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과
2022.06.29
스포일러 주의!
모순과 중의로 일궈낸, 마침내 완성된 박찬욱의 세계.
1. 영화 관람 후 상영관을 걸어 나오는데,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이토록 현명한 영화를 만난 것이 언제인가, ‘시네마’스러운 작품을 만난게 얼마만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모순과 중의가 겹치고 겹쳐 일궈낸 박찬욱 감독의 진짜 세계 같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작품’인가라는 질문에는 늘 물음이 있었다. 감독님의 세계는 언제나 꽉 막혀있었다. 그렇기에 관객인 나는 늘 통제되고 기분이었고,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 문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감독의 기존 작품들은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착착 맞아떨어지게 이야기를 보여줬다. 그 감상은 괴이하고 괴팍하게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게 미장센, 인물들의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사, 사건이 벌어지는 빠른 속도에 대한 감상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늘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잘 봤다고 생각을 했지, 영화에 대해 생각할 겨를(여력)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관객이 가질 또다른 텍스트의 제한이 관람의 저해요소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좀 달랐다. 하나의 세계가 대척되는 지점으로 닫히거나 닫힐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그 세계 어디선가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은 닫힐 위기의 대척지점과 조응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론이 길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세계이면서도 그 세계가 아닌 것 같아서 좋다. 폭력과 힘의 논리가 작동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더 좋았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이분법, 모순, 역설의 세계에서, 욕구(욕망)를 추동하려는 인간이 사랑에 흩날리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싶다. 그리고 가만 돌이켜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추동의 근간이었다. (그는 정말 로맨티스트였던 걸까? 이렇게 풍성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였을까? 아니면 나는 이 감정에 ‘잉크가 물에 퍼지듯’ 잠식되는 감정을 나는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걸까.)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추리 등 갖가지 설정을 표면적으로 갖고 있으며, 내부로 들어가 보면 서로 다른 성향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으며, 해준과 서래를 둘러싼 인물들 또한 서로 다른 성질의 인물과 엮인다. 예를 들어 해준과 서래는 언어부터 다르다. 성별, 국적, 형사와 용의자라는 상황까지 말이다. 그뿐이랴 해준이 부산과 이포에서 만난 조력자인 고경표, 김신영은 성격, 성별, 언어(사투리)등이 다르다. 서래와 해준의 와이프의 성향 또한 다르다. 오죽하면 포켓의 위치조차 모르는 아내는 이주임과 석류와 자라를 들고 떠나지만, 서래는 해준에게 머물고 싶어 만조에 몸을 맡긴다. 서래의 주변 인물들조차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은 해준과 ‘사랑’이란 말을 달고 사는 그녀의 남편(박용우)도 있다. 하지만 서로 반대인 지점이 많아서, 끌렸던 것일까. 인물은 서로 반대 지점(상황)에 있음에도 사랑에 빠진다. 2. 극의 초반 서해는 생존을 위해 남편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해준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맞을까? 사랑을 하겠다는 결심은 없는데, 왜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걸까. 오히려 서해가 미결로 남고 싶다고 말하며 만조에 몸을 맡기는 것과 해준이 산 정상에서 그녀가 자신을 밀수도 있음에도 버티며 서 있었고, 그녀가 그러지 않음에 안도를 했다는 그 한숨이야말로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극 초반 해준은 그녀 주위를 멤돈다. 그 시작은 단서 찾기였으나 중간과 끝에 이르러 (시각을 통해) 사랑이 존재했으며 결국엔 그녀를 통해서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첫 번째 남편을 살해했고, 그는 생존을 위해 그녀에게 잠을 얻는다. 영화에서 남·여는 모두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한다. 비록 그게 윤리와 배척될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 안에서 두 남녀의 사랑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사랑할 결심, 헤어질 결심을 백날해도 그러하다. 물론 서해가 두 명의 남편을 살해하고 해준을 만났다는 윤리성에 기댈 수 도 있다.(라는 평범한 대답에 의존 할 수 있지만, 감독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두 인물의 사랑이 완성이 아닌 미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와 해준은 몸짓(행동)과 음성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여자와 남자에게는 장애물 아닌 장애물이 있다. 모순적이게도 여자에게는 언어(음성)가 그것이며, 남성에게는 시각(안구건조증)이 그것이다. 앞서 나는 서래·해준은 음성/시선을 통해 사랑을 영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자신에게는 사랑을 키우는 도구가 되지만, 상대방에게는 사랑을 완결시키는데 장애물이 된다. 해준은 여성을 잠복·취조를 하며 바라보며, 점차 스며들며 여자는 남성의 음성을 들으며 사랑을 확신한다. 또한 해준이 서래와 새벽에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들이 주고받는 휴대폰 메시지를 스크린에 띄워 대화를 보여 준다. 이 보는 주체는 물론 해준이며, 서래 또한 주체이지만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해준은 서래라는 인물대신 서래가 보낸 메시지를 본다. 서래는 또 어떠한가, 그에게 숙면을 주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가 서로의 숨소리를 맞춘다.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2-1.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수평적인 (권력)구조를 가질 것 같지만, 특이하게 이들은 수직적인 구조를 갖는다. (물론 이 상하의 위치는 극 후반 전복된다.) 극 초반 영화의 주도권은 해준이 갖고 있다. 해준이 보는 시선을 통해 영화가 이끌어지고, 해준이 핸드폰에 기록된 내역을 바라보는 순간, 영화의 흐름이 멜로에서 다시 수사극으로 바뀐다. 영화 속에서 수평과 수직은 꽤나 중요한 듯 보인다. 일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각각 산과 바다에서 만난다. 더욱이 첫 번째 남편은 산에서 떨어져 죽었고, 두 번째 남편은 수영장에서 수평선 펼쳐진 바다를 보는 방향으로 죽어있었다. 죽음이 해준과 서래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 수평/수직의 구조가 사용되는 듯 보인다. 영화속 수평과 수직의 세계가 교차되는 지점이 등장한다. 그곳은 바로 안개가 많고, “점심에도 해가” 없는 이포다. 부산과 달리 가상공간인 ‘이포’에는 물을 태워 압력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그 발전소를 지키는 해준의 아내가 있다. 부산에서 해준과 서래는 산속의 절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아파트 고층에 사는 서래를 관찰하거나, 담장위에서 고양이에게 대화하는 서래의 대화를 녹음하는 해준을 볼 수 있다. 부산에서의 구조가 높낮이가 있었고, 서래의 위치는 해준의 높이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이포에서는 서래가 늘 해준보다 위에 있거나(화재경보기 발생, 산으로 올라가 유골을 뿌릴 때 등) 두 사람의 높이는 균일하다. 범죄자와 형사의 위치가 전복되는 세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 세계에서 서래는 해준을 원상복구 시키기 위해 자신을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하고, 그 자신 스스로가 낙하하면서, 미결이지만 완성이 되길 바란다. 3.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미술품 같았다. 정교하게 그려진 회화. 이번에도 그 미술품을 영상으로 보는 기분은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의 작품과는 다르게 인물들에게서 당황하는 기색, 흔들리는 눈동자, 근거리에서의 숨소리, 뻗으면 닿을듯한 한뼘의 거리가 등장한다. 이 나열된 것들로 인한 것인지, 이것을 향유하는 인물들 때문인지 모르겠다만, 영화 <헤어질 결심>은 미술 그림이 주는 단편적인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그 뒤에 있는 세계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진다. 위에 언급된 것들은 서래와 해준.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두 사람에게서 사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알 수 없다. 초밥을 먹을 때, 취조실로 들어온 자동차 조명이 왔다 사라지는 찰나. 죽은 남편의 사진을 보고 싶다고 말하던 찰나. 언제라도 정의할수없지만 이들은 서해 남편의 죽음을 통해 시작됐고, 서해남편의 죽음을 통해 끝났다. 그 시작과 끝을 죽음이 마무리 되는 것이 믓내 아쉽지만, 죽음과 죽음 사이에 들어난 인물이 겪은 감정은 꽤나 풍성하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상대방의 옆에 존재하지 않을 때 키우고, 상대방이 옆에 존재할 때 사그라든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완결이 아닌 미결이겠지만, 그 미결이 주는 감정은 아련함이 아닌 먹먹함이 되는 것일 테다. 해준은 서래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