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스트, 스토리, 시간

1. 유령의 시선 소설이나 시에서 화자가 존재하듯이 영화는 카메라로 화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 영화가 카메라를 다루는 마법은 이 화자를 교차시키는 방식에서 온다. 1:1.33이라는 클래식한 비율로 찍은 이 영화는 유령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여줄 때를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유령의 시점에 이입한다. 카메라워킹은 유령의 시선으로 작동하고, 이 워킹은 관객과 유령을 일체화시킨다. 이 시선의 이입이 주는 효과는 바로 유령의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고스트 스토리>의 주인공인 유령(케이시 에플렉)은 얼굴이 내내 가려진 채 시간을 관찰하지만 관객이 그의 표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카메라라는 시선 안에 응축된 감정 때문이다. 유령이라는 환상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유령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가 내면에 숨겨온 유한성에 대한 공포를 환기시키는 걸 체험할 수 있다. 유령은 사건에 개입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한다. 유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애꿎은 사람에게 역정을 내는 일이나, 애인이 남긴 쪽지를 찾는 일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이방인인 이 유령은 무참히 흘러가는 시간이 꿰뚫는 공간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방법론은 인간이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확장시킨다. 이 영화에서 유령은 삶의 의미를 찾기 전까지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의미있는 시간과 의미 없는 시간은 뭘까? 그게 바로 감독이 숏과 씬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온다. 2. 정지된 시간, 무참히 흐르는 시간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영화를 봉인된 시간이라 말한 적 있다. 영화는 시간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며, 그 시간을 봉인해 언제든 지나간, 혹은 다가올 시간으로 투신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는 이 영화 속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부딪히며 시간을 다시 구성한다는 말을 꺼냈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사건이 존재한 지표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이 흐른다, 흐르지 않는다는 사건이 존재한 지표의 연속이다.(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 숀 캐럴 참조) 시간은 사건이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 사건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미시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그 무참히 흐르는 시간을 재조립해 의미를 만드는 일이 영화가 해내는 일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정지된 시간과 무참히 흐르는 시간을 영화에서 교차시키는 일을 롱테이크와 공간으로 이뤄낸다. 이 방법이 이 영화의 초반부를 지루도록 느끼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령의 시선에서 의미 있는 시간은 '그녀'가 존재하는 시간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순간들은 긴 단위로 연출되지만 그 외의 시간은 공간이 바뀔 때마다 며칠, 혹은 계절 단위로 훅훅 넘어간다. 가끔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가기도 한다. 카메라가 공간을 잡아낼 때, 공간의 이동으로 시간의 변화를 감지하도록 하는 일은 영화가 만든 마법이다. 이 영화의 시간 이동은 주인공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면서도 잔인하다. 주인공은 불멸을 살아가지만 의미있는 시간을 찾지 못하며, 우리는 그 시선을 따라가며 과거에서부터 무참히 흘러가는 시간을 체험한다. 이 영화가 이뤄내는 마법은 무의미하게 흐르는 시간들들과 실제로 다가오는 감동적인 시간의 차이를 실체화시킨다는 점에서 온다. 루니 마라가 10분 동안 파이를 먹는 장면은 실제 시간으로는 몇 분 안 되겠지만 카메라워킹에서는 10분으로 늘어난다. 하루가 100년 같지만, 100년이 하루같은 아이러니한 시간에서 이 영화는 감정이 시간을 구성한다는 정직한 연출을 해낸다. 숏과 씬은 오로지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3. 불멸과 필멸의 인간 기억을 잊고픈 인간과 기억하고픈 인간의 충돌이라는 모티브는 흔해빠진 모티브다. 그 공간에서 상대방이 떠나지만 한 쪽은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 이야기도 우리가 흔히 접해온 이야기다. 이 영화는 지박령이라는 흔한 이야기를 더 깊은 차원까지 밀어붙인다. 불멸과 필멸이라는 문제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한두 장면에서 이를 관객이 이해 못할까봐 친절히 설명해주는 흠집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주제에 있어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기억은 시간+공간과 연루되어 있다. 공간이 부재하면 시간도 부재하는 법이다. 이 영화에서 고스트는 공간은 존재하지만 시간이 부재하는 기이한 공간을 걷는다. 평생토록 그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지만, 그 사람의 기억에서 자신이 잊히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결국 불멸이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타인의 기억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한 불멸의 주제를 감독은 계속 이어나간다. 이러한 실존의 문제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이 감독의 재능을 높이 사고 싶다. 케이시 에플렉은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표정을 보여주며, 루니 마라는 부재하는데도 존재하는 기이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판타지를 빌미로 한 우화지만 그 우화는 극도로 사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