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우
2018.01.08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는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난 뒤, 어린 나이에 시립 도서관을 찾아가 도무지 이해 할 수도 없는 라캉의 철학책까지 뒤적였을 정도로 워쇼스키 형제(그때는)와 매트릭스 세계에 푹 빠졌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매트릭스 2 - 리로디드>는 설레는 마음으로 봤다가 김이 팍 새 버렸고, 연이어 나온 <매트릭스 3 - 레볼루션>에는 애석하게도 완전히 실망했던 것 같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워쇼스키라는 이름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때 쯤, 그들은 한류 열풍의 주역인 가수 비를 자신들의 영화에 과감히 캐스팅 하면서 다시금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스피드 레이스>였다. 이 영화를 두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스크린에 옮겨 놓는 것에 주안점을 둔 독립적인 영화였고, 특수효과나 미감은 제법 잘 구현 되었으니 그 자체로 보면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은 거둔 셈이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매트릭스를 만들었던 워쇼스키 형제들의 작품이라고 보기엔 초라했으며, 개인적인 취향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영 불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처음 <매트릭스>가 만들어졌던 1999년 이후 워쇼스키 남매는 주구장창 내리막길만 걸어대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매트릭스>가 속된말로 얻어걸린 작품이 아닐까 하는 불경한(?) 의심마저 품기에 이르렀다. 4년이 흘렀다. 래리 워쇼스키는 라나 워쇼스키가 되었다. 자신들이 형제에서 남매가 되었음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린 두 감독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크레딧엔 반갑게도 또 한 명의 한국 배우가 이름을 올렸다. 배두나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장르의 속성과 담겨진 내용들로 미루어 봤을 때, 워쇼스키 남매가 다시금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이비드 미첼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6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나열하며 불교의 교리 가운데 하나인 윤회를 이야기 한다. 1849년부터 2346년까지, 유럽과 미 대륙, 그리고 아시아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초월해 난잡하게 전개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놀랍게도 정교한 흐름을 따라 흐르다 마침내 하나로 맞물린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고 있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정신없을지언정 지루함을 안겨주진 않는다. 복잡한 철학을 담고 있다기 보단(사실 윤회는 이제 하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선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딱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면 된다. 각각의 에피에서 전부 다른 인물로 나오는(심지어 인종과 성별도 초월한다!) 주인공들의 현란한 분장 쇼를 즐기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영화다. 일반 관객들뿐 아니라 언론이나 평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차이도 크다. so-so와 great를 넘어 bad와 perfect로 갈린다. 이런 제로 텐 영화들은 늘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한 마디로 모 아니면 도. 사람들이 ‘도’를 감수하면서까지 도박에 빠지는 이유도 ‘모’가 나올 것이라는 야릇한 심리 때문 아니겠는가. 너는 어땠냐고? 지금까지 몇 줄에 걸쳐서 제로 텐이 어쩌구 모 아니면 도가 어쩌구 해 놓고 왜 샛길로 새나 싶겠지만, 나는 ‘도’도 ‘모’도 아닌 ‘걸’이었다. so-so와 great 사이의 good 정도.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영화가 사유하는 담론이나 독특한 표현 방법이 마음에 들기는 하나 무시할 수 없는 단점과 인상적인 장점들이 여러 가지 혼재 되어 있어서 대차를 따져볼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특히나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서울을 다다미 방에 사쿠라 날리는 일본풍으로 표현한 것과, 동양인 분장을 요상스레 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왜색 논란에 인종차별까지 갈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성의 없이 느껴질 정도로 거슬렸다. (워쇼스키 감독은 미래의 네오-서울은 아시아의 여러 문화들이 섞인 도시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다고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답했지만, 남성의 이름이 혜주인 것과 어설프게 번역한 느낌의 한글 간판들로 미뤄 봤을 때 상세한 조사가 부족했다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 것 같다.) 정리하자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스피드 레이서>나 <매트릭스>의 후속편과 비교해 봤을 때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 중 괜찮게 보았던 작품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게 그들의 베스트는 <매트릭스>이며, 아마 지금까지의 행보로 미뤄 보건데 그건 앞으로도 변함이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들의 필모그래피 중 오직 <매트릭스> 단 한 편만 빛났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매트릭스> 수준에 고정시켜 놓았던 것이 어쩌면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워쇼스키의 실력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며, 오직 네 기대뿐이었느니라, 뭐 이런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