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대를 해도 망하더니 (스펙터), 기대를 안 해도 이 모양.

사실 007 시리즈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2012년, <007 스카이폴>로 화려하게 다시 부활했으나, 3년 뒤 내놓은 후속작 <007 스펙터>가 2억 4500만 달러의 제작비에다 크리스토프 발츠와 레아 세이두를 투입하고도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007 시리즈의 완벽한 안티테제인 제이슨 본 시리즈가 2016년 <제이슨 본>으로 복귀했는데, 이전 작품들보다는 다소 아쉬웠지만 <007 스펙터>보다는 확실히 완성도가 높았다. 게다가 계속해서 후속작을 내며 007 시리즈에 맞서는 미션 임파서블 또한 15년 7월에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18년 7월에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을 선보이며 그 명성을 드높였다. 16년 이후 후속작이 없는 본 시리즈는 그렇다 하더라도, 007 시리즈는 ‘스카이폴’의 위상을 ‘스펙터’에서 이어가지 못한 반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폴아웃’에서 이미 높아진 기대치를 그 이상으로 만족시켰다. 그 때문에 이제 첩보 액션 영화 중에서는 007 시리즈가 아니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최고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런 반응들을 되돌리기 위해 007 시리즈는 이번 <007 노 타임 투 데이>에 역대 최고 제작비인 2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하며 명성 회복을 노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명성 회복은커녕 전작인 ‘스펙터’에서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고 말았다. 초반 오프닝 장면은 인상적이다. 전작인 ‘스펙터’는 물론이고 ‘스카이폴’과 ‘퀀텀 오브 솔러스’, ‘카지노 로얄’도 좋긴 했으나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차량 액션에 초점을 맞췄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스펙터’에서 본드가 차량을 활용하는 장면이 있긴 했으나 당시에는 차량에 장착된 무기를 완전히 활용하진 못했으나 이번에는 십분 활용하며 본드카가 단순히 제임스 본드가 운전하는 비싼 차가 아님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후 중반까지는 큰 문제 없이 순조롭다. 스펙터의 추격을 뿌리친 이후 마들렌을 떠나보내고 잠적하는 것도 그리 어색한 전개가 아니며, 쿠바에서 열린 스펙터의 축제 현장에서의 극적인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블로펠드의 계획대로 본드를 죽이기 위해 핀 조명까지 비추는 모습은 스펙터의 수장다운 모습이다. 직후 007 시리즈에 처음으로 출연한 아나 드 아르마스와 함께 펼치는 액션 장면 또한 볼만하다. 비록 그녀의 활약상이 굵고 짧은 감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인상적이며, 펠릭스 라이터의 죽음은 안타깝긴 하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주인공과 가까운 친구나 동료의 죽음이 이런 액션 영화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아마 제임스 본드의 후임 007의 등장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백인 남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에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되었을 때 금발을 비롯해 기본 원작 이미지와의 차이로 비판받았기도 했는데, 영화의 이러한 시도가 다소 과감한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지적받아야 할 문제점은 당연히 아니다. ‘제임스 본드’ 역할로 나온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극에서 ‘제임스 본드’는 5년간 은퇴 겸 잠적 중이었기에 능력 있는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해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본드가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일축하듯 흑인 여성이 007이 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극에서 후임 007 노미는 초중반 본드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지만 이내 다시 협력하고 나중에는 ‘007’이란 번호를 양보하기까지 하며 제임스 본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전통과는 다르지만 영화가 충분히 시도할 법한 시도라고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전통과의 차이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이를 파괴하고 말았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이자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제임스 본드의 사망이다. 그전까지는 본드 배우가 교체되더라도, 본드가 극에서 은퇴를 하더라도 절대로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진짜로 제임스 본드가 사망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전개가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성공적인 클리셰 파괴’로 인정받고 창의적인 결과물로 역사에 남곤 한다. 그러나 이번 제임스 본드의 사망은 ‘클리셰 파괴’보다는 007 시리즈의 핵심이자 명맥을 파괴한 것에 가깝다. 전통과 클리셰를 무작정 파괴한다고 해서 창의성의 발휘로 인정받진 않는다. 또한 클리셰를 따른다고 해서 진부하고 낡은 것은 아니다. 영화나 시리즈에서 소위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파괴하고 비틀만 한 것이 있고, 유지해야 하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앞서 말한 ‘펠릭스 라이터’의 죽음은 다른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007 시리즈의 관점에서 보자면 클리셰를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스카이폴’에서 ‘M’의 죽음도 나왔을 뿐만 아니라, 시리즈의 근간을 흔드는 클리셰 파괴로 볼 순 없다. 후임 007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부분이긴 하나 충분히 시도할 만한 변화였으며 개연성도 있었다. 그러나 007 시리즈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라 해도 놀랍지 않은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죽음은 무작정 클리셰 파괴만을 따라가도 저지른 실책이다. 다른 첩보 영화 시리즈를 생각해 보자. 객관적으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보면서 주인공인 이단 헌트가, 그 톰 크루즈가 영화에서 막판에 미션에 실패하거나, 또는 사망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극적으로 성공하고 살아남는다고 해서 영화적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폴아웃’ 때 마지막에 잠깐이나마 폭발을 막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이 있지만 역시나 주인공은 사람들을 폭발로부터 지켜냈었다. 그렇다고 해서 ‘폴아웃’이 진부하거나 뻔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파리에서의 엄청난 바이크 추격 장면, 마지막의 헬기 액션 장면과 격투 장면 등에서 충분히 영화는 관객에게 흥분감과 스릴감을 안겨준다. 이 시리즈가 관객에게 내세우는 장점과 비록 결과는 알더라도 굉장히 예측 불가능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고스트 프로토콜’의 부르즈 칼리파 장면이나 ‘폴아웃’의 롱테이크 추락 장면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이다. 이미 그 장점만으로도 뻔한 결말이라는 단점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 제이슨 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믿을 만한 동료나 충분한 지원 없이 CIA를 비롯한 대규모 집단의 추격을 받는 제이슨 본이 영화에서 사망하거나 체포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마지막에 제이슨 본이 허드슨강에 빠졌을 때 영화가 마치 그가 죽은 것처럼 보여주어도 대부분의 관객은 ‘당연히 안 죽고 헤엄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테마곡인 ‘Extreme Ways’과 흘러나오며 제이슨 본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쾌감을 못 느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제이슨 본 시리즈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시리즈만의 장점으로 충분히 매력을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죽음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인물을 제이슨 본으로 하는 무리수를 두진 않는다.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마리가, ‘제이슨 본’에서는 ‘니키 파슨스’가 영화 초반에 사망하지만, 이는 오히려 전작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기 위함으로 이들의 죽음 이후 영화는 전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 영화도 그랬어야 했다. 007 시리즈가 가장 빛날 때는 제임스 본드가 간지나고 멋있을 때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아주 스펙터클한 장면은 아니더라도,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아주 다이나믹하진 않더라도, 007만의 품격과 고풍스러움을 보여줄 때 이 시리즈의 매력이 가장 빛난다. 사실 007 시리즈는 냉정히 말해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많다.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지적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시리즈와 달리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에 처음 소설로 나오고 60년대에 첫 영화가 나왔던 것을 감안해도 현실성이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해, 대체 어떤 스파이가 유명 카지노와 고급 호텔을 오가며 대놓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돌아다니겠는가. 언제나 주위를 경계해야 할 스파이가 어딜 가든 매력적인 여성과 함께 다니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장비를 사용하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그렇게 대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고 시대착오적이어도 충분히 빠질 법한 매력과 함께 낭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잘 차려입은 양복과 술, 고급 차와 미모의 여성과 함께 다니면서 제이슨 본처럼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싸우지 않고 개인 총으로 싸우는, 그런 모습을 관객은 이 시리즈에게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초중반에는 그런 장점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후반에 갈수록 그러한 장면들이 줄어들었으며, 막판에는 제임스 본드의 죽음으로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스펙터’에서도 지적받았던 이번 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본드와 악역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자꾸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시도가 성공적이라면 아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냥 한 편의 에피소드보다는 강력한 대결구도를 끌고 가 더 치열한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그러했는데, ‘로그네이션’에서의 악역을 ‘폴아웃’에도 이어가며 ‘이단 헌트와 솔로몬 레인’이라는 좋은 대결 구도를 보여줬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이 대결 구도를 잘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영화가 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과거에서 끌어온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에서 보는 것은 현재 시점부터 미래를 향해 펼쳐지는 이야기이지, 과거 시점에 이미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007 시리즈는 지난 ‘스펙터’에서는 본드의 과거로부터,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마들렌의 과거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오고 있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알 수도 없는 과거로부터 새롭게 끌어온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 설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펙터’에서 드러나는 본드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스카이폴’에서 잠깐 나온 어릴 때 찍은 사진과 고아였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과거의 조각에서 시작해 현재 시점으로 이어올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상상했을 뿐이다. 스펙터의 수장이 나타나 본드에게 ‘어떤 과거’를 말해도 영화 내 인물만 흠칫 놀랄 뿐, 관객은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악역은 자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어떤 과거’와 결부시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게 되는데, 관객이 보는 것은 전형적인 ‘말 많은 악당’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악역이 주인공에게 딱히 설명할 이야기도 없다. 악역 사핀과 마들렌과의 과거는 사핀이 마들렌에게 마들렌의 집에 침입했을 때 썼던 가면을 보여줌으로써 기능을 다한다. 그 가면은 마들렌이 그 과거를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용에 그치며, 그나마도 약간의 공포심을 줬을 뿐, 큰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제임스 본드를 이용한 협박이 먹혀들었다. 솔직히 이미 전작에서 본드와 많은 일을 겪은 마들렌에게 그런 협박이 먹혀드는 것에도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어차피 마들렌이 사랑하는 본드를 이용하면 끝나는 일인데 사핀과 마들렌 사이의 과거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영화적으로 보면 단순히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 수준에 그친다. 사핀이 마들렌에게 언급할 과거 사건 자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총을 들이밀고 그녀 자신이나 제임스 본드, 아니면 그녀의 딸의 목숨으로 위협하면 끝날 일이었다. 애초에 사핀과 마들렌 사이의 과거 사건 자체가 불필요했던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개연성에 구멍이 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핀이 마들렌과의 과거가 있던 것은 마들렌의 아버지 미스터 화이트가 사핀의 가족들을 죽였기 때문인데, 이미 사핀은 마들렌의 어머니이자 미스터 화이트의 아내를 죽였다. 그렇다고 마들렌이 사핀에게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미스터 화이트가 속한 스펙터에 앙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스펙터의 파티장 사건 이후에는 블로펠드만 살아있는데, 이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 굳이 힘들게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블로펠드가 외부와 소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를 감시하던 MI6도 몰랐는데 과연 사핀은 이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인공 눈을 가지고 다니며 블로펠드를 돕다가 이후 사핀 밑으로 들어간 부하가 있긴 했지만 쿠바에서의 파티 때 본드가 아니라 스펙터 요인들이 죽자 그도 굉장히 당황하는데, 이를 보면 그는 원래 사핀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핀은 이전 실험실 테러 때와 마찬가지로 스펙터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여기서 더 나아가 사핀은 이미 스펙터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본드가 행동할 때까지 사핀은 대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수감 중이던 블로펠드를 암살하는 계획 또한 마들렌이 블로펠드와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굉장히 우연적인 요소였다. 아무래도 미스터 화이트의 딸인 마들렌일 확률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블로펠드가 베스퍼의 무덤에 숨겨놓은 폭탄 때문이 아니었다면 과연 마들렌이 본드와 떨어져 지냈을까. 그리고 마들렌의 행동도 뭔가 이상한데, 분명히 ‘스펙터’ 때는 외진 곳에서 근무했는데 분명히 이탈리아에서 본드와 함께 블로펠드의 체포 후에도 스펙터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음을 봤음에도 도심 속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때 스펙터의 갑작스러운 공격 이후 본드도 그녀와 헤어져 잠적했음을 생각하면 마들렌도 그전보다 더 외진 곳으로 숨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블로펠드 심문 직전 마들렌 혼자 빠져나가는데 이상한 건 MI6는 그녀의 행방을 완전히 놓치고 만다. 마들렌이 블로펠드와 만나는 것은 자신들이 마들렌을 감시하고 있다는 근거로 허용하면서 정작 마들렌이 대놓고 나가 사라지는데도 그녀를 찾지 못한다. 이처럼 영화에는 개연성에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추가적으로 영화 후반부에 인종 차별 반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부분도 불필요했다. 먼저 상황을 설명하자면, 생화학 무기를 만들던 발도 박사는 후임 007인 노미에게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노골적으로 혈통과 인종을 언급하며 도발하는데, 결국 발도 박사는 그녀에게 걷어차여 강산성 물질에 빠져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물론 그런 말을 한 발도 박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당연하지만, 굳이 그런 장면이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그 무기는 민족과 인종으로까지 확대되어 사용될 수 있다는 부분이 언급되었다. 물론 그전부터 발도 박사가 쓸데없이 거슬리게 말이 많은 모습이 있긴 했지만, 굳이 흑인인 노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장면이 필요했을까. 이전에 발도 박사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장면도 없었으며, 생화학 무기가 딱히 흑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도 없었다. 오히려 영화가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신경 써 불필요하게 생긴 장면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미 후임 007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하면서 정치적 올바름 측면도 어느 정도 충족시킨 상황이었다. 본드도 그녀를 007으로 불러주며 존중을 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전개에 맞지 않는 그런 장면이 있었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007 시리즈는 <007 스카이폴>로 멋지게 부활하며 다시 명성을 회복하는가 했다. 그러나 후속작 <007 스펙터>가 이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 사이 본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뛰어난 작품을 내놓으며 다시 뒤처지기 시작했다. 본 시리즈는 2016년 이후 후속작이 나오지 못하고 있고, 미션 임파서블은 7편 촬영을 마친 상태이었기에 이번 작품이 중요했다. 영화 기준 59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시리즈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번 작품을 통해 본 시리즈가 멈춰있는 동안 명성을 회복해야 했고, 새 미션 임파서블 작품이 나오기 전에 먼저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007 스펙터>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기는커녕, 전작에서 범했던 실수를 다시 범했으며,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치명적인 악수를 두고 말았다. 결국 6대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시리즈 작품이었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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