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대 이상의 초반부, 그래서 아쉬운 후반부

지난 7월, <블랙 위도우>에 이어 약 두 달 만에 마블 영화가 돌아왔다. 마블 내 최초의 아시아계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은 마블이라는 든든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앞선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작년 이맘 즈음, <뮬란>을 통해 중국 시장을 타게팅 한 결과물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샹치는 70년대부터 있던 캐릭터고 다수의 히어로들이 스크린에 등장한 시점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캐릭터지만 비슷한 논리로 90년대, 동명의 걸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뮬란>이 무너진 걸 보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샹치>는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잘 나온 편이었다. 특히 특정 부분에서는 마블 내에서 역대급이다 싶을 정도로 빼어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영화의 단점들을 보며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액션 시퀀스들이다. 샹치라는 캐릭터가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캐릭터이고 무술을 기반으로 싸우는 캐릭터인 만큼 맨몸 액션이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성가반 출신의 故 브래드 앨런이 참여한 만큼 성룡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오마주, 그리고 성룡 영화를 연상시키는 액션 시퀀스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영화 초중반에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버스 씬과 마카오의 빌딩에서 벌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마블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액션 시퀀스 중 하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났다. 맨몸으로 맞고 때리는 타격감과 빠르게 주고받는 합이 주는 속도감은 잘 살리면서, 성룡 영화에서 자주 보인, 재킷, 노트북 컴퓨터, 버스의 좌석과 기둥 등 주변의 소품과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벌어지는 참신함이 아주 잘 어우러져 보는 맛을 한껏 더한다. 마카오의 액션 시퀀스는 건물 외벽의 비좁은 공간에서 재치 있게 수직, 수평으로 확장하며 액션을 설계하고 이후 넓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빠르고 박력 있는 합과 외부의 조명이 어우러져 화려함과 액션의 힘을 더한다. 이전에 액션 연기를 한 경험이 있는 시무 리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기 때문인지 동작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넓은 컷, 긴 호흡의 컷에서도 이러한 액션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 이처럼 <샹치>의 액션 시퀀스들은 아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베테랑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시무 리우와 아콰피나라는, 두 젊은 배우들이 주는 에너지도 좋지만 양자경과 양조위라는 대 배우들이 영화에서 가지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양자경은 그리 길게 나오지 않지만 중국 무협 영화에서 나오는 '멘토'의 이미지를 아주 강하게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양조위는 영화의 메인 악역인 '웬 우'를 악역이 아닌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든다. 가족주의적인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영화 고 그에 따라 웬 우의 행동에도 확실한 감정적 동기가 있는데 이렇게 설계한 각본의 방향도 영향이 있겠지만 양조위의 연기가 그 깊이감을 더한다. 특히 지난 홍콩 영화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그윽한 눈빛으로 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CG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빛이 난다. 과도한 플래시백과 늘어지는 드라마 속에서도 이 영화가 서사적인 동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장면마다 빛이 났던 양조위의 연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앞서 길게 서술한 장점만 보면 <샹치>는 마블 영화를 통틀어서 손가락에 꼽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샹치>는 인상적인 초반부를 뒤로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쉬움이 묻어난다. 우선 짤막하게 언급했지만 가족의 재회 과정까지는 빠르게 진행되고 액션 시퀀스로 그 중간중간 분위기를 아주 잘 환기해 주며, 특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무협 영화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한다.(특히 이연걸의 <태극권>이 많이 연상된다.) 하지만 영화 중반을 기점으로 과도한 과거 회상으로 영화의 템포가 떨어지고 최종적인 영화의 방향성 역시 우리가 정말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샹치와 웬 우의 대립)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가 지향하는 액션의 방향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앞서 극찬한 대로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는 굉장히 뛰어나다. 맨몸 액션으로 타격감과 창의성을 모두 살렸던 샌프란시스코와 마카오 액션 시퀀스와는 달리 영화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액션 시퀀스는 CG에 의존한, 비교적 단순한 양상으로 변화한다. 그나마 샹치와 웬 우가 벌이는 액션은 CG 속에서도 합의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외 장면들은 특별히 인상적이지가 않았다. 특히 주인공 샹치와 마카오에서 짧지만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 데스 딜러[앤디 르 분], 팔에 칼을 장착한 캐릭터의 외형부터 인상적인 레이저 피스트[플로리안 몬테아누 분]를 활용한다면 인상적인 액션 씬을 뽑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두 캐릭터를 허무하게 퇴장시킨 부분도 많이 아쉽다. 이러한 부분들이 꽤나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전반부에서 고점을 찍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후반부가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았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재미있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단점을 저렇게나 적은 이유는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가 보여준 최고점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의 액션 시퀀스와 배우들의 연기는 역대급이었고 만약 이 에너지를 후반부까지 이끌고 갔다면 <샹치>는 마블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화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영화가 보여준 고점은 높았지만 동시에 낮은 저점이 있었기에 아쉽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오리엔탈리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안을 그리는 방식, 신화를 접목하는 방식 등 여러모로 인상적인 지점이 있었기에 충분히 재미있게 봤음에도 <샹치>의 단점들이 더더욱 아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