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우
2018.01.08
색다른 방식의 재난영화
거대한 쓰나미가 푸켓의 해변을 무섭게 집어 삼키기 전까지, 관객들은 그 끔찍한 재난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부여받지 못한다. 영화의 도입부엔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상청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원들의 모습도 없다.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는 휴가를 즐기는 평범한 가족의 행복한 시간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휴양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가로우며, 아름답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 누구도 잠시 뒤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미리 알지 못한다. 스크린을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그들처럼 모르고 당한다. 감독인 J.A 바요나는 이를 통해 당시 갑작스런 재난을 준비 없이 겪어야 했던 피해자들의 황망함을 같이 느껴보자고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더 임파서블>은 재난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음에도 재난 영화로 불리기를 꺼려하는 작품이다. 재난이 클라이맥스로 작용하는 여타의 재난 영화들과 달리, 예고 없이 찾아온 쓰나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더 임파서블>은 비로소 시작을 알린다. CG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참사의 현장은 그 자체로 망연자실하다. 영화는 재난의 시각적 효과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감독은 파도가 솟아오르는 바다를 부감으로 압도감 있게 찍어내기보다는 피해자들의 시점 쇼트를 통해 쓰러지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쓰나미가 오고 있음을 대신 알린다. 때문에 <더 임파서블>에서 관객은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 피해자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한다. 그들이 봐야만 했던 공포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우리도 보고, 겪는 것이다. 수마에 휩쓸려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마리아(나오미 왓츠)의 몸이 각종 부유물들에 쓸리고 찢겨지는 장면들은 간접 경험을 넘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보다 당시의 참상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어린 아들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참담함, 뼈가 하얗게 드러난 뒷다리와 피 흘린 채 노출 되어 있는 엄마의 젖가슴을 목격한 아들의 충격, 절망적인 확률에 매달려 위험을 무릅쓰고 아내와 자식을 찾아 헤매는 남편의 상실감, 끔찍한 상황을 의연하게 견뎌내는 일곱 살짜리 아이를 마주한 일흔 넷 노인의 애처로운 눈망울 등,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놓인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담아내는 영화의 묘사도 탁월했다. 보는 내내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든지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와 같은 질문과 대답들을 혼자 수시로 되뇌었을 정도니, 그 전달력과 호소력을 어느 정도 짐작 하시리라 생각한다. 시사 후, 많은 사람들이 <더 임파서블>의 후반부 신파와 감정 과잉을 아쉬운 점으로 꼽곤 했는데 글쎄, 나로서는 결말이 그다지 과잉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위적이라 지적하는 부분들은 일상의 테두리 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우연인데다, 그들의 감정에도 충분히 공감이 갔으며, 어디까지나 실화라니까.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디(the) 임파서블이 아닌 더(more) 임파서블로 번역했나 보다.) <더 임파서블>은 재난의 참상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떠난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를 정중히 갖춘 훌륭한 휴먼 드라마다. 전작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으로 무난히 데뷔한 스페인 감독 J.A 바요나는 <더 임파서블>을 통해 이년 차 징크스를 완전히 날려 보냈다. 한 해에 이 정도 감정적 울림을 전달하는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P.S. 당시 나오미 왓츠의 아들 역할을 했던 똘망진 배우가 올 해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주인공 그 톰 홀랜드다. 나중에 알고 깜짝 놀랐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