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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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스포일러 주의!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생일을 맞은 다섯 살 꼬마아이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의 네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머리를 길게 길러 언뜻 봐서는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아이와 아이의 엄마 조이(브리 라슨)의 아침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들이 감금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17살이었던 조이는 낯선 남자에 의해 납치를 당한다. 좁은 방 안에 감금된 그녀는 최소한의 물품과 음식들만 제공받은 채 생활하며 지속적으로 성범죄에 노출된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그 곳에서 아이까지 낳아 모자가 같이 살게 된 것. 처음부터 방 안에서 태어나 줄곳 자란 아이에게 방이란 곧 세계나 다름없다. 천장에 달린 작은 창문 외에 그가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창구는 TV 속 프로그램들이 전부지만, 그마저도 엄마로부터 허구의 세상이라고 교육받는다. 그러던 중,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잠자리를 하기 위해 그녀를 불러낸 남자가 벽장속에 숨어있던 잭을 발견하면서 (원래는 자고 있다고 둘러댔다)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한다.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이어지고, 화가 난 남자는 다음 날 모자의 방에 공급되던 전기를 끊어버린다. 닉 아저씨라 불리는 납치강간범의 그 행동은 조이로 하여금 더 이상 이 곳에서 아이와 함께 고분고분 지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부르는 계기가 된다. 조이는 잭을 불러 그동안의 진실과 바깥세상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멀쩡히 살다 하루아침에 감금을 당하게 된 엄마와 달리 방 외의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아들은 갑작스런 엄마의 고백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내 그것들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엄마와 함께 탈출을 모의한다. 조이가 생각한 방법은 아들 잭을 먼저 바깥으로 보내 구조를 요청하게 하는 것이었다. 가장 처음 조이는 차단된 전기 공급 때문에 잭이 심한 독감에 걸렸다고 닉을 속임으로써 아들을 병원으로 보내게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약으로 대충 떼우려는 닉 때문에 이는 수포로 돌아간다. 차선책으로 그녀는 잭을 카펫에 둘둘 만 다음 죽은 것처럼 위장한다. 당신이 병원에 안 데려가서 아들이 죽었다며 통곡과 함께 거세게 몰아부치는 그녀의 연기에 닉이 일정부분 부채의식을 느끼면서, 마침내 계획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트럭 뒷칸에 카펫 채로 실린 잭은 엄마와 연습했던 것처럼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재빨리 카펫에서 나와 도로로 뛰어 내린다. 그러나 소리를 감지한 닉에 의해 잭은 바로 붙잡히게 되는데, 때마침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 덕분에 닉은 잭을 버리고 도망친다. 출동한 경찰은 심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인 잭을 잘 달래 조이의 위치를 확보한 뒤 구조에 나선다. 보통의 영화였으면 여기서 끝을 맺었겠지만 <룸>은 정확히 러닝타임의 절반 지점에서 모자의 탈출을 보여주며 다른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택한다. 즉, 그들에겐 탈출이 동화책의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던 것. 오랜만에 원래의 생활을 되찾은 조이는 그나마 좀 낫지만,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잭은 당연히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 역시 예전의 관계가 아닌 상황. 조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다시 재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상황이다. 딸이 낳은 아이지만 동시에 납치 강간범의 자식이기도 한 잭을 조이의 친부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와 달리 조이의 엄마는 그들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반겨주고, 곁에서 적응을 돕도록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진을 마치고 퇴원한 조이는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가 아들과 함께 안정을 취한다. 마치 실제 인물이 된 듯한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 그리고 소재에 대한 예의를 갖춘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연출 덕에 영화 <룸>은 종종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상황들에 영감을 받긴 했어도 특정 실화를 바탕으로 하진 않았다고 추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직접 밝혔다. 이 영화를 통해 브리 라슨은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얻었다. 당시 나는 <캐롤>의 케이트 블란쳇을 응원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그녀의 수상에 기꺼이 수긍했다. 아역 제이콥 트렘블레이 역시 만약 아카데미 시상식에 우리나라 시상식처럼 아역상이나 신인배우상이 있었다면 너끈히 수여해도 될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방 안에서만 갇혀 있던 잭이 닉의 트럭에서 생애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보여준 2~3초간의 그 표정연기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타고난 재능이다. 그 나이에 배워서는 그런 연기를 할 수 없다. 영화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일체의 신파나 감상주의적 접근, 그리고 소재를 부각시키는 직접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것도 영화의 절반이 지난 다음에서다. 감독은 플래시백을 통해 범죄의 장면들을 낱낱이 전시하는 것으로 그들의 고통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아직 어린 잭의 시점에서의 나레이션을 선택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고 풍부하게 모자가 처한 끔찍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윤리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더욱 깊이있고 세련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018년에 개봉을 앞둔 그의 차기작이 진심으로 기다려지는 이유다.