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Namuneulbosiki
2018.05.13
<걸어도 걸어도> (2008)는 많은 관객으로부터 사랑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 하나일뿐더러, 코멘터리를 녹음한 이동진 평론가에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이고, <우리들> (2015)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에게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주로 그랬듯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유지하지만, 가족들도 몰랐던 숨겨진 사연이 밝혀지면서 어느 영화보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정도가 가장 강했기 때문에 <걸어도 걸어도>는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걸어도 걸어도>는 순간순간 발생하는 감정이 바로 터지지 않고 계속 축적되면서 결국 감정의 물결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계속 일렁거리는 영화이지 아닐까 싶다. 1. <걸어도 걸어도>는 '죽음'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 (1995),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등 여러 작품은 '죽음'이라는 요소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죽음' 자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핵심으로 삼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미루어 볼 때 <걸어도 걸어도>는 장남 준페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장남 준페이의 죽음과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토시코(키키 키린)과 쿄헤이(하라다 요시오) 부부의 죽음을 담고 있다. 영화는 철저하게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하지 않거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연출 방식을 통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과 이로 인한 행동에 집중한다. 특히, 1층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2층에도 들리는 집 구조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영이 굉장히 뚜렷하게 부각되는데, 이는 인물의 표정이 음영이 짙은 공간에서 비춰질 경우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개인적이면서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집 구조뿐만 아니라 <걸어도 걸어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설정은 료타(아베 히로시)의 아내 유카리(나츠카와 유이)의 존재다. 유카리는 료타의 식구인 동시에 죽음 때문에 전 남편을 잃은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유카리는 전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간이 흘러 료타의 식구가 되지만 시댁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장남 준페이의 죽음으로 인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관객의 눈이 되어 지켜본다. 이와 같은 독특한 설정과 영화가 핵심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를 이해한다면 가족임에도 마음이 조금씩 어긋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상실감은 가족임에도 서로 조금씩 어긋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이면 하루를 왁자지껄 속에서 보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남의 기일에 모두 모인 가족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준비하고 먹으면서 옛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쉴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정작 꺼내야 하는 과거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다. 아버지 쿄헤이는 아들들이 자신처럼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회화 복원사가 된 료타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장남이 살아있었으면 자신의 바람을 이뤄졌을 거라는 아쉬움을 표현한다. 반면, 차남인 료타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와 옛 추억을 이야기할 때도 형과 자신을 헷갈려 하는 가족 때문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돌린다. 어머니 토시코는 오랜만에 집에 모인 가족 덕분에 장남의 기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남이 구했던 물에 빠진 청년 요시오가 집을 방문하자 얼굴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서늘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상실감은 여름이라는 계절과 맞물려 심해지고 서로를 서먹하게 만들거나, 계속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무심코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으면서 상처를 입히며 가족이지만 계속 어긋나게 된다. 특히, 가족이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비밀을 공유하지 않고 모습은 서로의 관계가 어긋남을 은유한다. 3. 묘지를 향해, 그리고 바다를 향해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걸어도 걸어도>의 장소는 집을 중심으로 위에는 묘지, 집에서 내려가는 찻길을 내려가면 아래에 바다가 위치한 수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묘지는 죽음을 알리는 장소지만, 바다는 죽음의 기원이 되는 장소다. 어머니 료시코는 료타와 아들 가족과 함께 형이 묻힌 묘지로 올라가지만, 아버지 쿄헤이는 손자 아츠시 그리고 아들 료타와 함께 바다를 향해 찻길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하지만, 단순히 묘지를 향해 올라가고, 바다를 향해 내려가지 않는다. 가는 길에 항상 오르락내리락 걷게 된다. 오르락내리락 걷는 모습을 <걸어도 걸어도>에서만큼은 쉽게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실감으로 인해 계속 어긋나는 가족이지만 반복되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은 장소의 수직 구조를 무의미하게 만듦으로써 상실감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지만, 같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게다가, 같이 걸으면서 평소에는 아웅다웅하지만, 가족이기에 묘하게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전반적으로 고정된 카메라가 갑자기 나비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계속 위아래가 흔들리도록 촬영된다. 이는 작가 윤홍길의 단편 소설 '장마'에서 구렁이를 죽은 아들로 대하는 것과 같이 나비를 준페이로 대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 때 지속해서 카메라 움직임을 가져감으로써 슬픔의 깊이를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모두 다 준페이를 그리워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료타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사이에 태어난 딸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 묘를 방문한다. 어머니가 형의 묘비에 물을 뿌리셨듯이, 료타도 여름 더위 때문에 고생하실 부모님을 위해 묘비에 물을 뿌린다. 그리고 묘지에 계신 부모님을 뵌 료타와 그의 가족은 같이 언덕을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모습에서도 가족이란 서로가 점차 닮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크레인 쇼트(Crane shot)로 묘지와 바다를 동시에 보여주며 끝나는 이 영화는 겹겹이 쌓여왔던 감정이 깊은 여운으로 전환되면서 료타의 가족처럼 묘하게 비슷한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만들며 마무리 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