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비겁하게 크레딧으로 영화를 완성하다니

영화가 끝나는 건 언제일까요? 본편이 끝나면 극장에서는 조명을 켜 빠른 퇴장을 유도하고, OTT 서비스에서는 다른 작품을 추천하거나 스킵 버튼을 띄우곤 합니다. 전자는 관객의 빠른 회전을, 후자는 사용자를 붙잡아두기 위한 전략인데요. 분명 상이한 목적이지만, 크레딧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공통의 인식에서 비롯된 선택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본편 이후의 짧은 영상으로 완성되는 영화도 있기 마련입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원제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준말인 월로(月老)입니다. 붉은 실로 인연을 맺어준다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널리 퍼진 설화의 주인공이지요. 이와 같은 옛이야기에서 캐릭터와 배경을 따오면서도, 현대적 이미지로 톡톡 튀게 구축한 사후세계는 제법 알록달록해요. 익숙하면서도 자주 접하진 않았던 동양풍 판타지는 다소 호들갑 떠는 듯한 로맨틱 코미디와 합쳐져 적당한 거리감을 선사합니다. 적당하다는 표현은 긍정과 부정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지요. 몰입이 덜한 만큼 감정의 진폭도 크지 않으니까요. 업보와 윤회 사상, 절절한 로맨스, 시공을 넘나드는 복수극까지. 비는 곳 없이 꾸역꾸역 쌓아 올린 이야기를 완전히 소화하는 건 꽤나 버겁지만, 흐린 눈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전개에 몸을 맡긴 상태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살아갈 이는 살아가고, 떠나갈 이는 떠나가면서 다망했던 본편이 어찌저찌 마무리되네요. 하지만 크레딧에 들어서니 영화가 관객에게 성큼 다가와요. 업보의 검은 구슬이 1개면 강아지, 없으면 인간, 선행의 흰 구슬이 1개 더 있으면 고양이로 환생한다는 설정에선 ‘감독이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하긴 고양이가 훨씬 상팔자긴 하지.’ 정도로 생각했지만…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사는 동물 친구와의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적당했던 거리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감정의 둑에 금이 갑니다. 오묘하게도 지극히 사적인 이 크레딧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마지막 조각으로 맞물리네요. 특히 구파도 감독네 강아지의 이름이 본편에서도 큰 역할을 해낸 ‘아루’인 걸 보는 순간, 인간에만 기준점을 두고 무언가로 윤회하는 것에 머무르던 발상이 모두가 동등한 생명체라는 인식으로 비로소 연결됩니다. 저처럼 집에서 기다리는 존재가 있던 관객이라면 더더욱 배가된 감정의 해일이 몰려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