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배트맨의 성장영화

1. 느와르(Noir)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이다. 프랑스 비평계에서 처음 정의내린 개념이지만, 이 장르가 꽃을 피운 것은 1940년대 미국에서였다. 1910년대 독일 표현주의의 왜곡된 구도와 극단적 명암의 대비를 그대로 이어받아 명암이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이야기는 미국 대공황 시대에 유행했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나 범죄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1970년대부터 갱스터 영화로 진화했으며 '대부'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으로 성공을 거둔 갱스터 느와르는 홍콩으로 건너가 오우삼, 임영동을 중심으로 홍콩 느와르가 됐다(사실 홍콩 느와르에는 '느와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이상하다. '느와르'라는 개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려면 1940년대 탐정영화로 향하는 게 좋다. 이때의 유산을 이어받아 '차이나타운'이나 '블레이드 러너', '엔젤하트', '세븐' 등이 생겨났다. 현대 할리우드 장르영화는 1940년대 하드보일드 느와르 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은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도 예외는 아니다. 2.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는 고담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박쥐 가면을 뒤집어 쓴 자경단이라는 컨셉에 맞게 밤에 활동한다. 그가 활동하는 밤에는 빛과 어둠이 엇갈리면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배트맨은 태생부터 느와르 장르에 빚을 진 캐릭터다. 이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지는 배트맨은 도시를 어떻게 그리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는 만화로 태어난 필름느와르의 세계를 구현했다.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는 거기에 몇 가지 색을 덧입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고담시는 느와르풍의 도시라기 보다는 평범한 미국의 대도시에 가까웠다(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몇 개의 영화는 필름느와르의 유산을 훌륭하게 계승한 작품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에서는 고담시가 대체 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르겠다. 맷 리브스가 그리는 고담시를 앞선 모든 배트맨 시리즈보다 더 필름느와르에 가까웠다. 고담시는 늘 비가 오고 축축하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밤에 일어난다. 도시의 무드를 결정짓는 것은 네온사인의 색깔이었다. 바닥은 늘 젖어있고 하수도에서는 기분 나쁜 수증기가 피어난다. 마치 월터 힐의 '워리어'에 등장하는 밤거리처럼 고담시는 허름하다. 배트맨 고유의 정체성을 고려한다면 최적의 무대인 셈이다. 3. 우리가 아는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에 사는 엄청난 갑부다. '더 배트맨'에서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은 돈을 많이 써서 배트맨을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도 제대로 빠지지 않는 워커는 찌걱거리고 착지도 불안한 윙수트를 타고 날아다닌다(그럼에도 그의 수트는 방탄이다. 그리고 가슴팍과 팔에 있을 건 다 있다). 그의 주변에는 루시우스 폭스(모건 프리먼)나 라스 알굴 같은 사람이 없는지 안 나온건지 장비들도 별로고 배트맨은 싸움도 못한다. 전체적으로 배트맨의 능력을 많이 너프시킨 느낌이다. 그가 활동하는 무대와 사건의 규모, 빌런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적당하게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더 배트맨'의 메인빌런인 리들러(폴 다노)는 재미있는 캐릭터다. 영화에서 리들리를 처음봤던 '배트맨 포에버'에 비하면 많이 오싹해졌다. 무엇보다 살인을 하고 퀴즈를 내는 컨셉이 꽤 살벌하다. 감독의 말대로 리들러의 모티브가 된 조디악 킬러의 살벌함을 그대로 가져다 입힌 느낌이다. 리들러의 재미있는 장면은 그가 둔기를 휘두를 때 등장한다. 학창시절때부터 싸움을 못했던 내가 보기에도 리들러의 둔기를 휘두르는 폼은 대단히 어설프다. 마치 '리들러는 평소에 폭력을 써보지 않은 사람'임을 강조하려는 듯 했다. 이 때문에 배트맨이 아무리 너프됐다고 해도 리들러랑 1:1로 싸우면 4초 안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다. 4. 리들러와 배트맨은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유리벽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장면은 나온다. 이 장면은 '다크나이트'의 취조실을 떠올린다. 줘터지는 건 조커였지만, 대화의 열쇠를 쥔 것도 조커다. 리들러도 이 대화에서는 열쇠를 쥐고 있다. 배트맨에서 재미를 주는 지점은 빌런이 '지능캐'일때 비롯된다. 주로 빌런들은 기발한 방향으로 일을 벌이고 배트맨이 이를 수습하는 게 패턴이다. 성공한 배트맨 영화라면 대부분 이런 공식을 취했다('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은 지능캐에 싸움도 잘했다). 배트맨은 밤거리를 누비는 자경단이다. 실제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갑부이며 첨단장비로 무장한 히어로다. 마치 토니 스타크가 헐크를 제압한 것처럼, '힘캐'가 배트맨의 상대 빌런이라면 싸움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생긴다. 그러나 상대가 지능캐라면 배트맨을 한도 끝도 없이 괴롭힐 수 있다. '더 배트맨'의 리들러는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일으킨 혼돈을 계승하면서 이것을 통해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이 일으킨 붕괴로 나간다. 리들러의 목적은 혼돈으로 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잘하는 두뇌 플레이를 한다. 리들러의 이 같은 원대한 비전은 그가 빌런과 범인 사이를 오가게 한다. 그는 느와르 영화의 범인이자 히어로 영화의 빌런이 돼야 한다. 그는 그 역할을 아주 잘했다. 5. '더 배트맨'은 느와르 영화의 정통을 가장 잘 계승한 배트맨 시리즈지만, 그 본질은 역시 히어로물이다. 결국 몇 가지 한계때문에 이 영화는 느와르의 정통성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셀리나 카일/캣우먼(조 크라비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가 이 캐릭터를 너무 쉽게 소비해버린 느낌이다. 필름느와르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은 '팜므파탈'의 존재다. 미모의 여성이 주인공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타다가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는 게 팜므파탈의 할 일이다. 배트맨을 아는 관객들은 모두 캣우먼이 배트맨의 아슬아슬한 조력자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 '아슬아슬함'이다. 캣우먼이 배트맨의 뒤통수를 칠듯 말듯 긴장감을 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더 배트맨'은 서사를 친절하게 다 풀어줘서 캣우먼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높인다. 적어도 "이 분위기에 팜므파탈 하나 정도는 있겠지"라고 기대를 하며 봤지만 캣우먼이랑 저런 관계로 나온다면 팜므파탈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사실상 캣우먼 캐릭터의 사용은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6. 결론: 살인사건으로 시작해 더 큰 음모로 향하는 지점은 필름느와르의 전통을 계승한다. 여기에 도시의 혼돈과 붕괴를 통한 해방은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조커나 베인을 연상시킨다. 필름느와르의 정통성과 히어로영화의 대중성 사이에서 줄타기는 비교적 잘한 듯 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는 이후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전혀 다른 무드를 보여준다. '더 배트맨'의 다음편에서는 탐정 배트맨보다 좀 더 숙련된 배트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맷 리브스의 머리 속에 있는게 '배트맨의 성장영화'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정말 성장영화를 찍을 셈이라면, 그것도 나름 매력이 있겠다. 추신) 초반에 고든 경감(제프리 라이트)과 배트맨의 대화에서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무게를 잡는다. 계속 보다보니 그것도 적응이 된다. 고든의 캐릭터는 마치 더티해리를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더티해리보다는 모자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