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연과 운명과 욕망과

Inspired by the true story. Based on a true story와 더불어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자주 만나는 문구지요. 한글로 옮긴다면 각각 ‘실화에 영감을 받은’, ‘실화를 기반으로’인데요. 어느 쪽이건 극화의 범주 안에서 이뤄지는 각색인 만큼 차이가 크진 않지만, 전자로 표기했을 때는 좀 더 분명한 메시지가 담기기 마련입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같은 코끼리를 보고 그린 추상화와 초상화의 간극이라고 할까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구찌 일가를 다루는데요. 그중에서도 마우리치오 구찌와 그의 연인 파트리치아가 주인공입니다. 마우리치오는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손자로, 집안의 힘에 기대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핏줄을 뿌리치고 원하는 삶을 살긴 쉽지 않겠지요. 신랑 측 하객이 단 두 명뿐인 결혼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물보다 진한 피가 그를 기어이 구찌로 이끕니다.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 될 마우리치오 구찌의 죽음이 널리 알려진 사실인 만큼, 영화 역시 감추지 않고 예고편에서부터 보여줬지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로도 두 시간 반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을 붙들고 놓지 않는 건 캐릭터의 힘인데, 그 중심에는 파트리치아가 있습니다. 우연을 운명에 감싸고 이내 욕망으로 물들이는 호연이 관록을 자랑하는 감독과 조연이 마련한 화폭에 수놓아져요. ‘실화에 영감을 받은’ 이야기의 방향성은 제작자의 손에 달렸습니다. ‘실화를 기반으로’에 가까울 정도로 절제된 구성임에도 레이디 가가만이 유아독존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건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인데요. 사그라질 줄 모르는 불꽃이 사랑과 탐욕은 물론이거니와 생명까지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모습이야말로 『하우스 오브 구찌』를 관통하는 주제겠지요. 잿더미 속에 남은 건 ‘GUCCI’라는 다섯 글자뿐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바란 건 오직 다섯 글자면 충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