 골골대지 않는다. 지옥은 이 현실의 냉정함을 '계시'와 '시연'이라는 죽음의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작품을 보면서 시연의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마 현실의 냉정함을 마주한 인간의 억울함과 두려움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화에서 쫒겨나 현실을 마주하게 된 사람은 딜레마에 빠진다. "착하다고 얻는 것 없고 나쁘다고 잃는 것 없다면, 내가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뭐지?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아니 그전에 뭘 할 수 있지?" 이 딜레마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지 못하면 끝없는 무력감 속으로 추락시킨다. 그리고 정진수는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은 곧 죄인에 대한 '신의 심판'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 곧 '의도'를 설계해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해 무너지게 놔두기보다는 달콤한 거짓으로라도 그들의 삶을 유지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는 결국 정진수가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쳤음을 의미한다. 그래도 덕분에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 존속한다. 비록 정진수의 바램과는 일치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새로운 질서이자 케케묵은 '권선징악'의 신화는 죄를 물을 수 없는 존재에게 닥친 비극응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신화를 유지하려는 쪽과 신화에 기반한 폭정을 타개하려는 쪽이 맞붙게 되고 비극은 예외없이 찾아왔으나 결과는 전과 달랐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더 자세히는 표현하지 않겠지만, 거스를 수 없다 여겼던 '운명'을 인간의 '의지'로 극복해내게 된다. 그리고 이 의지의 산물로 인해 이때까지 새진리교에 저항하기만 했었던 민혜진은 과거 정진수가 겪었던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민혜진은 과연 정진수와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끝없는 무력감 앞에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 택시기사의 말을 비추어 보아 적어도 정진수처럼 다시 신화에 귀의하는 선택을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감독이 우리에게도 저 스스로에게도 묻는 말이기도 하다. "우린 아픈 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살 수 있을까?" 이미 이 질문에 답을 내린 사람으로서, 당신이 실존의 무력감 앞에 도망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전과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 또한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