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Pauline
2018.04.29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자신의 둥지를 돌아보게 되기까지 2000년대 초 미국 새크라멘토, 이제 막 18살이 된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고 스스로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붙인다. 당장이라도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크리스틴은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로 대학을 가 멋지게 살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직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는 집안 사정과 사사건건 간섭하는 어머니와의 갈등, 쫓겨난 여자친구를 굳이 자신의 집으로 끌고 온 다소 파렴치한 오빠까지, 가족들은 좀처럼 그녀를 놔줄 생각을 않는다. 더군다나 그녀가 다니는 신학 학교의 구속과 규율은 자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점점 키우게 하는 기폭제만 될 뿐이다. 크리스틴은 또래 친구들에게 패션 잡지 속 아이돌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고, 관심 가는 남자와 연애도 하고 싶다. 그런데도 속상한 일은 매일같이 발생하고야 말기에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과연 크리스틴은 스스로가 붙여준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지켜내며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까. 제75회 골든글러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분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레이디 버드』는 전미 비평가 협회 감독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오르는 등 올해 개봉한 영화 중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의 경쾌한 유머로 잠시나마 *로튼토마토 지수 100%를 유지했을 만큼 뛰어난 대중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의 감독 겸 각본가를 맡은 그레타 거윅은 우리에게 연출자보단 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뉴욕에 사는 불행한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부터 결혼 보단 인공수정만으로 엄마가 되고자 하는 『매기스 플랜』 속의 매기까지, 그녀는 언제나 관객에게 다소 낯설어 보이는 타인의 삶을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표정으로 설득시키던 배우이자 할리우드에 사는 좋은 이웃으로 여겨졌다. 크리스틴을 연기한 시얼샤 로넌 역시 아일랜드계 미국인 1세대의 삶을 다룬 영화, 『브루클린』의 주인공을 맡으며 낯선 이방인의 삶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말하자면 『레이디 버드』는 주변인의 삶을 면밀히 다루던 감독과 연기자가 만난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와 같은 영화나 다름없다. 『레이디 버드』는 자칫 사춘기 여고생의 우여곡절을 다룬 단순한 성장 서사로만 비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본다면 어떨까. 단순히 서사에 주목해보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틴의 시선을 축으로 삼아 연출자가 세상을 조망하는 태도에 눈을 옮겨보자는 것이다. 거윅이 새크라멘토 출신이자 2000년대 초반 고등학생이었단 점에 주목해 본다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성향이 다분히 묻어있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틴과 그녀의 주변인 관계를 다룬 부분은 『레이디 버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거윅은 모녀 관계를 단순히 부모와 자식의 관점으로만 여기지 않고, 관객들이 개인과 개인의 맥락으로 이해하길 원한다. 감독은 어머니란 존재가 딸에게 좋은 친구임과 동시에 언제나 집안의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걸 인지하며, 이를 딸의 시점으로 면밀히 포착한다. 어머니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니 주목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크리스틴은 점차 주변인과의 관계를 조망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 누구인가를 점차 깨닫기 시작한다. 결국 『레이디 버드』는 스스로가 지은 ‘레이디 버드’란 이름이 아닌, 타인에 의해 호명되는 ‘크리스틴’이란 이름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형성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가수 이소라의 Track9이란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세상 앞에 던져진 채로 태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하고 이내 타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는지 모른다. 『레이디 버드』는 그런 삶에 그저 제멋대로 사는 것이 답이 아니라 내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삶의 행복이자 가치임을 역설한다. 모쪼록 가족과 함께, 특히 어머니와 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