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달콤한인생
2018.04.04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뉴욕에 있는 대학으로 가 생활하고픈 새크라멘토 어느 철로 옆 '구린 동네'에 사는 레이디 버드의 성장담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익숙한 모든 것의 소중함을. 극중 부모님에 대한 반발심리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마저 거부하는 크리스틴은 그 예쁜 이름을 버리고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자기 자신에게 붙였다. 영화는 초반부터 레이디 버드가 그녀의 엄마와 이동하는 차 안에서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귀를 때리던 중 조수석에 앉은 레이디 버드는 그대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을 하는데. 자, 팔에 깁스를 한 채 시작하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고등학생인 그녀의 주변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먼저 그녀의 절친 줄리를 보자. 줄리에겐 엄마가 있다. 아빠는 안 계시지만 그녀가 삼촌이라 부르는 엄마의 애인이 있다. 엄마는 연애를 하느라 줄리와 많은 대화를 할 시간이 없는 듯하다. 다음은 레이디 버드의 (극중) 첫 남자 대니를 보자. 대니에겐 부모님과 할머니가 있다. 여기서 잠깐, 대니는 레이디 버드를 사귀고는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그녀를 그의 할머니에게 소개하러 가는 길에 이런 말을 한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다고. 그때 알았다. 아아, 그래서 대니가 저렇게 할아버지처럼 옷을 입는구나, 하고 말이다. 지금 한 말은 내 나름의 유머다. 다시 돌아와서, 대니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부모님께 말할 용기가 없어 슬피 운다. 하염없이 슬프게 운다. 보는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우는 연기에서 깊은 내공을 쏟아낸다. 그는 전작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도 그랬었다. 레이디 버드의 (극중) 두 번째 남자친구이자 그녀의 순결을 훔쳐간 카일에겐 아버지가 있지만 암에 걸려 신의 부름을 기다리는 나날의 연속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의자에 앉아만 있을 뿐이다. 레이디 버드가 카일과 친해지기 위해 인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극중에서 제일 예쁜 제나를 이용하는데, 잘 사는 제나에겐 당연하게도 부모님이 계시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제나가 집에서 술을 마시든 밖에서 술을 먹고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가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만난 신부님은 학생들과 함께 연기 지도의 일종으로 눈물 흘리기 시합을 제안한다. 그때 학생들에게 지시를 하면서 자신도 같이 하겠다고 말하며 옆에 있는 선생님도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모습은 내게 유의미했다. 거기 모인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라고 할까, 아니면 뭔가 지시만 내리고 마는 주변에서 많이 봐 온 선생님들의 모습과 다름을 느꼈기 때문일까. 역시나 예상대로 신부님께서 가장 먼저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 모습에서 분명 남다른 사유가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후에 그 사유를 알고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까지 언급한 레이디 버드의 주변 인물 중 가장 안타깝고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랬다. 레이디 버드의 주변 인물에 대한 얘기를 마쳤으니 이제 레이디 버드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녀에게는 부유하진 않지만 언제나 다정다감한 아버지와 늘 투닥거리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럴 수조차도 없는 '엄마'라는 존재가 늘 그녀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관심'과 '사랑'이 동의어일 수 있다라는 말을 빌리자면 그녀의 엄마는 늘 그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아직 10대인 레이디 버드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이 맞다. 그 나이 때에는 원래 몰라야 하는 거다. 또한 공부 잘하고 능력 있는 오빠가 있고, 오빠의 애인이 있다. 그녀에게 관심을 쏟는 4명의 가족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오빠의 애인은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버림 받았다. 극중 레이디 버드만이 좋든 싫든 살을 맞대고 부비고 투닥거리고 푸닥거리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뜻인데, 돌아보면 그것이, 또한 그때가 가장 큰 행복이자 재미났던 때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극의 초반에 뭐 재미난 일이 없을까, 하며 익숙한 일상의 무력함을 호소하던 레이디 버드에게 말이다. 뒤늦게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레이디 버드는 그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자신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도시를 실은 자신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에서 벌써부터 얼마나 그곳을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이제서야 깨달은 레이디 버드를 보며 나는 그녀가 크리스틴이라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새롭게 펼칠 앞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때쯤이면 남자 보는 안목도 많이 늘었으리라 예상하며. 그러길 바라며. 극장 문을 나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극의 마지막처럼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표현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